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폭신한 보료가 홍의의 무릎이 짚일 때마다 푹푹 패어 들었다. 무릎걸음으로 종종종 느릿느릿 태자의 지척에 바싹 붙어 앉았다. 태자는 여전히 팔을 괸 자세에서 눈만 굴려 그런 홍의를 넌지시 응시하였다.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백옥처럼 흰 피부의 매끈매끈한 결이 새삼 한눈에 명확히 들어왔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차마 태자 전하의 용안을 계속 감상하기 뭣하여 홍의는 날름 고개를 숙였다. 미끈한 비단 침의 자락에서 은은한 꽃향기와 상쾌한 새물내가 함께 풍겨 들었다. 옷섶 사이에 은밀히 드러난 단단한 가슴팍이 그의 숨결에 따라 차분히 오르락내리락하였다. 홍의는 잠시 잠깐 입술을 감쳐물고 망설였다가, 허릿단에 나비 모양으로 고이 묶인 매듭 쪽으로 떨리는 손을 천천히 뻗어 가기 시작했다.
방중이 하도 고요한 터라 성기게 묶인 끈을 풀어 내리는 소음조차 크게 울렸다. 검 쥐고 고삐 쥐느라 마디가 굵은 홍의의 손이 미세한 떨림을 머금은 채 허리끈을 스윽 끝까지 잡아 빼었다. 조여 누르고 있던 끈이 사라지자 허릿단은 금세 헐렁하게 늘어졌다. 그런데 막상 여기까지 진도를 나가고 보니 도저히 그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홍의가 힐끔 눈을 들어 태자를 보았다. 태자는 여전히 그 자세 그 표정 그대로였다.
땀이 난다. 많이 난다. 홍의는 콧잔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고 괜히 코끝을 찡긋거리며 한 번 훌쩍 들이켰다.
그리고 조심스레 허릿단을 집게 손으로 집고는 천천히 아래로 끌어 내리는데…!
“…아, 나 정말.”
홍의는 외마디 짜증을 부리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속곳을 입었으면 입었다고 말씀을 해 주셔야지요.”
태자는 그런가, 하는 얼굴로 무심히 고개를 주억였다.
제풀에 맥이 빠진 홍의가 속말로 불퉁거리다 이내 한층 성의 없는 투박스러운 손놀림으로 후딱후딱 끈을 풀기 시작하였다.
“예, 얼른 진행하겠습니다, 빨리 보고 끝내겠습니다.”
그렇게 거침없이 태자의 비단 속곳을 풀어 그 사이를 열어젖힌 홍의는 무심하게 스치듯 그곳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두 눈을 함지만 하게 뜨고는 입을 벌려 내리면서 쥐고 있던 속곳 끈을 톡, 침상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
“…바?”
“방망이가 왜 여기….”
“…….”
방망이 소리에 태자 또한 멈칫하였다. 곧 보위에 올라 만백성의 지아비가 될 태자의 성스럽고 위대하기 그지없는 옥경에 대고 저따위 망발을 하는 미친놈은 대명천지 홍의뿐이었다.
어쨌거나 홍의는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럽다 못해 곤욕스러웠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이십일 년 전 붕어하신 선황께서 물건이 하도 우람하고 튼실하시어 그에 맞는 깊고 너른 동굴을 찾느라 그리 진을 빼셨다고 했는데, 태자 또한 마땅히 그 피를 물려받은 바이므로 그 위용이 어디 보통 위용이겠는가 말이다. 아직 발기도 안 되어 옆으로 축 늘어진 모양인데도, 컸다. 태자의 물건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하였다.
‘대체 이 고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요 초대형 거근은 무엇이란 말인가.’
홍의가 치를 떠는 순간 문득 낮은 목소리가 머리맡을 울렸다.
“빨아 봐.”
태자는 나른한 눈빛으로 명령했다. 부드럽게 홍의의 턱을 손끝으로 쓸며 말이다. 못 들을 소리를 들은 귀가 절로 움찔하였다. 그러나 홍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그리고 애써 시선을 피하고는 냇가에 앉은 아낙네들 빨래 쥐어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예, 전하, 빨래를 빨아 드리겠습니다.”
성공적이었다. 홍의는 식은땀을 닦아 내면서 몹시 좋고 훌륭한 눙치기였다며 홀로 만족했다. 그러나 홍의의 턱을 잡고 붉은 입술을 손끝으로 지분대던 태자는 한쪽 눈을 지그시 좁히며 물었다.
“당과, 먹어 본 적 있어?”
“…당과요? 그야 귀한 것이니 연회 때나 가끔… 헌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당과 빨아 먹듯이 내 자지를 빨아 봐.”
“…….”
“응?”
그렇게 빠져나갈 틈도 없이 은밀하고도 조밀하게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홍의도 더는 눙칠 구석이 없음을 깨닫고는, 여태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태자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잡았다.
“싫다고.”
그리고 어깨를 확 뒤로 뺐다.
“했사옵니다.”
태자의 손이 힘없이 침상의 보료 위로 턱 떨어졌다.
“약조는 지켜 주십시오. 전하께오선 분명히 보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과를 빨긴 무얼 빱니까, 안 빨아요.”
고개까지 돌리고 손사래를 치는 홍의의 모습에 태자는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것 봐라.’
한참을 사납게 응시하던 태자는 이윽고 냉랭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그래? 그럼 그대가 원하는 수업을 하지.”
“…….”
“화경.”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건너다보는데 태자는 문간을 향하여 화경을 불렀다. 침전 앞에 대기 중이었던 화경은 부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하명하소서.”
“너는 당장 도경의 색주가로 가, 게서 가장 높은 화대를 받는 남창을 데려와라.”
“명 받잡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뢴 화경이 황급히 내실을 빠져나가고, 태자는 홍의가 끌러 낸 속곳 끈을 다시 여미면서 차갑게 중얼거렸다.
“침상에서 내려가.”
“…….”
“곧 휘장을 칠 거야. 넌 탁상으로 가서 앉아.”
“…….”
상황이 점점 더 괴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화경은 두 식경이라는 경이로운 시간 만에 도로 나타났다. 옆에는 어째 화경만큼이나 우람한 덩치에 붉은 장유 노란 치마 떨쳐입은 휘황한 사내를 데리고 말이다.
그는 도경의 가장 큰 기루에서 ‘녹빈’이라는 기명을 떨치고 있는 자로, 벽해의 남색가들 사이에서는 한번 양경을 물었다 하면 놔주지 않는 가공할 입심이라며 소문이 뜨르르한 사내였다.
화경은 도경에서부터 녹빈의 눈가에 검은 띠를 둘러서 앞을 볼 수 없도록 데려온 다음 태자의 침전 한가운데 세워 두었다. 이곳이 금성이라는 사실도, 태자 전하의 침전이라는 사실도 알 턱이 없는 녹빈은, 그래서 주눅이 들기는커녕 그 휘황하고 요란한 차림새만큼이나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었다.
“은자 한 근짜리 공자님은 어디 계십니까앙?”
“…….”
“…….”
확실히 괴이한 상황이었다. 녹빈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연이어 신이 나서 입을 가리고 껄껄껄 웃었다. 홍의는 탁상 앞에 앉아 거의 얼이 나갔고, 내실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녹빈을 응시하고 있던 태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옆에 선 화경에게 속닥속닥 귀엣말을 하였다.
‘저 사내가 정말 도경에서 가장 비싼 화대를 받느냐?’
‘그렇다 하옵니다.’
‘누가 그래?’
‘저 사내가요.’
‘…….’
태자는 아차 싶어 이마를 짚었다. 돌이켜 보니 화경은 늘 검법만 연마하고 태자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느라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두운 어리숙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태자가 사뭇 언짢아 보이자 화경은 슬슬 자신이 사람을 잘못 데려왔는가 싶어 긴장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녹빈은 연신 은자 한 근짜리 공자님을 입으로 주워섬기며 껄껄껄 껄껄껄 혼자 노니는 상황이었다. 태자는 잠시 관자놀이를 긁다가 화경을 툭툭 치며 나가라는 듯 턱짓을 해 보였다. 눈치 보던 화경은 내실 밖으로 냅다 튀었다.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여태 황망하고 열없어 입을 다물고 있던 홍의가 하도 기가 막혀서 태자를 향해 질문한 것도 그때다. 방중에서 사내 목소리가 들리자 거기에 반응한 녹빈의 얼굴이 홍의가 있는 탁상 쪽으로 빼각, 돌아갔다. 홍의와 태자가 동시에 흠칫하였다.
“오호라, 거기 계셨군요!”
육성으로 쩌렁쩌렁 외치고는 우람한 팔뚝을 드넓게 벌리고 치맛자락을 사뿐 들어 올린 채 쿵쾅쿵쾅 홍의에게 달려오는 녹빈의 소맷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해사하게 펄럭거렸다. 기겁을 한 홍의가 벌떡 일어나서 탁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렇게 골반을 탁상에 정통으로 부딪고 나서야 멈춰선 녹빈은 다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나섰다.
“…이쪽이다.”
태자가 휘장을 걷으며 애써 담담하게 읊조렸다. 두둑. 이번에도 역시 사내 음성에 반응하여 목뼈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침상 쪽으로 돌린 녹빈은 예의 쿵쾅거리며 침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디 계십니까? 어디요? 소도 때려잡을 실팍한 손을 휙휙 휘젓는데 태자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피하였다.
‘저저, 저런 고이얀!’
행여 저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귀한 용안 맞으실까, 지켜보는 홍의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암만 밉고 얄궂은 인사라도 이 나라 국본인 황태자였다. 그러던 와중에 녹빈은 연신 손에 잡히지 않는 공자님만 오매불망 그리다가 이내 샐쭉 입술을 비틀었다.
“에잇, 이놈의 가리개 답답해서 원.”
“…!”
말릴 틈도 없었다. 화끈하게 제 눈을 가린 가리개를 벗어 던진 녹빈은 허옇게 분칠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침 침상 앞에 굳어서 오도카니 서 있던 태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
“……. 꿈에 그리던 꽃 공자…?”
탁상 아래 몸을 오그린 홍의는 손가락들을 입에 물고 느헉, 하였다. 매사 무심하던 태자조차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그 연한 물빛 눈동자를 연신 깜빡깜빡하였다.
녹빈은 생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천하절색의 미모에 저릿저릿한 감동에 젖어 입을 틀어막고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은자 한 근짜리 공자인데, 그러니까 돈도 많은데 저리 아름답기까지? 그야말로 벽해 최강 호구 물주의 등장인 것이었다.
녹빈은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깊이 깨달았다. 파리가 앉았다 미끄러질 만큼 매끈하고 뽀얀 피부, 신비스러운 푸른 눈동자와 작약 꽃잎 얹어 놓은 듯 붉고 윤기 나는 입술, 맵시 있게 뻗어 올라간 오뚝한 콧대와 맑고 화안한 눈매, 또 조막만 한 얼굴을 받치고 있는 기다란 목선은 어찌나 유려한지, 그 목선과 이어지는 너른 어깨선은 또 어찌나 탄탄하고 쭉쭉 뻗었는지, 그 미모에 감탄하고 또 감복하느라 태자의 상투관에 꽂힌 길고 화려한 용잠이나 황족이나 찰 수 있는 금이환 금지환은 확인할 새도 없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이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면 또다시 지긋지긋한 색주가로 돌아가 입에서 역겨운 문뱃내나 풍기는 늙다리들의 쪼글쪼글한 양물을 상대할 터였다.
“으흐흐….”
녹빈의 입에서 낮고 음침한 웃음소리가 나직이 새어 나왔다. 커다란 손을 맞잡고 쓱쓱 비벼 대는 그의 눈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 번뜩이고 있었다.
“공자님?”
“…….”
“고만 쑥스러움 타시고 빈이와 함께 월세계로 가시어요.”
태자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녹빈은 그런 태자에게 짐승처럼 날래게 달려들어 털썩, 침상에 밀어 눕혔다.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며 침상에 꼴아 박힌 태자가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녹빈의 손이 침의를 잡고 양옆으로 확 찢어발기었다.
“네 이노옴!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홍의가 쿵, 정수리로 탁상을 밀어 올리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