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 200만 원?’
신지호의 전 재산보다 두 배나 많았다. 정호 형은 나와 똑같이, 아니 그는 근무를 오래 했으니 나보다 더 많이 벌었을 텐데 많이 벌었다며 나를 축하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돈을 내려다보다가 형을 돌아보았다.
“형, 오늘 고기 먹을까요? 제가 쏠게요.”
“뭐? 괜찮겠어? 빚 갚는 데 써야지.”
“아니에요. 형 덕분에 이렇게 벌게 되었는데…… 제가 밥은 한 끼 사야죠. 물론 그걸로는 받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겠지만요.”
“짜식…….”
정호 형은 감동한 눈치였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데 거절하기 그랬는지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지호한테 얻어먹어 보자!”
“형, 소고기 어때요?”
“자식아, 소는 무슨 소야. 돼지면 충분해. 삼겹살이나 먹자. 우리 원룸 근처에 좋은 집이 하나 있어.”
소고기를 쏘고 싶었지만 정호 형은 돈을 아끼라고 나를 타박했다.
“정 소고기 쏘고 싶으면…… 나중에 빚 다 갚았을 때 쏘든가.”
자기가 너무 매몰차게 구는 건가 싶었는지 우물쭈물하며 덧붙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 * *
정호 형과 함께 삼겹살을 배 터지게 먹고 들어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전화가 40통이 넘게 들어와 있었다.
신지호의 얄팍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렇게 그에게 집착할 만한 사람은 손에 꼽았다.
‘사채업자네.’
이틀간 내가 보이지 않고 연락도 안 되니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비싼 돈 주고 마련한 광산 노예 후보가 도망가면 그들에겐 뼈아픈 일일 테니까.
문자함을 열어 보니 문자도 남겨져 있었다.
[고객님. 전화번호 바꾼다고 끝날 일이 아니에요.]
말은 공손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공손하지 못했다. 아마 신지호가 죽기 전 기기를 해지했다가 내가 다시 기기를 살리면서 번호가 바뀐 것을 도망가기 위해 번호를 바꾼 것이라 착각한 듯했다.
착각을 정정해 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럴 의리는 없어 그냥 무시했다.
그렇게 다음 날 하루 쉬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김건규가 사장에게 잘 말해 두었는지 전보다 사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유해졌다.
그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 차량을 타고 던전 앞에 도착했다. 보충된 물건들을 챙기고 있으니 헌터들이 하나하나 도착했다. 그중에는 도지완도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조각상인 도지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경멸을 숨기지 못했다.
‘에휴.’
가까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경계만 사게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김건규가 내 어깨를 치며 물었다.
“뭐야? 뭔데? 왜 길드장을 그렇게 봐?”
“제가 뭘요…….”
“뜨겁게 쳐다봤잖아.”
능글능글 웃으며 무슨 사이냐 묻는 김건규를 흘겨보며 주먹을 살짝 휘둘렀다. 그러니 엄살을 피우며 우는소리를 냈다.
“아이고오, 동생이 형 치네! 하극상이다!”
“아이 씨, 그만해요.”
우리의 소란에 시선이 몰리자 부끄러워져서 나는 한 번 더 김건규를 때렸다. 내가 부끄러워하자 김건규는 그제야 놀리는 걸 그만두고 능글능글 웃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잘 풀어 봐 봐. 우리가 하청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길드장이 우리 상사잖아.”
“그러고 싶은데…….”
피하니 어쩌겠나. 내가 상심하는 걸 본 김건규는 다른 어시스트와 숙덕대더니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뒀으니 앞으로 네가 길드장 전담 마크해.”
“형…….”
“길드장이 생긴 건 저래도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으니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 줄 거야. 아마.”
김건규의 도움을 받아 단체로 하는 일을 제외하면 길드장의 시중을 내가 맡기로 했다. 물론 그 일에는 도지완의 의사 따윈 고려되지 않았다.
덕분에 계속 도지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도지완이 샤워실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가운과 물주머니를 챙겨 곧바로 따라갔다.
사람을 부르려던 도지완은 들어오는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다른 사람을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저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
“몸이 너무 예뻐서…… 아니! 그게 아니고!”
“…….”
“제가 사람 알몸은 처음 봐서……!”
사과를 하려고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묫자리를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도지완은 어디까지 말하는지 보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었다.
“그러니까……! 제가 그랬던 건 성적인 욕망을 가지고 그랬던 게 아니고요!”
이 말을 하자마자 무표정했던 도지완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무래도 성적인 것을 언급한 게 심기를 거스른 듯했다.
그가 나보고 꺼지라고 소리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시발…….”
아무 대답도 없는 도지완을 보니 마음이 꺾였다. 그냥 다 망한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도지완을 죽여 버릴까…….’
친해져서 그를 교화시키는 작전A가 망한 거 같으니 그냥 마왕을 미리 죽이는 작전B를 실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왭니까?”
“……네?”
“왜 계속 저에게 접근하려는 겁니까?”
“예? 그게…… 길드장님께서는…… 제 상사 아니십니까?”
“…….”
“실수를 해서 상사에게 밉보였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더듬더듬 내가 한 말을 들은 도지완이 다시 물었다.
“관계가 어긋난 상사에게 굳이 잘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 어시스트는 항상 부족하니 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가도 사람들이 반길 텐데요.”
그냥 떠나면 될 걸 왜 자기 비위를 맞추냐는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인간 세상을 잘 모르지만 그렇게 책임감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옳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이 회사에 아는 사람을 통해 들어오기도 했고요……. 제가 그렇게 나가 버리면 저를 소개해 준 사람이 많이 난감할 테니까요?”
“…….”
“그리고……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해서요?”
내가 이 말을 하자 도지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대체 어떤 단어가 그의 관심을 끌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돈인가?’
그저 예측할 뿐이었다.
“그래서 웬만해선 회사 잘 다니고 싶은데…….”
내가 눈치를 보며 말하자 도지완도 납득한 듯했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자 의심의 눈초리가 거둬졌다. 다만 조금 모자란 애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눈빛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 걸로 하죠.”
그렇게 말한 도지완이 옷을 벗었다. 나는 허겁지겁 발판을 가져와 그에게 물을 뿌릴 준비를 마쳤다.
여전히 부끄럽기는 했지만 저번과 달리 실수는 없었다. 주니어가 서는 일도 없었기에 도지완이 화를 내는 일도 없었다.
* * *
도지완과 화해하고 나서는 일이 잘 풀렸다. 그의 기분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고, 공략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화해하고 나서도 나는 도지완의 시중을 전담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늦게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지완은 나에게 금방 익숙해졌다.
‘그래도 뭔가 아쉽단 말이야.’
나는 아직 그의 선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우습게도 그의 선 안에 들어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길드원들도 선 밖 사람들 같던데.’
가족쯤 되어야 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내가 발 닦개가 될 듯이 굴어도 도지완은 나를 우습게 보지 않고 깍듯하게 대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며 던전에서 나왔다.
“내일 하루 휴식하고 모레 다시 들어갑니다!”
또다시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해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로 돌아가고 있는 도지완이 보였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길드장님!”
자기 차로 돌아가는 도지완에게 내가 꾸벅 인사하자 도지완이 멈칫했다. 말을 건 나를 잠시 신기하게 쳐다보던 도지완도 나에게 인사했다.
“……신지호 씨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인사하고선 차를 타고 떠나 버리는 도지완을 보며 나도 회사 차량에 올랐다.
회사로 돌아가니 사장이 웃으며 반겼다.
“왔어? 이번 대금 받아 가.”
사장은 나에게 봉투를 넘겼다.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온 나는 저번처럼 정호 형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돈을 확인해 보니 저번과 똑같이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쓰고 남은 돈이…….’
서랍을 열자 봉투 하나가 나왔다. 저번에 정호 형과 밥을 먹고 생필품을 이것저것 사고 나니 160만 원가량이 남았다.
‘일주일 일해서 번 돈이 400만 원. 굉장하네.’
그런 어시스트보다 헌터들은 배로 벌었다. 아마 도지완쯤 되면 열 배쯤 벌어들이지 않을까?
도지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아무래도 돈을 계속 서랍에 둘 순 없었다.
‘은행에 한번 가 봐야겠다.’
계좌에 보관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더불어 체크 카드도 하나 만들고. 요새는 카드 안 되는 곳이 거의 없으니 현금보다 카드로 결제하는 게 편할 테니까.
오늘은 푹 쉬고 휴무인 내일 은행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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