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업적(4)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약속한 장소로 향하는 길,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헌터 협회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지호를 반갑게 맞아 주는 경현이었다.
“지호야, 이쪽이야.”
“안녕, 오랜만이네.”
지구에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해도 오랜만이고, 이세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온 지호에게는 더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환하게 웃는 낯 그대로 경현은 뒤에 선 이원에게도 인사했다.
“이원이도 안녕?”
“…….”
어지간하면 받아 줄 법도 한데… 이원은 인사는커녕 경현을 죽일 듯 노려보기만 했다.
지호가 허리를 쿡 찌르자 그제야 남 대하듯 고개만 까딱였지만… 상대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지나치게 무례한 태도다. 경현이 아닌 헌터 협회의 직원을 상대로 이랬다가는 난리가 났겠지.
당황한 지호는 어쩔 줄 몰랐으나 이원의 적의가 익숙한 경현은 안심하라는 듯 씩 웃고 앞장섰다.
빈 회의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경현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협회 쪽에서 직접 요청하는 건 별거 없어. 이쪽에서 알아서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각성자를 조사하거나 구속할 테니까. 가끔 요청할 때마다 와서 그들이 수호신과 계약했는지만 알려 주면 돼.”
“정말 그 정도면 되겠어?”
조금 더 적극적인 협조를 바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음, 아무래도 협회 쪽에서 지호 네 눈치를 보고 있고.”
“그럴 필요 없는데.”
알아서 신경 써 주니 편하긴 하다만, 정말로 지호가 다른 나라로 떠날 거라 생각하는 건지. 부모님이 있는 한국을 지호가 떠날 리 없는데.
물론 굳이 정정해 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길드를 운영하는 이상, 협회 쪽에서 스스로 만든 약점에 매여 있다면 지호에게는 이득이었으니까.
“게다가 청람 쪽에서 개발한 아이템 덕분에 일이 쉬워졌지.”
지호와 경현의 시선이 한 번에 이원에게 쏠렸다.
원래 청람은 균열 예측 시스템과 인벤토리 아이템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시스템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 준 지금, 청람 길드의 사업이 크게 휘청이리라고 다들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시스템이 전 세계의 각성자에게 도입되자마자 청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아이템을 출시했다. 그중에는 하나가 각성자가 쓰는 힘의 크기를 감지하고 특징을 분류하거나, 마력을 정교하게 추적하는 아이템들이 있었다.
신과의 계약 여부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스킬의 위력까지 속일 수는 없다. 청람이 개발한 아이템을 조합한다면 수상한 인물을 손쉽게 특정해 추적할 수 있다. 그러면 확인 작업은 훨씬 간단해진다.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데다 이플리스의 기술이 더해지면 만드는 게 어렵진 않았겠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출시되는 아이템에 ‘주이원이 예언자다’, ‘주이원은 미래를 살다가 회귀했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또다시 우스갯소리처럼 번지기도 했다.
수상쩍긴 해도 해가 되는 일도 아니니 일반인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각국의 헌터들은 주이원을 더욱 주목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해도… 지금의 이원은 힘을 모두 회복했으니 걱정되는 건 없었다.
지호는 생각을 마치고 경현을 돌아보았다.
“그럼 당장 할 일은 없는 거야?”
“설마 이 말만 하려고 바쁜 노네임의 길드장님을 소환했겠어? 안 그래도 몇 명 구속해둔 상태거든. 정확히 확인 좀 부탁해.”
“응, 물론이지.”
“이번 일의 보수는 계약서대로 지불될 거야.”
지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협회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생각이었는데, 엄청난 이득이다.
게다가 지호로서는 시스템창을 보는 게 전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협회가 당장 수상쩍게 여겨 잡아들인 사람은 다섯. 나름 신중을 기했는지 그중 넷이 신고하지 않은 계약자였고, 금세 끝나버린 일에 다른 협회의 직원들이 감탄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순조로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 평소라면 지호를 배웅했을 경현이 할 말이 남았는지 슬쩍 눈짓했다.
“지호야,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여기서 해.”
이원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경고했다. 왜 이렇게 극성을 부리나 싶어서 지호는 이원을 흘겨봤다.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예전부터 친구였던 경현을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지.
경현은 이원을 흘낏 쳐다봤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해도 상관은 없는데… 지호야, 너 수호신 확인할 수 있잖아. 한 번 확인해 볼래?”
“어?”
저렇게 말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지호는 곧장 경현의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status
이름 | 손경현 |
직업 | 헌터 협회 일반 직원 |
등급 | B |
체력 | 102 |
마력 | 151 |
근력 | 218 |
민첩 | 202 |
스킬 | 계약자의 징표(A), 강철 체력(E), 암기력 상승(F) |
수호신 ‘가면 쓴 왕’과 계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