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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냥(1) (264/283)

41. 사냥(1)

누군가의 격렬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계단을 훌쩍 뛰어내려 사뿐히 착지한 사람은 몸집이 늑대만 한 거대한 여우였다. 여우의 뒤에 아홉 개의 길고 풍성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구미호. 지호가 아는 구미호는 하나뿐이었다.

“……양호진 씨?”

─ 그래.

“무사하셨네요! 다행이에요.”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나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치료한 건지 큰 상처가 보이진 않았다.

뒤따라온 강태주가 양호진을 흘기며 주변에 부적을 던졌다. 알아서 벽과 바닥에 달라붙은 부적은 이쪽의 기척을 완전히 죽였다.

─ 혹시 허수혁을 만났니?

“녹스 말이죠?”

─ 맞아. 이런, 내가 오는 게 한발 늦었구나.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허수혁이 껍질임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녹스의 원래 몸에 대한 단서까지 얻어 냈으니.

“녹스의 본체는 허수혁이 아니에요. 손경현이에요.”

지호는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빠르게 설명했다. 호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음하다가 이내 납득했다.

─ 누구든 의심했어야 하는데 내가 물렀구나.

“그러게, 진짜 무르다. 난 그 새끼 눈깔이 이상했다니까?”

─ 너는 다 이상하다고 하잖니?

“아니, 어쨌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여기도 일이 많았다.”

강태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를 벅벅 긁는 태주 대신 호진이 대답했다.

─ 천희성이 깨어났단다.

“정말요?”

놀란 지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얼어붙은 채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했지만

“거봐,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잖냐?”

“아니, 다 중요하죠. 어쨌든… 천희성 씨는 괜찮대요?”

“안타깝게도 괜찮댄다. 회복도 빠르고, 후유증도 없고.”

“어디 하나 못 쓰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맞아.”

이원의 중얼거림에 강태주가 동의했다. 생각보다 둘이 죽이 잘 맞았다. 물론 나쁜 쪽으로. 두 사람 다 지호와 호진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 소리 씨는 누명 벗겨진 거예요?”

“그렇지. 조사받는 중. 지금은 용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자격이지만, 곧 풀려날걸.”

“다행이네요…….”

─ 정말 그렇구나. 젊은 나이에 범죄자가 되어서야 안 될 일이지.

“늙으면 상관없다?”

─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겠니?

여차하면 누명을 쓸 생각이었던 양호진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하지만 천희성이 곧장 진범을 지목했다는 건 퍽 의외였다.

아무리 맷이 천희성을 공격했다 한들, 하늘 길드를 중요시하는 천희성이 곧장 증언할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시간을 끌다가 천희림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낸 뒤에 발표할 줄 알았지.

“지금쯤 다들 난리가 났겠네요.”

“그래. 타이틀 자극적으로 뽑고 난리 났다. 내가 양호진이랑 이 자리에서 그 짓거리 해도 그보다 자극적일걸.”

─ 기분 나쁜 비유는 하지 말고……. 언론 외에 헌터들도 난리야.

“그야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겠지. 미리 예상했을 법한 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호진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수호신들이 진실에 대해 전달하기 시작했거든.

“…….”

“시스템이나 관리자 같은 거, 각성자들 사이에서 퍼지는 모양이야. 슬슬 잘 아는 일반인들 귀에도 들어갔고.”

“왜 그런 짓을 하는데요?”

“수호신도 관리자였으니까 그렇겠지. 보통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기를 바랄 테니까.”

과거에 관리자였고 이번 생이 끝나는 대로 수호신이 될 예정인 이원이 대답했다. 하필 ‘보통은’이라고 말한 범주 밖에 이원이 있는 듯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심상치 않고, 시스템이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았고 녹스라는 방해물이 있던 탓에 지구의 각성자들은 관리자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하물며 멸망해 가는 세이크리스에서도 관리자의 존재는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지구가 특히 예외적이었다.

─ 원래는 믿지 않는 이가 많았지만, 점점 믿기 시작하는 분위기라더구나. 잘하면 각성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겠네요.”

지호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힘이 없었다.

조금 전 녹스가 말한 것 때문에 지호는 헌터 스페이스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녹스에게는 자신만만하게 세상에 그리 나쁜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만에 하나의 변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상이 각성자라면…….

녹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은데.

우울해하는 티가 났는지 이원이 지호의 어깨를 슬그머니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강태주마저 입을 털지 않고 얌전했다. 머쓱해진 지호에게 호진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코로 손등을 툭 쳤다.

─ 너무 걱정하지 말렴. 나쁜 일은 없을 거야. 그보다… 그대를 잠깐 만나고 싶다고 하더구나.

“……누가요? 천희성이요?”

─ 그래.

“미친 새끼지.”

강태주의 말에 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새끼야.”

“찢어 죽일 놈…….”

“찢기만 하기엔 좀 아쉽지 않냐.”

“지호 비위가 약해서.”

“아. 그건 인정…….”

주고받는 둘을 양호진이 차게 식은 눈으로 응시했다.

─ 너희가 제일 미친 새끼란다. 조용히 좀 하렴.

“…….”

호진이 말한 사람 중에 이원이 껴 있어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안 나왔다.

─ 왜 만나고 싶은지는 말 안 하는데, 일단 찾아오면 말해 주겠다고 하더구나.

가도 되는 걸까? 맷의 일을 바로 증언한 만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전부 함정이 아닐지 의심되어서… 망설이는 지호의 손을 이원이 붙들었다.

“나랑 가자.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봐야지.”

이원의 말이 지호의 고민을 단번에 끊었다. 이원과 함께 간다면 적어도 천희성을 상대로는 걱정할 필요 없을 테니까.

지호는 이원과 함께 차에 올랐다. 먼 거리라면 스킬을 썼겠지만, 천희성이 있는 병원까지는 가까운 거리인데다가… 안전한 곳에서 이원에게서 들을 말이 있었다.

“레비아탄은?”

“별 소득은 없어.”

이원이 이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도 조금은 얻은 게 있을 줄 알았더니… 실망한 지호가 탄식했다.

“찾은 건 흔적뿐이야. 간발의 차로 사라져 버리더라.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널 만나러 왔어. 그냥 도망치는 게 아니라 순간 이동을 쓰는 것 같아서…….”

“알았어. 잠깐만.”

시스템으로 레비아탄의 흔적을 찾아볼 생각에 지호가 정신을 집중했다. 못마땅한 듯 이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지만 지호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니 새삼 흔적이 나올까 싶지만… 다른 일은 소득이 있는데 레비아탄의 일만 꽁꽁 감춰진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하나하나 해결하며 안심하는 동안, 레비아탄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수를 쓰는 것 같아서.

지호는 눈을 크게 뜬 채 깜박이지도 않았다. 초조하게 기척을 훑던 지호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았다.

“뭔가 이상해. 죄다 헝클어진 것처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잡히는 게 없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욕지기가 치밀었다. 뭔가 잡힐 듯 말 듯한데…….

그때 이원이 강한 힘으로 지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호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호는 손등으로 코피를 훔쳤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기는 한데…….

“이 정도는 괜찮아.”

“괜찮다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지호는 움찔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문제로는 더 싸우지 않기로 했으니까. 이원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한 자신이 멍청했다.

따가운 시선을 피하며 시선을 내려뜨리자, 이원은 한숨을 쉬었다.

“됐고, 네가 무리할 거 없어. 어차피 번갈아 가면서 찾기로 했으니까. 지금은 황룡이 추적 중인데……. 괜히 힘 빼지 마. 여기서도 할 일이 있으니까.”

“응, 알았어…….”

“할 일 많으니까 기운 내.”

이원이 맥빠진 지호를 위로했다.

“당장 레비아탄을 죽이고 끝이 아니야. 그 새끼 다닌 길마다 지독해. 가는 길마다 죄다 썩어서 냄새가 끔찍하거든.”

“……해양오염이나 시키고 다니네. 백해무익한 새끼.”

지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 뭐가 그리 웃긴지, 이원이 큰 소리로 웃었다.

“이 일 끝나면 주하은에게 환경 복구 시스템이나 만들라고 할게. 겸사겸사 기후 위기도 해결하고.”

“빨리 해 줬으면 좋겠네.”

“걱정하지 마. 지구의 기술 수준으로 치면 그 녀석은 만능이거든.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음, 물론 믿지.”

무려 시스템 3레벨에나 지원되는 균열 예측기를 발명한 사람인데 못 믿겠는가.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동안 차는 천천히 병원으로 들어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호야. 주하은이 이거저거 만들면 우리 돈도 많이 벌어서 호화로운 결혼생활 할 수 있을 거고…….”

“그런 걱정은 한 적 없거든? 아니, 그보다 다 뜯어먹을 작정이야?”

“뜯어먹는 게 아니라 투자 회수금이지.”

씩 웃으며 이원은 차를 마저 주차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강한 확신을 담아 지호를 바라본다.

“다 잘 될 거야.”

“응.”

“내가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지호는 이원을 가만히 보다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이원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황당해하는 이원에게 지호가 코웃음 쳤다.

“너나 무리하지 마, 멍청아. 내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하하.”

이원이 진심으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믿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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