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꿉친구 지키기 프로젝트-23화 (23/52)

#23

그러고도, 저 혼자 열이 펄펄 끓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도 꼬마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위험해, 위험해,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이 넘어지기 직전의 탑처럼 흔들거리며 쌓였다. 그래서,

최서희는 홀로 울컥 솟아오르는 충동을 참았다.

저 반듯한 이마를 한 대 꿍 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인지, 꼬마를 떼어 내고 제가 저 손을 쥐고 싶다는 마음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무엇이 부글부글 끓어 머리 너머로 넘칠 것만 같아서, 최서희는 빗속으로 뛰어들고만 싶었다.

그래서 웃옷을 벗고 아까 그 애, 젠장맞게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애가 던졌던 휴대 전화를 챙겨 산으로 내려가려 했다. 경찰서에 전화하면 오려나. 최서희가 맞는 소리를 들은 이웃집 주민이 신고했을 때에는 한 번도 오는 일이 없던데. 안 오면 안 되는데. 초조해지던 그때,

“…같이 연이가 먹을 거라도 찾으러 갈래?”

꼬마가 저를 붙잡았다.

그렇게 말을 튼 꼬마는 의외로 말이 잘 통했다. 내내 얌생이처럼 그 애의 옆에 붙어 있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보통 애들처럼 최서희를 질색하며 꺼리지도 않았고, 이런 험한 곳에 던져진 데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하지도 않았다. 눈치껏 제 이름이 강아지똥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 법도 한데, 꼬박꼬박 저를 강아지똥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이상하긴 했지만.

이상한 애들은 원래 이상한 애들끼리 노는 건가. 기묘하리만치 하얀 등짝을 줄줄 쫓아가며 최서희는 생각했다. 저도 그들과 어울리고 있으니 따지자면 저도 이상한 애라는 당연한 사실도 모른 채로.

어쨌건, 꼬마는 아는 것이 제법 많았다. 이건 빨간색이니까 나쁜 버섯이야. 이건 하얀색이니까 먹어도 괜찮아! 그리고 갈색두, 그리고….

과자 부스러기를 줍는 동화 속 남매마냥 그 조잘거림을 따라 산을 돌았더니 해가 질 즈음 두 어린이의 품에는 버섯이 한 아름이었다. 머리카락과 바지, 안의 속옷까지 온통 축축해졌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 애도 정신이 있었다면 만족스러워할 것만 같았다.

할매도 아플 때에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싸악 낫는다 그러지 않았던가. 비록 이건 밥이 아니라 버섯이지만, 같은 비읍 자 돌림이니 이걸로도 괜찮을 거라고 최서희는 굳게 믿었다.

그러지 말 걸 그랬다, 정말로.

버섯을 챙겨 와 크고 모양 고운 것은 거의 다 그 애의 입에 찢어 넣어 주고, 남은 작은 것들을 꼬마와 저가 주워 먹을 때까지는 꽤 좋았다. 적어도 머리가 아프도록 속이 울렁거려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텅 비었던 속이 좀 찬 지 얼마나 되었다고, 꼭 유통 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잘못 먹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진땀이 나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얼마 안 가 누워서 잠들어 있는 그 애도 풍 맞은 것마냥 덜덜 떨기 시작해서, 최서희는 큰일 났다 하고 꼬마와 머리를 맞대고 불 피울 방법을 공모하기 시작했다.

지방은 잘 탄다던데, 지방이니 단백질이니 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사람도 잘 타지 않을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인데 태워도 되지 않을까. 나쁜 사람 하나가 불타는 게 저 애가 추워하는 것보단, 아니. 내가. 내가 추운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열심히 머리 굴리던 최서희의 생각을 끊어 먹은 것은 그 애의 손길 한 번이었다.

묻지도 않고 허리를 당겨 옆자리에 눕히는 그 손길을 최서희는 또 반사적으로 밀쳐 낼 뻔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프니까. 응, 아프니까. 이번만은 봐주는 거야.

그렇게 그 애에게 반쯤 안긴 채 딱딱한 나무 바닥에 뒤통수를 댄 최서희가 눈을 깜박였다. 똑, 똑, 천장의 구멍 난 부분으로만 흘러 들어오던 빗물은 이제 나무 천장을 타고 아무 데서나 떨어지고 있었다. 빗방울이 최서희의 발치고 그 애의 뺨이고 가리지 않고 몸을 던졌다. 닦아 줄까, 무심결에 손을 들어 올렸던 최서희가 우뚝 멈췄다.

물방울 떨어지는 것에 깬 것인지 가느스름하게 눈을 뜬 그 애가, 몸을 조금 뒤척거렸다, 그러고는, 그러고는… 아주 희미하게 웃고는 꼬마의 뺨 위로 손을 덮었다. 작은 얼굴과 흰 볼을 차양처럼 감싸서, 그 보송한 얼굴만은 젖지 않도록 그늘을 드리웠다. 그리고는 그 불편한 자세로 다시 잠에 들었다. 아주 찰나의 일들이었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작고 빠른 행동들.

그것에 어쩐지 비밀스러운 순간을 몰래 엿본 것처럼,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단단히 얽혀 있는 무언가를, 겨우 손끝으로 더듬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주체는 제가 아니었다.

최서희는 그걸 알았다. 알았지만, 부러 더 그 애의 품에 파고들었다. 축축한 팔을 둘러 꼭 달라붙어 안았다. 불편한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도 심술을 부리듯 놓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본디부터 최서희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할매에게는 저를 데리고 갈 골칫덩이 큰아들이 있었고 공주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므로 크게 달라진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최서희는 그 애의 가슴팍에 귀를 기대고 한참을 생각했다.

있잖아, 너는 그러면 안 돼.

나에게는 나눠 먹는 것이 세상에서 좋은 일인 것처럼 말해 놓고, 네 애정은 온전히 저 꼬마에게만 쏟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잖아. 맛있는 걸 혼자 먹는 건 외로워서 싫다며. 그럼 맛있는 걸 혼자 못 먹는 것도 외로우리란 걸 알아야지.

네가 나한테 알려 줬잖아. 내가 왜 때때로 그렇게 숨 쉬기가 어려웠는지, 무엇에 꽉 짓눌리는 기분이 들어 집에서 도망쳐 한참 공주를 찾곤 했는지.

그러니까 책임져. 너, 너 말이야. 너….

그러고 보니까, 네 이름을 들었던 것 같아.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고 연한 것만 같은 이름이었는데. 뭐였지.

네 이름이….

눈을 떴을 때에는 시야에 하얗고 파란 무늬가 한가득이었다. 빳빳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 이불이 최서희의 뺨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최서희는 한껏 쪼그리고 있던 몸을 펴지 않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불부터 이상하다 싶더니, 이곳은 그 애와 저가 있던 허름한 오두막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지. 설마 팔려 왔나. 걔도?

다행히 이번에는 묶여 있지 않았다. 몸의 자유를 확인한 최서희가 다급하게 침대 난간을 벗어나려다가 보니 팔뚝에 무언가가 꽂혀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무심결에 걸리는 줄을 잡아 뜯었다. 팔 안쪽이 불난 듯 뜨끈하더니 테이프 붙은 바늘 같은 게 쑥 뽑혀져 나왔다. 구멍 난 자리에서 피가 쏟아졌다.

아 씨, 아파.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몰래 감추듯 입 안으로만 욕을 한 번 중얼거린 최서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와 무어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낯선 할아버지가 보였다.

“걔 어디 있어?”

최서희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래 놓고서 몸을 한 번 움찔했다. 걔, 걔. 그 애.

분명히 이름을 알았던 것 같았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꼬마가 말끝을 나긋나긋 늘여가며 그 애의 이름을 부르는 모양새를 얄밉다 생각하면서도, 저도 그 애가 깨어나면 한 번 저렇게 불러 볼까, 하고 고민하게 하던 그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꼭 달력에 물 엎질러 놓고 숫자 찾으라는 이상한 교과서의 문제마냥 빗물이 그 기억만 홀라당 쓸어 간 것처럼.

잠시 충격에 빠져 일시 정지한 최서희의 팔에서 흐르는 피를 본 여자가 어머, 하는 소리를 한 번 내고는 솜을 찾는다 반창고를 찾는다 부산을 떨었다. 그동안 늙은 남자는 최서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에 움찔하는 최서희를 내려다본 그 남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려 최서희를 조금 놀라게 만들었다. 주름진 손이 최서희의 손을 잡았고, 꼿꼿하던 무릎이 최서희의 앞에서 바닥에 부딪혔다.

“서화야….”

서화야, 서화야. 짧은 이름, 두 글자의 이름. 그 외의 말은 몽땅 잊은 것처럼 노인이 연신 흐느꼈다.

그거 내 이름 아닌데.

***

그는 자신이 최서희의 외할아버지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눈썹까지 하얗게 센 이 남자가 최서희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아버지란 뜻이었다. 단지 자장가 같은 흥얼거림으로만 기억에 남은 그 여자의 아버지.

기억을 더듬던 최서희가 별생각 없이 할아버지도 우리 엄마를 때렸어? 하고 물었더니, 그 노인은 또 울었다. 말라비틀어진 고목 같은 몸의 어디에서 그렇게 물이 많이 나오는지, 정 없는 최서희마저 노인이 그러다 길거리에 놓인 화분처럼 온통 다 말라 죽어 버릴까 조금 걱정이 들 정도로 오래 울었다. 무슨 어른이 이렇게 우나.

결과적으로, 최서희는 생전 처음 보는 노인이 십 분 정도 눈물 흘리는 동안 발가락을 비비 꼬며 기다린 후에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안 때렸단다. 세상에서 제일 귀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었단다.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그런 존재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세상에서 제일 귀한 딸이었다는 여자가 왜 제 아버지와 결혼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것까진 굳이 물어볼 정도로 궁금하지 않았던 최서희는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고개만 한 번 까딱였다.

“그럼 됐어.”

그래서 걔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더니 걔가 누구냐는 질문만 도로 돌아왔다. 아니, 걔가 걔지 누군가. 선문답 대잔치 같은 이 상황도 답답하고 다른 건 다 떠올리면서 걔의 이름만 도무지 떠올리지 못하는 저 자신도 답답해 제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내리치고 싶어졌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