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난 이정호야. 넌 신지호지?”
“예…….”
정호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척 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처음 대화하는 것일 텐데, 정호 형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신지호란 사람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원룸 복도를 오가며 몇 번 만난 사이인 듯했다.
이름은 전에 택배가 잘못 와서 건네주며 알게 된 되었다 하였다.
“짜식이 말이야. 어린 게 맨날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다녀서 이상한 놈인가 했는데, 진짜 이상한 놈이었네?”
정호 형이 픽 웃었다. 그가 말한 이상한 놈이 전자는 나쁜 의미이고, 후자는 웃긴 의미라는 것을 알아챘다. 머쓱해진 내가 음료수를 마시려다 아차 했다.
“아…… 감사해요. 죽도, 음료수도…….”
“뭐 얼마 안 하는데 됐어. 집들이 선물이라고 생각해.”
집들이라고 하기엔 모양이 이상했지만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천계였다면 뭐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다들 개인적인 성격이라 내가 땅바닥에 누워 울고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관했다면 사람 돌아다니는 대로에서 이러지 말고 구석에서 하라며 충고 정도나 했겠지.’
이런 도움과 관심이 천사였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건만 신지호가 된 지금은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해 봐. 근심은 나누면 가벼워지니까.”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호 형에게 나는 신지호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대한 빚과 신지호의 능력으로는 갚을 길이 요원하다는 것.
‘뭐…… 빚이야 내가 갚으면 되는 거니까.’
신지호와 다르게 나는 빚에 대해 태평했다. 모르쇠 하려고 태평한 건 아니었고 내 능력이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천사와는 다르게 인간은 수명이 있으니까.’
수명의 제한과 함께 몸의 내구도도 형편없었다. 관리를 따로 하지 않는 이상 30대쯤부터 몸의 기능이 훅 꺾이니 말이다.
수명은 늘려 줄 순 없지만 나는 건강을 돌려줄 수 있었다. 신성력으로 말이다.
‘신지호의 망가진 몸을 전부 고치면 신성력을 제대로 쓸 수 있을 테니까…….’
재벌가 사람들에게 접근해 망가진 몸을 고쳐 주겠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걸로 돈을 벌어서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신지호의 상황만 이야기했더니 정호 형은 깊게 고심했다.
“음…… 파산 신청은 어때?”
“그건…… 사채도 있어서 파산으로 끝이 날지 모르겠어요.”
“하아…… 그래? 음…… 그럼 어쩌지? 너 일은 하고 있어?”
“……아뇨.”
신지호가 죽을 생각까지 한 것은 알바처를 잃은 탓도 컸다.
사채꾼들이 그가 알바하는 곳까지 찾아왔고 논란이 되는 일을 피하고 싶었던 사장이 그를 해고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계에 훼방을 놓으면 신지호가 돈을 갚을 길이 요원한데 왜 그랬을까 싶겠지만 사채꾼들은 지호가 정당한 일을 해서 돈을 갚길 바라지 않았다.
‘나를 광산 노예로 만들고 싶어 했지.’
신지호는 D급이라 헌터로서의 능력이 형편없지만 D급이기에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던전 중에는 광물이 나는 던전이 있는데, 사채꾼들은 그곳에 나 같은 사람들을 넣어 노예로 부리고는 했다.
‘광산 노예로 들어가면 99% 죽는다.’
1%의 확률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돈을 다 갚기 전까지는 던전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을 테니……. 그동안의 경력 단절도 문제고 사회의 발전 등을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차겠지. 무엇보다 그때부터는 진짜 0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 살기 위해 다시 사채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인생은 도돌이표가 될 터였다.
‘광산 노예의 무서운 점이 바로 그거지.’
살아남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점. 그렇기에 신지호는 죽음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좋은 결론이 나지 않자 분위기가 우중충해지며 서로 말수가 적어졌다. 침묵만이 흐르던 때 정호 형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그럼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일해 볼래?”
“형이 일하는 곳이요?”
“응. 하청업이지만…… 대기업 하청이라 여기서 일하면 사채업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거야.”
“대기업요?”
“응. 도문그룹. 도문 길드의 어시스트야.”
어시스트는 말하자면 잡일꾼이나 다름없었다. 광부로 일할 때도 있지만 광산 노예보다는 나았다.
“광산에서 일하는 건 아니죠?”
빨리 도지완을 만나야 했으니 광산에서 일할 시간은 없었다. 제안은 고마웠지만 내키지 않아 거절하려고 할 때 정호 형이 말했다.
“응. 우리 팀은 길드장 직계 어시스트야. 너도 알지? 도지완. 그 사람이 들어가는 던전의 어시스트라서 광산 일은 안 해.”
“형. 저 할래요.”
나는 그가 말을 바꾸기 전에 바로 덥석 물었다. 사실 신지호로서 도지완을 만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신지호는 재벌도 아니었고 도지완과 접점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운 좋게도 옆집 사는 사람이 그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고 하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잘 생각했어, 인마. 회사에 말해 두면 월급이 아닌 일당으로도 주니까 급한 돈은 그렇게 타다 써.”
정호 형이 내일 같이 출근하자고 말하면서 쉬라고 했다. 돌아가기 전 주머니에서 10만 원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형, 괜찮아요.”
“인마, 누가 준대? 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갚아.”
정호 형은 거절하는 내 손에 강제로 10만 원을 쥐여 주고 후다닥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정말 고마웠다.
‘제대로 된 대화라곤 오늘 한 게 다인데…… 마음 써 주니 고맙네.’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은혜는 꼭 그에게 갚아 줘야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 * *
죽을 생각이었던 신지호가 핸드폰도 해지해 놓은 탓에 나는 대리점으로 가서 재가입을 해야 했다.
‘핸드폰 해지 전에 요금은 다 내서 다행인가.’
신지호의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덕분에 나는 핸드폰을 이용해 신지호의 계좌를 찾았고, 그의 계좌에 들어 있는 돈들을 전부 모아 인출했다.
100만 원. 신지호의 전 재산이었다.
그리고 정호 형이 준 10만 원을 포함해 110만 원. 이걸로 나는 옷 같은 것을 사기로 했다. 신지호가 죽기 전에 옷과 신발을 다 버렸기 때문이었다.
옷과 신발을 사고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던 신지호의 얼굴은 햇빛을 받지 못해서일까. 하얗고 우울해 보였다.
“어머머, 인물이 사네.”
동네 미용사 아주머니가 머리가 예쁘게 잘 잘렸다면서 깔깔 웃었다. 나는 만 원 지폐를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 나를 찾아온 정호 형은 내 모습을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너 머리 잘랐네?”
“네. 아무래도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요.”
“잘 잘랐다, 야! 인물이 훤하네.”
정호 형은 내 분위기가 바뀐 것을 보고 기뻐했다. 어제만 해도 희망 하나 없이 우중충했던 내가 살아갈 의지를 보이니 기쁜 듯했다.
“준비할 게 더 있을까요?”
“아니야. 옷이나 장비는 다 회사에서 지급하니까 몸만 가면 돼.”
얼른 가자며 이끄는 정호 형을 따라 그의 차에 타고 회사로 향했다.
“사장님, 어제 말했던 애 데리고 왔어요.”
회사로 들어가자마자 정호 형이 눈앞에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인사하며 나를 가리켰다. 꾸벅 인사하니 남자가 위아래로 나를 바라보고는 사장실로 따라오라고 말했다.
“이력서는 가져왔나?”
“아, 여기요.”
준비한 이력서를 훑어본 남자는 깍지를 끼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시스트 일이 많이 어렵지는 않아. 솔직히 공사판 노가다보다는 쉬운 편이야. 가끔 위험한 상황이 생기는 것만 빼면 말이야.”
“네.”
“근데도 이 업계는 사람이 항상 부족해. 대기업 소속인 우리도 마찬가지지. 왜 그런지 아나?”
“네. 대충은…….”
“왜 그렇지?”
“어시스트 일을 할 수 있 건…… 헌터뿐이니까요.”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도 헌터였고, 그 헌터를 어시스트하는 것도 헌터였다.
같은 헌터인데 한쪽은 시다바리 일을 하고 한쪽은 멋지게 몬스터를 잡는다면, 시다바리 쪽은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거기다 벌어들이는 돈도 굉장히 차이가 난다.
“맞아, 그래서야. D급이라고 했지? D급 던전이면 설렁설렁 돌아도 어시스트가 벌어들이는 돈의 두 배는 벌어.”
제대로 던전을 돌수록, 던전의 급이 높아질수록 페이의 격차는 벌어졌다. 물론 헌터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니 당연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만 보고 목숨을 거는 건 무시한다. 그러니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어시스트 일보다는 헌터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어중이떠중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헌터 일에 눈 돌아가 금방 관두는 녀석들은 필요 없어.”
“…….”
“그렇기에 경력 없는 신입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너는 정호의 추천이니 받아 준 거야. 부디 내 선택을 후회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원하는 맞춤 신입이었다.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신지호가 도지완의 곁에 있기에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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