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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냥(3) (266/283)

41. 사냥(3)

도착한 청의 방주 앞에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출입 금지

부재중

마치 지호와 이원의 대화를 훔쳐 들은 것 같은 내용이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릴 거라고 예측한 걸까.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야 일부러 청의 방주에서 자신을 ‘무명’이라고 소개하지 않았겠지.

“뭔가 연관은 있는 모양이네.”

지호는 팻말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새것처럼 깨끗한 걸 보건대 최근에 만들어 꽂아 둔 것이다. 지금까지 그 존재를 짐작조차 못 한 무명에게 상당히 가깝게 접근한 것 같았다.

“이제 어쩔까, 자기야?”

“그러게.”

할 일이야 많다.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진 않았는지 확인 차 단말기를 열어본 지호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최남솔]

게네시스의 일원이지만 평범하게 생활하던 대학생. 지호에게 비밀을 지켜 주는 대가로 정보를 하나씩 주기로 한 바로 그 최남솔이었다.

지호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게 무색하게도 어이없는 메시지에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최남솔

밥사주세요ㅎㅎ

“자기야. 뭐야?”

“아니, 잠깐만.”

지호는 이원이 보지 못하게 단말기를 슬쩍 가렸다. 이원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호를 노려보았지만 함부로 단말기를 보려고 들진 않았다. 대신 지호의 얼굴만 빤히 노려보며 시위했다.

지호는 최남솔의 메시지를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이건 최남솔이 만나자고 신호를 보내는 거겠지.’

타인에게 들켜도 이상하지 않도록 위장한 신호.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만 함부로 만날 수는 없었다. 안전해 보이지만 최남솔도 게네시스,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더욱이 최남솔의 비밀을 발설할 시 지호는 한쪽 눈을 잃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발설해서는 안 되기에 이원을 데려갈 수도 없다. 간접적으로 정체를 밝히는 꼴이 될 테니까.

어쩌지.

고민하는 와중에, 읽은 표시가 뜬 걸 확인했는지 최남솔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이어졌다.

최남솔

보고 있죠?

혹시 형 남친이랑 같이 있어요?

남친이 누군데

최남솔

에이 당연히 주이원이죠

아냐

최남솔

같이 오세요

소개좀 시켜줘요

남친 어쩌고는 농담이라도 일단 이원을 끌어들인 것 역시 무언가 목적이 있겠지.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이원이 함께할 수 있는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주이원.”

“응?”

“갈 데가 생겼는데.”

“어디?”

“……가 보면 알아.”

이원은 미심쩍은 시선이었다. 순순히 불라는 눈빛을 지호는 슬쩍 피했다. 이내 한숨 쉰 이원이 지호의 한 손을 잡더니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지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뭐, 뭐야.”

“나중에 꼭 말해 주기야.”

“……당연하지.”

아마 말 안 해도 곧 알게 될걸. 지호는 그 말을 삼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호가 남솔에게 나오라고 지정한 장소는 그가 사는 곳 근처에 위치한 한정식집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니 일부러 방이 나뉜 곳으로 골랐다.

집 근처라 일찍 도착한 최남솔은 미리 주문까지 해 둔 채였다. 그는 불판 위에 빛깔 좋은 한우를 구우며 씩 웃었다.

“먹다 보니 모자라서 더 시켰어요. 곧 나올 거예요. 사실 코스도 시킬까 했는데 그건 좀 에바겠죠?”

“……진짜 얻어먹으러 온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제 신뢰감 넘치는 얼굴을 믿으세요, 형.”

신뢰는 무슨, 사기꾼의 상이다. 그때, 이원이 지호와 남솔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 녀석 그 새끼잖아. 전에 지호랑 던전 갇혔던 놈.”

“……기억해?”

“지호한테 이상한 눈으로 접근하는 남자는 다 기억해.”

“헤헤, 들켰네?”

지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하기도 전에 남솔이 뺀질뺀질한 태도로 깐족거렸다. 지호는 이원이 뭔가 하기 전에 잽싸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닐 것 같지만, 또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남솔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무명?”

“음? 그게 뭔데요?”

다행히 아니었다. 하긴, 만날 생각이었으면 팻말을 세우는 대신 청의 방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자리에 앉는 것과 거의 동시에 최남솔이 추가한 요리가 나왔다. 정중하게 음식을 나른 서버의 발소리가 멀어지고도 기척이 희미해질 무렵, 최남솔이 이원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지호 남친 님.”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사야.”

만족스레 웃는 이원과 함께 남솔 역시 씩 웃었다. 그리고.

“저는 게네시스 소속인 최남솔이에요.”

최남솔은 뜬금없이 폭탄 발언을 던졌다.

동시에 이원이 만든 칼날의 형태를 띤 마법이 최남솔을 중심으로 빼곡히 둘러싼다. 그대로 최남솔을 꿰뚫어 고슴도치처럼 만들 기세로.

“너……!”

“괜찮아요.”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란 지호를 최남솔이 안심시켰다.

비밀이 밝혀질 시 지호는 페널티를 받게 되지만… 확실히 계약에 최남솔 본인이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그를 인지함과 거의 동시에 지호의 안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며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스템 관리

대상 ‘최남솔’과 나눈 ‘운명의 계약’이 조건 위반으로 사라집니다.

시스템 관리

스킬 파기로 인한 페널티는 발동하지 않습니다.

비밀이 밝혀진 순간 계약서가 무효가 된 걸까. 같은 알림이 남솔에게도 간 건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게 파기되네요?”

최남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솔의 주변을 둘러싼 칼날 중 하나가 그에게 닿았다. 남솔의 뺨에 작은 상처가 나 얇게 피가 흘러내렸다.

“본처를 앞에 두고 둘만의 알콩달콩한 이야기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빨리 치워.”

이원은 코웃음 치며 최남솔에게 향했던 칼날을 치워주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거대한 칼날이 남아 남솔의 정수리 위에 위치했다. 툭 치면 목을 가르는 단두대처럼.

“살벌하시네요, 형님.”

“그래서, 진짜 무슨 사인데.”

이원은 남솔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지호에게 물었다.

“넌 그게 중요해?”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난 이게 중요해.”

“오올.”

최남솔이 쓸데없는 감탄사를 넣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지호는 이마를 짚었다.

“그냥… 던전에 갇혔을 때 서로 협력할 겸 계약했을 뿐이야. 비밀을 지켜 주는 대신 저쪽에서 정보를 뜯는 걸로.”

“정말 불공정한 계약이었죠. 제가 착해서 받아들였지…….”

“충분히 동등한 조건이라고 보는데? 엄살 부리지 마.”

탄식하는 최남솔에게 지호가 쏘아붙였다. 사정을 알게 되었음에도… 어째 딱딱한 채 풀리지 않은 이원의 얼굴이 지호를 응시했다.

“그래서, 조건 위반에 대한 페널티는 뭐였는데?”

“어?”

“사흘간의 두통과 고열이었죠.”

빠르게 거짓말하지 못하는 지호 대신 남솔이 변명해주었다. 지호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랬지.”

이원이 남솔을 흘겨보다가 지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느릿한 손길로 입가를 매만지더니… 다소 딱딱한 얼굴로 미소를 그려 냈다.

“그렇다고 쳐 줄게.”

“…….”

눈을 걸었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지호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여기서는 빨리 화제를 전환하는 게 좋겠다. 최남솔이 “고기 타요.”라며 집게로 고기를 집어 지호와 이원의 접시에 얹어 주었다. 마치 뇌물을 건네는 것처럼. 근데 이거 어차피 지호가 계산하는 걸 텐데.

속이 뻔히 보였지만 지호는 순순히 고기를 집어 먹었다. 하지만 이원은 고기에 손도 대지 않고 남솔을 노려보았다.

“빨리 말해.”

“아니, 레비아탄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요.”

“…….”

“못 찾고 있길래 불렀죠. 도와줄까 해서요.”

“너, 진짜 뭐야?”

“음.”

오늘이 마지막 만찬인 것처럼 와구와구 고기를 씹어 먹던 남솔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물을 삼킨 남솔은 하아, 한숨 쉬며 지금까지보단 다소 심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는 레비아탄의 화신이에요.”

말을 끝내자마자 최남솔이 뒤로 확 몸을 뺐다. 그러나 남솔이 경계했던 거대한 칼날은 머리 위, 10cm 위에서 멈춰 있었다. 남솔은 어색하게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워, 워. 진정하세요.”

“계속 그따위로 입을 놀리지 않으면 진정할 수 있겠지. 죽어서 머릿속을 다 털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살벌한 어조는 지금까지와 비슷했지만, 이원에게서 풍기는 살의와 마력은 이전까지와 궤를 달리했다. 그 흉폭한 기운에 밝은 최남솔도 조금은 주눅 들었다.

“일단 화신이라 머릿속을 뜯어보는 건 안 될걸요? 그리고 이런 몸을 훼손하는 건 전 인류적인 손실…….”

“…….”

“뭐, 화신이라고 해 봤자 별거 아니에요. 절 죽여도 얻는 건 없을걸요.”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 같은 최남솔은 칼날이 5cm 더 가까워지고 나서야 얌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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