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색련-86화 (86/111)

#86

황후궁의 화려한 안지밀에는 예복을 벗고 편안한 침의를 꾸린 황후가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폭신한 허리로 젊은 사내의 불끈거리는 팔뚝이 뱀처럼 휘감겼다. 속곳조차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딱딱한 성기를 비벼 오며 어깨를 깨물고 핥아 대는 이 젊고 아름다운 묘랑은, 이번에 황후가 새로이 휘하로 들인 신통 무동 해수였다.

황후의 섬섬옥수가 뻗어 와 사내의 거뭇하고도 뜨거운 성기를 보드랍게 움켜쥐고는, 왁살스레 잡아당겼다. 신음하던 해수가 황후를 보료 위로 밀어뜨렸다.

“이리 색탐이 심해서야, 전쟁이 나면 말 등이 아니라 치마 속에 기어들 위인이 아닌가?”

황후가 혀를 끌자 해수가 색스럽게 눈꼬리를 접었다.

“대저 사내가 여인을 향해 발기하는 것은 태양이 동산에 올랐다가 서산에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허, 이런 주제넘은 놈을 보았나. 주둥이만 동동 살아 나불대는 꼴을 보아하니 네놈도 곱게는 못 죽을 듯싶구나.”

황후의 비소에 해수는 살짝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내실 바깥에서 위병의 음성이 울렸다.

“황후 마마, 태자 전하 존전에 납시었사옵니다.”

“…들라 하라.”

황후는 해수를 슬쩍 밀어내고, 흘러내린 머리칼을 정돈하였다. 막 내실에 들어서 읍을 올리려던 태자가 멈칫했다. 해수는 황태자의 방문에도 아랑곳없이 황후를 끌어안고 달라붙으며 희롱하고 있었다. 오히려 참으로 오만방자하게도, 똑바로 태자를 응시하면서 그의 어머니의 옷섶에 손을 집어넣으려 하였다.

신통 가문 내에서 황태자의 위상이란 이렇듯 검둥개에 비견할 만큼이나 형편없었다. 어차피 황후의 끄트러기에 지나지 않는 바보 먹치 태자가 아닌가? 해수의 예상대로 태자는 아예 그의 존재를 무시한 채 어머니를 향해 얌전히 읍을 올릴 따름이었다. 낄낄거리던 해수가 대뜸 황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치려 하였다.

“나가 있어라.”

“예? 하오나 오늘 밤은….”

“황태자와 담소하는 데 방해가 되니 나가 있어라. 일을 마친 연후에 다시 부를 터이니, 어서.”

“…예, 황후 마마.”

해수는 황후의 명에 하는 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유유히 태자를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 했다.

태자의 커다란 손이 덥석, 해수의 목덜미를 홈켜쥐었다. 해수가 놀라며 절로 까치발이 들렸다. 약골이라 소문난 태자의 엄청난 아귀힘에 순식간에 해수의 미간에 핏줄이 서면서 얼굴이 와락 붉어지고 눈이 돌아가려 했다. 윤왕좌로 편안히 보료방석에 기대앉아 있던 황후도 놀라 허리를 곧추세웠다.

해수는 컥컥거리며 태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간힘을 썼으나, 그럴수록 아귀힘은 악귀처럼 강해져 숨통을 압박하였다.

“네 눈에는 내가 인사를 들을 줄도, 할 줄도 모르는 허수아비로 보이느냐?”

그리 묻는 시커먼 면사 안쪽에서 푸른 도깨비불이 언뜻번뜻하였다. 검붉었던 해수의 안색이 이제는 시허옇게 질려 창백하였다. 끄윽, 그윽,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빠금거리는 입으로 면사가 불쑥 다가들었다. 해수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검지만 투명하여 얼핏 속이 드러나 보이는 면사 안쪽, 독처럼 붉은 입술과 시리도록 아름다운 벽안이 차가운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보았구나.”

“…….”

“천잡한 네놈이 방금 내 얼굴을 보았어. 그렇지? 말구멍을 옥죄기 위한 최선이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바로 이 목을 부러뜨리는 것이다.”

“캑! 크흑!”

“허나 나는 자비롭다. 그러니 차선책을 주지.”

해수는 어느새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여봐라.”

“예, 태자 전하.”

“이놈의 물건과 혀를 작두로 잘라라.”

“예, 태자 전하!”

“캑캑, 허억, 헉, 화, 황후 마마! 황후 마마…!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손이 풀리자마자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음성을 내뱉으며 황후에게 기어가던 해수는 곧이어 들이닥친 화경과 병사들에 의하여 포박되어 끌려 나갔다. 발악을 하며 괴성을 지르는 해수를 짐짓 지켜보던 황후가 곁에 서 있던 황급히 시종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시종이 서둘러 그들을 쫓아 나갔다.

황후가 잠자코 이맛살을 찡그린 채 혀를 끌었다.

“여운아, 어미 앞에서 이 무슨 패악이란 말이냐?”

태자가 면사를 벗고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소자의 얼굴을 본 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죽이라 하셨습니다.”

“면사를 쓰고 있었으니 모모이 보지는 못했을 것 아니냐. 으음. 이상한 일이다. 홍의와 통한 후 네가 달라졌구나. 갑자기 어찌 이리 아랫것들을 핍박하느냐? 물건을 작두로 자르다니… 끔찍하여 말이 나오질 않아…. 네 기분이 그토록 상하였다면 곤장 스무 대로 마무리 짓는 것으로 하자꾸나.”

“되바라진 성정으로 보아 어머니를 착실히 모실 놈이 아닙니다. 꿍꿍이가 있을 것입니다.”

빤히 보던 황후가 이내 피식 웃더니, 편안히 자리를 보았다.

“우리 아들이 이제 다 컸구나. 어미 걱정도 해 줄 줄 알고. …허나 말이다, 내 홍의를 너의 사람이라 귀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듯, 너 또한 내 사람에게 너른 아량을 보여 주는 것이 서로 간에 공평치 않겠느냐?”

읊조리며 몸을 일으킨 황후는 침전 한구석에 놓인 탁상에 앉았다. 어서 앉으라는 듯 턱짓을 하는 그녀를 간잔지런한 푸른 눈으로 응시하던 태자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말했다.

“평시보다 웃음이 잦으신 걸 보니, 눈엣가시가 사라져 기꺼우신 듯합니다.”

황후가 멈칫했다가 다시 웃어 보였다.

“맞지 않는 표현이로다. 따지자면 네가 그분의 눈엣가시였지.”

“태후께서 가마에 오르시기 전까지 어머님을 저주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해하였으니 네 아들도 같은 종국을 맞이하리라….”

말끝을 흐리던 태자가 살며시 미소를 걸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황후가 반색하듯 두 눈을 부릅뜨더니 빠르게 쏘아붙였다.

“네 망령된 늙은이의 헛소리를 믿고 이 어미를 재우치는 게냐? 제 하나뿐인 옥자둥이가 미쳐 죽기 직전이니 고약하고 이기적인 노인네가 광증에 물들어 아무 말이나 지껄여 댄 것을!”

야멸치게 쏟아 부은 황후는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가 한차례 길게 뽑아냈다. 절그럭절그럭, 습관처럼 검은 염주를 굴린다. 그리고는 입가에 고운 웃음을 머금는다.

“우리 마음씨 고운 태자께서 할마마마의 낙향에 심중이 영 불편했나 보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말아. 너는 그저 옥좌에 오르기 전까지 몸과 맘을 정제하여 후사 잇기에 몰두하면 되느니라.”

“정녕 소자가 황제가 되길 바라십니까?”

“왜 아니겠느냐? 어찌 그리 당연한 걸 물어?”

“…….”

“혹여 옥좌에 오르지 못할까 벌써부터 저어하는 것이냐?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그저 지금처럼만 하면 되느니라.”

황후가 날듯이 가만사뿐 다가들어 태자의 어깨를 짚었다. 길고도 정교하게 다듬은 손톱이 아들의 뺨을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그저 지금처럼, 고분고분 순순히….”

“…….”

“토를 달지 말고, 의문을 품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질문하지 말고.”

꽈악.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황후는 아들의 눈동자를 맵차게 쏘아보며 한마디 한마디 주입하듯 자근자근 뇌까렸다.

“너는 그저 이 어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네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은 이 어미가 가르칠 것이며 위험한 일 근처에도 가지 않게 할 것이며 네 주위에 너를 음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천륜을 저버리고라도 하나도 남김없이 싹 제거할 것이야.”

태자의 눈동자가 불온하게 흔들렸다. 어깨가 잘게 떨렸다. 아아, 황후는 가엾은 아이를 대하듯 좁고 따스한 품으로 태자를 끌어당겼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높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등을 도닥이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황후는 태자가 아닌 스스로를 향한 애통함에,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에 도취되어 눈시울을 붉혔다.

“너는 황제가 될 것이다. 천하를 지배하는 유일무이의 황제가. 그리하여 누구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말 속에 태자의 마음은 없었다. 그녀의 바람 속에 태자의 의지는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행복 속에, 아들의 행복은 없었다.

태자는 가만히 눈을 껌벅이다 질끈 눈을 감고 폐부 깊숙이 어머니의 향기를 들이켰다. 슬픈 듯 아픈 듯 팽팽하던 미간이 깊게 일그러졌다.

이 냄새가 그리웠던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당글당글한 젖퉁이와 달착지근한 젖내가 그리워 홀로이 너른 금침 속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지새운 온밤의 기억. 달려가 안기려 들었을 때 매정하게 거두어 가던 열두 폭 붉은 치맛자락과, 징그럽다는 듯 찰싹 내려치던 새하얀 어머니의 손바닥과, 그 어여쁜 섬섬옥수 사이사이에 껴 있던 갖가지 지환들에 긁혀 생채기가 난 어린 돌쟁이의 무르고 연한 손등이, 세월을 머금고 변색된 기억으로 아른거렸다.

‘…밝은 덕으로 천하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고, 그 나라를 잘 다스리기에 앞서는 자신의 가문을 잘 다스려야 하며, 자신의 가문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수양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된다 하였습니다.’

‘그래. 무릇 세상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매사에 앞과 뒤를 구분하여 행하는 것이 도에 가깝다 하였다. 이렇듯 대학 팔조목(八條目)이 이르는 중에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특히 입에 싹이 나도록 반복해 외워, 한 날 한 시도 잊지 말고 몸소 받들어 실천할지어다.’

수신제가 이후 치국평천하하리라. 어머니는 어린 태자의 머리에 면사를 씌울 때마다 외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눈동자를 가리는 일이 어찌하여 정신을 수양하는 일로 귀결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수양해야만 가문이 정제된다는 이치 또한 어린 태자가 깨닫기에는 너무 어려운 논리였다.

그맘때 아직 젊었던 어머니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가시 돋친 꽃처럼 날카로웠다. 아마 그때가 어머니에게도 그러그러한 시기였나보다. 낙엽만 굴러도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때. 모든 것이 불안하여 모든 것에 예민하게 구는 시간, 제 배로 낳은 자식조차 밉고 설어 견딜 수가 없는, 그러한 시절.

볼이 근질거리고 답답하여 면사에 손끝만 갖다 대어도 불호령이 나왔다. 면사가 휘날릴 정도로 뛰어다니거나, 크게 말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태자궁 밖으로 나서기만 하여도 호되게 된서리를 맞았다. 그녀는 회초리를 들 때마다 늘 눈꼬리를 꼿꼿이 치켜세우고 엄동설한에 노출된 것처럼 입매를 딱딱하게 굳히곤 했는데, 어쩌면 매 맞는 일보다 그 표정과 마주하는 일이 더 두려웠는지 모른다.

‘벗을 만들고 싶다고…? 벗을 사귀고파 시종들도 따돌리고 몰래 궁을 나서려 했노라고? 아들아, 너를 벗을 사귈 수 없다. 아이들은 너의 고 숭한 얼굴을 보고 도깨비를 본 듯 달아날 것이야!’

‘아아, 울지 마라, 사내놈이 보기 싫게 눈물 바람이야! 제발, 제발 고 숭한 눈으로 나를 보지 말란 말이다!’

‘…어미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아들이지? 어미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너의 몫이지? 너만은, 너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여운아, 어찌 이 어미의 마음을 이리도 괴롭게 하느냐?’

그리고 나면 응당한 수순처럼, 젊은 어미는 작은 아들을 품에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매운 회초리보다도 무섭고, 생귀신의 서슬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바로 어머니의 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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