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달이 뽀얗게 차올랐다. 약속한 날 이경이었다.
‘두 번 세 번 마주치면 저것들도 귀여워 보이려는가.’
홍의는 태자궁의 안뜰에 걷기 편하라고 깔아 둔 박석 위에 서서 한 차례 몸을 떨었다. 단단한 노끈에 목을 매인 채 투견처럼 이를 드러내고 자신을 족치기 위하여 이빨을 번뜩이고 있는 검둥개 두 마리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번과는 달리 이경쯤 되면 궁인들이 알아서 개들을 묶어 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녀석들이 힘을 줄 때마다 땅에 막힌 나무못까지 들썩들썩하는 꼴이 영 불안했다. 홍의는 최대한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눈을 바닥에 내리깔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본전을 향해 냅다 튀었다.
정말이지 두 번 오기 싫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왔을 때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둘러볼 새가 없었지만, 궁원에 심은 화초부터 나무들까지 죄다 스산하게 구부러지거나 앙상하게 비쩍 마르거나 하여서 부러 더 공포감을 조성하는 듯 보였다. 이런 곳에 살다 보면 멀쩡한 사람까지 귀신이 들릴 것 같았다. 물론 대낮에는 예까지 와 본 적이 없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컹컹 짖는 개 소리를 뒤로하고 정당에 들자, 아니나 다를까 그 귀신 같은 시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늘 무표정한 얼굴로 태자를 지척에서 시중하는 이 여비의 이름은 옥지라 하였다. 옥지는 음산한 분위기와는 달리 눈치가 재바르고 손끝이 야물어서 굳이 말로 호령하지 않아도 상전이 원하는 바를 척척 해내는 총명한 아이였다.
“전하께서는 먼저 침전에 들어 계십니다. 내실 앞에는 노상 위병들이 대기 중에 있으니, 혹시라도 전하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함께 들지 않는 것이냐?”
그래도 그 태자와 단둘이라니 어쩐지 불안하였다. 처녀 귀신처럼 서슬 퍼런 몰골이라도 방중에 사람 하나가 더 들어갔으면 싶었지만, 옥지는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전언하신 바 있어 저는 들지 않습니다.”
“…….”
“전하, 향선 홍의 존전에 다령하였사옵니다.”
내실 앞에 선 옥지는 말릴 틈도 없이 일갈하였고, 안쪽에서 대답도 울리지 않았건만 알아서 문을 확 열었다. 그에 복장을 추스를 새도 없이 홍의는 얼른 양손을 곱게 앞으로 모으고 공손한 읍을 취해 보였다.
어두운 복도와는 달리 여러 개의 등불로 밝힌 내실 안, 태자는 문간을 등지고 뒤돌아 앉은 채로 책을 읽는 듯하다. 홍의는 심기를 다잡고 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드르륵-! 기다렸다는 듯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지옥문이 닫히는 느낌이라서 상당히 꺼림칙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태자는 대꾸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뱁새눈을 한 홍의는 침상 옆 탁상 위에 놓인 차를 보았다. 안 그래도 지속된 긴장으로 인하여 목이 타던 참에 잘됐다 싶었다. 홍의는 잠자코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어차피 마시라고 내어놓은 것일 테니 묻지 않고 전부 다 마셨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의학서들을 탁상 위에 잘 쌓아 놓고, 서문과 그림들도 보기 좋게 펼쳐 두었다. 준비를 마친 홍의는 땀 찬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르며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들고 태자를 응시하며 한층 가벼운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전하, 허면 첫 수업을 강하여도 되겠습….”
“…….”
니까.
어쩐지 마지막 말소리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침상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던 태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야 깨달았다. 태자는 지금 면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숱 많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을 한데 끌어모아 빛나는 용잠을 꽂은 그의 귓가에서는 금이환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너른 어깨선을 따라 보기 좋게 흐트러진 하얀 포는 지난번의 검은 포만큼이나 썩 잘 어울렸다. 안색이 저리 뽀얗고 맑으니 무슨 색을 대어도 인물이 화안한 것이다. 여전히 지상의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연한 푸른빛의 눈동자가 검은 눈썹 아래서 부드럽게 구르더니 지긋이 홍의를 응시하였다.
“나는 여기 앉아 들으려 하는데.”
착, 들고 있던 서책을 접으면서 태자는 담담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여전히 침상에 앉은 채로 가만히 홍의를 건너다보았다. 다시 마주한 그 이색적인 눈동자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홍의는 곧 정신을 수습하고 그러시라 하였다.
“아, 이제 수업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태자는 침상 벽에 등을 반쯤 기대고 앉아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긍정의 대답 같았다. 태자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정을 익히 겪어 본 터라 내내 침불안식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홍의는 어째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에 잠시 안도감이 들었다.
“내 눈이 흉하여 수업에 방해가 된다면 면사를 쓸까.”
태자는 문득 눈동자를 슬며시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머뭇대고 어쩐지 수줍음이 많아 보여, 홍의는 살짝 놀랐다. 난데없는 눈 호강에 몸도 맘도 기꺼워지려는 참이었는데 흉하다니? 망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태자는 지금껏 누구 앞에서도 제 낯을 훤히 드러내지 못하였으니 이 상황이 설고 긴장되기도 할 것이었다. 아아, 어쩐지 태자가 달리 보였다. 그가 아직 한참 숫되고 어린 아우처럼 느껴져서 홍의는 전에 없이 포근하게 웃어 보였다.
“전하께서는 심려치 마시고 편안히 수업을 들으시면 됩니다.”
“그래. 고마워.”
태자가 붉은 입술 끝자락에 오련한 미소를 살짝 걸어 보였다. 그 곱디고운 미소에 방중이 다 훈훈하였다.
‘나도 애초에 뜬소문만 믿고 태자를 멋대로 속단한 것 같구나.’
첫인상은 비록 기괴하였으나 인간이란 모름지기 겪어 봐야 아는 법. 사실 그간 홍의가 태자에게 행한 방종한 짓거리들을 톺아 보자면 모가지가 뎅겅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었다. 태자의 방중에 쥐새끼처럼 숨어들은 데다가 감히 옥체에 덤벼들어 신성한 뒤통수를 다치게 하였으며 태자의 일생일대의 비밀이라는 눈동자까지 날름 훔쳐보았고…. 돌이켜 보니 아직 제 목이 온전히 붙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홍의는 이러저러한 오만불손에도 가만히 눈감아 준 태자가 실은 비단결처럼 고운 심성을 지닌 게 아닐까 통감하기에 이르렀다.
‘어쩐지 앞으로 수업을 잘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군.’
홍의와 태자는 한층 살갑게 웃으며 한참을 마주 보았다.
“외람되지만 전하, 수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그래, 뭔데?”
“제가 황후 마마께 짧게 전해 들은 바로는 도저히 전하의 옥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만….”
“응.”
“그, 전하께오서 파정을 못 하신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상황을 이르심인지요? 발기는 가능하나 배출이 어렵다는 말씀이십니까?”
“…….”
“본디 사내의 몸은 여인과 다르게 시각적인 반응을 통하여 정신으로부터 이어지는 성적 흥분으로 발기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혹여 그러한 절차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지요?”
“음.”
태자는 자못 부끄럼을 타는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을 골랐다. 그 모습이 뽀얀 강아지 같고 귀여워서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우쭈쭈, 하고 경망스러운 소리를 낼 뻔했다.
“발기는 돼. 하지만 가끔은 그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어.”
“허, 참.”
“어쩌다가 발기가 될 때도 있었지만, 노상 파정은 못 했지.”
“허어!”
“가끔은 이런 내가 정말 싫어.”
“허어허어….”
과하게 감정을 이입해 버린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들을 입에 물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옥식을 먹고 꽃방석에 앉아 있으면 무얼 하나. 교합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늘 한숨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을 태자를 생각하니 같은 사내로서 몹시 통탄하는 바였다. 파정을 못 한다니. 하늘을 봤으면 별을 따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거늘, 싸지를 못한다니!
“색사는 무릇 마음이 열려야만 몸도 비로소 열리는 것이라 들었어. 허나 나는 태자비와 후궁들에게 내 낯을 보여 준 적도 없고, 그 애들은 모두 나를 보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벌벌 떨기 일쑤지.”
“…….”
“참… 산다는 건 뭘까.”
태자는 촘촘한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며 푸른 눈을 가두었다. 아랫입술을 짓깨물고 턱에 주름이 패도록 탄식을 하던 홍의는 본인도 모르게 스스럼없이 태자에게 다가가 그의 비스듬히 처진 어깨를 감싸 잡았다. 태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맑고 투명한 물빛의 눈동자가 몹시도 어여뻤다. 그 경이롭기까지 한 아름다움에 홀린 홍의는 진심으로 감복하여 아뢰었다.
“전하께서 그간 홀로 얼마나 상심하였을지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오나 전하, 걱정 붙들어 매소서. 앞으로 전하께서 보다 나은 양질의 삶을 누리실 수 있도록 소신이 분골쇄신하여 도울 것입니다.”
그 말에 태자는 푸른 눈을 반짝였다.
“참말인가?”
“참말이고말고요.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분위기에 심취한 홍의는 태자에게 바싹 다가가 부드럽게 다독였다.
“전하께선 남들보다 성감이 둔하여 그런 것이지, 딱히 하자가 있어 그런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하아….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군.”
어찌 이토록 곱고 순한 사내에게 그런 흉흉한 소문이 꼬리처럼 붙어 따라다닌단 말인가. 홍의는 세상이 다 싫어지려고 했다.
“그나저나 그대는 참 사내답고 강건하여 보기 좋군. 나는 날 때부터 약골이라….”
태자는 흰 소매에 싸인 자신의 팔뚝을 어루만지며 고운 입술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태자께서 뜬금없이 칭찬을 내려 주시니 어쩐지 신바람이 든 홍의는 입꼬리가 벙싯하려는 것을 참아 눌렀다. 그리고 이 씁쓸한 방중의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쇄신하고자 시답잖은 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예 뭐,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용맹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웠습니다. 지난번 드렸던 정력제를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그 정력제를 만들기 위해 홀로 산 속에 들어가 호랑이 고환도 따 가지고 왔다고 말씀은 드렸던가요?”
실은 장터의 장사치에게 딸랑 철정 두 냥 내고 얻어 낸 것이었지만 알 게 무언가. 홍의는 뻔뻔하게 협잡을 부리면서 예의 한쪽 입매만 들어 올리는 냉담한 풍류랑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태자는 진심으로 감탄하였는지 고개까지 끄덕거렸다.
“그토록 담력이 세다니, 그대는 어떠한 일이 생겨도 동요하지 않겠군.”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는 향선들과 담력을 기른답시고 묘지촌 밤마을을 돌았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않고 귀신아 이리 오너라, 했던 놈입니다.”
“내가 정말 스승을 잘 모셨어.”
“과찬이십니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홍의는 이렇게 태자궁에 들어 진진한 대화를 나누기까지 어찌나 지난한 과정이었는지 잠시 떠올려 보았다. 생각만으로 할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뒷덜미가 더운 것 같아 손등으로 쓸어 냈다가 묻어나온 땀의 양을 보고 흠칫하였다. 온천이 터진 것 같았다. 옷깃을 잡고 바람이 통하도록 펄럭여야 할 만큼 극성맞은 더위가 난데없이 홍의의 몸을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