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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evel Up!(19) (89/283)

8. Level Up!(19)

문제는 아픈 게 아니었다. 한술 더 뜬 주이원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프게 문 자리를 혀로 핥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지.

“미, 미쳤어?”

개도 아니고 사람을 왜 핥지? 이래서 천희림이 미친개 운운한 거 아닌가.

경악한 지호를 붙든 채 이원의 입술이 옆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다시 한 번 콱 깨문다.

“아!”

참지 못하고 반사적인 비명이 터졌다. 진짜 아프다. SS급 헌터쯤 되면 악력뿐 아니라 치악력도 좋은 건가? 하긴, 둘 다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니 좋은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아, 아파…….”

처음 건 참았는데 두 번째는 도저히 못 참겠다. 울려고 한 건 아닌데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하지만 지호의 호소에도 이원은 입술을 떼지 않았다. 대신 혀로 길게 핥아 올리고 위로하듯 입 맞추다가 조금 전보다 약한 힘으로 살갗을 깨물었다.

“아프다니까!”

지호는 사람 말을 듣지 않는 소꿉친구 놈의 머리채를 홱 잡아 떼어냈다.

정말이지 눈물 나게 아팠다. 하지만 문 놈은 양심의 가책 없이 여전히 태연하다 못해 뻔뻔하게 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희림 그 새끼가 너한테 손댔다면서?”

“……너 하늘에 스파이도 심어?”

던전에서 나온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것도 보통은 발설하지 않을 이야기를 알고 있다니. 그건 당시 던전을 공략하던 멤버 중에 이원에게 이야기를 전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원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지호의 목을 노려보았다.

“남의 목은 왜 물어뜯고 난리야?”

“천희림, 그 새끼가 네 멱살 잡고 목에 팔도 감고 안아 들기도 했다며.”

“좀, 안 좋은 일이 있긴 했지.”

“소독이야. 닿은 곳은 깨끗하게 해야지.”

“지금 씻고 있는 거 안 보여?”

“부족해. 주제도 모르는 새끼가 널 붙잡고 안아 들기까지…….”

“……안지 마라.”

“…….”

“안지 말라고. 어?”

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새끼… 기어이 남을 안아 들 생각인가 보다. 지호를 집요하게 바라보며 불길하게 침묵하던 이원은 분이 치미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죽여 버릴 거야, 그 새끼.”

“죽이진 말고…….”

“…….”

“죽이지는 말자, 응? 평화롭게 해결해야지.”

당연히 농담이겠지만, 그래야 하겠지만, 말로 끝난다기에는 이원의 눈이 지나치게 흉흉했다. 지호가 조곤조곤 속삭이자 이원은 한참 후에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가 한풀 꺾인 이원은 사납게 다가왔던 기세와 달리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러났다.

“씻고 나와.”

“어……. 너도 빨리 옷 갈아입어라.”

“응.”

늘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던 코트가 물에 젖어 엉망이었다. 순순한 대답과 달리 이원은 바닥 한구석을 노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거기 뭐가 있나 싶어서 지호가 돌아본 순간, 이원은 휙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뭐야? 싱겁게…….”

이원이 노려본 자리에는 화장실 타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어서 한참을 노려보던 지호는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화장실 타일 따위에 심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러고 나간 이원이 사고라도 칠까 봐 불안해져서 지호는 예정보다 빠르게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이원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머리끝까지 오른 듯 보였던 화도 어느 정도 식었는지 표정 또한 평온했다.

“머리 좀 식었어?”

“…….”

이원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제 앞에 선 지호를 앉은 채 끌어안았다.

“마음에 안 들어…….”

“나도 그 인간 마음에 안 들더라. 그래도 내가 한 방 먹여 줬거든?”

“응, 들었어. 자기 힘냈네. 천희림은 그래도 실력이 좀 있는 놈인데…….”

“그, 그래?”

천희림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할 줄 알았더니. 고개를 끄덕인 이원은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응. 다음에는 아주 죽여 버리자.”

“……죽이지 마.”

“어떻게 죽이지.”

“죽이진 말라니까?”

“곱게는 못 죽이겠어.”

“사람을 죽이면 안 돼.”

“오래 살려 두고 고통스럽게 죽여야지.”

“무슨 고어 영화 찍을 일 있냐…….”

죽이지 말라는 말을 걸러 내는 필터라도 귀에 장착했는지 이원은 계속 살해 방법을 궁리했다.

“야, 주이원…….”

“임승주 말이야.”

“어?”

이원이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언급에 눈을 동그랗게 뜨니, 이원이 그 모습을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나 좀 빌려 줄래?”

“빌려 달라고? 하지만 임승주는…….”

노네임의 전력이라 함부로 유출하기 어렵다. 난처해하는 지호에게 이원이 곧장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 던전 같은 데 데려가겠다는 건 아니야. 내가 이것저것 알려 줄까 싶어서.”

“정말?”

평소 주이원은 신지호 외의 인간을 가르치는 일이 거의 없다. 훈련실에서 지나가다가 보이면 충고 한두 마디 하는 정도? 일부러 따로 불러서 교육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길드의 임승주에게 가르침을 주겠다니. 이건 정말이지 좋은 기회였다. 강해지길 원하는 임승주 또한 분명히 승낙할 터.

“그래 준다면야 고맙지. 일단 물어봐야겠지만…….”

“내가 알려 준다면 절이라도 하면서 감사히 받아야지, 뭘 의향까지 물어봐?”

이원이 무척이나 건방지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본인이 당당하게 말하기는 좀 지나치게 뻔뻔하다.

그래도 지호에게는 저따위로 고압적으로 굴지 않아 다행이었다. 물론 헌터 일과 관련되면 제멋대로 굴고 명령하려는 기질도 있지만…….

“…….”

문득 몇 시간 전에 본 고등학생 주이원의 환상이 생각났다. 지호는 환상 속의 친구와 눈앞의 친구를 겹쳐보았다.

둘은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보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을 겪으면 사람이 변한다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생각해?”

“환상을 봤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지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설명을 요구하는 이원의 검은 눈을 응시하며 지호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나는 쓰러져 있고, 너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었어. 울면서.”

“그래?”

“……응.”

“내가 울어?”

“어, 엉엉 울던데.”

장난처럼 들리는지 이원은 실없이 웃었다.

혹시라도 그 기억이 진짜라면 동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원의 얼굴을 빤히 살폈지만, 시선이나 표정에서 놀란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그 고양이 녀석의 헛소리겠지.

나중에 찾아온다느니 뭐니 말은 했지만, 역시 그런 정체 모를 녀석의 말을 믿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녀석을 추적해 보라고 해야겠지.

“지호야?”

“응.”

“나랑 있을 때는 날 생각해.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원의 힘이 강하게 지호를 끌어당겼다. 지호와 이원의 몸이 함께 뒤로 넘어갔다. 소파 위에 누운 이원의 몸 위에 지호가 엎드린 꼴이었다.

잠시 버둥거렸지만 이원이 지호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흘간의 고생으로 기운이 없던 지호는 빠르게 포기했다. 그보다 훨씬 커다란 몸은 침대보단 못해도 누워 있기에 썩 나쁘진 않았다.

지호가 얌전히 자리에 눕자 이원은 아이를 어르듯 손으로 지호의 등을 토닥였다.

“다음부터는 하늘 길드랑 상종하지 마.”

“응, 나도 두 번은 안 하려고.”

천희성도 천희림도 둘 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이다. 지호가 느끼는 피로의 절반은 두 사람에게서 왔을 거다. 한 번 정도야 탐색이라고 쳐도 두 번은 지호 쪽에서 사절이다.

“네가 다른 놈들이랑 같이 다니는 거 싫어…….”

투정을 부리면서 이원이 꽉 끌어안았다. 조금 숨이 막힐 정도의 힘에 지호의 몸이 이원과 꽉 맞물린다.

이게 또 왜 이러나 싶었지만 지호는 별말 하지 않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적당히 세게 조이는 힘이 안마받는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했다. 잠시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던 지호는 입술만 달싹여 말을 걸었다.

“야, 주이원.”

“응?”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금방 너 따라잡아서 같이 던전 다닐 테니까.”

아, 이런 말 어릴 때 몇 번 해 봤던 것 같은데.

‘야, 주이원. 다음에는 내가 이길 거거든?’

‘넌 날 못 이긴다니까?’

잔뜩 분에 받쳐 말하면 주이원이 더 약을 올리고는 했었는데. 정말 약 올랐지만 그 말대로 한 번도 주이원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따라잡을 듯 말 듯 바로 앞에 있었는데. 비록 성적은 밀렸지만 결국 같은 대학으로 진학해 함께 다니기도 했고.

그때와 달리 지금은 두 사람의 간격이 너무 멀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지호의 마음은 늘 같았다.

주이원과는 뒤처지거나 보호받는 게 아니라 나란히 서고 싶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으로서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까마득한 거리는 다행히도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꼭 따라잡고야 말 거다.

지호의 각오를 들은 이원이 작게 웃었다.

“응, 기다리고 있을게.”

어릴 적과는 전혀 다른 다정한 대답.

하지만 환상 속 주이원을 보며 기묘한 불안에 휩싸였을 때와 달리, 지호는 제게 맞닿은 뜨거운 체온에 안심한 채 얌전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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