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46화 (46/111)

#46

병사들은 조그만 마당에 들어와 조심스럽게 지게를 내렸다. 볏짚으로 지붕을 삼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울타리를 세운 막집 너머로 갓 심은 푸성귀가 돋고 있는 화전이 조그맣게 놓여 있었다. 희미한 잔월 아래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람이 살기는 하는 것인가. 이러한 잠행 길에 처음 오른 신입 병사 하나는 곧이라도 오줌을 지릴 기세로 어깨를 떨었다.

태자는 화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을 제치고 마당 한가운데 섰다. 덜커덩, 구멍 송송 뚫린 창호지 너머에서 별안간 인기척이 울렸다. 화경이 서둘러 눈짓했다. 병사들이 오라를 길게 늘린 채 헐레벌떡 집채를 에워쌌다. 이윽고 문짝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더니 시커먼 맨몸뚱이가 들짐승처럼 날래게 방중을 빠져나왔다.

“으어어! 으어어억!”

바람 한 자락 없는 날이라 태자의 면사도 잔잔했다. 불시에 튀어나와 병사들에게 제압당한 장본인은 아무래도 사람으로 쳐 주기에 그른 몰골을 하고 있었다. 농아는 아니었으나 말을 배운 적이 없어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기괴한 포효뿐이었다. 도깨비나 괴물, 혹은 그보다 더 추악한 어떤 존재.

태자는 삼 년 전보다 더욱 심한 추물이 된 그 앞에 잠시 망연해졌다. 온몸에 시커먼 더께가 가득하였고 추저분한 곱사등이에 썩어 가는 욕창에서 피와 고름이 뒤엉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악취에 숨 쉬기가 버거웠다. 궁인들이 말하는 태자가 실제로 현현한다면, 딱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봉두난발한 머리칼 사이로 분노와 살의에 찬 두 눈이 번뜩거렸다. 태자는 그의 눈동자가 내는 색을 묵묵히 바라본다. 푸른 하늘과 깊은 바다를 담은 빛깔, 시리도록 눈부신 벽안.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온 사지로 발악하는 그에게로 태자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스스로의 면사를 추어올렸다.

“모두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라!”

화경이 벽력처럼 소리쳤다.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남빛 비단 용포 두르고 새하얀 살빛을 띤 아름다운 태자와 검덕귀신과 다를 바 없는 흉측한 사내의 두 시선이 부딪쳤다. 꼭 같은 물빛이었다. 사내는 여전히 씨근거리며 송곳니를 아득바득 갈았다.

“…이 자를 깨끗이 씻기고 상처를 치료해 주어라. 서둘러라.”

“예, 전하!”

병사들이 일사분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집터를 둘러보던 태자는 문득 술병 하나를 들고 막집을 돌아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깔끔히 벌초된 나지막한 무덤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평안한가.”

태자는 나직이 인사하며 무덤을 향해 술병을 기울였다. 무덤주의 대답인 듯, 문뜩 아득한 바람이 불어와 가만가만 사위를 훑었다.

슬슬 동이 트고 있었다.

***

다음 날도 홍의의 일과는 전날과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처소에 틀어박혀 태자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낮전에 무동들의 기예 훈련을 살피는 새옹을 구경하고, 점심때가 지났을 무렵 원주 미함에게 불려가 집무실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다담상 위에는 찹쌀 반죽에 향긋한 사과 꽃을 얹어 붙인 윤기가 좌르르한 화전과 꿀 대신 사과로 청을 담가 콩가루에 찍어 낸 사과 다식도 곁들여 올라왔는데, 한동안 떡이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었던 홍의는 그에 손도 대지 않았다. 지켜보던 미함이 눈을 부릅뜨면서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편식을 하느냐면서 쉬어 빠진 잔소리를 했다. 홍의는 예예, 하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간밤에 내 아우 나함이 남산 누마루에 다녀온 것을 아느냐?”

“예. 초탁이 저에게도 와서 유오를 나서자는데 거절했었지요.”

“삼경 무렵엔가, 향선들이 그곳에서 희한한 것을 목격했다는구나.”

“…무엇을 말입니까?”

“도깨비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홍의의 표정이 영 시큰둥해졌다.

“삼사 년 전만 해도 태자가 새벽에 도깨비불을 따라 밤마을을 도는 것을 궁인들이 으레 목격하곤 했지.”

홍의는 순식간에 아연해서 되물었다.

“어찌 태자 전하일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그토록 크고 사나운 엽견들이 어디 벽해에 흔하더냐?”

“허면, 간밤에 전하께서 정녕 출타를 하셨단 말입니까?”

아닌 척 차를 마시면서 홍의의 심각한 표정과 반응을 곁눈으로 살피던 미함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근래 들어 태자에게 아무것도 보고 들은 것이 없느냐?”

“…없다고요.”

씨불알. 난데없이 부아가 치민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지르며 짜증을 부린 뒤, 제풀에 쫄딱보가 되어 흠칫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함은 복잡한 사색에 잠겨 있느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벽선각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홍의는 발에 채는 돌부리는 죄다 걷어차고 나섰다.

‘누구는 가래떡 붙들고 밤새 용천지랄을 했건만, 누구는 한갓지게 밤마을이나 돌았다고?’

인간이 인간이라면 인간적으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발정기의 수캐조차 암컷을 지키겠답시고 흘레붙은 뒤면 몇 날이고 며칠이고 눌러앉아 곁을 지킨다. 짐승조차 그러할진대, 팔난봉에 박쥐오입쟁이가 아니고서야 살뜰히 풋정을 나눈 상대를 이토록 매정하게 방치한단 말인가!

약이 바짝 오른 홍의는 또다시 씩씩대며 금성을 가로질렀다. 어느덧 안 그래도 뜨거운 허공에 오후의 열기가 이글이글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성큼성큼 궁장을 돌아 태자궁의 솟을대문 앞에 당도한 홍의는 머리를 조아리는 문지기에게 비장한 눈인사만 던진 채 대뜸 안뜰로 들어섰다. 처마 그늘의 차가운 섬돌에 가로누워 있던 돌치 깜치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 무척 시답잖은 것을 보았다는 듯 콧김이나 한 번 휭 뿜고는 무심하게 털썩 누워서는 화석처럼 움직임이 없다. 진정한 개무시였다. 홍의는 부들부들 떨며 눈썹을 다 옴찔거렸다. 본래도 금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 외따로 놓여 있어 조용한 편이었던 태자궁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고요하고 적막했다.

“향선께서 무슨 일로 저희 궁에 드셨습니까?”

태자궁에 들면 으레 마중을 나오던 옥지가 아니라, 영 처음 보는 시비가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홍의는 시큰둥하게 뒷짐을 졌다.

“벽선각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있어 전하께 알현을 청하려 한다.”

급조한 공갈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입이 가히 뻔뻔스러웠다.

“송구하지만 전하께오선 아직 오침 중에 계시어 알현이 어렵습니다.”

흡, 하고 숨을 들이켜며 확 부릅뜬 홍의의 두 눈에 역정이 닥지닥지 차올랐다. 야속하고 야속하였다.

“혹 전하의 옥체가 미령하신 게냐?”

“그것은 아니지만….”

“허면, 곧 옥좌에 오르실 전하께서 대낮부터 이토록 허송세월을 하신단 말이냐? 안 되겠다. 내 감히 스승의 명목으로서 제왕의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라, 목숨을 걸고 직주를 올려야겠다!”

곧이어 시비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 버린 이유는, 얼토당토않는 명분을 내세워 본전에 침투하겠다고 지껄인 홍의의 객기 때문이 아니었다. 새하얀 침의를 나래처럼 늘어뜨리고 검은 면사 드리운 궁의 주인이 맨발로 회랑 마루에 선 탓이었다. 인기척에 놀라 돌아본 홍의도 당황하여 입을 탁 다물었다.

“난데없이 웬 직주 타령이야?”

마루에 걸터앉은 태자의 음성에는 아직 봄볕처럼 나른한 잠기운이 묻어 있었다. 애꿎었다. 그러나 맘과는 달리 홍의의 귀가 붉어지고 가슴도 쿵쿵 뛰기 시작했다.

홍의가 별다른 말조차 없이 입술만 한 움큼 내밀고 계속 딴 곳을 노려보자, 태자는 눈치껏 시비를 물리고 면사를 벗었다.

이윽고 안뜰에는 검둥개 두 마리와 두 사람만이 남았다. 태자는 제가 앉은 옆자리를 툭툭 두들기며 이리 와서 앉아 보라고 했다.

“싫습니다.”

홍의는 고개를 팽 돌렸다. 태자는 입을 조금 벌리고 한동안 멍한 얼굴이었다.

“너 뭐 화난 거 있어?”

“한갓 향선 따위가 어찌 감히 황태자께 성을 낸단 말입니까? 지금 전하께오선 소신을 위아래도 모르고 하극상이나 벌이는 천하에 개잡놈으로 보시는 겁니까? 허, 소신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는 뱅충인 줄 아시나 봅니다, 이거 정말 어이가 마실을 나가겠어요.”

“…….”

한마디 선뜻 던졌을 뿐인데 왜 열 마디로 지랄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홍의의 미친놈 지수가 여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주변에 변변한 벗조차 없이 숫되고 얼뜬 태자로서야 난데없는 홍의의 찜부럭에는 당최 면역이 없어 그저 입 다물고 요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태자를 마주 보는 홍의의 심경도, 나름 복잡한 중이었다.

5년 전 금성의 해어화 중 ‘달래’라는 여인이 있었다.

‘사내들은 해어화의 몸을 취하고 나면 돌연히 냉정해집니다. 들입다 쇠뿔부터 들이대는 호색광이나, 밤하늘에 핀 별꽃이라도 따다 바칠 것처럼 극진하게 굴던 샌님이나, 볼일 끝나고 난 뒤에는 매한가지로 매정하게 등을 돌리지요. 우리를 뒷간이라고 여기는 걸까요. 장이 꼬여서 다급할 때는 뒷간 문이 마치 선계의 문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다 싸지르고 나면 그저 구저분하니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똥간에 지나지 않는 게지요.’

홍의가 처음 다향원에 든 것이 열일곱이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가 지금의 홍의와 꼭 같은 스물여섯이었나 보다. 적으면 열여섯, 많아 봐야 스물인 여타의 어리고 싱싱한 해어화들에게 노상 치이고 밀리던 달래는 당시 다향원에서 허위허위 늙어 가는 뒷방마누라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금성의 풍속과 잡사에 능통하고 어미처럼 포근한 면이 있어, 막 어머니를 여읜 홍의는 어쩔 도리 없이 그녀에게 맘이 끌렸다.

‘홍의 님은 그런 사내가 되지 말아요. 하룻밤 등하색이라는 것에 꼭 책임감을 지닐 의무는 없다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진정만큼은 믿어 의심치 말고, 해갈이 끝난 뒤에도 기껍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듬어 줘야 해요.’

그런데 황실 정모들의 철학이라는 것이 어느 만취한 해어화의 술주정만도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뒷간이야 뭐야?’

이가 절로 갈렸다. 대체 정모들에게 무얼 어찌 배웠기에 저리 안하무인에 후안무치에 뻔뻔하기가 철옹성이란 말인가. 지금 태자에게 중한 것은 방사의 기술 따위가 아니다. 몸 섞은 상대를 위한 올바른 배려와 사내의 도리부터 가르쳐야 했다.

“엊그제 화양각에서 말입니다.”

“응.”

“어찌 소신에게 일별조차 없이 떠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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