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지완……!’
지완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길드장님! 야!’
몸이 나른하고 축축 가라앉았다. 귀찮아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야! 도지완!’
……저 목소리가 누구였더라?
‘으아아아! 형님!’
그 순간 지완의 머릿속에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왜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지 몰라 얼떨떨했다.
“형님! 형님! 형니이이임! 정신 차리세요!”
물속에서 웅얼거리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물에서 건져진 사람처럼 지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제 몸에 들러붙어 있는 검은 무언가가 보였다.
그가 팔다리를 털어 내자 검은 것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보고 안심하는 남자를 보면서 지완은 인상을 썼다.
“내가 왜 네 형님이야?”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였다. 지완이 10살 때도 저 남자는 저 모습이었으니까.
‘……지금은 거의 비슷해진 것 같은데.’
늙지 않는 걸까? 엘프라든가……. 그런 건 판타지 소설에나 있는 거지만 세상이 격변하고 나니 그런 것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도 사라졌으니 이대로 던전을 깨야겠다고 생각하며 지완이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남자의 모습이 흐려졌다.
“너……!”
지완이 깜짝 놀라 바라보자 남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반투명해진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에서 두려움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이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지완이었다.
“너! 왜 그래!”
그가 남자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투명하게 변하는 손은 마치 유령처럼 통과해 붙잡을 수 없었다.
지완은 처음으로 피가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패닉에 빠진 지완에게 남자는 말했다.
“형님, 여기는 꿈이에요.”
알고 있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꿈에서 깨면 남자가 사라지는 것이 지완에게 가장 큰일이었으니까.
남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꿈에서 변덕처럼 나타난, 뇌가 보여 주는 환상일지도 몰랐다.
지완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할 때였다. 남자가 말했다.
“꿈에서 깨야 해요. 밖에서 봐요.”
밖에서……. 그 말이 지완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밖에…… 네가 있는 건가?’
꿈과 같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거라면, 꿈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남자를 만나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남자가 점점 흐려졌다. 지완은 덜컥 겁이 났지만 밖에서 보자는 말을 곱씹으며 남자에게 외쳤다.
“밖에서……! 꼭 봐! 꼭 봐야 해!”
만약 거짓말이면…… 죽여 버릴 것이다. 지완은 다짐했다.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걸 뺏기느니 죽여 없애 버리는 것이 나았다.
남자가 사라지고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지완은 혹시라도 바깥에 남자가 없으면 어쩌나, 하며 초조했다.
곧 그의 몸이 어딘가로 쑥 뽑혀 가는 기분이 들었고, 그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길드장님!”
쓰러져 있는 자신의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허리를 휘감은 팔이 느껴졌다.
내려다본 지완은 안도했다.
‘다행이다.’
죽이지 않아도 되어서. 잃지 않아도 되어서. 지완은 그렇게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멍하니 누워 있으니 상태를 보러 왔던 간호사가 깨어난 걸 보고는 나에게 물었다.
“정신이 드시나요, 환자분?”
“……예.”
이것저것 확인한 간호사는 보호자를 불러오겠다고 하고선 나갔다.
‘그런데 신지호에게 보호자가 있던가?’
양친은 사망했고, 신지호에게 친척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친척이 있었으면 신지호가 죽었을까 싶기도 했고.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저기서부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보이는 얼굴은 익숙했다.
“정호 형.”
“지호야!”
들이닥친 정호 형은 나를 이리저리 살피며 괜찮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멍함이 가신 내가 그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너 어디까지 기억나?”
“그게…… 길드장이 벽에 흡수되는 걸 막으려고 허리를 잡고 같이 들어간 것까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정호 형이 그간의 일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벽 위에 있던 문양이 빛나면서 너와 길드장님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구조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애태우며 일주일이 흘렀을 때, 문양의 빛이 꺼지면서 우리가 벽에서 튀어나왔다고 했다.
“길드장은 하루 만에 정신을 차렸는데 너는 3일 만에 정신을 차렸어.”
“예……. 그렇군…… 예? 3일요?”
3일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다른 것보다 도지완과 3일이나 떨어져 있었다는 것에 나는 굉장히 불안했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 마왕의 발호를 원하는 자들이 그에게 접근했을까 봐.
내가 놀라자 정호 형은 병원비를 걱정해 그러는 걸로 착각한 듯했다.
“병원비는 걱정 마. 회사에서 산재 처리 해 주기로 했어. 그리고 도문 길드에서도 위로금이 나온대. 길드장 일에 휘말린 거니까.”
……굳이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내가 괜히 호기심을 가지고 입방정을 떨어서 도지완이 말려든 거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1인실이잖아?’
아무리 회사가 산재 처리를 해 준다고 해도 1인실 대금을 내줄 이유는 없으니까 이건 도문 길드가 배려해 준 게 아닌가 싶었다.
‘퇴원하면 안 되나?’
계속 여기 있으면 도지완을 감시할 수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형, 나 퇴원할래요.”
“응? 그래도 검사도 좀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어차피 몸은 좋지 않았다. 신성력으로 서서히 고치고 있으니 의료 과학에 기댈 필요는 없었다. 내가 거듭 퇴원하겠다 말하자 정호 형도 말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럼 내가 퇴원하겠다고 말하고 올게.”
그렇게 정호 형이 나가고 얼마 안 되어 사색이 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뛰어왔다.
“퇴원을 원하신다고요, 신지호 님?”
공손하게 묻는 의사의 말에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퇴원하고 싶은데요.”
그 말에 의료진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리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저희 의료원의 의료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예? 아니요?”
“그런데 왜 퇴원을 원하시나요?”
“그냥…… 몸이 괜찮은 거 같아서요?”
왜 묻는지 모르겠지만 대답했다. 그런데 의료진들은 집요했다.
“정말로 저희 의료원의 의료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퇴원하시는 건 아니죠?”
“예…… 뭐…….”
왜 이렇게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지 의아해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바깥이 좀 소란스럽더니 누군가가 병실로 쑥 들어왔다.
‘헉!’
도지완이었다. 갑자기 도지완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 못 했기에 나는 어버버하며 당황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도지완은 태연했다.
어느새 내 곁에 놓인 의자에 그가 앉자 갑자기 사람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어, 어딜……?”
그 사이에는 정호 형도 있었다. 결국 병실 안에는 나와 도지완만 남게 되었다.
“퇴원한다고?”
“예? 예에…….”
인상을 팍 쓰는 게 기분이 굉장히 나빠 보였다. 내가 오랫동안 입원해 있어서 그런 건가? 기분이 나쁜 이유를 알 수 없어 긴장이 되었다.
“왜?”
“네……?”
“왜 퇴원하냐고.”
왜 퇴원하냐니……?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입원해 있으란 소린가?’
아니면 더 입원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가? 나는 후자는 아니길 빌며 긴장했다.
“그…… 몸이 괜찮은 거 같아서요……?”
그래서 의사에게 했던 말을 또 했더니 도지완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아니, 뭐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똑바로 말하란 말이야! 조금 성질이 났다.
“네가 의사야?”
“예?”
“의사냐고.”
“아닌데요?”
“근데 네 몸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어떻게 알아?”
진지하게 묻는 도지완을 보며 나는 얼이 빠졌다.
‘내 몸이니까 내가 잘 알지…….’
조금 몸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신성력이 곧 고쳐 줄 것이니 문제없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도지완이 부하를 불렀다.
“예, 길드장님.”
“신지호 씨 몸에 정말 문제가 없는지 정밀 검사를 하도록 하죠. 할 수 있는 검사는 전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니? 저기요?”
왜 제 의사는 무시하시는 거죠? 황당해서 그를 부르자 도지완이 무슨 할 말 있냐는 듯이 바라봤다. 근데 표정이 정말 안 좋아서 안 받겠다 하기 뭐했다.
‘에이 씨…….’
약한 게 죄지. 이래서 힘을 길러야 하나 보다. 속으로 투덜투덜하면서 아무 말도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끌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으…… 정신없어.’
그리고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나는 도지완과 함께 의사를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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