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말에 반신반의하며 사장이 알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정호와 같은 팀으로 넣어 주지. 스케줄상 오늘은 던전 공략이 없어. 공략은 주에 한두 번 정도 하는 편이고, 많이 나갈 때는 세 번까지도 나가. 제일 가까운 공략이 모레 있으니 정호랑 같이 나오면 돼.”
오늘은 그냥 회사 구경이나 하고 가라는 사장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야, 어떻게 됐어?”
“형이랑 같은 팀이라고, 모레부터 형이랑 같이 나오래요.”
“잘됐다!”
정호 형은 활짝 웃으며 나보다 더 기뻐했다. 온 김에 회사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이곳저곳 쏘다닐 때마다 정호 형에게 사람들이 인사했다.
“어? 너 뭐야? 왜 오프에 나와 있어?”
“정호 안녕? 그냥 심심해서 나왔는데? 그런데…… 이쪽은 누구셔?”
“우리 팀 신입이야. 모레부터 같이 활동할 신지호라고 해. 지호야, 이쪽은 같은 팀의 김건규라고 해.”
“안녕하세요.”
김건규는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야,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오는구나? 몇 년간 우리 팀은 신입이 안 들어왔잖아.”
김건규는 잘 왔다며 내 손을 잡고 붕방방 흔들었다.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김건규와 정호 형, 그리고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대기업 소속이라 이런 건 좋아. 회사 식당 밥이 진짜 맛있거든.”
정호 형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음식은 정말로 맛있었으니까. 복지도 굉장했고 솔직히 연봉도 꿇릴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시스트를 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역시 어시스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헌터밖에 없기 때문일 터였다.
‘어시스트가 아닌 헌터 일을 하면 하루에 어시스트가 버는 연봉만큼 벌 수도 있으니까.’
돈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오래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조금 특이한 편이었다.
“그렇지. E급만 되어도 헌터 일 하려고 하지 누가 어시스트를 하겠어?”
“맞아. 맞아.”
“……그런데 형들은 하잖아요.”
김건규는 나와 같은 D급이었고 정호 형은 E급이었다. 나보단 나이가 많지만 두 사람도 젊었기에 헌터 일을 못 할 이유도 없었다.
내 궁금하다는 얼굴에 두 사람은 씩 웃었다.
“아, 우리는 좀…….”
“특이한 케이스지.”
“특이하다고요?”
“응. 나는 정신계 능력이라…… 공격력은 전무하거든.”
“나는 피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피를 보기 싫다고 하는 정호 형은 수거 팀이 수거할 수 있게 괴수들의 시체를 옮기는 것까지는 하겠지만 괴수들을 직접 잡는 것은 싫다는 얼굴이었다.
“어시스트 팀이 안전하고 좋지. 괜히 목숨 걸고 싸우긴 싫어.”
그런 이유였구나……. 나는 납득했다.
그렇게 회사 구경을 끝내고 나는 정호 형의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신지호의 몸은 회복이 덜 되었기에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벌써 몸이 지쳤다.
“……모레인가.”
마왕을, 악의 씨앗이 심긴 도지완을 보는 것이. 과연 도지완은 어떤 사람일지 나는 너무 궁금했다.
* * *
공략일이 되어 회사에 출근한 나에게 정호 형이 일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판타지 소설 봤지? 거기 나오는 시종들이 하는 일이라고 보면 돼.”
짐꾼부터 던전 뒷정리, 밥해 주고, 설거지하고 시중들고……. 이런 일이었다.
“그렇다고 던전 부산물 같은 걸 챙길 필요는 없어.”
그건 수거 팀이 한다고 했다. 어시스트가 하는 던전 뒷정리란 그저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거나 하는 것이었다. 지나갔다가 나중에 돌아올 때 걸리적거리지 않게 말이다.
“던전에서는 언데드가 아닌 이상은 시체가 썩지 않으니까. 피 냄새만 조금 참으면 괜찮아.”
“그렇군요…….”
“시중을 든다고 해도 도 넘는 갑질 행위를 견딜 필요는 없어. 돈 받고 하는 만큼만 일하면 돼. 괜히 부당한 일에 참을 필요 없어.”
그렇게 주의 사항을 듣고 회사 차를 타고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입구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았다.
‘아직 안 왔나?’
입장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일까, 도지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김건규와 정호 형, 셋이서 노가리를 까던 도중 고급 승용차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길드장 차야.”
정호 형이 승용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길드장이면 도지완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바라보자 차 문이 열리고 길쭉한 다리가 바깥으로 나왔다.
곧이어 그의 몸이 전부 드러나자 나는 탄성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짜 잘생겼네.’
도지완의 어머니는 연예인이었다. 그 피가 어딜 가진 않는지 도지완은 살아 움직이는 조각품 그 자체였다.
‘진짜 잘생겼다.’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생겼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권태로운 얼굴을 하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아 감춰 놓았던 눈이 고개를 들자 드러났다.
저 사람은 블랙홀이었다. 시선을 한껏 끌어모으는 블랙홀. 멍하니 보고 있으니 도지완이 고개를 돌리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 시선은 금방 떨어졌다. 도지완과 달리 신지호에게는 어떠한 매력도 없었으니까. 머쓱해진 나도 그처럼 고개를 돌렸다.
“길드장은 어떤 사람이에요?”
“길드장?”
“뭐…… 잘 모르겠네. 나쁜 사람은 아닌 듯?”
내 질문에 김건규가 대답했다. 정호 형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갑질 같은 것도 안 하고……. 그냥 구름 위의 사람이랄까?”
“그렇지……. 재벌이면 까다롭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길드장을 보고 좀 생각이 바뀌었어.”
그와 일하면서 나쁜 경험을 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둘이었다. 그렇다고 좋은 경험이 있는 것은 또 아닌 듯했다.
“좀? 사람이 차갑지.”
사람이 함께 지내다 보면 친분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도지완과는 몇 년이 지나도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하기는 나쁘지 않지.”
“맞아. 무리한 부탁도 잘 안 하고.”
평이 꽤 괜찮았다. 미래의 악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곧 입장 시간이 되었고, 브리핑을 끝낸 우리는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브리핑 내용대로 던전 안은 동굴 지형이었다.
“햐, 살았다. 저번엔 산악 지형이라 죽는 줄 알았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
그때의 기억이 나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헌터는 도지완을 포함한 열다섯 명. 그리고 어시스트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었다.
그렇기에 개인 시중을 드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상황에 손 비는 사람이 시중을 들었다.
“우리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도지완은 어시스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도지완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거라 깜짝 놀랐다. 목소리마저 예술이었다.
‘미쳤네……. 완전 동굴이잖아?’
감정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는 이런 목소리를 좋아하는 듯했다. 신지호도, 천사였을 때 내 목소리도 모두 옅은 편이라 부러운 감정까지 들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도지완은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곧 제 갈 길을 갔다. 한참을 대기하자 무전기에서 안쪽으로 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가 보니 한창 전투가 있었는지 괴수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헌터들은 더 안쪽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욱……. 비린내…….”
피비린내에 피에 약한 정호 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하나 한쪽으로 치우고 핏물이 흐른 땅을 삽으로 한 번 뒤집었다. 그러자 피 냄새가 조금 가셨다.
거의 다 치웠을 때쯤 다시 한번 무전이 왔다. 더 들어가자 큰 공동이 나왔다. 여기서도 전투가 있었는지 괴수 시체가 보였다.
“베이스캠프는 이쪽에 세우는 게 좋겠군요.”
공동은 마치 손바닥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하나였고, 그 길의 반대편에 네 개의 통로 입구가 보였다. 정확히 따지면 엄지 없는 손이랄까? 그렇게 보였다.
괴수 시체는 두 명이 치우고 나머지 넷이 가져온 물품으로 캠프를 설치하기로 했다.
피에 거부감이 있는 정호 형이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쪽이 되자 그의 깍두기인 나도 자연스럽게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게 되었다.
“한 명, 이리 와서 저 좀 도와주십시오.”
그때 도지완이 어시스트 한 명을 불렀다. 나는 눈도장이라도 찍어 두기 위해 냉큼 손을 들었다.
“저요! 제가 가겠습니다!”
“지호 네가 갈 필요가 없는…….”
“아뇨. 제가 할게요!”
말리는 정호 형을 뒤로한 채 달려갔다. 도지완은 미리 설치해 둔 천막 안에 있었다. 간이 샤워실로 쓰는 천막이었다.
“왔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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