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파란波瀾(7)
어지간한 고층빌딩의 높이만큼 뻗은 키 큰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모두 던전에서 가져온 생물로 일반적인 나무와 다르게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력으로 힘을 방출하면 힘없이 쓰러지겠지만 오늘 그만큼의 스킬을 쓰지는 않을 테니까.
“읏차.”
한 번 가볍게 뛰는 것만으로 높은 나무 위까지 점프한 강태주는 느긋하게 굵은 가지 위로 올라갔다.
혹시 여기에 올라오면 신지호가 보이지 않을까 했지만, 수많은 나무 때문에 보이지는 않는다.
강태주는 쉽게 포기한 채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눈을 감자 천장에 박힌 조명을 받아 나뭇잎들이 그림자를 만들며 나풀거린다. 상쾌한 숲 내음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정말 숲에 누워 있는 기분이다.
‘환경 구현은 잘했군.’
이렇게 느긋한 게 얼마 만일까.
언제나 위험하다고 알려진 던전을 찾아다녔고, 던전에 없을 때는 방탕하게 향락을 즐기며 보냈으니까… 이런 느긋한 숲에서 여유롭게 누워 있는 건 오랜만이다. 비록 전투 전의 짧은 휴식이긴 하지만.
“…….”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죽은 가족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숲이나 바다 같은 도시에서 떨어진 자연을 즐기는 걸 퍽 좋아했었다. 어릴 적부터 따라다닌 형도 캠핑이라면 그저 신났고, 동생은… 벌레가 나온다며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매번 따라다녔다. 아마 자신과 있는 것보단 다른 가족을 따라가는 게 낫다고 여겼겠지.
늘 그렇듯 강태주만 가족과 함께하지 않았고, 홀로 살아남았다.
솔직히 가족의 정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족의 죽음은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점에 각성했으니까.
하지만 늘 겉돌던 집안에서 남처럼 지내던 가족들이 죽은 게 현실성이 없어서… 어쩐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족 모두를 묻는 장례식장에서 강태주는 그냥 멍하니 있었는데…….
저걸 내 동생이 사람 새끼라고 키웠다며 오열한 게 누구였더라. 이제 와서 인연 끊은 사람의 얼굴 따위 기억나지도 않는다.
어쨌든 주변 시선은 곱지 않았고 강태주는 그 사실에 넌더리가 났다. 그래서 한국을 떠났다. 그토록 해외로 나가는 걸 반대하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해외에서 제멋대로 사는 건 나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더 힘들게 살아야겠으나, 그는 S급 헌터로 각성했으니까.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가 모든 걸 부수고 베다 보면 속이 풀렸다.
그 후로 강태주는 전투에 대한 욕구와 식욕 그리고 성욕 세 가지만으로 움직였다. 누군가는 짐승 같고 저질스러운 삶이라고 평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는 게 낫지.
한국에 돌아온 것도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였다.
분명 B급 전투계였던 놈이 S급 보조계로 각성하고 같은 길드의 놈들이 줄줄이 각성한다니.
꽤 재밌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원래 이런 사람 이목을 끄는 의뢰는 받지 않지만……. 신지호라는 존재가 꽤 그를 동하게 만들었기에 받아들였다.
놈은 신지호를 쉽게 보지 말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쉬운 의뢰였다. 신지호가 무슨 잔재주를 벌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놈은 보조계에 불과하니까.
강태주가 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신지호에게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궁금한 한편으로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의외성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싶은 정도.
그도 그럴 게 남이 있어야만 활약할 수 있는 보조계다. 혼자 10분 동안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강태주의 발을 잠깐 잡을 만한 잔재주나 부리겠지.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10분이 지났다.
강태주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어느새 마른 입술을 핥으며 인공 숲을 둘러보는 강태주의 눈빛이 번들번들한 살기로 젖어 있다.
강태주는 아래를 힐끗 보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곧 있을 사냥을 생각하니 흥분으로 피가 몰린다. 가능하다면 신지호를 사냥해서 포식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신지호의 옆에 붙은 미친놈이 가만히 있진 않겠지.
‘주이원.’
언젠가는 꼭 싸워 보고 싶은 상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놈에 비하면 강태주 자신은 아주 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신지호를 더 건드려 보고 싶긴 한데…….
그러려면 최소한 놈이 말한 ‘힘’이라도 얻어야만 가능하다.
그걸 위해서 강태주는 검을 들었다.
원래 강태주가 들던 무기에 비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검이다. 날에는 간단한 마법이 걸려 있지만 어지간한 헌터는 연습용으로나 쓸 무기였다.
하지만 강태주의 손에 들리면 어떤 것이든 완벽한 무기가 된다.
information
무기의 달인(Lv.1)
등급 | SS |
설명 | 손에 들린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무기로 사용할 수 있으며, 무기로서의 최대 효율을 끌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