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정체불명의 무언가(5) (32/283)

4. 정체불명의 무언가(5)

날이 흘러가 한 주가 훌쩍 지나갔다.

등급 재심사가 한 주도 안 남은 지금, 지호는 긴장하며 재심사에 대비하는 한편 길드의 일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었다.

요즘은 길드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 훈련장으로 가서 스킬 연습부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호는 허소리와 양호진에게 [별의 축언]만 걸어 줄 뿐이다. 이후의 훈련은 오롯이 소리와 호진의 몫이었다.

자신의 평소 힘보다 훨씬 강해진 힘을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별의 축언]이 걸린 상태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별의 축언] 자체는 딱히 단련할 만한 게 없었다. 이게 보조 계열 헌터의 장점이다. 전투 계열 헌터는 스킬의 숙련도를 쌓는 데 더 큰 노력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스킬의 레벨이란 게 있으니 지호는 틈틈이 스킬을 걸어 주며 레벨 업을 노렸다. 레벨 업을 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꾸준히 서류를 처리했다. 할 일이 한둘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인력을 충원해야만 했다. 특히 각성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무직이 간절하다.

‘길드 이전도 알아봐야 하는데.’

지금 사용 중인 훈련장은 청계산 인근에 지어진 대여용 훈련장이었다.

방배역의 길드에도 훈련장은 있지만 원래 있던 건물에 던전산 자재를 덧붙였을 뿐이다. B급 이상의 힘에는 견디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대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길드가 커지고 본격적인 던전 레이드를 준비한다면 높은 등급의 훈련실은 필수다.

물론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이사하더라도 몇 달은 걸릴 테고, 원하는 만큼의 인력 충원은 그 이후에나 이루어질 것이다. 일단 영입할 수 있는 헌터가 있다면 최우선으로 먼저 붙잡아 둬야 하니까 일의 순서를 잘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할 일이 태산이다.

“길드장님, 한 번 더요!”

허소리의 목소리에 지호는 서류 쪽으로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밝게 소리치고 있지만 소리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지호는 스킬을 걸어 주는 대신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4시네요. 이제 그만 퇴근하세요.”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요? 한 번만 더요.”

“8시부터 미리 나와서 하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체력 보존도 해야죠. 오늘만 하는 것도 아니라 내일도 있는데.”

“그건 그렇긴 하죠.”

지호의 설득에 소리가 씩 웃었다. 헌터로서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직장인으로서 이른 퇴근 역시 소중한 법이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는 샤워하고 갈게요.”

“태워 줘요?”

“아뇨, 저 바이크 가져왔어요. 길드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소리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여자 샤워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리 없이 서 있던 양호진이 지호의 곁으로 스르르 다가왔다.

“길드장님…….”

“네.”

“전 태워다 주실 수 있나요? 길드 근처에 살아서…….”

“아, 물론 태워다 드릴 수 있죠.”

지호가 활짝 웃었다.

요 며칠간 양호진은 계속 지호를 어려워하며 거리를 두는 듯하면서도 어떨 때는 굉장히 스스럼없이 다가오고는 했다.

길드장의 입장에서 양호진은 귀한 힐러다. 최대한 사적으로도 친하게 지내서 길드에 못 박아 두는 게 목표였다. 지호는 상대와 친해지는 건 나름 자신이… 있었었다.

‘뭣 모르던 때는 아무하고 친해졌는데 말이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 넉살 좋게 말을 잘 걸고는 했었다. 그런 것치곤 친구가 썩 많진 않았지만 어디 가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대국민의 조롱거리가 되고 난 후로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위축되었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 않나? 인터넷 밈으로 ‘지호하다’가 사기꾼의 대명사처럼 쓰일 때도 있었으니까. 요즘은 안 쓰는 것 같지만…….

나란히 차에 오르고 시동이 걸렸다. 워낙 말이 없는 호진에게 스몰 토크를 시도하기 전에 호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

“길드장님의 스킬에는 페널티가 없습니까?”

“페널티요? 음……. 딱히 없어요.”

지호는 가볍게 대답했다. 물론, [흡인의 천구]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흡수하면 아프고 쓰러지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지만 조절하면 그만이니 딱히 페널티랄 것까진 없다.

“다행이네요.”

“그렇죠. 음, 요즘 길드 생활은 좀 어떤가요?”

“쫓겨날 사람이 많으니 뒤숭숭합니다……. 차라리 훈련소로 출근하는 게 마음은 편하네요.”

“…….”

양호진의 입장에서는 길드원이 우르르 물갈이되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려나?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른 길드원이 죄다 물갈이될 상황이니 고용 불안정 따위를 걱정할지도 모른다.

양호진은 C급 힐러니 어딜 가든 고용이 되긴 하겠지만 길드를 옮겨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지호는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괜히 운전대를 손끝으로 툭툭 쳤다.

“쫓아낸다기보단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까요. 재계약 조건으로 너무 무리한 조건을 요구한 사람과 계약을 종료하는 거고……. 다음에 들어오는 길드원들은 원한다면 오래갈 겁니다.”

“예에.”

“양호진 헌터도 1년 계약이었죠? 너무 무리한 선에서가 아니라면 다음 재계약 때 더 좋은 쪽으로 조건을 조정해서 재계약할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건은… 그리 중요하진 않아요.”

“그런가요? 하지만 양호진 헌터도 우리 길드에서 실력을 쌓고 그만한 능력이 생기면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죠. 사실 지금 하시는 거 보면 계약금 더 얹어 드려도 될 뻔했는데요.”

입에 바른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양호진은 C급치고 스탯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센스가 좋았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움직이는 게 이미 전투에 능숙한 헌터처럼 보였다.

“아뇨……. 어차피 제가 길드에 들어온 건 신지호 길드장님을 보기 위해서니까요.”

너무 놀라서 지호는 운전 실수를 할 뻔했다. 헌터다운 반사 신경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지호는 저도 모르게 힐끗 양호진을 돌아보았다. 노골적인 말을 한 사람치고는 태평한 표정이다.

“그, 양호진 헌터…….”

“네, 네?”

“혹시 기자십니까?”

신지호의 비리를 파헤친다며 위장 취업한 각성자 기자가 지금까지도 몇 명 있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요…….”

호진이 평소처럼 자신 없는 투로 말을 흐렸다. 하지만 한 번 의혹을 품고 나니 어쩐지 하나부터 열까지 수상쩍게만 느껴졌다.

신규 길드원이 구해지지 않던 타이밍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상황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지호의 옆에 붙어 있던 것도, 뭔가 늘 웃는 것처럼 휘어 있는 눈꼬리마저 수상해 보인다.

의심의 눈초리에 호진이 땀까지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정말 아닙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최초의 헌터니까.”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긴 한데, 전 정말 별거 없어요.”

호진처럼 ‘최초’라는 타이틀 자체에 흥미를 느낀 사람 또한 지금까지 꽤 많았다. 물론 지호의 등급이 B로 판정된 후 죄다 떨어져 나갔지만.

“그건… 이전까지의 이야기, 죠.”

“…….”

“지금은 아니잖아요.”

호진은 평소와 달리 단호하게 말했다.

지호가 어떤 힘을 갖게 되었는지 직접 경험해 본 호진은 잘 알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러하듯, 지호가 자신의 스킬을 다 보이지 않고 여력을 숨겨 뒀으리란 사실 또한.

“그래서 양호진 헌터의 목적이 뭔가요?”

“어, 목적 같은 건 정말 없어요. 흥미도 있긴, 했는데. 제가 갈 수 있는 길드 중에 노네임의 계약 조건이 좋았으니까…….”

“그래서, 흥미는 채워지던가요?”

다소 도발적으로 묻자 양호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내 사르르 미소 짓는다. 잘생긴 사람이지만 어쩐지 실없는 인상이란 느낌이었는데 이 순간에는 묘하게 신뢰감이 든다.

“조금은요…….”

“뭔가 더 알고 싶은 게 남았어요?”

“음…….”

호진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어쩐지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인다.

“길드장님께서는 그, 꽤 좋은… 환경에서 자라셨잖아요. 그러다가 좀… 고생을 하셨고요.”

“……그렇죠.”

“꽤 힘드셨을 텐데 왜 계속 헌터 일을 하고 계시는지… 그게 가장 궁금했어요. 저라면 못 견뎠을 것 같아서…….”

호진의 질문은 의외이기도 했고, 예상 범위 내이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 이야기다. 직접적으로 물어본 사람도 많았고 그들의 질문은 대부분 흥미에 기반했다. 지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채우려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호진은… 딱히 장난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볍게 묻고 있지만 눈빛은 꽤 진지하게 빛나고 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순수한 흥미일까…….

양호진에게 걸어 준 [별의 축언]이 지속하는 시간은 여덟 시간 정도. 허소리에게는 열두 시간 정도 지속됐고, 임승주에게는 네 시간 지속됐다. 그리고 초면인 헌터들은 대부분 세 시간 정도 지속됐다.

information

별의 축언(Lv.1)

등급EX
설명가장 정결한 영혼이 순수한 마력으로 내리는 신성한 축복.
대상의 능력치를 전부 강화한다. 스킬의 레벨, 상대의 호감도, 보유한 마력 등에 따라 스킬의 효과가 달라진다. 강화할 수 있는 수치에 한계는 없다.
단, 자기 자신에게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