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69화 (69/111)

#69

침의에 면사만 두른 채였던 그는 내실 문이 닫히자 가볍게 면사를 벗어 옥지에게 건넸다. 새하얀 볼이 물속에 오래 잠겼다 나왔는지 복숭아처럼 옅은 분홍빛으로 달아 있었다. 홍의가 포단과 함께 일어나려는데 그냥 앉아 있으라며 신경을 써 줬다. 감사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태자는 저번처럼 목통을 침전으로 옮겨 와, 홍의 씻는 모습을 내내 구경하였다.

막상 홍의를 꾸어다가 태자궁에 앉혀 두니 태자는 기분이 훨씬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홍의는 연이은 방사에 살이 쑥 내린 것도 모자라 수족이 떨리고 배앓이까지 얻어, 좌우지간 기분이 몹시 더러운 상태였다. 목간을 마치고 피로한 마당에 태의가 들이닥친 것도 짜증스러웠다. 고약을 바르고 뜸을 놓고 침을 놓고 탕약을 달이고, 거의 두 시진 가까이 시달리려니 나아가던 몸도 다시 곯을 판국이었다.

“뭐가 더 남았소?”

쓰디쓴 탕약을 마시고 엿으로 막 입씻이를 한 참인데, 태의가 용도를 알 수 없는 옥 막대기를 내밀어 오자 홍의는 인상까지 팍 찡그리며 물었다.

“그것은 또 무엇이오?”

태의는 대답 대신 헛기침을 했다. 마침 침상 곁에 면사를 쓴 채 음산하게 서 있던 태자가 빼앗듯 막대기를 받아 들어 이리저리 휘둘러 살폈다. 흠결이나 모난 곳 하나 없이 아주 매끈하게 깎아낸 옥 막대기였는데, 길이는 다섯 치쯤 되고 두께는 손가락만 했다. 막대기 속은 대롱처럼 길게 구멍이 난 모양새였다.

“홍의 님께서 배앓이를 하시는 이유는 용정의 거센 기운이 상대적으로 연약한 장 속을 상하게 하여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것을 이용하여 용정을 깨끗이 배출하심이 복통을 없애는 데 가장 신속하고 좋은 방도입니다.”

늙은 태의는 방언이라도 터진 듯 주절주절 읊었다.

“방사 직후에 이것을 항문 속 깊숙이 질러 넣고 일각만 기다리시면 알아서 용정이 이 관을 타고 흘러내려 바깥으로 배출되는 형태로, 이는 태의인 제가 직접 고심 끝에 착안해 낸 희대의 발명품으로서….”

“그만, 되었소.”

홍의가 황급히 태의의 말을 끊으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다 알아들었소.”

“아니, 기왕 만들어 온 것인데 전하께오서 이름이라도 하나 하사하여 주심이….”

“되었다지 않느냐.”

믿었던 태자마저 정색하자, 태의는 몹시 서운하고 구슬픈 얼굴로 통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내실을 나섰다. 사실 태자는 이름을 내려도 딱히 상관은 없었는데, 자신의 씨물 때문에 홍의가 아프다니까 조금쯤 민망했던 것 같다.

태의가 나가자 홍의가 도끼눈을 뜨고 태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버리십시오.”

“…왜?”

“왜긴 왭니까! 애초에 전하께서 밖에다 파정하시면 형통할 문제잖습니까!”

이렇게 저에게 화살이 돌아올 줄 미리 알았던 것이다. 태자는 잔뜩 성이 나 씨근거리는 홍의를 달래려 알겠다고, 반드시 버리겠다고 말로서 안심시켜 놓고, 뒤로는 몰래 옥지 손에 들려 보냈다. 옥지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통관을 소맷부리에 쑤셔 넣었다.

옥지마저 사라지자 침전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홍의는 포단 밖으로 얼굴만 내민 채 약간 긴장된 얼굴로 높고 화려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향원의 개인 처소에서는 아무리 새벽녘이 되어도 옆 처소 초탁의 투전하는 소리와 나함의 방외색 즐기는 소리에 한 시라도 조용할 날 없었거늘, 태자궁은 거슬리는 잡음 하나 없었다. 사방으로 둘러친 높은 담 탓도 있을 것이다.

태자는 침상을 등진 채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양으로 각진 어깨가 뽀얀 과육처럼 드러났다. 홍의는 아닌 척하면서 계속 태자의 몸이 나신이 되어 가는 과정을 흘깃흘깃 훔쳐보았다. 풀 먹인 백색 피륙처럼 팽팽한 살결, 각에 맞춰 뭉쳐 놓은 듯한 어깻죽지, 잘록하게 우그러들었다가 올라갈수록 점점 너르게 퍼지는 상반신의 우아하고 섬세한 선, 숨을 고를 때마다 선명하게 돋을새김되는 우둘투둘한 복근과 도톰하고 단단한 가슴팍에 곤두선 산호색 젖꼭지, 힘이 넘치는 대퇴부와 맨들맨들한 장딴지, 탄력 있게 올라붙은 엉덩이, 그 모두를 감싼 보송보송한 솜털 한 올 한 올까지.

침 흐를 뻔했다. 괜한 헛기침을 하다가 포단을 슬며시 들추어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요새 살도 빠지고 다시 체련에 힘쓴 덕에 아랫배에 새겨진 떡심이 훨씬 선명해진 것 같다. 나쁘지는 않은데…. 은연중에 태자의 몸과 자신의 몸을 번갈아 살피면서 비교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붙어 있고 싶고 접문하고 싶을 때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

어느덧 알몸이 된 태자는 침상으로 오려다 말고 시비들이 새로 꽂아 둔 꽃을 발견하여 마침 그 앞에 멈춰 선 상태였다. 홍의는 그 모습을 슬쩍 내다보았다. 향기를 한 번 맡아 보고 잔뜩 흥미로운 얼굴로 꽃잎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 꼴을 보려니 괜히 오기가 났다. 포단을 살살 내려 아랫배를 은근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 자존심이 상한 홍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불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허리야. 앞으로 이족 보행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태자는 사람의 온기에 데여 물기를 잃고 말라 가는 꽃잎 한 장을 떼어서 손끝에 옮겨 와, 유심히 지켜보며 대꾸했다.

“고환 보행 해.”

“…….”

“너 달인이라며.”

“…남의 엉덩이 다 살라 놓고 농이 나오십니까?”

“나도 자지 아픈데 티 안 내잖아.”

“고통에 경중이 있겠냐마는 그 아픔과 이 아픔이 같겠습니까? 예?”

진정 울컥한 홍의가 팩 쏘아붙이고 확 등 돌려 누웠다. 이불도 목까지 끌어 덮었다. 태자는 여전히 꽃잎을 보는 채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다른데?”

홍의는 대답 없이 이불을 머리까지 당겼다.

태자는 꽃잎을 손끝으로 다져 버리고 침상에 다가갔다. 익숙하게 포단을 젖혀 옆자리에 끼어듦과 동시에 입술로 목덜미를 비볐다. 홍의가 목을 오그리며 짐짓 밀어내었다.

“아팠어?”

“하지 마십시오.”

“많이 아팠어?”

차가운 손가락이 허리 아래로 기어 엉덩이 골을 파고들었다. 도톰하게 부푼 촉촉한 꽃봉오리를 꼭 누르는 손끝에 놀라 헉, 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많이 부었네. 뜨겁고.”

“하아….”

“나도 부었어. 뜨겁고.”

태자는 홍의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성기를 쥐게 하였다. 그러면서 귀밑의 옴쏙 팬 부분에 쪽쪽 입을 맞췄다. 홍의는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다 이내 몸을 돌려 태자와 눈을 맞췄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자신의 코끝으로 태자의 코끝을 툭 쳤다.

“젊은 피가 무섭긴 하네요.”

본인은 뭐 얼마나 늙었다고. 태자는 대답 없이 입꼬리를 말았다.

“…손가락.”

“…….”

“빼십시오.”

“흐음. 왜?”

“참말 소신이 개짐 차고 기어 다니는 꼴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네가 자꾸 벌어지니까 그렇지.”

“그렇게… 자꾸 누르시니까… 벌어지는… 응. 읍.”

질끈. 자꾸 대드는 아랫입술을 얄궂게 깨물어서 조용하게 만들고, 태자는 미끈하고 유연하게 몸을 얽었다. 파고드는 것도 휘감는 것도 신물이 날 만큼 잘하는 사내였다. 그 유려하고도 단단한 팔뚝에게 속수무책으로 사지를 결박당한 홍의가 몽롱한 눈을 떠 자신에게 입 맞추는 태자를 몰래 훔쳐보았다. 혀를 깊이 밀어 넣으면서, 감각에 잔뜩 취한 듯 오른쪽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가 풀어 내는 것이 엿보였다. 가닥가닥 공들여 심어 놓은 듯 촘촘하고 긴 속눈썹이 움찔움찔 떨리는 듯하더니, 이내 확, 눈꺼풀이 뜨인다. 당황한 홍의가 태자의 혀를 문 채 두 눈만 끔적였다. 푸른 눈동자로 묘한 웃음이 차올랐다.

“핥아주면 금방 나아.”

“…….”

“엉덩이 들어.”

태자는 사전 예고라도 하듯, 홍의의 입술을 쪽 빨았다. 떨어질 때 그 아슬아슬한 입술의 압력에 등허리가 다 떨렸다. 불혀가 지난 듯 온 얼굴이 뜨끈뜨끈 달아올랐다.

***

감긴 눈이 부셨다. 홍의는 작게 열린 지게문 틈새로 살며시 불어 들어오는 진한 꽃향기와 투명한 휘장에 부서지던 아침 햇빛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충족되지 않은 수면욕으로 온몸이 노곤했다. 등허리에 꼭 붙은 단단한 가슴팍의 따스한 온기가 휘파람새의 지저귐과 더불어 새근덕새근덕 숨소리를 내며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와 소리였다. 이토록 완벽한 아침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간밤의 노련했던 태자의 혀끝 장난이 떠올랐다. 금침이 흠뻑 젖도록 배꼽을 마주 비비며 놀다가 단 즙이 주르륵 흐르는 백도를 입에서 입으로 건네준 뒤 뒤이어 뜨겁게 휘몰아 들던 얄캉한 혀의 감촉도 떠올랐다. 등줄기부터 꼬리뼈까지 아르르한 전율이 달렸다. 아, 처음 파정에 성공하고 지금까지 총 몇 번을 했더라. 홀로 손구구를 해 보던 홍의는 곧 부질없다며 치웠다.

홍의는 슬금슬금 몸을 돌려 태자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곤히 잠든 고운 얼굴을 보려니 입가가 절로 나른하게 풀렸다. 동침을 해 보니 상대의 몰랐던 면면까지 새로이 보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왕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태자는 문리에도 밝고 학술적 지식도 풍부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거문고 다루는 솜씨가 기가 막혀서 악사 향선이라는 직책을 지닌 정통의 희보보다도 뛰어났다.

너른 침상에 편안히 엎드려서 사랑하는 이가 골라 주는 선율을 듣는 것은 기껍고도 설레는 일이었다. 홍의는 고풍스러운 거문고과 깎은 듯이 어우러지던 옥골의 자태를 감상하는 일이 몹시 좋았다. 밤중이면 종종 조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 정도였다. 은은한 주홍색 등불 아래 완벽한 도자기 같던 팔, 술대를 쥔 커다란 손의 불거진 핏줄, 괘를 지분댈 때 모로 내린 얼굴의 곧은 콧날과 턱선, 나붓나붓한 속눈썹, 그 아래서 이따금 이쪽을 응시하던 푸른 눈동자를 되새기려니 심장이 도근거리고 호흡이 뜨거웠다.

홍의는 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태자의 잘생긴 귀를 만지작거렸다. 앵순에 입을 맞추고 콧잔등, 눈꺼풀에도 내 것이라고 침을 발라 두었다. 잠결에 얼굴을 찡그리던 태자가 어느덧 졸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태자가 깨어나서 기분이 날듯이 좋아진 홍의가 눈초리를 한껏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전하 기침하셨습니까?”

“…….”

태자는 대답 대신 여전히 잠기운에 취한 채 꾸물꾸물 홍의를 타고 올랐다. 홍의는 저항 없이 그를 수용하면서 종아리로 허리를 엇갈려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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