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비서는 지완의 이상 행동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비서는 그저 지완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었고, 지완은 비서의 의아함을 풀어 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이미지 관리 하는 거겠지.’
도문 길드의 길드장이 연루된 사고로 인해 지호가 입원한 것이니 비서는 지완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지완의 생각은 달랐다.
‘……돈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래서 자신의 곁에 남아 있으려고 했고……. 지완은 함정이 보여 주었던 과거 속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지호를 생각했다.
그가 제 선 안으로 들어온 순간, 지호가 했던 모든 말들은 그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혹시라도 깨어난 그가 잠시 일하지 못한 것 때문에 곤란에 빠지면 안 되니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챙겨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왜 돈이 필요한지도 알아야겠어.’
혹시라도 빚 때문이라면 그 빚 자체를 지완이 인수해도 좋겠다 싶었다.
‘아니, 아예 신지호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편이 낫겠군.’
함정이 보여 준 과거 덕분에 지호는 지완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완은 그의 과거를 보지 못했으므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신지호에 대해서 조사하세요.”
“네.”
과연 신지호는 어떤 사람일까. 지완은 정말 궁금했다.
* * *
아무튼 도지완의 강력한 주장으로 나는 황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도 도지완이 나를 놔주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상하군. 잘 먹이는데도 왜 계속 미약한 영양실조 상태지?”
“하…… 하…….”
도지완이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맛없는 병원 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입원한 병실에서 나오는 식사들은 고영양에 맛도 끝내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것일 터였다.
‘신지호의 몸이 죽었기 때문이겠지.’
이 몸은 내 신성으로 움직이는 언데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꾸 미약한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것은 임무가 끝날 때까지 속에 담아 둘 비밀이었기에 모두의 의문이 해소되긴 글렀다.
어쨌든 도지완의 정성이 아예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나날이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잘 하면 영양실조 증세도 사라질지 모르겠네.’
영수의 내단 같은 걸 먹는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쓰이기에 극히 비효율적이었기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내단의 경우, 정말 대단한 것은 헌터의 등급을 바꿀 수도 있으니 내 영양실조 따위를 고치기 위해 쓰기에는 지나치게 과분했다.
아무튼 그렇게 놀고먹으며 2주가량이 지났다. 배가 부르고도 호강에 겨웠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이제는 좀이 쑤셔서 더는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지완에게 은근히 말을 걸어 보았다.
“저…….”
“무슨 일이지?”
대답은 바로 나왔다. 왜냐하면 도지완이 내 병실 한구석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픈 곳이 없으니 병간호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그냥 내가 퇴원 못 하도록 감시하려는 건지 병실 한구석에 사무실을 차려 놓았던 탓이었다.
‘안 불편한가…….’
매일매일 출퇴근을 내 병실로 하는 도지완은 정말 독함의 상징이었다. 아무리 사무실처럼 꾸며 놨다지만 병실은 병실이었기에 사무실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지완은 매일같이 출근하며 귀찮다거나 번거롭다거나 하는 티를 하나도 내지 않았다.
‘뭐…… 도지완보다 아랫사람들이 더 고생하긴 했지.’
비서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무실과 병실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으니……. 그렇다고 도지완이 편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직원이 오가는 시간만큼 일이 딜레이 되었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도지완은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병실에 차려진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놀고 있는 내가 조금 무색하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가끔은 내 병실에서 자고 가기까지 했다. 일주일의 반을 그렇게 했으니 가끔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말을 하면 좁은 간이침대에 구겨져 자는 도지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도지완은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 하나를 내 침대 옆으로 옮겨 와 그 위에서 잤다. 1인실임에도 VIP룸이라 넓어서 그런지 침대 하나가 더 들어와도 좁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도문 계열 병원이라고 해도…… 도지완의 힘이 정말 세구나.’
이 병원에서 도지완이 원하면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뭔데.”
말을 건 내가 생각에 빠져 반응하지 않자 인상을 찌푸린 도지완이 다시 한번 되물었다. 나는 퍼뜩 놀라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힘드시죠?”
“딱히?”
뭘 말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냐는 듯이 도지완의 눈썹이 까딱하고 올라갔다. 어떻게 하면 이 폭군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는 천천히 설득을 이어 나갔다.
“사무실로 꾸며 놨다지만…… 여기가 원래 도문 길드 건물도 아니고, 매일같이 여기로 출근하시려니 힘드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내 말이 끝나자마자 도지완이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나왔다. 도지완의 ‘그래서’는 ‘어쩌라는 거야?’ 이런 뜻이 아니라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오묘한 표정이었다.
퇴원을 허하는 것인가 하여 기대에 찬 나를 바라보는 도지완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여기에 있으란 소리인가?”
“……예?”
“내가 출근하는 게 힘들어 보인다며. 그 말은 출퇴근하지 말고 계속 여기에 있으란 소리 아닌가?”
“아닌데요!”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펄쩍 뛰며 아니라고 하자 도지완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뭉개진 단팥빵 같은 얼굴이었겠지만 미남은 찌그러져도 여전히 미남이었다.
“그럼 뭔데?”
“퇴원하고 싶…….”
‘……어서요.’라고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퇴원’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도지완이 눈으로 광선을 쏘아 대서였다.
물론 도지완의 눈에서 살인 파괴 광선이 나왔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번쩍번쩍한 눈으로 쏘아봤다는 소리였다.
한동안 그 번쩍번쩍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던 도지완이 이해 안 간다는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왜지?”
“……네?”
고뇌에 찬 듯 입술을 깨물고 한숨을 팍 쉬는 도지완의 얼굴은 침어낙안, 폐월수화라는 고사가 생각날 정도였다. 평소에 강인한 모습만 보이는 도지완이라서 그런지 미인의 고뇌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래도 물러날 수 없는 법. 더 이상 입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축처럼 사육당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도지완을 감시하고 그를 개심하게 하는 임무뿐만 아니라 그에게 마왕의 하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임무도 있었으니까.
‘계속 이 병실에 있을 순 없어.’
그의 약한 모습에도 내 마음이 굳건한 걸 눈치챈 도지완은 작게 혀를 찼다.
“왜 그렇게 퇴원하고 싶어 하지? 여기가 편하지 않나?”
“뭐, 편하긴 하지만…….”
편하긴 정말로 편했다. 여기가 병실이 아니라 호텔이었다면 호캉스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말한 대로 나에겐 임무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 임무에 대해 말할 수도 없으니 다른 이유를 꺼내 들어야 했다.
“……마음이 불편해요.”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에 도지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휘둘리던 내가 중심을 잡고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제 도지완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들어주느냐,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느냐.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는 게 옳겠지만…….’
나는 솔직히 아리송했다. 왜 도지완이 자기 돈을 써 가면서 나를 이렇게 입원시키지 못해서 안달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멍 때리는 게 다였으니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거나, 나에게 무언가 시킬 것이 있어서는 아닌 듯했는데…….
‘딱히 생각나는 이유가 없단 말이지.’
도지완의 버킷 리스트 중 ‘아무나 황제 감금, 아니 황제 입원을 시켜 지켜보는 것’이 있었다거나? 그런 멍청한 이유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야 어쩔 수 없는 것이 도지완의 지금 행동은 이해하기도 힘들뿐더러 그가 평소에 보여 주던 모습과 억만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타적인 사람이었으면 정말로 나를 불쌍히 여겨 입원시킨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이타와는 먼 사람이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일단 여길 나가야 해.’
도지완이 왜 이러는지 궁금하긴 했어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침묵하는 도지완을 바라보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