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방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은 도지완의 옆에 앉았다. 책상에 엎드려 도지완을 들여다보고 있자 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그가 인상을 썼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그의 말랑한 볼을 쿡 찔렀다.
“……뭐야.”
“…….”
“할 말이라도 있어?”
내가 말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이자 도지완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날이 갈수록 도지완이 궁금해졌다.
‘친모와도 사이가 별로인가?’
신지호도 인간관계가 퍽 좋지는 못했지만 도지완은 정말 삭막했다. 친한 친구도 없는 것 같고…….
‘이 사람에게 선이 있기나 한 걸까?’
큰 도지완이었을 때, 나에게 항상 깍듯하게 대하는 도지완을 보며 나는 내가 그의 선 안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도지완을 보면 과연 그의 선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예 그어져 있지 않은 건가?’
그 안에는 도지완 자신밖에 없어서……. 아예 그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왜인지 울적해졌다.
볼을 찌르고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말랑한 볼살을 잡았다. 쭈욱 잡아당기니 치즈처럼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뭐야?”
도지완이 인상을 팍 썼다. 나는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찌푸려진 미간을 푹 찔렀다. 그러자 도지완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미쳤나?”
욕설을 뱉으면서도 내 손을 쳐 내지 않는 도지완이었다.
* * *
시간이 지나 친모와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친모를 만나러 가는 걸 안 건지 계모의 표정이 정말 좋지 않았다.
서로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모자는 서로의 표정이 좋든 안 좋든 상관하지 않았다.
부친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서울을 지나 교외에 도착한 부자는 한적한 별장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지완아!”
도지완의 친모가 그 안에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듯이 끌어안은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보고 싶었어.”
부친이 그런 친모를 안아 주며 달래 주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라니깐.”
“하지만…… 제 욕심대로 했다가 제가 지완이 엄마라는 걸 들키면 어떡해요.”
“…….”
“어떻게 엄마가 되어서 아들 앞길을 막을 수 있겠어요.”
가련하게 흐느끼는 친모를 보며 부친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그때 그녀를 토닥이던 부친의 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음. 어어, 알겠어. 곧 가지.”
“……가시는 거예요? 이렇게 빨리?”
통화를 끝낸 그를 친모가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 미안. 갑자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다는군. 오늘 저녁까지는 들어올 테니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자고.”
“네, 기다릴게요.”
그렇게 부친이 사라지자 친모의 기세가 바뀌었다. 가련하게 슬퍼하던 사람은 사라지고 신경질이 가득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일에 미친놈인가, 진짜. 어이가 없네.”
“…….”
“아들, 잘 있었어?”
신경질을 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도지완의 시선에 친모가 빙긋 웃었다. 그렇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아까 같은 애정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도지완의 눈에도 친모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한국에 들어온 거 보니 돈 떨어지셨나 봐요.”
당연히 그 외의 이유는 없다는 말투였다. 그 말을 듣고 친모는 화내기는커녕 짙게 웃었다.
“맞아. 돈이 떨어졌지. 한 번쯤 와서 눈물 좀 짜 줘야 돈을 주다니. 치사하지 않니?”
그러고는 깔깔깔 웃었다. 모친은 진열장에 놓인 와인 하나와 잔을 꺼내서는 소파에 드러눕듯 앉았다.
도지완도 그녀를 따라 맞은편 소파에 앉았고 나도 눈치를 보면서 도지완의 옆에 앉았다.
“하, 진짜 인생이 지루해.”
와인을 따라 마시며 친모가 중얼거렸다. 얼굴은 아직 20대처럼 젊고 생생한 데 반해 그녀의 눈은 흐리고 탁했다.
말없이 와인을 따라 마시던 친모가 물었다.
“그 여자가 괴롭히지는 않고?”
아마 계모를 말하는 듯했다. 도지완이 고개를 젓자 그녀가 비죽 웃었다.
“좋은 집 따님께서는 고상하기도 하시지. 마음이 약해서 눈에 거슬리는 애새끼 하나 괴롭히지도 못하고.”
“…….”
“내가 만약 그 여자였으면 남편이 밖에서 본 자식새끼는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친모의 얼굴엔 비열함이 가득했다. 와인 잔을 까득까득 긁는 손톱이 마치 도지완의 이복형제를 노리는 마수 같았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나는 조금 감탄했다.
“그 여자가 아이를 낳을지 누가 알았겠니? 다 됐다고 생각했건만, 어이없어.”
“…….”
“지완아, 다 네 거야. 알지? 네가 장자라고. 네 아빠가 가진 모든 건 다 네 거야. 알겠어?”
도지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모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지더니 그의 팔뚝을 강하게 잡아챘다.
“윽!”
“알겠냐고! 그 여자 자식한테 뺏기면 안 돼! 다 네 거니까! 내가 왜 외국으로 나갔는데!”
친모는 윽박지르며 도지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도지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친모가 그제야 만족하고 그를 놓아줬다.
“그래……. 그래야지……. 내가 널 낳으면서 잃은 게 어떤 건데…….”
“…….”
“그 잘난 회사라도 건져야지. 그래야지……. 내가 이만큼 희생했는데…….”
친모가 중얼거리며 와인을 마셨다. 이번만큼은 도지완도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을 하고선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나 떠나감에도 친모는 상관치 않았다. 그저 와인만 계속 들이켤 뿐이었다.
도지완은 이 별장에 전에도 와 봤는지 익숙하게 2층으로 올라가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 안에 있는 침대로 다가가 눕고는 눈을 감았다. 얼굴엔 짜증이 잔뜩 어려 있었다.
나는 아까 친모에게 잡혔던 도지완의 팔이 신경 쓰였다. 반팔을 입고 있어 손가락으로 살살 소매를 끌어 올리자 도지완이 눈을 떴다.
“왜.”
대답하지 않고 소매를 계속 살살 올리자 도지완이 아예 소매를 위로 걷었다. 그러자 손톱에 짓눌려 핏줄이 터진 피부가 보였다. 멍이 들려고 했다.
“이제 됐어?”
괜히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는 듯이 도지완이 으르렁거렸다. 작은 도지완이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의 상처에 손끝을 대었다.
손끝에서 신성력이 새어 나오며 하얀빛을 뿜었다. 갑자기 내 손끝에서 빛이 새어 나오자 도지완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모른 척한 채 그를 계속 치료했고 그에 희미하게 올라오던 멍 자국은 점점 씻기듯 사라졌다.
그리고 팔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떤 자국도 남지 않고 깨끗하게 변했다.
“너…….”
도지완의 눈이 일렁였다. 나는 입술 위에 손가락을 대고 쉬, 소리를 냈다. 비밀이라는 표시에 도지완의 입이 꾹 다물렸다.
입을 다문 도지완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렁거리는 그의 눈이 나를 똑바로 담았다.
* * *
저녁쯤 부친이 돌아오자 모친은 낮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냥하게 변했다.
그렇게 하하 호호 좋은 시간을 2주 정도 보낸 뒤 모친은 원하는 돈을 받고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다 네 거라는 것을 명심해.”
끝까지 욕망을 놓지 못해 한마디 하고 사라졌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만큼 도지완의 키도 훌쩍 자라났다. 내 가슴께 오던 정수리가 이제는 나보다 살짝 높았다. 우리는 항상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끔 도지완이 내 신성력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아…….”
종이에 베인 손끝에서 피가 몽글몽글 새어 나오자 도지완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사람을 휴대용 반창고로 아나? 입술을 삐죽했지만 아파 보이긴 해서 나는 그의 손가락에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베여서 그어졌던 실금이 신성력에 의해 사라졌다.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도지완이 자기 손가락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똑똑, 작은 노크가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도지완의 동생이었다.
“형 뭐 해?”
도지완의 계모와는 다르게 이복동생은 도지완을 무척 좋아했다. 동생이 다가와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나는 벌떡 일어나 그의 엉덩이를 피했다.
“……뭔데.”
도지완의 표정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이렇게 대꾸해 주는 것을 보면 동생을 싫어하는 건 아닌 듯했다.
동생도 그걸 잘 아는지 그의 찌푸린 인상에도 히죽 웃어 보였다.
“그냥!”
“…….”
“다음 주부터는 고등학생이네? 부럽다. 나도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어.”
2살 차이 나는 동생은 자기보다 어른스러운 도지완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쌀쌀맞게 굴어도 그것도 멋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콩깍지가 씌었군.’
하긴 도지완을 어찌 멋지게 보지 않을까. 그는 얼굴, 지식 할 것 없이 또래에서도 발군이었다. 과묵하면서도 타인에게 선을 정확히 긋는 것이 은근한 매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동생은 한참을 떠들다가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떠났다.
도지완은 동생이 떠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동생의 말을 끊거나 내쫓지는 않았다.
‘이게 제일 이상하단 말이지…….’
이런 걸 보면 다정한 듯한데……. 그런데 비교해 볼 수도 없는 것이 도지완에게 저렇게 부딪혀 오는 사람이 동생 말고는 없었다.
‘아니지? 나도 그랬던가……?’
변태로 낙인찍혀 대꾸조차 안 해 주는 도지완을 졸졸 따라다녔던 것이 비슷했던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도지완은 멋대로 밀어붙이는 쪽에 약한 걸까?
그렇다기엔 또 틈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 걸렸다.
‘그냥 넌 짖어라, 나는 무시하겠다, 겠지, 뭐…….’
그게 더 이치에 맞는 듯했고 속도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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