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사냥(2)
병원 앞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안으로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몰래 숨어들었다가 쫓겨나는 기자가 있었고, 환자 중에서도 괜히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통제가 안 되네…….”
안 그래도 이원과 지호는 가는 곳마다 사람이 몰리는데. 더더욱 복잡한 곳이다 보니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몰래 들어갔다.
마침내 들어간 천희성의 병실은 그나마 고요했다. 천희성은 침대에 꼿꼿이 앉아 두 사람을 맞이했다.
“왔군.”
“쓸데없는 일로 지호 오라 가라 부르지 마.”
“어쨌든 왔잖나? 와서 손해 볼 건 없을 텐데. 손해는 내가 보겠지.”
“여기서 더 손해 볼 게 있나? 어차피 천공에선 버려졌을 텐데.”
“주이원.”
지호가 막말하는 이원을 탓했으나, 천희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 뭐, 증언하면 그쪽에서 손 뗄 걸 알고 있으면서도 증언한 거니 내가 천공을 버렸다고 해 주면 고맙겠지만.”
아무 상의도 없이 독단으로 일을 저질렀다면, 천희성 쪽에서 마음 단단히 먹었단 뜻이다.
“신지호.”
“……네.”
“네 길드원에게는 목숨을 빚졌어.”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아니었다면 분명 천희성은 죽었을 테니까.
아마 강태주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시신 자체가 사라져 실종 처리되어 버리지 않았을까……. 지호는 오싹한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소리 헌터한테 감사하세요.”
“그래. 나중에 충분히 사례를 보내도록 하지.”
“사례만 하지 말고 직접 말로도 전해요.”
천희성이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호도 허소리도 천희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였다.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는지는 알아도, 마음으로 공감할 수는 없는.
평소라면 상대하지 않았겠으나 목숨을 구명받은 지금은 다르다. 천희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네가 원하는 건 협조하도록 하지.”
“협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데요?”
“나, 그리고 하늘 길드까지. 이번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지.”
“……괜찮겠어요?”
“천희림은 잡혀간 데다 원래 길드의 실질적 운영자는 나다.”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물은 게 아니란 건 천희성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천희성이 하늘 길드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가.
당장은 천희성이 뜻대로 하늘 길드를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계속 갈 리는 없었다.
하늘 길드의 실소유주가 천공 기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도 하늘 길드의 지분 상당수가 천공 기업의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이미 제 것처럼 키워 온 하늘 길드를 천공 기업이 놓칠 리 없었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사실 빼앗기더라도 상관없다. 최대한 길드는 박살내고 갈 생각이지만.”
“왜 굳이 그렇게 하는 건데요?”
“어차피 이걸로 내가 원하는 바는 완성했으니까.”
길어질 법한 이야기였다. 이원이 노골적으로 하품을 했다. 지호는 이원의 옆구리를 퍽 때렸다. 피식 웃은 천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하늘 길드를 성공시키고 싶었고, 동시에 망하게 해 버리고 싶었다. 그 집안에 보란 듯이 나를 내보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복수하고 싶었지. 사생아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한 건 나뿐이었으니까.”
“흔한 이야기군.”
“맞아. 흔한 이야기지. 하지만 내게는 흔한 놈들과는 다른 게 있었어.”
천희성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치 늘 감시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희성은 마른 침을 삼키며 낮게 속삭였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외삼촌이 있었지.”
“아.”
지호가 낮게 신음했다.
지호도 조사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한 번 본, 시스템창의 글씨가 모두 지워져 보이지 않던 그 사람. 그는 지호가 가진 ‘이해’스킬을 완전히 상쇄시켰다.
그를 보고 나서, 지호는… 그자를 그리 신경 쓰진 않았다. 분명 평범한 인물일 리 없을 텐데도, 평범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뒤에 너무 큰 일이 계속 터져서 신경 쓸 겨를이 없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온 건 자신답지 않았다.
‘곧 또 보게 될 거야.’
남자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무명.”
“맞아, 그런 이름이지. 알고 있었나?”
희성의 물음에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서 그 남자의 이미지가 흐릿하다. 검은 먹에 같은 색 잉크를 섞은 것처럼. 분명 존재감이 없는 건 아닌데 감쪽같이 숨어드는 남자였다.
“분명 내가 어릴 때는 그런 남자가 없었어. 하지만 하늘 길드를 세울 때부터는 내 삼촌이었지.”
당시의 희성은 나이만 먹었지 반쯤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던 애송이에 불과했다. 갑자기 나타난 삼촌은 희성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길드를 운영하는 방법, 사람을 상대하는 법,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남자는 희성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혈육이자 스승이라고 생각했음에도 평소에는 놀랄 만큼 남자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남자가 나타나면 자연스레 그를 받아들였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지호도 그를 보고 똑같이 생각했었다.
“무슨 목적인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하지만…….”
“하지만?”
희성이 지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생각엔 너를 해칠 것 같진 않더군.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너를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 * *
천희성은 자신과 무명 사이에 있던 일을 더 말해 주었다. 그러다가 간호사가 와서 이제 그만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무리하긴 한 건지, 희성은 자리에 눕기 무섭게 잠들었다.
지호는 희성의 병실을 나왔다. 안 그래도 사람 많은 병원에서 오래 머물 여유는 없었다. 지호는 이원과 함께 다시 차에 올랐다.
“가 봐야 할 곳이 많은데 어디로 갈래?”
지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서리가 ‘아직’ 무사하다는 말은 들었다. 사실 지금 서리를 보고 있을 때는 아니지만, 반대로 지금 안 보면 어쩐지 후회할 것 같았다.
‘사망 플래그…….’
그때 강태주가 한 말이 괜히 스쳐 지나갔다. 확실히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은 사망 플래그지. 게다가.
‘지금 안 보면 후회한다니, 왜? 앞으로도 볼 건데.’
불길한 상상을 하는 대신 서둘러서 움직이는 게 낫다. 아마 서리도 그걸 원할 것이다. 자신을 만나러 시간을 썼다가 다른 일에 늦기라도 하면 먀악먀악 하면서 화를 내지 않을까.
지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무명을 추적해 보자.”
“괜찮겠어?”
“뭐가?”
“서리에게 안 가 봐도.”
“괜찮아.”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괜찮다니까.”
정말 괜찮은 건지, 이원은 지호를 빤히 응시했다.
서리는 지호에게 소중한 존재다. 그 녹스조차도 무르게 대하는데, 서리까지 사라지면 더 힘들어 할 테니까.
하지만 지호는 이미 서리가 사라진다는 불길한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삭제하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 중이었다.
“그보다… 수상한 놈부터 잡아 봐야지.”
“응, 그러게.”
이원은 순순히 지호가 말을 돌릴 때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넘치는 지호에게 괜히 초를 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지호가 말하는 놈이 상당히 수상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자기는 왜 그렇게 남자한테 인기가 많을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그리고 남자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잖아?”
“이플리스라면 모를까 지구는 성별 구분이 확실하잖아. 남성체로 나타났다면 남성으로서의 자아가 더 강한 거겠지.”
영양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이원은 운전대를 쥔 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성가신 게 튀어나왔네. 게네시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게네시스는 아닐 거야.”
“천희성의 말을 다 믿는다면 게네시스일 확률은 낮긴 한데……. 자기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호는 대답 대신 이원의 차에 실린 네비게이션을 톡톡 두드렸다. 이전에 입력한 적이 있는지 아래에 완성된 주소가 떴다. 지호는 목적지를 설정하고 이원을 돌아보았다.
“그야. 우리, 전에도 무명을 본 적 있잖아.”
“뭐?”
“청의 방주에서.”
청의 방주에서 만난 관리자의 이름이 다름 아닌 무명이었다. 이원과 똑같이 생긴 척 위장했던 그 남자.
“……임시 이름이야. 게다가 방주는 죄다 오염됐잖아? 같은 인물이라고 단정 짓긴…….”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원은 알 수 없는 분명한 확신이 지호의 안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