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85화 (85/111)

#85

태자궁으로 통하는 모든 솟을대문에 굳게 빗장이 내려갔다. 번견들의 막사가 활짝 열렸다. 전신을 무장한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담장을 둘러쳤다. 태자는 사냥 때 주로 쓰는 활이 아닌 쇠로 만든 커다란 정량을 뽑아 들고 빠르게 침전으로 향했다. 그사이 새카만 밤하늘로 비바람을 예고하는 매지구름이 깔렸다. 검은 현곤 자락과 면사가 거칠게 펄럭거렸다.

앞서려는 화경을 뒤로 물리고 태자는 침전 앞에 섰다. 침전을 지키는 두 명의 위병이 고개를 숙인 채 평소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고요했다.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낀 태자는 천천히 정량에 살을 걸어 침전을 향하여 촉을 겨누었다. 침전은 평소와 다름없이 말끔하고 조용했다. 홍의는 태자가 돌연히 이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증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태자가 별안간 응접실에 놓인 거문고 갑을 향하여 살을 쏘았다.

퍽!

퍽!

퍽!

연속으로 날아간 화살이 갑에 깊숙이 박혔다. 마지막 살에 문이 박살 났다. 벌어진 문틈으로 시뻘건 피가 기어가듯 흘러나왔다. 다음 순간, 박살 나 너덜거리는 문과 함께 털썩, 한 사내가 굴러 나왔다.

홍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나함이었다.

“꺄아아악!”

“자객이다!”

“태자궁에 자객이 들었다!”

시비들과 병사들의 비명과 고함이 잇달아 울려 퍼졌다. 경악을 넘어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홍의가 한 발 뒷걸음질을 쳤다. 다음 순간, 침전을 지키고 있던 위병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와 홍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퍼억!

빠르게 날아온 화살에 눈알이 정통으로 뚫린 위병은 털썩, 그대로 뒤넘어졌다. 겨냥을 하느라 잠시 숨을 멈추고 있던 태자가 살을 놓자마자 참았던 숨을 풀어놓았다.

“…초탁.”

홍의는 망연자실 읊조렸다. 왼쪽 눈에 살이 박힌 채로 경련하고 있는 사내는 위병으로 위장한 초탁이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본 화경이 별안간 침전 앞에 대기 중이던 위병의 상투를 잡아 위로 꺾었다. 지금껏 찍소리도 내지 않고 관망하던 옥지가 그 위병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높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낯선 위병은 눈동자가 완전히 돌아가 흰자만을 내리뜨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읊조리는 입에서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주의 주문을 외는 것이다. 저놈을 당장 베어라.”

태자가 스산하게 뇌까렸다. 옥지는 부들부들 떨며 양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화경이 고성을 지르며 위병의 목을 베었다. 핏줄기가 댓줄기처럼 솟구치며 내실 벽을 물들였다. 홍의는 피바다가 된 내실의 한복판에서 털썩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나함, 대체, 자네가 왜….”

엎드린 채 이쪽으로 향한 나함의 안색은 새파랗게 식어 있었다. 그러나 부릅뜬 두 눈은 여전히 안광이 형형하여 홍의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는 듯했다. 관자놀이에 박혀 든 살로 인하여 즉사한 것이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검둥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홍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싸쥐고 가쁜 호흡을 삼켰다.

***

장대비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물난리에 온 땅이 시달렸다. 금성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역모의 수괴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가는 이 없어 버려진 궁이라 일컫는 태후궁의 담장을 군부의 모든 병사가 에워쌌다. 늙은 태후는 입을 조가비처럼 꾹 다문 채 표정의 변화 없이 수행인의 부축을 받으며 내실을 나섰다. 백발의 타래진 머리카락은 그녀가 버텨 온 세월만큼이나 길고도 아득하게 굽이쳤다.

홍의는 모든 상황을 뜬 눈으로 보았음에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다향원에서 가장 말이 통하는 벗이라 여겼던 나함이 그토록 허망하게 가 버리고, 초탁마저 죽고, 이 모든 일을 주도한 태후는 검은 덮개가 쓰인 초라한 가마에 올라 척박한 섬으로 유배되었다.

억수같이 쏟아붓는 빗속이었다. 태후는 멀찍이 천막 아래 선 황후를 향해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부었다.

“이이이, 이, 난장을 쳐 죽여도 모자랄 년! 구저분하고 천박한 얼녀(?女, 천첩의 딸)가 벽해를 집어삼키는구나! 네년도 꼭 나와 같은 결말을 보리라! 네년이 내 아들을 해하였으니 네 아들의 운명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황후는 태후의 아둔함에 웃었다. 명백히 생긋 비웃었다. 이제는 맞붙어 패악을 떨자면 못 할 것도 없었으나, 만조백관 앞에 품위를 손상시키는 짓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병마에 묶인 것일 뿐, 멀쩡히 현존하시는 황제를 두고 태후가 죽은 사람이라 일컫자 모두가 황족을 향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면서 이맛살을 구기고 혀를 찼다. 놀랐을 황후를 위로하고, 태후를 규탄했다.

이 모든 장면을 목도한 홍의의 시선은 이내 미함에게로 꽂혔다. 그는 퍼붓는 빗속의 흙탕물과 함께 쓸려가듯 유배 길에 오른 어머니의 가마를 그저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

그 길로 미함의 집무실을 찾아간 홍의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미함도 별다른 말 없이 마주 앉아 차를 음미했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어쨌거나 미함은 태자 전하의 목숨을 구명한 은인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여태껏 홍의는 누군가 미함에 관해 묻는다면, 잔사설 없이 한 번에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도 올곧고 다정하고 강직한 사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겠다. 자신 따위가 미함이라는 인간을 두고 그는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사내라고 규정하는 일 자체가 허황되게 느껴졌다. 미함은 자신의 이복동생을 처참한 지경으로 몰았다. 자신을 낳아 준 친어미를 배반한 사내다. 모든 것이 태자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무엇이 옳고 어떤 게 맞는 걸까. 애초에, 답이 있긴 한 걸까.

“…왜 그러셨습니까?”

홍의가 해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함은 동요 없이 묵묵했다.

“어찌하여 나함을 버리셨습니까? 그치의 수많은 내자들과 자식들은… 이제 무얼 믿고 누굴 보며 삶을 견뎌야 한단 말입니까?”

미함이 그제야 피식 웃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여 찻잔을 잡았다.

“더 좋은 방법과 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좋은 것을 취하고 덜한 것은 가차 없이 내치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삶의 옳은 도니라. 총명한 네놈이 어찌하여 이토록 시시풍덩한 질문을 하는지,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할 따름이구나.”

미함은 차를 한 번 들이킨 후, 먼 곳을 보듯 시선을 띄웠다.

“나함은 어릴 때부터 도가 지나치도록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 음침하고 탐심이 넘치는 속내를 똬리처럼 뱃속에 감추어 두고, 선량한 척 양보하는 척 무심중간마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뱀처럼 눈을 번뜩였지. 언제나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했고,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미치도록 발광을 했어.”

“…….”

“또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 분풀이를 저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내자들에게 돌렸지. 홍의야, 믿어지느냐? 그 집의 여인들의 눈물샘이 마를 날 없었다는 것이.”

홍의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을 꽉 다물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지. 네놈은 옛적부터 보이는 대로만 맹신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이구나.”

“…….”

뒷골이 사늘했다. 천자와 제후를 운운하며 어떻게든 태자를 까 내리려던 나함의 언사가 떠올랐다. 그때 그는 이미 태자를 시해하려는 역심을 품고 있었던가. 그리하여 마지막 간정이랍시고 그토록 거드름을 피우며 훈수를 두었던가.

‘자넬 보고 있자면 한숨부터 나오는군.’

스무 살 무렵이었다. 향선이 되어 처음 저잣거리 축제에 나섰을 때였다. 다른 향선들이 방외색을 즐긴답시고 색주가로 달려가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주색잡기에 빠졌을 무렵, 홍의는 홀로 동떨어져 비단 상점을 기웃거리며 여동생 여름살이에 입을 모초단을 고르고 있었다. 문득 코앞으로 고소한 냄새가 몰씬 풍기기에 놀라 돌아보니, 나함이 달콤한 양념으로 간한 닭 꼬치를 내밀어 왔다.

당황한 홍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각 전 꼬치구이 가판 앞에서 전낭을 풀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은 쓰리게 돌아선 자신을 이 자가 모두 지켜보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사람. 이깟 군입 다실 거리 하나 사 먹는 게 무어 그리 대수라고.’

‘…….’

‘가솔에게 쓸 때는 그토록 후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몰인정하다니, 자네는 어찌 이리 답답하게 사는가? 욕심 좀 부리라고. 욕심 좀.’

괄괄하기로 소문난 홍의도 그때만큼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왈칵 붉혔다. 매일같이 바쁜 체련의 와중에도 빚을 갚기 위해 짬짬이 그림을 그려 장에 내다 팔던 홍의의 손톱은 먹물이 가실 날 없었다. 옷소매는 낡아 해졌고, 갖신의 밑창은 닳아 곧이라도 떨어질 듯 나달나달했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나함의 예리한 시선을 피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던 홍의는 홀로 도리질을 쳤다. 그 순간에 나함은 진심이었으리라. 제 눈에 한심하게 비치는 벗이 진정으로 안타까워 내민 친절이었으리라. 그때 그 꼬치구이가 어찌나 구수하고 쫄깃했던지, 아직도 그 맛을 떠올리면 입 안에 단침이 괴곤 하였다.

이렇듯 한 인간의 이모저모는 시시때때 변하여 지켜보는 이의 판단력을 흐리는 걸까. 돌이켜보면 그러했다. 나함은 어쩌면 ‘좋은 벗’일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본디부터 향선 중 가장 많은 처첩을 두었고, 그것은 자신을 따르는 무동들의 처를 데려다가 작첩을 하는 데 이골이 났다는 뜻이었다. 깨닫고 나니 비로소 그의 이기심이 확실히 보인다.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홍의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다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신에게… 귀띔이라도 해 주실 수 있지 않았습니까.”

이가 절로 악물렸다.

“네가 미리 알았대도 변하는 건 없었다.”

“신이 그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설득되지 않아. 그 아이들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비정하고 선득한 경험은 처음입니다. 미함 공…. 공께서는 나함더러 욕심이 지나친 사내라 하셨지요. 허나 이번 일 또한 공의 욕심으로 말미암은 배신이 아닙니까? 자신의 어머니마저 배반하는 공을 앞으로 제가 어찌 믿어야 합니까?”

미함은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짙고 푸른 원주의 정복이 풀썩이고 달 문양이 새겨진 금잠이 등불을 찌를 듯 높아졌다.

“내 홍의 너를 아낀 이유를 아느냐?”

홍의는 묵묵히 보았다.

“네가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복동생인 나함이나 어머니인 태후 마마를 배반하고 태자 전하를 선택한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지. 우리는 이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야. 그럼에도, 이 나라를 끔찍이 사랑하지, 빌어먹게도 말이야.”

“…….”

“나는 이 일로 인하여 정통을 등졌고 향선들의 신뢰를 잃었으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느냐? 폐하의, 내 형님의 대운이 잦아들고 있다는 것을.”

부릅뜬 눈동자가 마주쳤다.

“이 나라는 곧 황제를 잃는다. 그러므로 새로이 얻겠지. 지금의 엿 같은 세국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도래시킬 자를.”

이게 내 야욕의 정체다.

콰앙, 쾅! 창밖에서 우레가 울었다.

미함은 이제 어찌할 테냐고 물었다. 또한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스승이자 상관이었던 그 익숙한 얼굴에서 처음 보는 검은 음영이 번쩍거렸다.

홍의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벽선각을 뒤로 하고 달렸다. 스스로 혼돈에 빠져들듯 빗속으로 무작정 발을 내디뎠다. 쏟아지는 빗물이 땅에서 터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금성의 전경은 그저 뿌옇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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