비운의 신데렐라 <31>
다음날 아침. 놈은 극도로 저기압이었다.
이른 새벽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어나보니 여섯시를 넘
은 시각이라 깜짝 놀라 후닥닥 씻고 나와보니 다행히 놈은 여느 때처럼 완벽한 차림으
로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뒷모습에서 살기가 엄청나게 도는 것이…
식탁에 앉아 밥을 깨작깨작 씹으면서도 왠지 모를 위화감에 나는 계속 맞은편에 앉은 놈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때는 차갑긴 해도 살벌하진 않았는데 오늘따라 눈매가 사나워 보이는 게…
아침메뉴가 마음에 안 드나?
수저로 국을 뒤적이다 말고 나는 눈어림으로 식탁에 오른 반찬의 가짓수를 대충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정도면 괜챦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슬쩍 놈의 밥그릇을 넘겨다보니 다른 때 같으면 다 먹고 일어설 시간인데도 채 반도 비워져 있질 않다.
이상하네….
밥그릇 한 번 쳐다보고 놈의 얼굴 한 번 훔쳐보고 국그릇 한 번 쳐다보고 놈의
얼굴 훔쳐보고 하는 과정을 서너번쯤 반복하다가 나는 문득 어젯밤 일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진이형네 가게에 가서 형이랑 같이 마시기 시작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설마…내가 어제 술 취해서 놈에게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반말….을 했다던가,
<반말>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며 물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닐 거야…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그런 무서운 짓을….
자기보호 본능으로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한 손으로 억누
르며 나는 심호흡과 함께 되도록이면 자세히 어젯밤 일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게…
난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겨버린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언제 어
떻게 취했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냐구.
일어나 보니까 깨끗한 흰 파자마입고 침대 위에 얌전하게 고이 드러누워 있던데.
이걸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랬다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봐. 무서워서 어떡해…ㅠㅠ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애를 태우고 있는데 별안간 탁,하고 수저 놓는 소리와 함께 놈이 기세좋게 식탁에서 일어섰다.
엇! 벌써 가는 건가?
“안녕히 다녀오세요.”
뭔가 지은 죄가 있는 것 같아 두근두근하며 현관에 서서 직
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더니 놈이 나가려다 말고 도어를 잡은 채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너 말야.”
놈의 등 뒤에서 검푸른 색의 불길한 오라가…
“네? 왜, 왜요?”
나는 나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앞치마 자락을 꽈
악 움켜쥐며 현관 옆 신발장에 바싹 붙어섰다.
“너.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분한듯 잇새로 내뱉는 어조였다.
에?
내가 미처 무슨 말이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놈은 흥, 하더니 쾅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아니 저건 도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야?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덩달아 인상을 쓰며 허리에 손을 짚고 거실로 돌아오다 나는
테이블 위의 무선전화기를 보고 아! 하고 무의식 중에 손뼉을 쳤다.
어제 같이 술 마신게 진이형이니까 형한테 전화해보면 되겠다!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지?
소파에 앉아 무선 전화기를 집어 들려는데 때마침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보경이니?>
“아, 형! 그렇쟎아도 지금 막 전화하려고 그랬는데 잘됐다!”
<어…그게 저…성욱이는?>
“응. 지금 방금 학교갔어. 그보다 참, 형. 나 어제 무슨 일 없었어?”
<응?>
그말에 어쩐지 형이 움찔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어젯밤 일이 너무나 궁금해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침에 깨보니까 머리는 아픈데 어젯밤 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성욱이가….암말 안 해?>
뭐, 알 수 없는 말을 한 마디 하긴 했지만…제대로 듣지를 못해서….
“뭐, 별로?”
<어, 저기….아무 일 없었어.>
“나 들어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어?”
<응? 으응…>
그럼 그렇지. 조신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리가 있겠어? (….ㅡㅡ;;)
진이형의 말에 나는 안도한 얼굴로 테이블 옆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그럼 역시 형이 데려다 줬구나?”
<어? 어어. 네가 좀 취한 것 같아서….저기 보경아..>
“응? 왜?"
< 미안한데…나 지금 좀 바쁘거든? 어, 나중에....내가 다시 전화할께.>
“응. 그래. 알았어. 형.”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식당으
로 가 놈이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국그릇과 밥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별 일도 없었구만 괜히 분위기잡고 난리얏!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는 놈이라니깐.
오늘 기분이 나쁜 건 확실해보이는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도통 말을 하지를 않으니 내가 뭘 알 수가 있어야지.
포카페이스도 그런 포카페이스가 없다니까.
“…하긴 그게 또 매력이긴 하지만 말야…”
헤헤하고 중얼거리다가 나는 핫, 하고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매력이라니? 뭐가? 그 쌀쌀맞은 놈이?
“아직도 술기운이 남았나….”
나는 뜨아한 얼굴을 하고 남은 설거지 거리를 슥슥 익숙하게 물 속에 담갔다.
요즘들어 놈에게 꼬리를 치기에만 바빠 하나도 신경을 못 썼더니 밀린 집안일
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세탁소에 가서 놈의 옷도 찾아와야 하고 시장도 보러 가야
하고 침대 시트도 빨아야 하고 거실 커튼도 드라이 크리닝 해야 하고 하나하나 따
져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테라스 청소를 먼저 할까?
설거지를 하며 고민하다 나는 먼저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놈의 방과 내
방 시트를 걷어 거실에 내다놓은 걸레를 들고 이층 테라스로 올라갔다. 머릿수건
을 쓴 채 테라스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일렬로 주욱 내다놓은 난초의 잎을 마른
걸레로 정성스럽게 닦고 있는데 문득 잊고 있었던 <강성욱 포획작전>이 생각났다.
그래. 나 그것 때문에 진이형에게 갔던 거지….
아무래도 넘어오지 않으니. …
역시…포기해야 하는 걸까?
라고 순간 흔들렸지만,
흥. 포기는 무슨 포기. 내가 미쳤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원래 고난없는 승리는 있을 수가 없는 법!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성공하고 말겠어!
“난초야아 ~ 난초야아~ 얼른 얼른 크거라~”
원래부터 지나친 낙천주의자인 나는 가사불명의 노래를 멋대로 지
어부르며 놈의 기분이 나아질때까지 한동안 몸을 사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
*
*
“아유 힘들어 죽겠네. 도대체 시장에 무슨 아줌마들이 그렇게 많은 거야?”
두 손 가득 들고 온 스티로폼 박스를 낑낑거리며 힘들게 문 안에 들여놓고
나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쟎아?”
물을 마시면서 올려다보니 식당벽에 걸린 시계는 벌써 오후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난번 그 한식집에 갔을 때 놈이 전복을 좋아하는 것 같길래 오랜만에 수산
시장에 가서 전복도 사고 싱싱한 새우가 있길래 그것도 사고 꽃게도 사고 이것
저것 한참동안 시장을 빙빙돌며 장을 보고 나니 벌써 저녁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난 정말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틀림없이 가문을 빛낼 열녀문감이라니까.
“라라 ~ 오늘 저녁은 꽃게탕~”
스스로를 한껏 자화자찬한 다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온 걸 다듬어서 찌게
를 끓여 막 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댔다.
“여보세요?”
<여기 한남대교야.>
그러더니 전화가 뚝.
잉? 뭐야, 이 장난전화는?
하여튼 요즘 할일없는 사람들 많다니까.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식당으로 가 찌게 위에 거품을
국자로 걷어내고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강남 타워레코드 앞이야.>
달려가 숨을 헐떡대며 받았더니 그리고는 또 뚝.
“뭐야 도대체!”
바빠 죽겠는데 누가 이렇게 자꾸 장난전화를 하는 거야!
한번만 더 그러기만 해봐!
전화기에 대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끊기가 무섭게 다시 울려댄다.
“여보세요! 지금!”
<지금 신사 사거리 지났어.>
“야! 너 지금!”
뚝 하고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소리치려다 말고 나는 불현듯 이 목
소리가 어디선가 많이 낯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미쳤나, 왜 5분마다 전화를 하고 난리야?
눈을 가늘게 뜨고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데 또 벨소리.
“여보세요.”
흠칫 놀라며 받았더니
<문 열어. 집 앞이야.>
라는 놈의 사나운 목소리.
헉….!
나는 전화가 끊기기가 무섭게 날듯이 현관으로 달려가 체인을 플었다.
“다녀오셨어요?”
외출했던 차림 그대로 허둥지둥 인사를 하자 흘깃 보더니 거
실 테이블 위에 차키를 집어던진다. 금속제의 열쇠가 유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거실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웃, 엄청 기분나쁜가봐…
살벌한 놈의 행동에 나는 창백해져 알아서 기어야겠다는 생각
을 하며 거북이 움츠러들 듯 놈을 피해 슬슬 거실로 뒷걸음질쳤다.
“어, 식사하세요. 차려놨어요.”
이럴 땐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야.
좀 있다가 기분 좋아지면 알짱거려야지.
놈이 한마디 말도 없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 모
습을 바라보다 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거실로 피신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야 밥 먹는 놈의 옆에서 물도 따라주고 국도 나르며
시중을 들었겠지만 오늘은 놈의 분위기가 음산한 게 영 아니었다.
생각난 김에 거실 커튼이나 뜯을까?
저번 주부터 세탁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누나들도 가고 여러가
지 일로 정신이 없어서 손을 못대고 있던 게 생각나 나는 잽싸게 식당으로 가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영차.”
그런 다음 거실 테라스로 통하는 창 앞에서 의자를 끌어다 놓고 발돋움을 한 채 커튼을 뜯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내 키의 두배는 될 법한 통유리창 위에 붙은 커튼엔 아슬아슬하게 손만 닿을 뿐 도무지 풀어낼 수가 없었다.
아우. 창이 정말 왜 이렇게 높은 거야!
몇 번 버둥버둥거리다 간신히 제일 가장자리 매듭에 손끝이 닿아 나
는 세운 발끝에 힘을 주어 스무개짜리 매듭을 차례로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우…
“이제 하나만 더….”
한 손으로는 커튼을 움켜쥐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 팔을 뻗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에…
한 손엔 커튼을 한 손엔 매듭을 잡고 내려다 보자 금방 샤워를 마쳤는지 놈이 젖은 머리칼을 하고 똑바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맨날 올려다 보다 내려다 보니 그것도 기분이 이상했다.
“너 잠깐 이리 내려와봐.”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명령조.
“왜요?”
“할 얘기 있어.”
헛, 무, 무슨 얘길 하려고….
“….이거 다 하고 내려오면 안되요?”
두려운 마음에 드물게 반항을 해봤지만….
“안돼. 중요한 얘기야.”
씨이. 그렇게 중요한 거면 진작 좀 하지 꼭 커튼같은 거 떼고 있을 때…ㅡㅡ#
“아니, 그래도 이거 조금만 더 하면 ….”
“야! 내려오라면 내려오는 거지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아!”
“우왓!”
참지 못하고 놈이 버럭 소리치기가 무섭게 나는 깜짝 놀라 균형을 잃고 허
공에서 바닥으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아야야야…..”
“야! 너! 괜챦아?”
그러게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깜짝 놀랐쟎아!
나는 딱딱한 거실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등을 새우처럼 구
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가 간신히 팔다리의 힘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별로 높은 곳이 아니라 심하게 떨어진 것 같진 않았다.
으….지난 번 계단에서 구른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괜챦아요, 안 다쳤,….”
떨어질 때의 쇼크로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펴며 눈을 뜨려다 시야에
들어온 그것에 깜짝 놀라 나는 헉, 하고 다시 등을 바닥에 대고 착 달라붙었다.
“어….저, 저기…..”
뭐야, 뭐야! 니 얼굴이 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거야!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로, 내 얼굴에서 불과 3c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놈의 눈동자가 보였다. 평소에도 항상 감탄해 마지않던 놈의 짙은 윤기있는 갈
색 눈동자가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놈의 속눈썹 개수까지 그대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조금만, 조금만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면 입술이 닿을지도 몰라.
어떡해!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듯이 펄떡펄떡 거
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피가 전부 머리로 몰려 나는 놈의 몸 아래에서 냉동실에서
갓 꺼낸 동태마냥 뻗뻗하게 얼은 채 헐떡거렸다.
절대, 절대 그럴 리는 없겟지만 만약 여기서 놈이 조금만 더 다가온다면…
으악!
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놈이 내쪽으로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뭐, 뭘할려고…!
라임향이 나는 놈의 숨결이 가까워진 순간, 그 순간에도 이
마에 느껴지는 놈의 젖은 머리카락의 감촉이 무지 좋았다면 정말 내가 미친 걸까.
하지만 온 촉각이 놈이 그린듯한 입술선을 따라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 저, 이, 이야기를…”
똑바로 나를 주시하는 놈의 눈동자에 사로잡힌듯 꼼짝도 못하고 있
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용기를 그러모아 간신히 입술만 움직였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놈은 속삭이듯 그 말만 하고는 내 머리 옆의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 속으로 찔러넣었다.
뜨아아아 ㅡ ㅡㅡㅡ
이젠 정말이지 닿을 것 같아아아ㅡㅡㅡㅡ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상태.
나는 내가 놈하고 마룻바닥 위에 엉켜서 놈의 밑에 깔려있다는, 그러므로,
그…. 하기 직전이라는 상황을 깨닫고는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바보라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구.
그러니까 이건 바로…그…!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얏호~ 이젠 나는 팔자를 고친 거야~
하고 속으로 기뻐서 미쳐 날뛰었다든지,
넌 이제 내꺼야~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든지,
재빠르게 상황판단을 해 난 몰라~ 책임져~ 하고 엉엉 울며
놈의 낚아챌 생각을 했다든지.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낫게.
정말 머릿 속이 텅 비어버렸다니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려 금방이라도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한 가지 생각은 했지.
<드디어 그 처절한 노력의 대가를 받는 구나.> 하고.
그렇쟎아.
그 입술이 닿기만 하면.
그야말로 해피엔딩이지.
꿈에도 바라던.
해피엔딩.
그러나 운명은 어디까지나 나의 편이 아니었다.
막 놈의 입술이 나에게 닿으려던,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