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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타인과 우리(3) (148/283)

19. 타인과 우리(3)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지호를 소리가 황급히 막았다. 옆에 있던 경현이 뉴스를 가리며 창백해진 지호의 얼굴을 붙들었다.

“진정해, 지호야. 너희 가족은 무사해. 죽은 건 다른 사람이야.”

“…….”

“맞아요, 길드장님. 자세히 보세요. 집은 무사하잖아요. 몬스터가 습격했으면 저렇게 멀쩡하겠어요?”

“아…….”

경현과 소리의 말을 들은 지호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지호는 침대 위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얼마나 놀랐던 건지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경현이 황급히 물수건으로 지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주며 달랬다.

“이원이가 바로 가서… 피해가 적었어. 같은 병원에 입원해 계셔. 지금 이원이가 너네 부모님이랑 같이 있어서 여기 없는 거고……. 너 깨어났단 소식 들으면 금방 올 거야.”

“…….”

“이원이 부를까?”

“아니……. 무사하시면 됐어.”

지호는 창백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생각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는 지호를 소리가 급히 붙들었다.

“갑자기 움직이면…….”

“부모님 뵈러 갈래.”

제 부모를 걱정하며 창백하게 질린 지호를 보고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반대하면 정말 쓰러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소리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휠체어 가져올 테니까 거기 앉아서 가시고… 일단 물 한 잔이라도 마시고 계세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고개만 끄덕이는 지호에게 경현이 손수 물을 떠 와 컵을 입술에 대 주었다. 지호는 차마 제 손으로 물을 마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넋이 나가 있었다.

“신지호. 그런 상태로 부모님 뵈러 갈 거야? 걱정하실 텐데.”

경현의 따끔한 충고에 그제야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었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현이 떠다준 미지근한 물을 한 번에 받아 마셨다.

“이젠 좀 괜찮아 보여?”

“별로 안 괜찮은데……. 이거라도 먹자.”

경현이 내민 건 보기만 해도 달아 보이는 초콜릿 바였다. 원래라면 좋아서 먹었을 음식이지만 지호는 돌을 씹는 것처럼 무표정하게 의무적으로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그런 지호를 경현이 안쓰럽게 바라보았으나 지호는 그 이상의 기력이 없었다.

“휠체어 가져왔어요.”

때맞춰 허소리가 휠체어를 가져왔다. 이런 것까진 필요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때 무의식의 세계로 끌려들어 갔던 영향인지 일어날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리가 지호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자, 잠깐. 혼자 앉을 수 있어요.”

“앉을 수 있긴요. 그냥 제게 몸을 맡기세요.”

당황한 지호를 무시한 채, 소리는 가볍게 지호를 휠체어에 앉혔다.

“자, 가요.”

지호가 뭐라고 하기 전에 소리가 잽싸게 선수치며 휠체어를 밀었다.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는 지호는 뻣뻣하게 식은 손을 매만졌다.

문이 열리자 이원과 함께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지호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지호야!”

본인도 충분히 놀라셨을 텐데, 지호를 보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오려 드는 어머니를 이원이 제지했다. 며칠 새 마음고생이 심하셨던지 고운 얼굴에 살이 조금 내려 있었다.

휠체어로 병실 안까지 들어간 지호는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엄마…….”

“우리 아가,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엄마도 괜찮아?”

전에도 몇 번인가 쓰러진 적이 있는 어머니라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지호와 부모님의 나이 차이는 컸고, 지호는 부모님과의 이별을 남들보다 빨리 겪게 될까 봐 항상 두려웠으니까.

불안 속에서 지호는 어머니에게 안긴 채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지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다 괜찮다. 네가 무사하면 됐다.”

“네……. 전 이제 괜찮아요.”

“그래. 이원이 녀석이 바로 와 준 덕분에 피해가 적었어.”

요즘 들어 항상 이원을 헐뜯기만 하던 아버지가 이원을 칭찬했다. 이원을 힐끗 돌아보니 그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 지호, 살이 빠졌네…….”

“엄마야말로 살 빠졌잖아요.”

“우리 아가가 또 쓰러졌다고 하니까… 놀라서 그랬어.”

“죄송해요.”

“아냐, 깨어났으면 됐지. 응,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며 지호의 등을 끌어안은 채 토닥이는 어머니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호는 역시 떨리는 손길로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부모님이 무사한 걸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려 진정할 수 없었다.

* * *

크게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저녁에 바로 퇴원했다. 지호는 오랜만에 이원과 함께 부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님 댁으로 가니 당연하단 듯이 가족이 모두 모여 있었다. 형과 누나의 격렬한 포옹을 받고 나서 마지막으로 나이차 얼마 나지 않는 조카의 쑥스러운 포옹까지 받고 나니, 지호의 굳은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다들 걱정했지… 미안.”

“아니, 미안할 게 뭐 있어. 네가 무사하면 다 괜찮아.”

“응……. 난 괜찮아.”

지호는 걱정하는 형과 누나에게 웃어 보였다. 부모님도 무사하고 자신도 무사히 깨어났으니 이제 괜찮았다. 정말로.

그날따라 식탁이 화려했다. 지호는 쓰러졌다는 이유로 한계까지 보양식을 잔뜩 먹었다. 이원 또한 오늘은 아버지에게 구박받지 않고 칭찬을 들었다.

“이원이가 바로 앞에 딱 나타나 주는데, 너무 멋있더라. 그렇게 작았던 아가가 이렇게 든든하게 컸구나, 하고.”

이원을 어릴 때부터 봐온 어머니는 새삼스럽게 확인한 SS급 헌터의 면목을 보고 무척 자랑스러워 보였다.

“항상 자랑했는데, 오늘 일도 자랑해야겠어. 그렇지 않니?”

“우리 길드장이 일을 좀 잘해요.”

평소 차가운 누나도 들뜬 어머니에게 동조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덕분에 식사는 훈훈하게 끝났다.

오늘은 자고 가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하루 잠들게 됐다. 2층으로 올라온 지호는 앞서가던 이원을 붙들었다.

“울지 마.”

이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말한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말대로 지호는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부모님의 앞에서는 멀쩡한 척 했지만 놀란 가슴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이원이 어딘가를 찔린 사람처럼 조금 아프게 웃었다.

“우리 울보.”

“내가 왜 울보야…….”

“지금 울고 있잖아.”

부드럽게 속삭이며 이원은 지호를 끌어안으며 벽으로 가볍게 밀어 냈다. 도망갈 곳 없이 지호의 등이 벽에 닿자, 이원은 지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핥았다.

평소라면 무슨 짓이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지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원의 눈썹이 아래로 축 쳐졌다.

“이 정도로는 기운이 안 나?”

“이게 기운 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전에는 이러면 눈물 그쳤는데.”

하긴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덧붙이며 이원은 다시 흘러내린 눈물을 핥아 먹었다.

“물이 많은 건 좋은데 여기서 흘리는 물은 싫더라.”

“무슨 소리야…….”

“울지 말라는 소리.”

이원이 지호를 가볍게 안아 들고 지호의 방으로 향했다. 얌전히 안겨 있던 지호를 이원이 침대에 앉혔다.

“옷 갈아입혀 줄까.”

옷 속으로 들어와 지분대는 손길에 지호는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 아까 씻는 것도 혼자 했는데.”

“해 줄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깨를 으쓱인 이원은 순순히 잠옷을 가져다주었다. 지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원을 파리 쫓아내듯 휘휘 손짓했다.

“나가든가 고개 돌리든가 해.”

“오늘 치 반찬 좀 얻을랬더니.”

“배고파?”

아까 잔뜩 먹고서 무슨 반찬을 더 먹는단 말인가. 지호의 물음에 이원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갈아입어.”

이원이 순순히 고개를 돌리자 지호는 그제야 옷을 갈아입었다. 기력이 없어 얌전해진 지호를 이원이 쓰다듬었다.

“자, 지호야. 아무생각도 하지 말고.”

“…….”

“다 괜찮아. 이제 넌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이원의 믿음직스러운 말에 지호는 뭐라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원이 지호의 눈에 손을 덮은 채 마법을 사용했다. 지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깊은 수마가 지호를 덮쳤다.

* * *

다음날 아침.

이원은 처리할 일이 있어 급하게 출근하고, 지호는 부모님과 식사하고 조금 늦게 출근해 평소처럼 길드의 업무를 마쳤다.

오늘은 일찍 쉬시라며 등을 떠미는 두 부길드장 때문에 평소보다 빠르게 집에 돌아온 지호는 휘청휘청 걸어가 소파 위에 무너졌다.

그제야 어제부터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으, 흑…….”

자신이 바보 같았다. 아니, 바보였다. 이기적이고 못된 멍청이였다.

사망자가 부모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랐던 지호는 다른 이가 죽었다는 걸 깨닫고 안도했다. 그리고 이내 죄책감을 느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지호가 알아본 바로 사망한 사람은 부부로, 아직 어린 딸이 둘 있었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균열의 증가로 죽어 간 사람은 수없이 많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안일했던지 깨달았다.

지호의 그릇이 손상된 건 결국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었다. 그렇다면 멋대로 군 책임은 졌어야 하는데… 길드를 키운다느니 뭐니 하며, 계속 미루려고 하다니.

충분한 준비를 하고 [안정화]를 켜겠다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가족을 잃을 텐데?

타인이 죽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 가족이 죽을 뻔한 뒤에야 얼마나 안일하게 굴었는지를 깨닫게 되다니.

어리석었다. 이기적이다. 관리자로서 실격이었다.

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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