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지완은 기분이 정말 이상해졌다. 까마귀부터 시작하여, 단지 내의 야생 동물, 그리고 주민의 애견까지……. 동물들이 그를 감시하듯 빤히 지켜보는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니 기분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집에 들어갔는데 까마귀나 다른 새들이 베란다에 다닥다닥 매달려 있을까 긴장하며 들어간 지완은 깨끗한 베란다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일들인가 보군.’
다행이었다. 동물들이 자신의 집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면 아무리 지완이라도 까무러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지완은 가정부가 채워 놓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몸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지완은 웬만해선 쓰레기 같은 정크 푸드나 배달 음식은 삼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저녁 뉴스를 보면서 와인 한잔을 한 그가 늦어진 시간에 잘까 싶을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깥을 내다보았는데 동물들이 모여서 내 집을 올려다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제가 한 생각이 웃겼는지 피식 웃으면서 지완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 꺼진 베란다 안에서 그가 바깥을 내다봤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동물들이 모여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에 지완이 뒤돌려는 순간 그의 시선에 누군가가 잡혔다.
“……신지호?”
후드 티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자신의 집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지호였다.
헌터인 그는 시력이 좋았고, 취할 만큼 술을 마신 것도 아니라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신지호가…… 여기 왜?’
지완은 당황해하면서도 몸을 절로 움직였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 뛰어내리듯 계단을 내려간 그는 지호가 서 있던 곳에 당도했다.
“……어디 있지?”
그러나 지호는 보이지 않았다. 얼떨떨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저 멀리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지호를 발견했다.
“신지호!”
그의 부름에 깜짝 놀란 지호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뒤쫓으려던 지완은 멈춰 섰다.
‘따라가서, 뭐 하려고?’
지호가 왜 자신의 집 앞에 나타났는지 모른다. 해고한 것에 대해 억하심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해코지할 성격이 아니기는 했지만 혹여 해코지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지호는 D급이니 S급인 도지완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뭔진 모르겠지만 저러다 말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지호는 집요했다.
지완이 가는 어느 곳에서든 그가 보였으니 말이다.
* * *
나는 도지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물론 24시간 따라다니며 감시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천사의 몸이라면 모를까 인간인 신지호의 몸으로는 무리였으니까.
‘자연 친구들이 도와줬지.’
신성력은 세상의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신성력을 통해 부탁을 하는데 세상의 일원인 자연이 안 된다고 거절할 리는 없었다.
식물, 동물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를 도와 도지완을 감시했다.
그가 지금 무얼 하는지,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나는 집 안에 누워 모든 것을 보고받았다.
『그 인간이 지금 밥을 먹고 있대.』
음, 밥을 먹을 시간이긴 하지. 그들은 그걸로도 모자라 반찬은 무엇이고, 도지완이 몇 번을 씹는지까지 일일이 보고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내가 그들의 도움에 인사하자 바람은 까르르 웃으면서 흩어졌다.
그가 지금 밥을 먹는다니…… 밥을 먹다 말고 외출할 것 같진 않으니 나도 점심을 먹어 볼까? 하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삼각김밥을 꺼냈다.
이 아파트에 살지 않는 내가 밥을 차려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나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가장 맛있는 전주 비빔 삼각김밥을 뜯어서 야금야금 먹고 있으니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느낀 내가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자 저 위에서 물끄러미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도지완이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삼각김밥을 우걱우걱 씹었다.
김밥을 끝까지 다 입에 넣었을 때 도지완이 몸을 돌렸다. 그냥 무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벌떡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내 예감이 맞았는지 저 위에 올라가 있던 도지완이 1층으로 내려와 두리번거렸다. 100퍼센트 나를 찾는 몸짓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를 발견한 도지완이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러자 뒤에서 도지완이 외쳤다.
“신지호!”
나를 부르는 그를 무시한 채 달리니 또다시 도지완이 외쳤다.
“너 미친놈이야?”
나는 맹세코 미치지 않았다. 그저 임무를 열심히 할 뿐. 그렇게 조금 더 거리를 벌리고 뒤를 돌아보니 도지완은 가만히 서 있었다.
따라올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다시 차 뒤에 숨어 그를 바라보자 허탈하게 웃은 그가 몸을 돌려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이 지나도 그가 다시 아파트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까 그의 집을 올려다보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제…… 3일째인가?’
내일이면 도지완이 다시 새 던전 공략에 나선다. 던전 안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기에 자연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호 형이 있어 그 안의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시 팀에도, 길드원 중에도 새로 충원된 사람이 없다고 했지. 그러면 던전 안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어시 팀이나 길드원은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선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새 인원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던전 안에서 마왕의 추종자들이 도지완에게 접근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도지완이 바깥에 나왔을 때였다.
‘천계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도지완을 회개시키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생각 외로 도지완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소 이기적이고 정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그가 악하게 변한 이유는 마왕의 추종자들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접근하는 마왕의 추종자들을 모두 때려잡아서 도지완을 마왕으로 만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이미 틀어져 버렸고, 도지완이 다시 나를 받아 줄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목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도지완을 따라다니며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의심이 되는 사람들을 암살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도지완이 내일은 던전 공략에 나서니 오늘만 버티면 돼.’
힘내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 도지완의 집을 올려다봤다.
그 이후로도 도지완은 나에게 사람을 보내 나를 내쫓으려고 했다. 경비가 쫓아왔을 때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세상사에 무지한 나지만 그래도 경찰이 개입하는 순간 일이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 도지완이 던전에 들어가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쉴 수는 없지만.’
도지완을 감시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는 나의 고난을 해결해야 했다. 나의 고난은 즉, 돈이었다.
신성력만 있으면 살 수 있었던 천계와 다르게 인간계는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했다. 오죽하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간다는 표현이 있을까?
‘천사였을 땐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인간은 다르지…….’
거기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빚까지 지고 있었으니……. 그 빚의 채권자가 도지완으로 변했다지만 내 처지는 변함이 없었다.
살아가면서 빚도 갚고 도지완까지 감시하려면 돈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필요했다.
‘……도지완네 어시 활동할 때가 좋았는데.’
도지완을 감시하는데 회사에서 돈까지 줬다. 쉬는 며칠을 제외하면 항상 도지완과 붙어 있으니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는데…….
아쉽지만 이미 잘린 것, 되돌릴 수도 없었다.
‘간단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게 되면 근무 시간에 얽매여서 도지완에게 신경을 쓸 수 없을 테니 아르바이트 자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적법한 아르바이트로는 푼돈밖에 벌 수 없으니……. 나는 결국 큰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 대해 잘 알 만한 사람을 불렀다.
“뭐야. 미친. 왜 불러? 다시 회사 들어간 거야?”
“아뇨. 그건 아닌데…… 일자리가 필요해서요.”
당연히 그 사람은 사채업자였다. 좋은 인맥은 아니었지만 나와 신지호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그가 최선이었다. 돈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
사채업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이 굳었다. 일자리 맡겨 둔 것도 아닌데 내놓으라 하여 기분이 상했나 미안해지려는 찰나 그가 나에게 속삭였다.
“드디어 광산에 들어갈 생각이 든 거야?”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
펄쩍 뛰는 나를 불퉁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채업자에게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근무 시간이 자유로우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일자리를 말이다. 그걸 들은 사채업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미친놈.”
그러고는 바로 나를 미친놈이라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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