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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반격(4) (257/283)

39. 반격(4)

호진은 꽉 잡힌 제 손을 빼내는 대신, 더욱 강한 힘을 주어 당겼다. 신지호를 닮은 얼굴이 가까워진다.

호진은 습관적으로 상대를 [매혹]하려다가 그만뒀다. 상대를 꼬시면 어지간한 일은 간단하게 해결되지만… 지금 호진은 허소리의 외형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과년한… 아니, 요즘 말로는 새파랗게 어린앤데… 어쨌든 본모습이 아닌 숙녀의 몸으로 눈앞의 기분 나쁜 놈을 유혹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발끈했다. 호진은 그런 놈을 보며 웃었다.

“완벽하다니? 하나도 안 닮았어.”

확실히 생김새는 같다. 하지만… 저 담백함과는 거리가 먼 표정. 더러운 욕망이 그득한 표정은 결코 신지호의 얼굴 위를 덧씌울 수 없는 것이었다.

양호진은 허소리의 말투를 흉내를 내며 비웃었다. 어째 원본보다 훨씬 빈정거리게 된 것 같지만… 상대가 허소리에 관해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범죄자 주제에 건방지게…….”

“지금 자기소개 하는 거야?”

“나는 지호를 구하려는 것뿐이야. 그대로라면… 행복해질 수 없어.”

음험하게 중얼거리는 상대를 보며 호진은 혀를 내둘렀다.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놀랍게도 상대는 진심이었다. 자기 자신만의 망상을 진실로 승격시켜 완전히 사로잡힌 꼴사나운 모습.

상대는 ‘허소리’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만, 호진은 ‘신지호’의 정체를 눈치챘다.

“너, 허수혁이지?”

길드장에게 붙은 최악의 스토커. 본인은 신지호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자각이 전혀 없어서… 신지호의 스킬에조차 걸리지 않는 놈.

사실 가장 악질적인 스토커는 따로 있지만… 그놈은 최소한 길드장 본인이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봐줄 만했다. 하지만 허수혁의 애정은 그저 범죄일 뿐.

“길드장님을 이해한 것처럼 착각하지 마. 너는 아무것도 몰라. 그저 네가 바라는 이미지를 길드장님에게 투영하고 있을 뿐이지. 한심한 변태 새끼.”

신지호로 위장한 허수혁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마치 악귀 같은 얼굴이었다. 신지호는 마냥 순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에 따라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니.

“너보다는 잘 알아. 고작 부길드장 주제에…….”

“……그래?”

“나는 알아. 다 안다고. 신지호의 비밀에 관해 아주 많이 알고 있으니까.”

허수혁이 분한 듯이 으르렁거렸다. 호진이 자신 있게 말하긴 했지만 허수혁이 신지호를 잘 아는 건 사실이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집요하게 신지호를 조사해 뒀다고 했었지.’

신지호를 이루는 커다란 정보부터, 본인조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조차 모조리 긁어모았다.

덕분에 ‘익명의 누군가’가 허수혁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뒷세계의 특성상 이름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누구일지는 뻔한 일.

어마어마한 돈이 뿌려진 만큼 허수혁을 잡으려는 존재도 많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계속 도망치고 있다는 건 게네시스의 뒷배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다만 의문인 점은 ‘왜 허수혁에게 그런 지원을 하는가’.

신지호의 스킬 특성상 허수혁을 공격하기 어렵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신지호는 이제 검을 쓸 수 있으니 그 장점도 상당수 무효화되었다.

평범한 헌터를 게네시스가 싸고도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그만이다.

호진은 부드럽게 웃음을 흘렸다. [방중술]과 [매혹]이 경지에 오를 만한 삶을 살았다. 한 사람에게 매달리는 스토커라고 해서 꼬드기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큰 비밀이라는 게 뭔데?”

“지호가 멸망의 대적자의 자식이었다는 것, 멸망이 지호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하다 말고 허수혁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개수작 부리지 마. 누가 다 말할 줄 알고?”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이 말해 준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호진은 조금 더 상대의 속을 긁었다.

“당신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아. 길드장님의… 기원에 대한 일이지. 어떻게 길드장님이 지금의 운명을 거머쥐었는가에 관한…….”

거기까지 말했을 때, 허수혁이 양호진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허수혁은 보잘것없는 능력치의 각성자일 텐데, 어마어마한 괴력을 휘둘러 호진의 목을 졸랐다.

“컥, 흐윽…….”

“그걸 네가 알 리가 없어. 나도 간신히 알아 낸 거라고. 그걸 위해 내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알아?”

무슨 대가를 치렀는지 알 리가 있나. 설령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렀다고 해도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양호진은 잠시 주변의 기척을 확인했다. 허수혁이 상상 이상의 힘을 보여 주고 있어서 어지간한 수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여우불.]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읊조렸다. 어차피 목이 세게 눌려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겠지만.

새파란 불꽃이 허수혁에게로 옮겨 붙었다. 쉽게 꺼지지 않는 불에 놀란 허수혁이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에 호진은 수혁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호진은 목을 매만졌다. 목에 멍이 들었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흔적을 남길 수 없을 텐데… 허수혁의 힘은 전투계 A급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저런 힘을 아무 대가 없이 손에 넣지는 않았겠지.

‘어리석은 놈.’

고작 육체의 강화를 위해 스스로를 바치다니. 경멸스러운 부류였다.

술법을 써서 전력을 다하고 싶지만 허소리로 위장한 이상 한계가 있었다. 호진은 주먹을 쥐고 상대에게 가볍게 뻗었다. 날렵한 주먹을 수혁은 쉽게 피했지만, 무릎을 쳐올린 공격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수혁의 몸이 인정사정없이 날아가 벽에 꽂혔다. 머리부터 부딪친 수혁은 정신이 없는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물론 호진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다.

호진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허수혁에게로 던졌다. 머리로 던지면 반사적으로라도 손을 써서 가리게 된다. 그렇게 자세를 고정한 후, 다가가서 발목을 차 중심을 무너트렸다.

따로 신체 단련을 하지 않은 허수혁의 몸은 단번에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꺾였다.

‘실전 경험이 터무니없어 적어.’

원래 전투계도 아니고 보조계, 그것도 하늘 길드의 얼굴마담 같은 존재였으니 당연하다.

대체 왜 여기로 허수혁을 보낸 걸까.

판단 미스든, 다른 비장의 수가 있든, 크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 승부는 승리할 테니까.

그도 그럴 게 여기는 헌터 협회의 한복판이다. CCTV는 도처에 깔려 있다. 게다가 소란을 듣고 누군가가 찾아올 터다. 그리고 여기서 지명 수배 중인 허수혁을 발견한다면… 의심은 이제 고스란히 녀석에게 쏠리겠지.

누군가가 찾아오기 전에 할 일은 마저 끝내야겠지.

호진은 종종 소리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풀고 왼손바닥에 오른 주먹을 내리쳤다.

“자, 그럼 처맞을 시간이야.”

호진이 소리를 따라하며 씩 웃었다. 그리고 아예 허수혁의 몸 위에 올라타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컥……!”

“악질 스토커는 벌을 받아야지.”

호진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연거푸 내리치자 수혁의 얼굴은 금세 엉망이 됐다. 수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 걸 본 호진은 슬슬 손을 멈추려 했다.

그 순간.

쾅!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내지른 주먹이 단단한 방어막에 막혔다. 호진은 얼얼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진 아무것도 없었는데, 허수혁이 뭔가를 하는 기미도 없었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 게네시스의 일원이 이 근처에 있는 거다. 협회 쪽 사람이라면 현상수배범인 허수혁을 막아 줄 리 없으니까.

호진은 방어벽에 술법을 썼다. 튼튼한 방어막에 금이 간 순간, 호진은 마력을 실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새파란 마력이 실린 주먹이 허수혁에게 닿는다.

일단 이 녀석을 인질로 쓰는 수밖에…….

“흐.”

붙잡혔음에도 허수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는 호진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무슨…….”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호진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으면서.

“…….”

순간 호진의 등으로 소름이 내달렸다.

허수혁과 싸우기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났다. CCTV도 있으니 누군가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호진의 의문에 대답하듯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렸다.

호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가온 상대를 마주했다.

“넌…….”

호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짙게 미소 지었다. 상대의 주변으로 시스템창이 요란하게 떠오른다.

“녹스.”

모습을 드러낸 녹스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얼굴이었다. 녹스가 손을 까딱였다. 올 테면 얼마든지 와 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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