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12화 (12/111)

#12

“…….”

“젖었잖아.”

태자가 도발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친히 어수를 들어서 홍의의 붉은 장유 깃을 열었다. 몹시 노골적인 시선으로 무젖어 투명해진 속저고리를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었다. 홍의의 얼굴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뜨악하게 일그러졌다. 비스듬히 아래를 보는 옥골선인의 미간이 진진하였다.

“젖꼭지는 왜 세우고 있는 거야?”

장난감을 발견하여 잔뜩 회가 동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태자는 천천히 손을 뻗어 왔다. 거기에서 홍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호락호락 당할 수만은 없었다.

다가드는 손아귀를 피해 물러난 홍의는 쥐고 있던 보자기를 냅다 허공에 던져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문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문에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이악스러운 힘에 머리채를 쥐어 잡혀 그대로 얼굴이 쳐들렸다. 홍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두 눈을 홉떴다. 머리 거죽이 와자작 들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도망치지 말랬잖아.”

태자는 홍의의 귓가에 가쁜 속삭임을 흘려보냈다. 언젠가 악몽 속에서 흉물스러운 도깨비에게 거듭해 들었던 말이었다.

“나랑 놀다 가, 홍의야.”

믿기지 않을 만큼 달보드레한 감촉으로 태자의 입술이 홍의의 관자놀이에 살포시 닿아 눌리었다. 순간 시야가 다 아찔하면서 현기증마저 돌았다.

태자는 내내 쥐고 있던 머리칼을 놓고 홍의의 어깨에 슬그머니 턱을 걸었다. 여전히 자기주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홍의의 앞섶을 슬며시 내려다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 자랑질을 해 댄 것치곤 별로 대단하지 않은데.”

“대체, 대체 어찌 이런 희롱을…!”

“나 가르쳐 준다며. 성교육. 아니야?”

“…….”

“그 손 치워.”

양손으로 여전히 불뚝 선 앞섶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던 홍의가 도리질 쳤다. 귀엽네. 태자가 비웃었다. 홍의는 두 눈을 꼭 감고 소피라도 본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귀엽다니, 망극한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올해 스물여섯으로 전하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많은 사내이자, 이 나라의 향선…!”

“시끄러워.”

“아니, 신하가 직주하면 끝까지 들어 주시는 것이…!”

“조용히 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신…!”

“닥쳐.”

“…….”

태자는 차분하게 두 팔을 뻗어 와 홍의의 양손에 살며시 깍지를 끼워 넣었다. 홍의는 흠칫했다. 손을 잡는 과정이 가냘픈 여인네를 대하듯 자못 부드럽고 상냥했기 때문이었다. 태자는 곧 깍지 낀 손을 가만히 펴고는 홍의의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가만히 집중이라도 한 것처럼 귓전에 닿는 숨소리가 여간 고르고 신중한 것이 아니었다.

“내 손은 덥석덥석 잡으면서, 왜 젖꼭지는 못 만지게 해?”

“…손과 젖꼭지가 같습니까?”

“젖꼭지가 성감이라서 그런 거라면… 사실 손도 별반 다를 게 없을 텐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 아.”

태자는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자의 길고 하얀 중지가 홍의의 중지 끝자락을 살금살금 간질여 왔다. 순간 홍의는 움찔하였다. 간지럽기만 했던 것이 어느 순간 저릿저릿한 감도로 변했다. 가파르게 솟구친 감각이 빠르게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 하복부 전체에 가닥가닥 퍼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옴칠거리며 헛숨을 짧게 끊어 냈다.

“신체의 가장 끄트머리로 치는 이 가운뎃손가락부터… 천천히… 느긋하게 만져 주는 게 정성스러운 애무의 시작이니까.”

“누,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모들이 그러던데.”

섬세하게 중지를 둥글리던 태자의 손가락이 이내 약지로 옮겨 가, 고 나긋나긋한 손짓을 거듭 반복하는데, 홍의는 머릿속이 다 몽롱하였다. 몸뚱이에 잔재한 육감이란 육감은 죄 손가락 끄트머리로 가 쏠린 듯 온몸이 다 흐늘흐늘 녹아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야스락야스락 야살을 부리던 태자의 손가락들이 이내 손바닥을 살살 그으며 정중앙으로 올라오더니, 그 편편하면서 살짝 오목한 부근에 자리를 잡고서 갉작갉작 꼬물꼬물 간지럼을 태웠다. 하마터면 된소리가 새 나갈 뻔했다. 홍의의 손가락들이 움찔 오므라들면서 팔뚝에 소름이 아스스 돋아났다. 태자는 이내 넓적하고 두툼한 엄지손가락을 내어 다시 고 부분을 살살 둥글리고 나섰다. 눈앞에 불빛들이 배어 번졌다. 뽀얀 사를 둘러씌운 등롱들이 주홍색 동그라미가 되어 말갛게 뒤흔들렸다. 머릿속이 그저 백지장이 된 것만 같았다. 하릴없이 속수무책으로 그 기묘한 감각에 취해만 있는데, 문득 태자의 손이 스윽- 소매 안을 파고든 것도 그때다.

“응…!”

홍의는 코를 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꾹꾹 억누르던 비음이 자기도 모르게 퐁 튀어 나간 것이다. 스스로도 열없어 죽을 것 같았다. 이를 놓칠세라 태자가 웃는 듯 등 뒤에 붙은 단단한 가슴팍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뭐야, 방금 그 소리? 응? 태자가 간지럽게 놀려 댔다. 홍의는 아랫입술을 감쳐물고 고개를 홱홱 저었다. 그러는 새 차가운 엄지손가락이 팔오금에 닿아 살랑살랑 간질였다. 순간적으로 온몸의 피가 맹렬한 기세로 아랫도리에 확 몰리는데, 홍의는 혀를 깨물 뻔했다. 도대체 이 괴상한 상황은 뭐고 이 야릇한 감각은 또 뭐고 이 눈 돌아갈 만큼 능수능란한 애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저보다 한참 어리고 덜된 사내의 손가락 기술에 통감할 새도 없이, 그저 이 악물고 견디고 또 견디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약 기운과 더불어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욕망이 홍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잠식해 든 것 같았다.

그렇게 고통으로라도 정신을 챙겨 보고자 입술을 더 세게 잘근잘근 깨무는데, 어림도 없다는 듯 태자의 손가락은 더 깊숙이 치고 올라와 겨드랑이 근처의 여리고 말랑한 살갗까지 쑥 침투해 들었다.

…부드러워. 태자가 공기의 울림을 이용해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홍의의 귓속으로 뜨거운 입김이 훅 번졌다.

홍의의 눈꺼풀이 확 뜨였다.

“하악!”

홍의는 포효하듯 새된 신음을 확 내지르고는 그 자리에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

“…….”

앞섶이 매지근히 젖어 들었다. 홍의는 잔뜩 조리친 사람처럼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진 채 파정의 여파에 움찔거렸다.

“뭐야…?”

태자는 몹시 충격적이고 놀라워서 한 발 물러났다.

“벌써…?”

스스로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황망히 읊조리는 태자의 목소리에 온몸을 흠칫거리던 홍의가 기어이 입을 열어 맞받았다.

“야….”

“…야?”

“약 때문이옵니다….”

“…….”

태자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갸웃하며 유심히 홍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심란함과 황망함과 수심이 모두 깃든 옥안이 뱅글뱅글 허공을 휘도는 듯했다.

“…세상엔 참 별의별 인간이 다 있구나.”

‘그거 내가 할 말이오.’

이번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내 다음번엔 기필코, 처절한 으응지잉으을….

다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홍의는 그대로 픽 혼절하고 말았다.

***

“으음….”

홍의는 잠결에도 기분이 날아갈 듯하였다. 매끈매끈한 포단은 따뜻하게 데워져 온몸에 보들보들 휘감기었고, 등을 받친 보료도 어쩐지 배기는 곳 하나 없이 폭신폭신 온몸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포단 밖으로 삐져 나간 발이 조금 시린 것 같아 다시 안으로 쏙 집어넣고 나머지 발로 쓱쓱 비비는데, 어쩐지 이쪽 발보다 저쪽 발이 더 싸늘하고 퍽 무감했다. 자던 중에 저쪽 발에 쥐가 나서 감각이 둔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뭐 아무렴 어떠한가. 이 발도 내 발이고 저 발도 내 발인 것을. 홍의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 입맛을 짭짭 다신 뒤에 느긋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침상의 기둥에 매인 투명한 휘장 사이로 화사하고 맑은 아침 햇발이 반짝반짝 새 들어오고 있었다.

끄응. 기분 좋게 양팔을 뻗쳐 기지개라도 쫘악 피려는데, 어쩐지 상체가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왜일까. 왜인 것이지? 잠시 고개를 갸웃한 홍의는 곧 제 상체를 꽉 붙들고 있는 무언가를 손으로 툭툭 더듬다가, 이내 그것이 누군가의 단단한 팔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화들짝 기함하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

휘이이잇. 휘이이잇.

태자궁의 안뜰에 자라는 거대한 매화목에 둥지를 튼 휘파람새들이 댓바람부터 휘잇휘잇 지저귀고 있었다. 내실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쏘아 비추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머금은 채 태자는 곤히 잠들어 있다. 아직 보송보송한 솜털이 투명한 햇빛 아래 반짝였다. 홍의는 제 몸을 꼭 부둥켜안고 새근새근 고요한 숨소리를 내는 태자가 영 괴란쩍고 황당하기만 했다. 이 작자는 왜 틈만 나면 몸을 부대끼면서 착 달라붙고 난리란 말인가. 이어서 아찔한 두통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홍의는 잠시 이맛살을 찡그리고 한쪽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하다가, 별안간 간밤의 추태가 와르르 떠올라 우뚝 행동을 멈추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경악에 찬 홍의는 당장에 제 몸을 꽉 그러안은 태자를 밀어내려 몸을 뒤채었으나 어째 여의치가 않았다. 잠든 것이 맞는가 싶을 만큼 그악하게 힘 들어간 팔이 좀처럼 풀리지를 않는 것이다. 손날을 세워 톱질하듯 썰어도 보고 팍팍 때려도 보았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홍의의 눈에 요상한 것이 들어왔다. 잠결에 풀어 헤친 태자의 침의 자락 사이에 복근이 울근불근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격검도 싫어하고 말타기도 못 하는 비실비실 쭉정이는 어딜 가고?’

치런치런한 옷들에 가려져 있었던 태자의 몸은 백옥처럼 희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의외로 몹시도 탄탄하였던 것이다. 늘 산지를 돌아다니며 수련을 일삼는 향선들만큼이나 왕성한 운신의 흔적이 닥지닥지 배어 있는 몸이었다. 홍의는 기도 안 차서 헛웃음이 다 났다. 뭐 약골이 어쩌고 어째? 할 수만 있다면 목이라도 확 졸라 버리고 싶은데, 별안간 야릇한 호기심이 슬그머니 일었다.

홍의는 힐끔 태자의 얼굴을 살폈다. 나른하게 풀린 안면과 고요한 속눈썹을 보아하니 여전히 누가 메쳐 가도 모를 판이다.

‘…정말 양물에 하자가 있긴 한 걸까?’

이제 이 인간 말은 콩으로 메줄 쑨대도 못 믿겠다. 호기심이 답답함으로 이어지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홍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태자의 허릿단을 조이고 있는 끈을 풀어내어 느슨하게 만들었다. 대충 눈으로 보고 확인만 해 보는 것이다. 확인만.

손가락을 허릿단에 걸고 조심스레 잡아당기며 그 안쪽을 기웃거리자 과연 가로누운 비밀스러운 알짬이 얼핏 보이는 듯도 했다. 헌데 확실하게 보이질 않는 것이다. 에잉. 홍의는 인중까지 한껏 늘려 가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모가지를 자라처럼 쭉 뽑아냈다. 어어. 보인다. 보인다…!

“뭐 하는 거야?”

“…….”

탁. 손가락이 허릿단을 놓쳤다. 홍의는 그 자세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새 잠에서 깨난 태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홍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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