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6화 (6/111)

#06

대기가 축축한 것이 비 님이 오실 것 같았다.

빌어먹을 시간은 너울너울 잘도 흘렀다. 여차 저차 탈주에 번번이 실패한 홍의는 결국 이경을 알리는 박이 치는 소리를 듣고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처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 꽥 비명을 질렀다. 문 앞에 음산한 분위기의 사내들이 저승사자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표정만큼이나 음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용히 따르시지요.”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하고 물안개 때문에 눈앞이 뿌연 가운데 사자들은 등불 하나 지참하지 않은 상태였다. 검은 갖신을 신은 그들은 걸음걸이에서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막 다향원의 홍살문을 지나면서 홍의는 물끄러미 궁장 너머의 어두운 숲을 응시했다. 어쩐지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머릿속이 망연하다. 파란 불길이 허공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만 같았다.

대궁을 지나 담장을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태자궁이었다. 금성에서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 지어 스산한 궁터를 바라보며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꼴깍 마른 침을 삼켰다. 그때 별안간 사자 하나가 어깨춤에 메고 있던 자루 하나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매캐한 흙먼지가 일면서, 피비린내가 훅 풍겨 들었다. 홍의가 기함하여 사자를 바라보았다.

“태자궁의 안뜰에서는 호위 목적으로 개를 풀어 키웁니다. 사납고 거친 사냥개들이지요.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사달이 날 것이니 홍의 님께서는 저희들이 이 고기로 개들을 유인하는 틈을 타 월담을 하시면 됩니다.”

마침 담장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개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컹컹 짖으며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일전에 해운이 말한 그 검둥개들인 듯했다. 홍의는 다리가 다 후들거려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휘청 담장에 붙어 섰다. 일 치르기도 전에 졸도할 것 같았다.

처음엔 사납게 짖어 대던 개들이 이내 피가 가득 배인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곧 조용해졌다. 홍의는 디딤돌을 밟고 올라가 고개를 쭉 빼고 담장 안쪽의 정황을 살폈다. 과연 성인 남성 한 명쯤은 거뜬히 물어 죽이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검둥개들이 어울리지 않게 궁둥이를 들멍들멍하며 신나게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멋모르고 들어갔다면 저 고깃덩이 대신 자신의 모가지가 살뜰하게 뜯겼을 것이다. 식은땀이 다 났다. 홍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담장을 뛰어넘었다.

깨금발로 회랑을 돌아 정당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눈 깜짝할 사이였다. 경이로운 속도로 본전에 침투한 홍의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오니 조금 살 것 같았다.

“홍의 님이십니까.”

“으핫…!”

별안간 뒤에서 울리는 음울한 목소리에 홍의는 온 사지를 비틀며 놀랐다가 휙 뒤를 돌아보고는 이차 경악을 했다. 낯선 여인이 유령처럼 생기 없는 얼굴로 싸늘한 눈을 내리뜨고 있었다. 눈 밑에는 검은 그늘이 가득했고 입술은 핏기 없이 시허옇고 안색에는 퍼런빛이 돌았다.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사, 사람이면 거기 있고 귀신이면 물렀거…”

“황후 마마의 명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저를 따라오십시오.”

시비는 제 할 말만을 하고 휙 돌아서 긴 복도를 스르륵 유령처럼 나아갔다. 허공을 동실동실 떠다니는 것처럼 역시 발소리가 안 났다. 홍의는 시비의 치마 밑으로 발이 달려 있는가 아닌가,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보기까지 했다.

어쩐지 지옥의 동토로 안내받는 느낌이라 매우 꺼림칙했다. 왜 태자궁에 기거한다는 궁인들은 죄다 아닌 밤 홍두깨처럼 훅훅 등장하는 것이며, 표정은 저리 암울하고 낯빛은 저리 퀭한 것일까? 본디 개는 주인 닮고 아랫것들은 상전 닮는 법이었다. 홍의는 아직 일면식도 없는 태자가 그중 제일가는 상도깨비일 것이라며 선입견을 굳힌 상태였다.

드르륵. 내실 문이 열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침상 기둥에 매여 있던 붉은 휘장이 나풀거리자 도깨비불인 줄 알고 꽥 비명을 질렀다. 시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홍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휘이잇, 우웅우웅.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었다. 현재 태자는 황후와 함께 대내에 들어 병상에 누우신 황제를 문후 중이라고 했다. 넓고 포근해 보이는 침상에는 정성껏 시침한 금빛 보료가 놓여 있었고, 달콤한 정과와 술도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곳곳에 늘어뜨린 붉고 투명한 휘장, 갖가지 화려한 필체와 명화로 수놓은 병풍, 은은한 난향, 꽃과 그림들이 가득 찬 커다란 내실 분위기는 무척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생기가 넘칠 정도였다.

시비는 침상의 맞은편에 길게 놓인 높이가 성인 남성의 허리께에 올라올 법한 크기의 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들어가서 거사를 관찰하시면 됩니다.”

“…….”

무늬목으로 짠 협탁이었다. 위에는 꽃병도 놓여 있었다. 물론 몸을 반으로 착 접어 전신을 꽉꽉 욱여넣으면 못 들어갈 것도 없었다. 마침 손잡이의 용도로 보이는 길고 얇은 구멍도 패여 있으니 안에 들어가 바깥을 관찰하기에도 맞춤일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뒤주처럼 사방이 막히고 좁아터진 곳에서 몇 시진이나 웅크려 버텨야 하는 고통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곧 양 전이 입실하실 것이니, 소인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시비는 음산한 목소리로 알리고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동그란 격자창 너머, 일각 전만 해도 은은했던 달빛이 을씨년스러운 매지구름에 폭삭 숨어 들어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바깥에는 쏟아지는 장대비와 함께 우레가 치기 시작했다. 호롱불만 켜 놓은 어두운 내실은 그 쩌렁거리는 소리에 맞춰 이쪽이 번쩍 저쪽이 번쩍하였다. 길일이라더니, 도깨비 칼춤 추며 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홍의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줄도 모르고 연신 코에 침을 찍어 바르고 있었다. 좁은 협탁 속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괴로웠다. 약간 미동이라도 하면 삐걱삐걱 잡소리가 나는 데다가 육 척의 튼실한 사내의 몸이 들어가 앉아 있기엔 매우 비좁기만 하였다. 장시간 이어지는 숨 막히는 폐쇄감에 버럭 역정이라도 내 보려는 찰나, 드르륵- 내실 문이 열렸다. 홍의는 돌처럼 쩍 굳었다.

“태자 전하의 면전에서도 그리 눈물 바람 할 참이냐? 행여 싫은 티를 내었다가는 너나 나나 경을 친다!”

“어머니도 전하에 관한 소문을 아시지 않습니까? 어찌 저더러 그 해괴망측한 흉한을 감당하라 하세요?”

“전하에 관련된 소문들은 모두 삿된 낭설일 뿐이다. 네 이모인 황후께서 설마 어여쁜 조카딸에게 몹쓸 짓이나 하겠니? 어서 눈물을 그치고 머리를 이리 내어라. 내 옥잠을 정돈해 주마.”

훌쩍거리는 소녀를 점잖게 타이르는 윤명은 황후의 여동생이자 황제의 후궁이었다. 윤명 역시 뒤숭숭한 소문을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태자에게 고명딸을 바친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였지만, 신통 가문의 고귀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윤명은 딸의 고운 머릿결을 매만지며 남몰래 눈물을 찍어 눌렀다.

이윽고 삼경을 알리는 박이 쳤다. 어미가 방중을 나가 버리자 홀로 남은 소녀는 침상 위에 오도카니 앉아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협탁 안에 웅크리고 앉은 채 모든 정황을 지켜보았던 홍의는 하마터면 한숨이 새 나갈 뻔했다.

‘네 심정이 내 심정이란다.’

난생처음 보는 여인에게 이토록 동질감을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에 젖은 풋병아리마냥 작은 몸뚱이 옹송그리고 오들오들 떨어 대는 소녀가 안쓰럽기만 했다. 이 시간이면 본가에 있을 여동생 소의는 나무 조각하던 것을 아버지 못 보게 서안 밑으로 쏙 집어넣고 보료 속에서 편안히 잠을 청하고 있을 터였다. 제 여동생과 비슷한 또래의 어린 소녀가 저리 두려워하는 걸 보니 점점 더 못 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물론 그 못 할 짓을 하는 이는 홍의가 아니라, 바로,

드르륵-.

태자였지만 말이다.

“…….”

“…….”

“…….”

몸을 성히 두지 못하고 계속 떨어 대던 소녀도, 협탁 안에 처박힌 홍의도, 하다못해 벽력까지 쳐 대며 쉴 새 없이 울어 대던 밤하늘조차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딱 멎었다. 방중이 고요해졌다. 예고치 못한 상황에 두려워하고 있을 사람은 생각지도 않았다는 듯 거칠고 사납게 문을 열어젖힌 장본인은, 묵묵히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

홍의는 좁은 손잡이 구멍 틈새로 스쳐 지나가는 검은색 비단 용포 자락을 보았다. 그리고 뚫린 구멍 사이로 내다보이는 침상 위의 상황에 온 오감을 집중하였다.

“저, 전하… 소녀 희종 공과 윤명의 여식, 위소라 하옵니다….”

소녀가 하롱하롱 떨리는 목소리를 해 가지고는 제법 당차게도 먼저 입을 떼었다. 앞서 안부도 살피고 소녀를 다독여 주었어야 마땅할 상대편이 계속 말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떨리는 몸을 일으켜 침상 아래로 내려갔다. 상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잠시간 침상 옆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자는 여전히 긴장하여 떨고 있는 소녀를 없는 사람인 양 취급하며 침상 위에 오르더니, 벽에 등을 편히 기대고 한쪽 무릎만 세워서 누운 듯이 앉았다. 의복은 여전히 입은 채였다. 검은 포는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릴 듯 걸친 채 벌어져 있었고 안쪽의 비단 저고리는 아직 매듭 져 있는 상태였다. 또한, 머리에 쓴 금관으로부터 이어지는 검은 면사가 머리통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방사를 진행할 마음이 있긴 한 건가? 아니면, 방사가 시작되어서도 정녕 저 면사를 벗지 않을 작정인가?’

태자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는 정면을 향해 있었는데 협탁 안의 홍의는 꼭 태자가 저를 빤히 응시하는 듯하여 오금이 다 저렸다.

“전하…. 소녀가 침전에 올라도 되겠사옵니까?”

다시 용기를 낸 위소가 질문을 건넸다. 태자의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위소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다.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것도 아니다. 위소는 기괴할 만큼 무책임한 태도에 슬슬 두려운 것도 잊고 어딘지 황당한 것 같았다.

“허, 허면 소녀 오르겠사옵니다….”

위소가 다시 신을 벗고 엉거주춤 태자의 침상으로 기어오르려는 찰나였다. 태자가 별안간 등을 일으켜 세우더니 침상 밑으로 내려갔다. 위소는 한쪽 무릎을 침상에 올린 채로 굳어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런 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복을 마저 벗으시려는 것인가. 벗는 김에 면사도 스스로 벗어 주었으면 좋겠다. 소문이 자자한 그 괴악하다는 몰골이나 한번 구경했으면…. 협탁 안의 홍의도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려는데 문득 침상에서 내려온 태자의 발소리가 이상했다.

참으로 이상했다.

쿵….

쿵.

쿵!

발소리가 회를 더할수록 더 커지는 것이 어쩌면, 홍의가 있는 협탁 쪽으로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탁- 벌컥.

“…….”

“…….”

“꺄악-!”

협탁 문이 열려 버리고 동시에 쿠르릉 쾅! 벼락이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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