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뭘 돌보라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에게 도지완이 강아지를 가리켰다.
“얘가 1호.”
“…….”
“네가 2호.”
1호? 2호?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하고 있자 도지완이 설명해 주었다.
“이게 내 개새끼 1호. 네가 내 개새끼 2호.”
“…….”
“이게 네 상사다. 알겠어? 잘 모셔.”
아니……. 그렇지만 전 천사, 현 인간으로서 어떻게 강아지를 상사로 모시겠나 싶어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는데, 아까보다 온화해진 분위기에 안심한 까만 눈이 초롱초롱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몰라. 귀여워. 그냥 내 상사 해.’
도지완처럼 열받는 상사를 위에 두는 것보다 귀여운 강아지를 상사로 두는 게 나았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콩설이다.’
하얀 털에 까만 콩 같은 눈과 코를 보자 바로 콩백설기가 생각이 나서였다. 나도 모르게 촉촉한 코에 쪽쪽 입 맞추고 있으니 도지완이 픽 웃었다.
아까 강아지를 죽이라고 했을 때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쓸모없는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전에 비해서 성격이 많이 온화해지긴 했지.’
처음 만났을 때는 이걸 어떻게 교화시키나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무려 차기 천사장의 자리까지 포기하고 내려온 인간계였다.
내가 왜 인간이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이것부터 말해야 했다.
일단 이 세상은 한 번 망했다.
* * *
세계가 멸망했다.
정의는 꺾였고, 용사는 악에 패배했다.
악의 씨앗이 발아해 마왕이 되었고, 그렇게 마왕이 불러온 어둠이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려는 그때였다.
신께서 시간을 돌리셨다. 회귀하며 과거가 된 미래를 모두가 잊어버리면 다시 재앙의 반복이 될 뿐이라, 다시 돌아간 시간 속에서 신은 자신을 희생해 천사들에게 기억을 남기고 그 대가로 소멸해 버렸다.
그렇게 신의 희생으로 얻은 마지막 기회.
천계의 천사들은 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급급하면서도 미래의 마왕이 될 도지완을 처리하고자 했다.
“말 그대로 인간쓰레기입니다.”
“살아 있는 것보다 죽어 없어지는 게 세상에 이롭겠습니다.”
천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감정 없이 말했다.
악의 씨앗이 발아해 마왕이 된 그가 얼마나 강력하고 사악했는지 모두 겪어 봤으니 그를 처리하자는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 명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신께서 도지완의 죽음을 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세상을 만들고 자신을 따를 자식들인 천사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정을 몰랐으며 오로지 이성으로만 행동했다.
그런 천사들을 보며 신은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다음에 만들어 낸 것이 인간이었다.
인간들은 천사들과 달리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랐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벌였고, 그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았다.
“도지완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감정이 없어 사랑을 모르고 누군가와 공감을 하지 못했다. 천사가 감정 없이 선을 행한다면 도지완은 감정 없이 악을 행했다.
“도지완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신께서 그의 죽음을 원했다면 시간을 돌리기 전 도지완을 죽이라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를 할 시간은 충분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변할 수 있을까?”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변화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요.”
천사들에게 인간이란 이해 불가능한 생명체였다. 그들은 자그만 도움으로 큰 고난을 극복하고 자그만 관심 하나로 성장했다.
만약 도지완도 그렇게 변할 수 있다면?
“……그러나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이번이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도박수에 올인하기엔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천사들은 쉽게 도지완의 죽음을 입에 담지 못했다.
‘신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다시 주었듯 도지완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신 거라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던 그때, 처음 도지완의 편을 들었던 천사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제가 그에게 기회를 주겠습니다.”
“그대가? 차기 천사장의 자리는 어쩌고?”
“그런 것은 신의 뜻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개심할 것 같지 않다면…….”
천사들이 처음 계획했던 일이 그의 손으로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 도지완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며 하늘의 신성 하나가 지상에 추락했다.
* * *
여러 가지 이유로 천사의 몸으로 강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몸은 천계에 두고 영혼만 지상으로 보내는 것이었기에 활동할 몸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가 내려올 때쯤 죽을 사람 중 고르고 걸러 선택한 것이 바로 신지호였다.
‘신지호. 21살. D급 헌터. 대학 중퇴. 양친을 잃은 데다 부친의 사업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안 좋은 선택을 함.’
이 사람이 그나마 조건이 가장 좋았다. 그렇다고 80대 노인의 몸으로 골골거리며 도지완을 쫓아다닐 순 없는 거니까.
‘그대가 버린 몸이니…… 내가 세계 평화를 위해 잘 쓰겠습니다.’
그렇게 신지호의 몸이 있을 곳으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나와 달리 솟구쳐 나를 스쳐 지나가는 신지호의 영혼을 잠깐 바라보고 지상에 추락한 나는 벌어져 있는 신지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멈춰 있던 장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억!”
폐에 공기가 들어차며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다음에는 속이 너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우웨에에엑!”
입에서 나온 것은 고작 노란 위액과 미처 녹지 못한 알약들이었다. 다 게워 냈음에도 구역질이 참아지지 않아 몇 번 더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 나는 쓰러졌다.
그 후 한참 뒤에 일어난 나는 몸이 아까보다 괜찮아졌음을 느꼈다. 내 영혼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망가진 몸을 조금 수복한 것이다.
‘그래도 완전히 건강해지진 않았네.’
이렇게 몸이 상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천사의 몸은 항상 신성력으로 충만했으며 먹고 마시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육체는 최상의 상태로 유지되었으니까.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냉장고 앞으로 기어간 나는 문을 열고 멍하니 있었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물병 하나조차.
‘신지호는 정말 죽을 각오였구나.’
그리고 그 각오대로 죽었다. 그러니 내가 이 몸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던 나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처음 느낀 감정은 서러움이었다.
“으……흐흑, 으허어어엉!”
슬픔, 괴로움, 자괴감…….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나는 처음 느끼는 감정에 당황하면서 애처럼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어허어엉! 으허엉! 왜! 왜 없어어어! 허어엉!”
머리 한쪽 구석에 있는 냉정한 나는 ‘와, 이게 감정이라는 거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항상 고요했던 마음이 감정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어지러워졌으니까. 그 난장판을 특등석에서 감상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튼 바닥에서 버둥거리며 울고 있으니 벽에서 ‘꽝!’ 소리가 났다. 방음이 되지 않는 벽이라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느낀 감정에 휩쓸린 나는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는 것 외에 이 감정을 해소할 길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한참을 더 울고 있자 쿵쾅쿵쾅 발소리가 들리더니 내 원룸 문이 벌컥 열렸다.
“아! 시끄럽네!”
처음 보는 남자가 내 방에 침입했다. 여전히 감정에 휩쓸린 나는 그가 오든 말든 흐느끼며 방바닥에 누워 흐느꼈다.
“으흐으으윽…….”
“……뭐야? 너 왜 그래!”
토사물 냄새가 나는 방, 냉장고 앞에 쓰러져 흐느끼는 나를 보고 남자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괜찮은지 묻는 그에게 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배고파여. 흐으윽…….”
“뭐? 허…… 참.”
그의 눈이 비어 있는 냉장고 안을 훑더니 기다리라고 말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잠시 뒤 나타난 남자의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전자레인지는…… 있구나.”
그는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서 음료수나 물 같은 것을 봉투에서 꺼내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몇 분 뒤 전자레인지에서 소리가 나자 죽을 꺼낸 남자가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식히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먹어.”
데워지며 방 안을 가득 채운 죽 냄새에 나는 이미 눈이 돌아 있었다. 남자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달려들어 허겁지겁 죽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레토르트 닭죽은 정말 맛있었다. 천계에서는 왜 이런 걸 먹지 않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으흐흑…….”
“왜, 왜 또 울어?”
“너무 마시써요…….”
입에 죽을 한가득 문 채로 웅얼웅얼 말하자 울 일도 많다며 남자가 어이없어했다. 내가 죽을 먹는 사이 남자는 걸레로 내 토사물을 치우곤 환기 좀 시키라고 투덜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어두침침한 방과는 달리 하늘은 파랗고 맑았다.
‘와…… 이거 진짜 이상하다.’
아까는 정말 죽고 싶었다. 근데 배 좀 찼다고 이제는 하늘이 무슨 색인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인간들은 이렇게 오락가락하며 산단 말이야? 진짜 불쌍하다.’
근데 그 불쌍한 일을 앞으로 내가 해야 했다. 진짜 앞날이 깜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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