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61화 (61/111)

#61

“태자와는 편편한가?”

그로부터 이틀이 흘렀다. 꾸준한 숙면과 휴식으로 금세 팔팔한 정로를 되찾은 홍의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침의 차림으로 다향원 해우소에 들었다가 미함의 이복아우인 나함과 마주쳤다. 스물여섯 동갑내기 향선들이 나란히 서서 밤새 부푼 오줌보를 시원하게 비우는데, 문득 나함이 홍의의 아랫도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처음엔 금성의 허풍선들이 또 시답잖은 헛소리나 지껄이나 했더니, 내 형님에게 듣기로 참말 자네와 태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서?”

그나마 동료 중에 가장 친한 나함이지만 이는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 홍의는 반쯤은 의아하고 얼마간 기분이 상하여 무의식중에 걸걸하게 쏘아붙였다.

“남의 일에 왈가왈부할 시간에 자네 앞마당이나 잘 쓸게. 듣자 하니 얼마 전에 또 후실을 들였다면서? 이미 거느린 내자들이나 잘 고사할 것이지, 어찌 활활 타는 불나방처럼 여기저기 못 들이대 안달인가?”

그러자 숯처럼 짙은 눈썹을 휘며 피식 웃어 버리는 나함이었다.

“본디 천자와 제후는 수많은 여인에게 장가를 드는 법이지.”

“애석한 사실은, 자네는 천자나 제후가 아니라는 것이고.”

홍의가 끝까지 이죽거리자, 나함은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나는 그럴 깜냥이 못 된다고 치자. 한데 말이야. 약관의 태자께도 이미 네 분의 꽃 같은 처첩이 있다는 걸 잊은 것인가?”

“…….”

‘그러게. 잠시 잊고 있었어.’

홍의는 오줌발을 쪼르륵 쏘면서 잠깐 요연해졌다.

“태자께서 지금이야 물건이 신통치 않아 그렇지, 어쩌다 후사라도 보게 된다면 그때 가서도 자네 같은 사내를 찾으시겠는가? 새끼들 배냇짓 보는 재미에 자네 따위는 금세 뒷전이 되고 말걸세.”

물건이 신통치 않다는 말에 일차로 분노하고, 뒷전이 될 거라는 말에 이차로 탱천한 홍의는 하마터면 몸을 홱 돌려 나함에게 오줌을 쏠 뻔했다. 무어라 마구발방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잠시 나함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본 홍의의 입가에 명백한 비소가 걸렸다.

“고작 그 크기를 지니고서 태자 전하더러 신통찮다고 일침을 한 겐가? 겨우 그 크기로?”

“…뭐? 겨우 그 크기? 살다 살다 그런 소리는 처음이네. 자네가 무얼 잘 모르나 본데, 나는 금성에서 물건이 가장 크기로 유명하네.”

“하하. 나대지 말게. 자꾸 나대면 피곤해지네.”

“허, 나댄다니, 다리 사이에 쪼그라든 버섯 하나 달랑 붙인 자네 입으로 할 말은 아닌 듯한데? 어디 보자, 그토록 떠벌리던 태평양 고래 고환은 어딜 가고 구슬치기에나 써먹으면 딱 좋을 크기로구먼!”

“뭐, 버서엇? 구슬치기? 이래 봬도 평균은 거뜬히 넘는 크기라고! 그리고 그분 옆에 둔다면 나함 자네조차 바위 옆에 계란 두 개인걸? 본인이 벽해 제일의 대물이라도 되는 양 아까부터 심각하게 나대는데 말이야, 이참에 단단히 알아 두라고! 그분이 있는 한 자네는 죽었다 깨나도 한갓 둘째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뭬이야?!”

“뭬이가?!”

평소 다향원에서 느긋하고 무뚝뚝하기로 이름난 두 사내는 웬일인지 이마까지 붉히며 버럭버럭 목청을 뽑고 있었다. 여전히 오줌은 쏘면서 말이다.

“내 아끼는 벗이 염려되어 쓴소리 좀 한 것 가지고, 이리 죽자고 달려드니 참으로 서운하구먼.”

나함은 내심 끓는 속을 윽박으며 그제야 한 발 물러섰다. 홍의는 바지 앞섶을 여미면서 여전히 이죽거렸다.

“거야 자네가 제대로 된 사정도 모르면서 다 아는 양 잘난 척을 씨불거리니 그렇지. 뚫린 입이라고 그리 함부로 놀리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네.”

‘그리하여 나도 이렇게 찢어지지 않았는가.’

라는 뒷말은 차마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홍의였다.

“자네는 한비자의 여도지죄(餘桃之罪)의 고사를 들어보았는가?”

막 앞섶을 추스른 나함이 문득 뜬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홍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나함은 아예 홍의 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양팔을 허리춤에 얹고 별안간 진중한 목소리로 읊었다.

“위나라 영공 때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있었는데, 여인보다도 아름답고 낭창한 외모로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

홍의는 뱁새눈을 뜬 채 가만히 들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네. 해서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위왕의 말을 몰래 끌고 야음을 틈타 고향으로 달려갔다네. 허, 감히 임금의 소유물에 함부로 손을 댔으니 그 죄질이 어찌나 무엄한가? 이에 진노한 대소 신료가 들고 일어나 엄중한 형벌로서 기강을 다스리라 성토하였으나, 위왕은 ‘병든 어머니를 구완하고자 발목이 잘릴 수도 있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달려가다니, 이 어찌나 지극한 효행인가?’라며 오히려 미자하의 역성을 들었지.”

“…….”

“또 어느 날은 말이야. 미자하가 위왕을 모시고 유오를 나섰다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맛보았는데, 그 맛이 무척 달고 훌륭하여 그대로 임금께 내미는 불충을 저질렀네. 그 천인공노할 짓거리에 지켜보던 신료들이 목 잡고 넘어가는데, 위왕은 오히려 ‘짐을 위하여 이토록 달고 맛난 복숭아를 서슴없이 양보하다니, 미자하의 충심에 감탄할 따름이다!’라고 찬양을 그치지 않았다는군. 콩깍지가 쓰여도 단단히 쓰인 게지! 허나… 세월이 흘러서 미자하도 차츰 나이를 먹었지.”

담담히 읊조리던 나함의 음성이 별안간 숭고해지면서, 어딘지 슬픈 듯한 눈으로 홍의를 위아래로 살피기 시작하였다.

“세월은 흔적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 그토록 눈이 부셨던 미자하도 차츰 미색을 잃고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기 시작하였지. 그 흐너지는 미모만큼이나 빠르게 왕의 총애를 잃고 마는데….”

홍의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비로소 대망의 날, 평소처럼 비실거리던 미자하가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는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지. 헌데 지켜보던 위왕이 난데없이 벽력처럼 외치지 않겠는가?”

“무… 무어라고?”

나함이 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홍의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쳤다.

“‘저놈은 본시 아주 막되어 먹은 놈이다! 언젠가 짐의 말을 몰래 훔쳐 달아난 중죄를 저지른 데다, 저가 처먹다 남긴 복숭아 쪼가리를 감히 짐더러 먹으라고 준 적도 있느니라! 여봐라! 저 오만무례한 놈을 당장 끌어내어 모가지를 싹둑 잘라라!’”

거기까지 들은 홍의는 이미 사색이 되어 발발 떨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홍의와 태자는 미자하와 영공이 되어 한참 나이 든 모습으로 서로 대면하였는데,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리따운 옥안을 지닌 태자는 어느덧 황제의 위에 올라 그 기품이 대단하였다. 금빛 요대와 화려한 금관을 들쓴 태자는 지팡이 짚고 후들후들 다가오는 홍의를 보더니 싸늘히 중얼거렸다.

‘저놈은 홍의가 아닌가? 어찌 저 푹 삭은 홍어 같은 놈이 아직도 내 안전에 기웃거리는 거지?’

여전히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없는 홍의가 폐, 폐하…. 하며 떨리는 손끝을 내밀었다. 태자의 고운 눈살이 왁살스레 찡그려졌다.

‘저놈은 본디 아주 악질적인 놈이란 말이야. 감히 내 혀를 깨문 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일일이 토를 달아서 어찌나 사람을 열 받게 하던지. 내가 저놈 때문에 수명이 다 단축되고 말았어. 그뿐인 줄 아느냐? 감히 나의 성스런 옥경에 대고 방망이라고 망발을 하고, 면전에 대고 미친 자라고 욕까지 하였지.’

‘폐하! 그런 방자한 놈을 아직까지 살려 두셨단 말이옵니까?’

‘어맛, 역시 예나 지금이나 폐하의 도량은 참말 하해와도 같이 너르시옵니다!’

황제가 된 태자의 주변을 포근포근한 얼뚱아기를 품에 안은 태자비와 후궁들이 줄줄이 에워싼 채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리따운 그네 중 한 명을 끌어안은 태자는 이윽고 차가운 물빛을 쏘며 홍의를 향해 척 삿대질을 하였다.

‘저 늙어 빠진 홍삼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쳐라!’

‘예이, 폐하!’

‘헉… 폐하,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쇼! 소신 홍의입니다! 폐하를 위해 엉덩이를 불사른 그 홍의란 말입니다!’

늙은 홍의는 그렇게 병사들에게 포박당하여 질질질 끌려가면서도 연신 폐하를 부르짖었지만 결국은 형장의 이슬이 되어 아스라이 사라졌다고 한다.

“…….”

“…홍의? 이보게?”

그렇게 상상이라는 차꼬에 포박당하여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데, 문득 코앞의 나함이 손을 흔들어대며 정신을 반짝 일깨워 주었다.

‘…에이, 설마.’

우리 전하가 그럴 리가 없어. 애써 사색을 떨친 홍의는 곧 위풍당당 팔짱을 끼우고 나함에게 일갈하였다.

“우리 전하는 그럴 분이 아니야!”

그러자 시큰둥하게 볼을 긁으며 “아님 말고.” 하는 것이다. 아니 뭐 이런 놈이….

“허면, 괜히 나를 겁주려고 그런 이야길 꺼냈다는 것인가?”

화가 나서 묻자 나함은 끌끌 혀를 찼다.

“그렇다기보다는, 왕이란 본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법이라니까 내 자네가 몹시 걱정되지 않았겠어? 항간에서는 왕의 사랑더러 삼월에 쏟는 봄눈 같다고들 한다지? 어찌나 금세 녹아 버리기에 그런 말이 다 생겼겠는가?”

“…….”

생각해 보니, 그럼직도 하였다. 특히 미친 자는 이만 사라지겠다면서 휭하니 연에 올라타던 태자의 뒷모습이 떠올라,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하였다.

‘잘 지내.’

태자의 마지막 발언이 망령의 속삭임처럼 귓전을 맴돌기 시작하였다.

“보아하니 자네는 색신의 길을 걷기로 맘을 굳힌 듯한데, 과연 태자 전하도 자네처럼 일편단심 순애보이실까? 글쎄, 나는 잘!”

그렇게 망상증에 사로잡혀 망부석이 된 홍의를 두고 미련 없이 뒷간을 나서며 낄낄대는 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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