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전과는 다릅니다(7)
일주일 전 발생한 단발성 게이트에서 활약한 중학생의 등급 판정이 엊그제 확정된 이후, 여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신지호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서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길드의 분위기 역시 무척 혼란스러웠다. 길드장인 신지호의 변화만큼 화제가 된 것은 청람 백화점에서 속속 도착하는 수많은 아이템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하면 강해진다.
소위 말하는 템빨을 잘 받으면 한 등급 차이는 비벼 볼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돈이 많은 게 아니니까.
기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신지호는 소수의 헌터에게만 아이템을 나누어 주었다. 앞으로 재계약이 예정되어 있는 헌터들이었다.
그러자 서로 뭉쳐서 신지호를 욕하기 바빴던 길드원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누구 때문에 밉보였느니, 애초에 누가 먼저 욕하기 시작했다느니. 어차피 다 같이 욕한 판국에 별 의미 없는 소모적인 싸움이었다.
몇몇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계약 조건을 다시 협상하자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신지호는 그들 대부분을 돌려보냈다.
단순히 욕을 먹었다는 악감정만으로 길드원을 쫓아내는 건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에서 길드원 간의 신뢰는 필수적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상대를 믿고 함께 싸우는데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무리는 이쪽에서 사양이다.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만 데리고 있어야지.’
재계약하지 않을 길드원들과는 앞으로 외근 나갈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앞으로를 대비해, 함께할 길드원들과 손발을 맞춰 봐야 할 테니까.
마침 오늘은 B급의 게이트 경보가 내려진 날이다.
출현하는 던전은 개방형, 발생하는 게이트 수는 열 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게이트가 발생하고 던전이 이 세상과 연결되면 일정 시간 내에 던전을 모두 공략해야만 한다.
던전 공략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던전에는 제각기 수명이 정해져 있고, 최소 1년에서 길게는 균열 사태 초기에 발생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던전도 꽤 많다.
게이트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다란 띠가 있다. 이걸 ‘던전 시계’라고 부른다.
던전 시계는 가장 처음에 나타났을 때는 특정한 색을 띤 마력으로 가득 차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라진다.
던전을 공략하면 던전 시계의 마력은 다시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일정 시간 동안 계속 차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다시 줄어든다.
던전 시계가 모두 줄어들기 전까지 던전을 공략하는 게 던전 공략팀의 중요한 임무였다.
만약 던전 시계가 모두 줄어들 때까지 공략에 실패하면 던전은 폭주한다.
던전이 폭주하면 내부에 존재하는 몬스터나 장치들이 외부로 쏟아져 나오고, 기존 던전의 면적만큼 지구의 환경마저 바꿔 버린다. 즉 평범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죽은 땅이 되는 것이다.
이를 침식이라고 부른다.
침식은 아직 원상태로 회복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던전을 막는 건 인류의 최우선 과제였다.
전 세계에 이런 식으로 죽음의 땅이 된 곳은 꽤 많다.
물론 한국은 침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여력이 충분히 있었다.
한국은 인구 대비 각성자와 헌터 수가 많고, 특히 S급 헌터가 유난히 많은 축에 속했으니까.
오늘의 던전 공략팀은 S급 길드인 〈천의 화살〉의 제1 팀이다.
한국에 딱 네 명 있는 S급 헌터인 서민정이 주축이 되는 팀이니 던전 공략 자체는 안정적일 것이다.
B급 길드인 노네임은 방어 작전에 참여한다.
폐쇄형이나 채집형 던전과 달리 개방형 던전은 게이트가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어서 한 번 공략하기 전까지는 안에서 몬스터가 밖으로 계속 나온다.
공략팀 입장에서는 추가 증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민간인에게는 그저 재앙이었다. 이 피해를 막기 위해 던전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길드들이 게이트 주변을 지키는 것이다.
지호는 본격적인 의욕에 불탔다. 오늘 일은 새 스킬을 본격적으로 시험해 볼 무대로 제격이었다.
S급 던전 공략, F급 헌터의 보조.
그리고 이번 게이트 방어전까지.
오늘만 잘 풀리면 오락가락하는 여론에 확실한 쐐기를 박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방송국 쪽에서 헌터 촬영팀을 보내 촬영할 테고, 영상은 확실한 증거로 남을 테니까.
지호는 장갑 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준비 끝나셨습니까?”
옆에서 들린 임승주의 목소리에 지호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네.”
“가시죠.”
이전보다 묘하게 고분고분한 태도로 임승주가 앞장선다. 길드장실을 나가며 얼핏 신지호를 스친 눈빛에는 의문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한데, 자존심상 물어보지는 못하고 궁금해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내가 먼저 말해 줄 이유는 없지.’
일단 임승주에게도 아이템을 배분해 주긴 했지만 썩 믿을 만한 사람이라서 준 건 아니다. 태도로 보면 가장 먼저 연을 끊어야 좋을 인간이다.
오늘 노네임 길드에서 방어전에 참여하는 4인 1조 팀의 구성은 신지호, 임승주, 허소리, 양호진이다.
사실 C급인 허소리나 양호진보다도 임승주를 이 팀에 포함시킬지를 더 오래 고민했다.
물론 임승주는 좋은 전력이다. A급 전투계 헌터니 버리기는 아깝다. 게다가 어차피 계약 기간도 2년이나 남아 있다.
‘조금 더 써먹기는 해야지.’
불과 보름 전만 해도 터무니없이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생각에 지호가 헛웃음 지었다.
뭐, 말을 잘 안 듣는 문제만 제외하면 품고 가는 게 좋긴 하다. 길드의 규모를 키운다면 지호가 길드원이 있는 모든 자리에 함께하며 스킬을 걸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디 주기 아깝기도 하지.’
신지호보다 등급이 높아서 [이해] 스킬로 상태창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평소 전투에 들어가면 강해지는 임승주의 능력을 생각하면 버리긴 아까웠다.
조금 더 굴려 보고, 상황 봐서 내보내거나 그대로 둘 작정이었다.
애초에 임승주가 신지호를 무시하는 이유는 길드장치고 무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니까. 아마 능력을 증명한다면 군말 없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까?
허소리는 포함하는 게 당연한 전력이었다. 일주일간 연습실에 처박혀서 스킬의 테스트를 함께해 봤던 사람이니까. 그간 도와준 것도 있고, 비록 전투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길드의 핵심 멤버 중 하나로 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양호진은…….
“어, 아, 안녕하세요.”
자기가 왜 길드장이 포함된 4인 1조의 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단 얼굴로 걸어오는 어리바리한 신입이 보인다. 지호는 다시 한번 양호진의 상태창을 열어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status
이름 | 양호진 |
직업 | 노네임의 길드원 |
등급 | C |
칭호 | - |
체력 | 207 |
마력 | 301 |
근력 | 220 |
민첩 | 272 |
스킬 | 일상의 기쁨(B), 넘치는 힘(B), 힐(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