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스템(2)
오늘 외근 나갈 인원은 신지호와 임승주 그리고 다른 네 명의 길드원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미리 대기 중이던 세 명의 길드원이 저들끼리 쑥덕거리며 낄낄대다가 지호가 오니까 입을 꾹 다문다.
마치 일진이 빵셔틀을 대하듯, 실실 쪼개며 하는 인사를 받아 주며 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욕하고 있었군.’
지호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제야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는 세 명의 헌터 대신, 지호는 홀로 멀찍이 떨어져 선 양호진을 살폈다.
양호진은 올해로 스물두 살의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헌터다. C급이지만 귀한 회복계 헌터라, 얼마 전 운 좋게 영입한 후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인재였다.
허우대 멀쩡한 데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어째서인지 자신감이 별로 없고 소심했다.
사실 생긴 것만 봐서는 여우처럼 얍삽하게 제 이득을 잘 차릴 것처럼 느껴지는데…….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는 한참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못 하길래 뭔가 문제가 있는지 따로 알아봤을 정도다. 그렇게 알아본 이력은 딱히 모난 데 없이 평범했다.
길드원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일부러 말을 거는데 피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당연히 신지호를 향한 뒷담에도 끼지 않았다.
하지만…….
‘차차 적응하겠지.’
두루두루 인사 정도는 무난하게 하고 지내는 허소리가 드문 경우다.
처음에야 남의 험담에 끼지 않던 사람들도 분위기에 쉽게 물든다. 지금 함께 떠들던 세 명 중 한 명도 신입이었다.
게다가 까는 대상도 돈은 주지만 일도 시키는 길드장이니 까는 맛도 있을 것이다. 금방 주변에 물들어 함께 떠들게 된다.
같은 건물인 데다, 일반인보다 청력이 좋은 헌터다 보니 그런 뒷담을 직접 들었던 적도 여러 번.
지호는 신입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생각에 잠긴 채, 지호는 외근 나갈 준비를 마쳤다.
당연하지만 헌터가 모인 길드의 외근은 일반적인 회사의 외근과는 달랐다.
균열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종 재해에 대응하는 게 헌터의 역할이다.
그리고 노네임 같은 중위권의 길드는 도심 곳곳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다행히도 균열의 발생은 어느 천재 각성자가 만든 예측 시스템 덕분에 98% 이상의 확률로 예측이 가능했다.
균열을 예측한 헌터 협회에서 오차 범위를 고려하여 적합한 길드에 공지하고 처리할 균열을 배분하기에 대부분 큰 피해 없이 마무리한다.
시스템이 예측하는 건 발생하는 시각과 규모, 대략적인 장소 정도다. 다만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아서, 균열을 맡은 길드들은 조를 짜서 예측 범위 내를 미리 순찰했다.
오늘의 예측에 따르면 방배동 인근에 발생할 균열은 F급.
균열은 가장 위험한 S급, 그 아래의 A급부터 F급까지의 등급으로 나뉜다.
즉 F급인 오늘의 균열은 가장 쉬운 부류였다. 덕분에 막 각성해 헌터가 된 길드 신입을 교육차 데리고 나가기에도 제격이다.
신지호는 2인 1조로 세 개의 조를 구성했다. 하나의 조는 기존의 길드원을 그리고 임승주와 자신의 조에는 신입을 하나씩 넣었다.
“그럼 가죠.”
“네…….”
양호진은 잔뜩 긴장해 힐끔힐끔 신지호의 눈치를 봤다. 호진과 눈이 마주친 지호는 최대한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양호진 헌터. 길드에는 좀 적응했어요?”
“네? 네!”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들어 보고 개선해 줄 테니까.”
“아, 그게, 전혀 없습니다.”
“길드원들은 잘해 주나요?”
“네…….”
“텃세는 없을 텐데, 아무래도 현장에 나가면 다칠 수 있는 일이라 말이 험하게 나가기도 하거든요.”
“아, 네…….”
“첫 외근에서는 잘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더 쉬울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저도 있으니까요.”
“…….”
“혹시라도 다치면 저한테 바로 말하고, 포션 같은 것도 마음껏 써도 되니까 눈치 보지 말고 쓰시고요.”
“네.”
“만약 작은 부상이라도 있다면 청람 병원이랑 연계해서 검사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
“네, 그렇다고요…….”
대화가 뚝뚝 끊긴다. 최소한의 성의조차 찾아보기 힘든 답변뿐이었다.
아무래도 상대는 대화를 이어 갈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라, 지호도 입을 다물었다.
그래, 불편하겠지. 길드장이랑 함께 돌아다니는 게 편하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조금 전 뒷담을 까던 삼인조의 얘기를 듣고 이미 편견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지호는 상대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대신 입을 다문 채 일에 집중했다. 사실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은 아니라 동네 순찰은 산책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자 한적한 분위기가 차츰 변화했다.
균열 출현이 예측된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사람들의 대피가 시작됐다.
물론, 대피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아니, 잠깐 있어 봐. 내가 가스 불을 안 잠그고 나온 것 같아서 그래!”
“어르신, 제가 확인할 테니 일단 먼저 대피하세요.”
“남의 집에 쳐들어가겠다는 거야, 뭐야!”
별 사소한 이유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부터.
“거기, 사진 찍지 말고 나가세요!”
“찍지 말라고요!”
대피 현장이나 헌터들의 사진을 찍으며 킥킥거리는 학생들이나.
“아니, 나 이쪽 길이 지름길이야. 안쪽으로 안 간다니까? 금방 빠져나갈 거야.”
굳이 부득불 경보가 내린 지역을 통해 빠져나가겠다고 우기는 사람들까지.
경찰들이 고생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통제가 어려웠다.
오히려 균열의 급이 높으면 본인 목숨 아까운 거 알아서 후다닥 도망갈 텐데, 어중간하게 낮으면 다들 얕잡아 본다.
실제로 F급의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일반 성인이 충분히 상대할 만한 수준이다.
처음에는 F급이어도 다들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고 하던데, 3년간 훌륭하게 바뀐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은 완벽하게 안전 불감증에 젖었다.
“우리가 통제를 도와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지호의 말에 호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것도 헌터 임무인가요?”
“그렇진 않지만요. 도와줘서 일이 빨리 해결되면 좋은 거잖…….”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지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꽂혔다.
웅성거리는 사람이 많은 길목의 저편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을 몰고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무리의 맨 앞에 선 건 몹시 익숙한 남자다. 옛날 농구 만화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짧게 깎은 새빨간 머리에 커다란 덩치. 일반인이 100m 밖에서 봐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형이었다.
지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터졌다.
“아, 하필…….”
남자를 피해서 도망갈까 했지만 이미 눈이 마주쳤다. 지호의 앞쪽까지 다가온 남자는 서글서글한 척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자, 저는 여기 무능한 헌터님 도와 드려야 하니까, 여기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F급이라도 몬스터는 몬스터니까 빨리 대피하세요.”
원래 목소리 톤이 낮지만 장난기 섞은 목소리는 퍽 친숙하게 들린다. 사람 좋은 척 웃는 소리 뒤로 다른 사람들의 활기찬 대답이 이어진다.
얼결에 무능한 헌터가 된 ─ 어쩌면 원래부터 무능한 헌터인 ─ 신지호를 한 번씩 흘낏 본 사람들이 웃으며 몸을 돌린다. 즐거운 웃음소리에 섞인 낮잡아 보는 경멸은 익숙해서 그다지 화도 나지 않았다.
진땀 흘리며 대피시키던 경찰들은 남자의 등장 한 번에 정리되는 상황이 조금 허탈해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개운한 얼굴로 남자에게 꾸벅 인사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선태웅 헌터님.”
“아뇨,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제가 온 길은 모두 확인했으니까 경찰분들도 다른 곳 체크하시고 이만 대피하세요.”
하하 호호, 덕담이 오간다. 서로 쿵짝이 참 잘 맞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양호진이 신지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몰라요?”
“모, 모르겠는데요…….”
“선태웅이에요.”
이름만 말해 주니 호진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선태웅은 A급 전투계 헌터이자 길드 아폴론의 길드장이다.
가진 스킬은 모두 화염 계통. 전투에서 화력이 강한 데다 본인의 센스도 나쁘지 않아서 A급 헌터들 중에서는 상위로 치는 인물이다.
신지호는 자신을 싫어하는 남자에게 금칠을 해 주는 대신 간단하게 축약했다.
“아폴론 길드장인데, 그 길드가 이 근처에 있어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예요.”
“아.”
“아폴론 길드는 알아요?”
“아뇨…….”
“이쪽에 되게 관심이 없었나 봐요. 저래 봬도 좀 유명한데.”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에 호진의 귀가 붉어진다.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호는 못 본 척 설명을 이어 갔다.
“우리 길드가 방배역 근처에 있죠.”
“네. 역 근처라서 조, 좋더라고요.”
“음, 그거 잘됐네요. 어쨌든 아폴론은 사당역과 방배역 사이에 있는 길드예요.”
“아…….”
“이제 좀 알겠나요?”
양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역과 방배역은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 그 반도 안 되는 거리에 길드가 붙어 있으니 당연히 외근 관련해서는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
물론 던전 공략에도 참여하는 아폴론이 노네임보다 더 높은 급의 길드였다. 하지만 노네임은 신지호 덕에 다른 의미로 유명세 있는 길드라 자주 이름이 나란히 오르내렸다.
선태웅 입장에서는 조롱의 대상인 노네임과 자신의 길드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그 상황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청람의 눈치를 보느라 뒤에서 신지호를 깔지언정 앞에서는 하하 호호 친한 척을 한다.
하지만 직진밖에 모르는 선태웅은 대놓고 까고 인터뷰로도 까고 아무한테나 신지호를 까댔다.
지호의 입장에서 보자면, 앞에서 친한 척하고 뒤에선 음습하게 까대는 놈보다는 선태웅이 나았다. 물론, 선태웅이 좋다는 건 아니다. 그나마 낫다는 거지.
신지호를 검색하면 [A급 헌터, 헌터계의 적폐 폭로?] 따위의 제목을 달고 이름만 안 깠을 뿐 ─ 선태웅은 까는데 업로드하는 쪽에서 지우는 것 같았다 ─ 신지호를 저격하는 영상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선태웅이 동네 건달처럼 삐딱한 자세로 신지호에게 걸어왔다.
“B급. 아빠한테 용돈 타서 놀기나 하지 여긴 왜 왔냐?”
게다가 직접 거는 시비의 수준이 초등학생을 못 벗어나서 욕먹는 사람마저 쪽팔린다. 지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다 컸으니 이제 용돈 안 준다고 하시길래 일하러 왔는데요.”
“그럼 네 남친한테 가서 달라고 하든가.”
“하여간 한국 사람들은 이게 문제야. 뭐만 하면 다 남친이고 여친이래. 허위 사실을 유포하시면 아빠한테 용돈 타서 고소할 거예요.”
“지랄한다, 진짜.”
“시비 거시는 건 좋은데 저 바쁩니다. 이만 가세요.”
지호가 잡상인 내쫓듯 손을 내젓자 태웅은 오히려 거만하게 코웃음 쳤다.
“가긴 뭘 가. 허접이 균열 못 막을까 봐 지원 왔다니까.”
“제가 아무리 허접해도 F급 수준이면 눈 감고도 막으니까 그냥 가시라고요.”
“눈 감고 막아 볼래?”
“제가 진짜 막으면 어쩌실래요?”
“막으면 내가 너 업고 다닌다.”
“그쪽한테 업히기 싫은데요. 땀 냄새 날 것 같고.”
“뭐 임마?”
“그럼 그쪽이랑 살 맞닿는 게 좋겠어요? 내가 진짜로 막으면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무릎 꿇고 빌어야지, 뭘 편하게 때우려고 해?”
“말이 짧다?”
“너랑 나랑 꼴랑 한 살 차이거든?”
점점 유치해지는 싸움을 본 양호진이 잔뜩 눈치를 보며 눈을 굴렸다. 중간중간 양호진이 “어, 길드장님.”, “저, 길드장님.”, “길드장님, 그만…….” 하고 말을 걸었지만 무시해 버렸더니 처음보다 더 주눅이 들어 있다.
유치하게 싸워 대다가 뒤늦게 정신 차린 지호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예측 시각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다. 지호는 초조해하는 호진을 숨 좀 돌리게 해 줄 겸, 나지막이 속삭였다.
“가서 임승주 헌터 좀 데려와요. 이 근처에 있는 것 같으니까.”
선태웅이 나선다면 이쪽에서도 급이 같은 임승주가 나서야 엇비슷한 수준이 된다. 평소에 의욕이 없는 임승주도 같은 급의 선태웅이랑 경쟁이 붙으면 꽤 열심히 하니, 길드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다.
양호진이 사라지고, 둘만 남은 거리.
지금까지 가볍게 시비 걸던 신지호의 얼굴에 싸늘한 기색이 내려앉았다.
아무리 F급의 균열이라 위험성이 낮다고 해도 균열은 균열이다. 운이 나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
그런데 헌터라는 인간이 시비나 걸겠다고 순찰을 방해하는 게 몹시 아니꼬웠다.
“하아, 너.”
“왜요.”
“너는…….”
뭔가 말하려던 선태웅의 고개가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경악으로 확장된 눈, 창백한 낯, 이 시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재앙을 맞닥트린 자 특유의 얼굴.
선태웅보다 조금 늦게, 지호는 급변한 주변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거대한 어둠이 두 사람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