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목간을 마치고, 홍의는 본격적으로 사내의 피부를 시료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병구완을 한답시고 의학 서적을 달고 살았던 그는 웬만한 병구와 의술에 관해서는 자못 저명한 의원 못잖게 미립난 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내는 엄청 위중한 편은 아니었다. 습한 산속이기도 하고, 갖은 벌레에 허구한 날 깨물리면서도 대수롭잖게 방치해 둔 바람에 상처가 곪아 농이 생긴 것 빼고는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명주 수건을 펄펄 끓는 물에 삶아 깨끗하게 소독한 뒤, 그것으로 곯아 무른 상처들을 불렸다. 불에 달군 바늘로 부풀어 오른 종기들을 모두 째어 고름을 마지막 핏방울까지 깔끔하게 짜내고, 상처를 일각쯤 식혔다. 그리고 마지막엔 약초를 빻아 상처에 덧댄 뒤 깨끗한 붕대로 싸맸다. 또한 종기 예방에 좋은 약재를 달이고, 먼 나라 토산품으로 황궁에 들여온 열매즙을 내어 두고두고 마실 수 있게끔 신신당부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가 다 되어 있었다.
“마마, 신이 마마를 뵐 줄 몰라 이래저래 빠트린 게 많습니다. 제가 다음번에는 꼭 질 좋은 참빗이랑 잿물이랑 챙겨와 머리를 빗겨 드리겠습니다.”
홍의는 없는 형편이나마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사내의 머릿결을 빗어 내려 주며 다정하게 일렀다. 깨끗이 씻기고 입히고 빗겨 놓자 사내는 몰라보게 헌칠해져 있었다.
홍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사내의 양 뺨을 잡고 흔들었다.
“이리 단장하시니 마마 대신 옥골 선인이 떡하니 내려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상처 치료할 때도 아파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시는 모습이 장군의 기개가 따로 없으시고 말예요.”
사내는 홍의의 말이 어려워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낯선 향선이 자신에게 잘했다고, 장하다고 칭찬한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홍의의 입술이 움직거리는 모양을 뚫어져라 살핀 사내는 천천히 그 뜻을 헤아려 내었고, 덩달아 꺽꺽 웃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내는 홍의가 아주 마음에 든 듯했다. 일전에 거칠고 투박한 병사들 손에 몸을 맡겼을 때 심하게 반항하던 것과는 달리, 쓰디쓴 탕약도 홍의가 내어주면 한 번에 잘도 받아 마셨고, 상처를 째고 고름을 짤 때도 달아나려 하지 않고 꼿꼿이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버텨 내었다.
피부에 병이 났을 때 기름진 육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홍의는 사내를 위해 병사들에게 민물고기를 잡아 오라 명하고, 직접 손질까지 했다. 내장을 바르고 칼집을 낸 생선에 굵은 소금과 장을 바르고, 솥뚜껑을 뒤집어 비린내를 제거할 미나리 쑥갓 고사리 무, 다진 파와 마늘 등과 함께 넣고 자작자작 매콤하게 지졌다. 냄새를 맡은 새끼 삵들이 가시 같은 발톱을 콕콕 박으며 바짓가랑이를 등반하였다. 동물들을 훠이훠이 몰아낸 홍의는 가장 크고 좋은 살점을 발라 사내에게 내밀었다.
“마마, 한번 드셔 보십….”
쪼그려 앉은 홍의의 머리맡으로 기다란 인영이 드리웠다. 맞은편에 마찬가지로 쭈그려 앉아 있던 사내도 엄벙한 눈을 위로 들었다. 이제나저제나 언제든 꽃다운 작태를 고수하는 벽해의 황태자께서 팔짱을 낀 채 비딱하게 서 계셨다.
태자는 발끝으로 사내의 엉덩이를 툭 쳤다.
“비켜.”
사내가 흠칫거리며 옆으로 오리걸음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냇가에서 혼자 슬렁슬렁 사라지신 뒤 몇 시진 만에 처음 뵙는 거였다. 홍의가 황황히 입을 벌리고 지켜보는 가운데, 그새 사내의 자리를 차지한 태자는 허공에 굳어 있던 홍의의 젓가락 쥔 손목을 잡아서 제 입가로 가져갔다. 면사를 거두어 입술만 드러내고는, 젓가락 끝에 걸린 살점을 쏙 뽑아 먹는다.
“…….”
그리고는 다시 감쪽같이 사라지셨다.
슬슬 해가 중천을 벗어나 오후가 저물 무렵이었다. 홍의는 해 지기 전 후딱 약초를 캔답시고 병사들 몇몇과 대바구니를 들고 막집을 벗어나 깊은 골짝으로 들어갔다. 워낙 후미진 첩첩산중인지라 심마니도 오가지 않는 이곳엔 귀한 약초들이 지천에 자라고 있었다.
“홍의님, 이쪽에 질 좋은 길경이 잔뜩 있습니다.”
“그래? 그것은 맛도 좋고 잔병 예방하는 데도 탁월하니 보이는 대로 거두도록 해라.”
마침 산 마를 발견한 홍의는 호미 끝으로 살살 거두고 있었다. 요 커다란 마는 잘 벗기고 삶아서 아침 대용으로 죽을 쑤어 드시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실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있는데, 갑자기 답삭 엉덩이를 움켜쥐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
호미 든 손이 절로 쑤욱 나아갔다. 무의식중에 마구 손을 휘저으며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놀라 상체를 한껏 뒤로 물린 태자가 서 있었다.
하마터면 눈 뜨고 코 베일 뻔한 것이다. 면사는 이미 살짝 베여 그 안에 든 푸른 눈과 오뚝한 코가 사선으로 드러날락 말락 하였다.
홍의는 기함한 얼굴로 제 손에 들린 호미와 태자를 번갈아 살피다가, 이내 고래고래 악을 지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날짐승들이 푸다닥 솟구쳐 올랐다.
“전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악! 코! 하마터면 전하 코를…! 소신이! 휙! 호미로! 막!”
“…알겠어. 진정해.”
병사들의 시선이 쏠렸다. 태자가 한 걸음 물러나며 침착하게 양손을 들어 올렸다.
홍의는 그러고도 한참을 꾸지람했다. 태자는 이제 익숙해진 상대의 용천지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묵묵히 나무껍질을 뜯고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일각쯤 지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홍의는 어설픈 군기침 끝에 엉덩이 자락을 털고, 괜스레 가슴 깃도 한 차례 여미었다. 그리고 힐끔힐끔 태자를 흘긋대며 부은 입으로 불퉁대었다.
“예까지 어찌 올라오셨어요. 아래서 기다리시지 않고.”
태자는 바구니 안을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약재는 금성에서 다 챙겨 왔잖아.”
“황자 마마를 위해서지요. 아무래도 궁에서 가져온 말린 약재보다는 이렇게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홀로 자생한 약초들이 싱싱하고 미덥지 않겠습니까?”
“…흐음.”
사선으로 베인 면사 안쪽으로 얼핏 묘하게 싸한 눈빛이 흘렀으나, 아까부터 머릿속이 약초로 가득 찬 홍의는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호미질에 집중하였다. 본디 약초나 산나물에 한번 눈이 홀리면 손이 쉴 새가 없는 법이었다.
“다 좋은데 삼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 천종산삼(天種山蔘) 한 뿌리면 만병을 통치하고도 남을 터인데.”
“…….”
“지난번 탕약 젓수실 때 보아하니, 전하께오선 종종 그 귀한 산삼도 달여 젓수는 것 같던데…. 흠, 저 같으면 그것 한 뿌리만 가져다 형님 마마 드렸을 텐데… 아니 뭐 그렇다고 전하께오서 쩨쩨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고요….”
태자는 대답 대신 무릎을 굽혀 주저앉았다. 어디 더 해 보라는 심산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홍의는 여전히 태자를 등지고 앉아 약초를 캐면서, 끝 간 줄 모르고 입을 털었다.
“참, 목욕재계하고 입성 차리고 뵈니 황자 마마 미모도 보통이 아니시던걸요? 등 곱으신 것과 말씀 못 하시는 것만 빼면 전하와 쏙 빼쏜 것이 역시 쌍둥이는 쌍둥이라 놀랍더군요. 그 눈동자 색도 한데 놓고 찍은 듯 꼭 같은 물빛인 것이… 제가 옥지에게 전해 듣기로 마마께서 전하보다 일각 먼저 나셨다고요?”
태자는 그저 물끄러미 보았다. 그 올곧고도 집요한 시선이 마침 앞에 자란 나물을 캐느라 쪼그린 채로 한 발 한 발 걷는 홍의의 투실한 엉덩이에 지긋이 꽂혔다.
“헌데, 아무리 화가 나셔도 그렇지 앞에서 대놓고 그리 쏘아붙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말도 못 하시는 처지에 그저 꺽꺽 울기만 하시는데 옆에 있다가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전하는 안 그러시다가도 가끔씩 어찌 그리 몰인정하세요.”
“…….”
“삵 때문에 화가 나신 건 알겠습니다, 알겠는데, 훗날 한 나라를 다스리실 황태자의 도량으로 치자면 그 처세가 너무 좁고 옹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아차, 마음의 소리가 또 입 밖으로.”
“홍의야.”
“예, 전하.”
“나 섰어.”
“…….”
말을 끊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홍의는, 처음에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소리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태자가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정말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이어 포를 헤치고 복근을 드러낸 품새라든지, 또 아랫도리를 찢을 듯 뫼를 치고 있는 가반을 보고는 정확히 그 뜻을 파악하고 귀뿌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응?”
“…예?”
“섰어.”
“네…?”
“발기했다고.”
“…….”
발기했으니 이제 어찌할 테냐고 묻고 있는 것인가. 본인의 물건이 발기한 것은 본인이 알아서 추스르는 게 답 아닌가. 기연가. 미연가. 헛기침을 쿨럭이는 홍의는 정신이 다 산란했다.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니 다행히 병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여, 여기선 안 됩니다. 병사들이 볼지도 모르고.”
“그래?”
순식간이었다. 불쑥 다가온 태자가 홍의를 일으켜 나무에 등을 치대게 하고는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럼 내가 해 주지.”
“전하!”
가반 끈이 슥슥 풀리는 느낌에 놀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태자가 손끝으로 홍의의 시르죽은 성기를 느슨하게 붙들고 있었다.
“헉.”
다음 순간, 태자의 부드러운 입술과 뜨거운 입김이 성기에 내렸다. 홍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전하…! 아, 안됩니다! 그런 짓은 하지 마십시오…!”
“왜?”
태자는 혀를 내어서 단단해진 기둥 밑을 핥으며 심상하게 되물었다. 홍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마구 도리질을 쳤다.
“어, 어찌 황족의 구중에 이런 하찮은 것을… 전하!”
“응.”
“더럽습니다…!”
“안 더러워.”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성기의 아래쪽을 엄지로 쓰다듬다가 살며시 귀두를 물었다. 홍의는 그 감각도 감각이었으나 부드러운 면사 끝이 성기를 간질이는 느낌이 들어 배로 소름이 돋았다. 따스하고 조붓한 점막으로 뿌리까지 빨려 들다가, 가볍게 쪽쪽 기둥으로 닿는 입맞춤의 느낌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몽롱한 시야에 숲이 들었다.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리도 방종하고 망극한 짓거리를 태자께 지웠다는 생각에 몸을 빼 보려고 했으나 허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나뭇가지 틈을 뚫고 내리는 하오의 햇살이 눈부셨다. 새소리, 바람 소리, 잎사귀가 서걱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젖은 입으로 단단한 물건을 빠는 야릇한 소리가 쪽쪽 울려 퍼졌다. 그 짧은 찰나에도 오만가지 사색이 스쳤다. 그냥 무작정 입에 넣고 잘 빨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렇게 이쪽저쪽 옮겨 가며, 여러 각도로 핥기도 하고, 살며시 깨물기도 하고, 또 미끈하게 타고 올라와 귀두를 입에 머금고 질척하게 쪽쪽 빨아 주기도 하고…… 말로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능숙하고 색스럽고 다양한 입 기술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그 부끄러운 깨달음과, 망극함과, 수치심과, 송구함과, 또 참을 수 없는 쾌감과 흥분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는 것이다. 새삼 날 때부터 타고났다는 태자의 기교가 어느 정도인지 깊이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애무의 방식은 절대로 배워서 익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전하, 나올 것 같습니다, 흐, 하지 마세요, 전하…!”
홍의는 허리를 뒤채다가 태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말려 올라간 면사 아래 붉은 입술 사이로 자신의 성기가 빨려 드는 장면이 얼핏 보였다.
‘미쳤어.’
숨소리가 가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홍의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한 번 휘 둘러본 후, 떨리는 손으로 면사 끝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추어올렸다. 꼿꼿이 일어선 자신의 성기를 뿌리까지 야무지게 빨아 삼키는 붉은 입술을 보려니 일순 현기증이 일어 시야가 꿀렁거렸다. 이윽고 태자가 입에 물었던 성기를 내어놓으며 고개를 젖혔다. 숲보다도 푸르고 애초롬한 두 눈이 뚫어져라 홍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홍의를 올려다보는 채로 붉게 달뜬 귀두에 한차례 가벼운 입맞춤을 내렸다.
그 순간, 홍의는 외마디 짧은 신음을 내지르며 태자의 어깨를 사정없이 쥐어 잡았다.
“하윽, 전하!”
태자는 자신의 어깨를 억세게 비틀어 쥔 홍의의 주먹을 힐끗 보았다. 다음 순간 배릿한 풋내가 훅 끼쳐 드는가 싶더니, 미끈미끈한 씨물이 태자의 얼굴로 투둑 툭 쏘였다.
“하아. 하아….”
홍의는 사정의 여파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요연히 태자를 내려다보았다. 태자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곡정을 닦을 생각도 않고 홍의의 성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귀두에 맺혀 방울진 정액을 혀끝으로 거둬들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홍의가 주르륵,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눈높이가 같아지고 향기로운 숨결이 코끝에 닿았다. 홍의는 떨리는 소매를 들어 태자의 얼굴을 닦았다.
“…가자.”
태자가 홍의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