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정산하고 갑니다(2)
“후우…….”
지호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이원이 잽싸게 지호의 손을 가져가 주물러 주었다. 하지 말라고 말할 힘도 없어서 그냥 두었는데, 어쩐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지쳤지만 조금 전보다 기운을 차린 듯한 지호에게 이원이 씩 웃었다.
“좀 재수 없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차마 재수 없다는 말에 부정은 못 하겠다.
지호는 밤의 연금술사에 방문하고 나서야 이원이 굳이 자신을 따라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밤의 연금술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 중 하나지만 헌터들 사이에서는 나름 악명이 높다. 그 이유가 단순히 높은 수수료 때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겪으니 다른 문제가 수수료 이상이었다.
방문객을 수상쩍은 도둑놈 취급하며 검사하질 않나, 직원의 태도는 단순한 무례라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건 그렇다 치자. 변장하고 있던 이원이 원래의 모습으로 나서자 태도가 180도 바뀐다는 게 더 악질이었다.
그래도 나름 S급인 지호에게 이런 취급이라면 더 낮은 등급의 헌터는 어떻게 대할지…….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첫인상이었음에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만난 밤의 연금술사의 부길드장, 권석중은 로비에서 응대하던 직원을 훨씬 상회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권석중은 주말에 거하게 달렸는지,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두 사람을 맞았다.
그것만으로도 최악의 첫인상인데 권석중은 어제 이원과 지호가 강남역에서 벌인 일을 언급하며 남자끼리 하면 기분이 좋냐느니, 입에 올리기도 싫은 온갖 저질스러운 말을 유머랍시고 던졌다.
권석중의 무례한 태도에 지호도 화가 났지만 이원이 스킬로 권석중을 날려 버릴 것 같아서 가까스로 참았다.
간신히 본론인 일 이야기로 들어간 후에도 화가 나게 굴기는 마찬가지였다.
거래의 주체가 지호라는 걸 안 이후로는 사사건건 가르치려 들었다. 차마 주이원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지호에게는 어린데 고생이 많다느니, 새파란 애송이니 아직은 미숙한 게 당연하다느니, 자신 같은 노련한 사람이 잘 이끌어 주겠다느니, 이제 큰 길드를 운영하려면 뭐가 필요하다느니……. 시종일관 사소한 일들을 거창하게 떠들어 댔다.
명백히 자신이 신지호의 위에 있다고 여기는 태도에 지호는 진절머리가 났다.
지호가 상대를 경멸할 이유는 또 있었다. 그건 바로 권석중의 시스템창의 칭호들이다.
[알코올 중독자], [도박중독자], [바람둥이], [기생충].
정말 안 좋은 의미로 화려하다. 한 사람이 하나 가져도 막장인데 네 개를 한 번에 갖고 있다니? 게다가 지호는 기생충 같은 험한 묘사를 권석중에게서 처음 보았다.
막장 중의 막장.
지호가 가져온 재료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며 무시하다가 이원이 최상급의 아이템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노골적으로 욕심부리는 그 눈이라니.
하지만 평범한 C급 결계술사인 그에게 아이템을 감정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권석중은 거창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화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데려온다며 후다닥 방을 나갔다.
지호는 권석중이 나간 사이에 튀어야 하는 게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정말 여기 괜찮은 거 맞아?”
“응. 권석중이 저따위로 구는데도 밤의 연금술사가 제작 길드 1위인 건 이유가 있지.”
이 정도면 어지간해선 피해 갈 텐데, 2위의 길드와 실력이 어마어마하기에 굳건히 지킨 1위다. 이원이 저렇게 보장하니 지호도 못마땅한 심기를 누르고 자리를 지켰다. 다음에는 실력이고 뭐고 다른 길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꽤 기다린 후에야 조용히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하얀 가운 차림의 여자, 권예나였다. 권예나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길드장님이 바쁜 일이 생기셔서… 저 혼자 오게 됐습니다.”
그건 희소식인데 권예나는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미안해한다. 보다 못한 이원이 드물게도 상냥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권예나 길드장님.”
“아, 아. 네. 안녕하세요, 주이원 길드장님…….”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이쪽은 이번에 길드장님께 의뢰를 맡길 신지호라고 합니다. 제 배우자 되는 사람이죠.”
“미쳤냐!?”
지호가 이원의 옆구리를 푹 찌르자 권예나의 입에서 다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온 웃음이 터졌다. 지호가 힐끗 돌아보니 권예나는 그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이원이 왜 답지 않게 친절을 베풀었는지 알겠다. 엄청나게 주눅 든 권예나에게 이원이 평소의 성질대로 행동한다면, 권석중 이상으로 대화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시스템창으로 확인한 권예나의 칭호에는 [허수아비 길드장]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적혀 있다.
특히, 형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던 허수혁처럼 권예나 또한 비슷한 디버프 스킬을 갖고 있었다.
information
나 따위는 아무 것도 못해(Lv.1)
등급 | C |
설명 | 이 능력이 내가 아닌 아버지에게 생겼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나처럼 어리고 멍청하고 굼뜬 애한테 너무 과분한 능력이야. 어릴 적에도 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는데 커서도 잡을 줄은 몰랐어. 그냥 이 능력이 아버지에게 옮겨 갔으면 좋겠어. |
해당 스킬이 존재하는 한, 능력 성장에 제한이 걸리며, 특정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