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도지완이 저를 대체 왜 내쫓은 걸까요. 실수 때문이라기엔 그 일로 그렇게 화난 거 같지도 않던데.”
“아, 몰라 몰라.”
나는 제대로 된 의견을 나누고 싶었지만 사채업자는 귀를 막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좀 성의 있게 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나는 공짜로 일 안 해. 내가 머리 쓰는 것도 일이야!”
그 말에 조금 서운했지만 나는 이해했다. 우리 사이엔 신뢰나 애정 따위는 없었고 그저 채무뿐이었으니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일에 끼어 무료 봉사 시키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걸 깨달은 내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안에 있던 돈을 내밀었다.
비상금 조로 가지고 있던 30만 원을 내밀자 사채업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젠장. 먹으면 탈 날 것 같아.”
돈을 왜 먹어? 미친놈인가? 당연히 탈 나지. 나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재촉했다.
“이거 받고 머리 좀 써 줘요. 도지완을 어떻게 구슬리면 좋을 거 같아요?”
빨리 받아 가라고 지폐를 든 손을 흔들어 팔락거렸지만 사채업자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결국 사채업자는 소리를 지르곤 도망가듯 떠나갔다.
“몰라! 나한테 묻지 마! 젠장……! 난 몰라! 도지완이 너한테 돈을 쥐어짜 내 오라고 하면 난 그렇게 할 거니까 미리 돈이나 마련해, 이 멍청아!”
사채업자가 말을 끝낼 때쯤에는 그는 이미 골목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나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하…….”
신이시여, 망했어요. 아무래도 임무는 실패한 것 같아요. 눈물이 다 났다.
사채업자와 대화 뒤로도 머리가 뜨거워질 만큼 고민해 봤지만 어떻게 해도 도지완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뭘 조건으로 회유하려고 해도…….’
도지완은 완벽했다. 돈도 많고 제 뜻대로 안 되는 게 없었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제시한다 쳐도 그가 코웃음 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차라리 내 신성력에 관심이 있으면 편할 텐데…… 그는 내 신성력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칼처럼 쳐 내지.
힐러 시켜 달라고 졸랐다가 해고당했던 것이 떠오르자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만 있으면 안 돼.’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순간에도 마왕의 추종자들이 도지완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생각을 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결심했어.”
자연스럽게 곁을 지킬 수 없다면…… 강제로 곁을 지키는 수밖에.
나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학교에 가고 일할 시간이라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홀로 그 공원에서 중앙에 선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거미줄같이 가늘게 뽑힌 신성력이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갔다. 어느 순간쯤 되었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자연이여. 나를 도와주세요.」
얼마 되지 않아 거미줄처럼 퍼진 신성력에 반응이 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빙긋 웃었다.
이제 도지완은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네, 모두 수고하셨어요.”
어시 팀에서 지호가 빠졌어도 공략은 계속되었다. 이번 던전의 마지막 공략까지 마치고 클리어를 끝낸 길드원들은 서로서로 인사했다.
몇몇은 또다시 주어질 휴식에 한잔하자는 약속을 하면서 지완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지완과 회식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길드장님.”
아쉬운 얼굴로 지완을 보내 주는 길드원들을 뒤로한 채 지완은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피곤하군.’
공략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도 피곤했다. 항상 머리 한편에 있는 누군가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또다시 떠오르는 얼굴에 지완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얼굴이다. 지완이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몰고 있는데, 그의 차 보닛 위로 검은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흠칫 놀란 지완이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이 입을 열었다.
“까악.”
보닛 위로 떨어진 것은 까마귀였다. 어디 하나 검지 않은 곳이 없는 까마귀는 고개를 돌려 반질반질한 눈으로 지완을 바라보았다.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는 그 모습에 지완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리 가.”
차창 근처에서 손을 흔들며 까마귀를 내쫓으려 했지만 까마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지완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볍게 뛰어 창 근처로 다가와 더욱 노골적으로 지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황당한 모습에 지완을 헛웃음을 뱉다가 와이퍼를 움직여 까마귀를 내쫓았다. 와이퍼마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것은 통했다.
“까악.”
나직한 울음소리를 뱉은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별 황당한 일을 다 겪는군, 하며 어이없어하던 지완은 곧 더 어이없는 상황을 직면했다.
“……미쳤나?”
달리는 자신의 차 옆으로 나란히 날아가는 까마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까마귀는 자신을 내쫓은 지완을 원망하듯 다시 까악, 하며 울었다. 왜 일을 귀찮게 만드냐는 타박 같았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처음이었던 지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제 옆에서 같이 나는 까마귀를 모른 척하는 게 다였다.
‘질리면 알아서 떠나겠지.’
그저 이것이 동물 특유의 호기심으로 생긴 일이라 치부했다. 그게 아니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사람을 따라다니는 까마귀라니.
스스로 생각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 지완은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 일들은 우연의 산물이라면서 말이다.
빨간불이 되어 정차한 지완은 느껴지는 시선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 멈춰서인가 아니면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건가, 같이 날던 까마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 시선은 어디서 느껴지는 것인가? 지완은 곧 알게 되었다. 밖에 돌아다니는 행인들이 멍하니 자신의 차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차가 좋은 차긴 하지만 저렇게 넋 놓고 볼 만한 차는 아닌데?
의아했지만 내려서 물을 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많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신호가 바뀌자 지완은 다시 차를 몰았다. 얼마 안 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다다랐다. 부친과 살던 본가에서 나와 얻은 집이었다.
거듭되는 피곤함에 어서 안에 들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지완은 주차를 마친 후 차에서 내리다가 흠칫 놀랐다.
그의 차 지붕에 열댓 마리의 까마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들은 지완이 그들을 바라보자 앗, 들켰다! 라는 얼굴을 하고서는 파다닥 날아올랐다.
“하…….”
행인들의 시선은 이것 때문이었나? 지완은 황당했다. 별 이상한 날도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헛웃음을 흘린 그는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다 문득, 지완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아파트는 꽤나 큰 단지라 단지 내를 산책하는 반려동물들 외에도 길고양이 같은 야생 동물이 종종 보이곤 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숨어 다니던 야생 동물들이 오늘은 이상하게 시선에 자꾸 잡혔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모두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쯤 오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상한 생각을 다 하는군. 많이 피곤한가 봐.’
지완은 그저 이 모든 것이 피곤해서 예민해진 것이라고 치부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파트 라인 안으로 쏙 들어간 그는 미리 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주민과 마주쳤다.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하…….”
산책을 마친 건지 강아지와 함께 서 있던 중년 여성이 지완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녀에게 마주 인사하던 지완의 시선에 강아지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그녀의 강아지는 목을 높게 쳐든 상태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까 까마귀의 눈빛이 생각나 지완은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중년 여성이 이상하게 여길까 지완은 서둘러 인사를 마쳤다.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인사만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지완과 여성이 각각 47층과 25층을 누르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25층에 도착했다. 원하는 층에 도착한 여성이 눈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 할 때였다.
“……구름아?”
아마도 강아지의 이름일 단어를 내뱉으며 여성이 그녀의 강아지를 재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간 여성과 다르게 강아지는 지완의 곁에 서서 빤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 얘가 왜 이래. 구름아! 형이 그렇게 좋아? 형아랑은 다음에 놀자, 응?”
“…….”
“아휴, 참! 얘가 오늘 왜 이런담!”
당황한 그녀가 꿈쩍 안 하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선 멋쩍은 얼굴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강아지는 그때까지도 그녀의 품에서 빤히 지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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