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교지가 내려왔다. 황후 옥명과 태자비 준명을 폐한다는 내용이었다. 즉위식을 치르자마자 신통의 주축을 색출하여 대항의 뿌리를 뽑겠다는 황제의 의중이 너무도 번연했다. 왕조오의 병사들과 대치했던 군우령 대윤과 그 골수들은 대부분 지하 유궁에 유폐되었고, 향선 해운은 아버지를 구한답시고 작당을 꾸렸으나 매사 어설픈 인사답게 모의한지 하루도 안 되어 황제군에 붙잡혔다. 이후로는 별스럽게도 검둥개 막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였다.
미함과 그를 따르는 향선들에게 연행되어 준명궁을 나서는 길, 죄인 끌듯 포승을 매리라는 준명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그녀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덕분에 산책을 나서듯, 청유를 놀 듯, 아주 오랜만에 솟을대문을 넘으면서 준명은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은 선선하고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꽃이 쏟아질 듯 애애했다. 얼마 만에 맨눈으로 바라본 세상인지 모른다. 아름다웠다. 공기가 시원했다. 밤 산책이 이리도 좋은 것인 줄 여태 몰랐다. 사실 그녀는, 그간 놓치고 살아온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효금아.”
“예, 마마….”
“왜 따라오느냐?”
등을 든 채 따라붙던 효금은 숨이 넘어가도록 울고 있었다. 준명은 손을 들어 이동을 잠시 늦추고는, 가만히 효금을 돌아보았다.
“가거라.”
“싫사옵니다.”
“꺼지라고.”
“싫사옵니다…!”
“가. 못생겨서 냄새난다.”
“저, 저는 평균이옵니다! 육향도 술처럼 향긋하다고….”
병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효금을 쳐다보았다. 놀라 입을 다문 효금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 웃을 듯 말 듯 입매를 당기던 준명은 다시 팔랑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고고하게 쳐들린 머리와 꼿꼿한 등허리를 바라보던 효금이 주먹으로 눈물을 쓱쓱 닦고는 당차게 다시 따라붙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그 사람, 한때는 동복 오라비였고 한때는 남편이었던 그 사내의 성정대로라면, 그간 황후의 권력 뒤에 숨어 감히 지아비에게 갖은 불경지설과 저주를 퍼부었던 자신을 절대 곱게 용서해 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준명은 희한하리만치 차분하였다. 어쩌면 이대로 사사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이 잘된 일이다. 궁이라는 이름의 고립무원에 갇혀 소박맞은 뒷방마누라로 시들시들 말라 간 세월, 죽지 못해 간힘으로 살아 내었던 태자비 준명의 삶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죽음조차 기꺼운 벗이 될 터다.
황제의 수하들에게 이끌려 간 곳은 황후궁의 응접실이었다. 그곳에 황제도 와 있었다.
준명은 무지근한 눈으로 자신의 전남편이자 황제가 된 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아 죽던 구멍과 결별하였다던가. 마음고생이 여간한 게 아닐 텐데 이 와중에 어찌 자리를 다 청하시고. 날카로운 독설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새침하게 삼켰다. 어쨌거나 허물 같던 면사를 떨치고 드디어 금의환향했다는 그의 모습은 세간이 떠드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하강한 옥골선풍. 절세가랑에 천상미남. 또 뭐라더라.
‘…구더기는 없군.’
벽해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를 잠시 일별한 준명은, 감흥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엽을 누리소서.”
황제는 턱을 까딱여 인사를 받았다.
실상 이렇게 세 사람이 한데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넓지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녀 하나 없이 텅 빈 응접실의 서늘한 기운이 폐부를 짓누를 듯 무거웠다.
황제의 시선은 줄곧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준명은 느긋이 차를 마시며 양단을 살폈다. 황후는 이러한 와중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장한 상태였다.
이윽고 황제가 바깥을 향하여 명했다.
“들여라.”
그러자 이름 모를 시비와 태의가 다가들어 무릎을 꿇었다. 절을 올리는 시비의 손톱이 새카맣게 썩어 있어, 준명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시녀 근심,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자와 존전에 다령하였사옵니다.”
절그럭절그럭. 황후 옥명은 말없이 손안에서 염주를 굴렸다. 그러한 소음과 작게 움직거리고 있는 손만 아니었다면 흡사 아무 표정 없는 인형 같았다.
“굳이 제가 먼저 운을 떼어야겠습니까.”
황제의 나지막한 저음이 고요를 갈랐다. 황후는 깊은 한숨과 함께 상체를 뒤로 물리더니 마찬가지로 담담히 되물었다.
“언제부터였느냐.”
“무엇이 말입니까.”
“대체 네 언제부터 어미를 잡아먹는 짐승, 효경이 될 작정을 품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황후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 너를 회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까마귀에게 눈을 파 먹히는 흉몽을 꾸었지. 실지로 꿈과 현실이 무엇도 다르지 않더구나. 너는 나와 내 어미의 피와 살점을 뜯어먹고 태어난 괴물이로다. 음침하고도 망령된, 악령 같은 네놈이 인간의 탈을 쓰고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을 시늉하였을 때, 그때 미리 알아보아 후환을 없애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누나.”
“소자가 효경이라면 자식을 죽인 어머니는 무엇입니까?”
황후가 물끄러미 황제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인간입니까? 괴물입니까? 세상 어떤 미물도 제가 낳은 자식에게 그토록 모질진 않을 겁니다. 그 뜨거운 불구덩이에 청대 같은 자식을 밀어 넣고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어머니는 인두겁을 쓴 악귀입니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황후가 이를 갈았다.
“감히 뉘 앞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여 대는 것이냐?”
다시 문이 열리고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원주 미함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는 이는, 준명으로서는 처음 보는 곱사등이였다. 잔뜩 위축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저축저축 들어서는 그는 해사한 비단옷에 금잠을 꽂고 있었다.
‘…저것들은 필시 황족만의 전유물일 터인데, 대체 저 꼽추가 어찌하여 저리 귀한 직금을 주워 입었나?’
그때 준명이 지그시 눈초리를 좁혔다. 자세히 보니 꼽추의 눈동자가 푸르렀다. 황제의 눈동자 빛깔과 꼭 같았다.
달칵- 쨍그랑!
황후가 솟구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찻잔이 깨어지고 의자가 거칠게 밀려났다. 준명이 깜짝 돌아보았다가 곱절은 더 놀랐다. 그 자리에 오뚝 선 황후는 오한이 든 사람처럼 온몸을 덜덜 떨었고 안색이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
“네, 네가 어찌…. 네가 정녕…!”
꼽추의 푸른 눈이 크게 뜨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어물거리던 꼽추가 이내 허정거리는 몸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황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후는 떨리는 손을 들어 거리낌 없이 꼽추의 얽은 뺨을 쓸었다.
“정운이냐?”
꼽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네가 맞느냐…?”
황후는 손바닥에 닿는 여실한 온기에 데기라도 한 듯 흠칫 놀라더니, 눈을 부릅떴다.
“네가 살아 있었느냐?!”
“…….”
황후가 한 걸음 물러섰다. 꼽추가 안절부절못하다가 황후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황후는 생시일 리 없다며 자신의 몸을 꼬집고 때렸다.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저 아이가 어찌 살아 있단 말인가? 이게 꿈이 아니라면, 지금 바라본 저 아이의 얼굴에 어찌 원망이나 분노가 없단 말인가! 황자는 오래전 그때와 꼭 같은 표정이었다. 애써 냉정을 가장하며 이따금 들여다보곤 했던 옥사 안, 어김없이 떨어질 불호령이 두려워 차마 다가들지는 못하고 좁은 옥사를 뱅뱅 맴돌던 둥글고 말랑한 아이의 몸뚱이, 그토록 말갛고도 먹먹한 갈구의 눈빛.
황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날이 무뎌진 줄 알았던 칼날이, 여전히 심장에 박혀 있던 그 지긋지긋한 칼날이, 한순간에 섬벅, 하고 생살을 베어 낸 느낌이었다. 황후가 자신의 앙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였다. 고통으로 이지러진 세상에 죽어도 잊히지 않을 죄책감이 실존하여 놓여 있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를, 내 너를 죽이려던 게 아니었다! 그때, 태후만 아니었어도, 그 교활한 늙은이가 나의 숨통을 틀어쥐지만 않았어도…!”
황후는 귀신이라도 본 듯 떨고 있었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곧이라도 졸도할 것 같았다. 곱사등이 황자가 구부러진 몸을 펴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황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다오! 이 짐승만도 못한 어미를 부디 용서해다오! 그때, 내가 너무 어렸다! 또 나를 잃을까 두려워 너를 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우뚝 멈췄다.
황후는 거칠게 황자를 밀어 내고는 표독스레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니지, 아니야!”
황후가 울부짖듯 소리쳤다.
“너는 왜 병신으로 났느냐? 왜 병신으로 태어나 이 어미의 숨통을 조였느냐? 아니다, 내 탓이 아니었다! 그때 유궁에 숨긴 널 여운이가 찾아내지만 않았어도 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 손으로 내 자식의 몸에 불을 지르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전부 네놈들의 탓이란 말이다!”
금성에는 예부터 흉흉한 구전이 돌았다. 살금살금 꽃담을 타 넘은 어린 황태자가 도깨비불을 따라 밤마을을 돈다는, 허황하지만 얼마간 으스스한 이야기.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태어나자마자 장애아라는 이유로 버려져 유궁에 갇힌 황자가 그 도깨비불의 실체였고, 어린 태자는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 형제를 찾아 밤마다 애달픈 해후상봉을 나눴던 것임을. 그토록 안타까운 형제애에 준명은 너무도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