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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34화 (34/88)

34화

‘도망간 건가?’

그 여자가 도망갔든 아니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창백한 얼굴로 쓰러진 도지완이 심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나는 그를 끌어안고 깨우려고 노력했다.

“이봐요! 도지완 씨! ……길드장!”

그의 뺨을 두드리며 깨워 보려고 했지만 흐리멍덩하게 변한 도지완의 눈에는 어떠한 것도 잡히지 않았다.

“큰일인데?”

그의 몸 안에는 여자가 쏟아부은 마기가 가득했다. 배 속에 자리 잡은 마기는 아직 온몸으로 퍼지지 않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의 단전 위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퍼부었다. 그러나 배 안에 든 마기는 똘똘 뭉쳐서 들어오는 신성력을 튕겨 내기 시작했다.

도지완의 숨이 점점 가늘어졌다.

“도지완 씨! 야! 정신 차려!”

“…….”

“야 도지완! 길드장! 아이씨……. 형님!”

그때 움찔 반응이 보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나는 재차 그를 불렀다.

“형님……! 지완 형님! 정신 차려요!”

그가 정신을 차리고 내 신성력을 받아들여야 마기를 몰아낼 수 있었으니까. 내가 거듭 부를수록 그의 흐리멍덩했던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형님! 정신이 들어요?”

“이제야…….”

“정신이 들었어요? 이제 정신 차리고 제가 보내는 기운을 배 속으로 받아야 돼요. 알겠죠?”

“…….”

“형님? 형님……! 야! 도지완!”

겨우 깨워 놨더니 다시 픽 쓰러져 버리는 도지완을 부르짖어 봤지만 정신을 잃은 도지완은 내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가 아예 정신을 잃자 똘똘 뭉쳐 있던 마기가 스멀스멀 그의 몸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정신 차리라고!”

철썩! 철썩! 뺨을 치면서 도지완을 깨워 봤지만 그는 깊게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리고 마기는 어느새 가슴께를 넘어 어깨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큰일 났다.’

이러다가 도지완이 마기에 잠식당하게 생겼다.

‘몸 밖에서 신성력을 주입해 봤자 소용이 없어.’

밖에서 신성력을 주입해 봤자 단단해진 마기가 몸 바깥으로 다시 신성력을 튕겨 냈으니까.

결국 내부에 주입해 안쪽부터 무너트려야 했다.

“……제가 원해서 하는 거 아니에요?”

“…….”

“안 하면…… 도지완 씨가 죽을 수도 있어서 하는 거라고요!”

“…….”

“알겠죠? 나중에 뭐라고 그러면 안 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숙였다.

내 시야에 도지완의 얼굴이 점점 가득 차더니 곧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았다.

도지완을 성추행하고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 안에 자리 잡은 마기를 신성력으로 몰아 내기 위해선 입으로 신성력을 주입하는 게 제일이었으니까.

벌어진 도지완의 입술 사이로 나는 숨을 불어 넣듯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내 신성력은 그의 목을 타고 내려가 올라오는 마기를 막아 냈다.

처음에는 마기의 양이 더 많아 신성력은 올라오는 마기를 막아 내느라 급급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쏟아붓자 결국 마기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계속 도지완의 몸에 마기를 둘 순 없어.’

하지만 어디로 배출할 수도 없었다. 마기는 배출한다고 흩어져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연기처럼 뭉쳐 있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100% 그 사람은 미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나?’

마기를 없애려면 신성력을 가진 상대가 흡수해 몸에서 신성력으로 녹여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천사 시절에는 가끔 했던 일이어서 하는 방법은 잘 알았지만…… 문제는 이 몸이 천사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성력이 충만한 천사 몸에서는 당연히 마기를 흡수하면 그대로 녹아내렸지만 신지호의 몸은 자칫하면 마기에 잠식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몸을 아끼자고 도지완의 몸에 마기를 놔둘 순 없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도지완은 마기에 침식당하는 순간 세계를 위협하는 마왕이 될 테니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천천히…….’

벌어진 입으로 계속 신성력을 불어 넣으면서 나는 마기를 천천히 빨아 당겼다.

내 몸으로 들어가면 소멸되는 걸 아는 듯이 마기는 똘똘 뭉쳐서 나에게 오는 것을 거부했지만 거듭 부어지는 신성력에 결국 머리채가 잡혔다.

천천히 끌려오는 마기가 내 목구멍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으…….”

기분 나빠. 거기다 고농도의 마기인지 속이 쓰렸다. 신지호의 몸이 과연 이 마기를 버텨 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나는 마기를 계속 빨아 당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지완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반대로 나는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들어오는 마기를 신성력으로 녹여 내면서 계속해서 흡수했지만 들어오는 마기 양이 많아서 좀 벅찼다. 그래도 꾸준히 흡입하니 지완의 몸에 있던 대부분의 마기가 내 몸으로 넘어왔다. 곧 끝이 보이려는 순간이었다.

“흡……!”

갑자기 도지완이 눈을 번쩍 떴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얼굴을 떼려고 하자 도지완의 손이 내 뒤통수를 잡아챘다.

“으븝……!”

아까보다 더 깊게 입이 맞춰졌다. 깜짝 놀란 내가 신성력을 주입하며 마기를 빨아들이는 걸 멈추자 마기 대신 내 입에 기어들어 오는 것이 있었다.

‘혀…… 혀!’

혀가! 왜! 더욱 깜짝 놀라며 도지완을 밀쳤지만 도지완은 벽이 된 건지 밀쳐지지 않았다. 다급하게 주먹으로 퍽퍽 쳐 봤지만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으……. 핫……!’

고개를 비틀어 도망갔다 싶으면 다시 입이 틀어막혔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도지완의 모습에 내가 체념하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제정신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눈빛이 흐릿한 것이 제정신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맘대로 해라.’

체념한 채 도지완에게 안겨 입술을 쭙쭙 빨리고 있는데 배 속이 후끈해졌다. 갑자기 나타난 몸의 이상에 왜 이러나 싶었는데 도지완에게서 빨아들인 마기 탓이었다.

어째서?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요동치던 마기들이 다시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가 도지완의 몸으로 기어들어 갔으니 말이다.

“으브븝!”

기껏 빨아들였더니 다시 돌아가는 마기에 내가 깜짝 놀라며 버둥거렸지만 도지완은 두 팔로 나를 더욱 옥죄일 뿐이었다.

황당함에 펄쩍 뛰었다. 머리가 돌아 가지고 내 입술을 빠는 줄 알았더니 기껏 빼놓은 마기를 되찾아 가려고 이러는 거였구나! 나는 부르르 떨었다.

‘역시 마왕의 씨앗…….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구나!’

그렇다고 눈앞에서 다시 빼앗길 수는 없었다. 나는 양팔로 도지완의 목을 단단히 감싸 안았다.

틈 하나 없이 단단히 입술을 붙이고 연어처럼 돌아가려는 마기를 붙잡아 당겼다. 이미 단단함이 깨져 실처럼 풀린 마기였기에 더 이상 신성력을 주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이제는 줄다리기하듯 도지완에게 끌려가는 마기를 당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입 안에 들어찬 혀를 밀어내며 마기를 빨아당기자 도지완이 히죽 웃었다.

그 반응이 심상치 않았지만 무시하고 있으니 내 뒤통수를 잡은 손이 스멀스멀 기어 내려왔다.

목덜미를 지나 척추를 따라 손이 스르륵 움직이니 등골이 쭈뼛 서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하…….”

그에 도지완이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한숨을 뱉었다. 내 허리께를 더듬던 손이 더욱더 아래로 내려갔다.

“으읍……!”

도지완의 커다란 손이 내 엉덩이를 콱 움켜잡았다.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몸을 떼자 흐리멍덩했던 도지완의 눈이 번쩍번쩍 빛이 났다.

“신지호…….”

도지완의 목에서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네가 먼저 키스한 거야.”

도지완이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꾹 누르더니 훔쳤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도지완이 다시 내 머리를 움켜쥐고는 자신에게 잡아당겼다. 이번엔 입술이 아니라, 내 눈, 코, 볼 같은 곳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그냥 살과 살이 닿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 왔다.

‘아, 근데 아직 마기를 다 빨아들이지 못했는데.’

걱정이 되어 도지완의 배 위를 더듬었지만 미량의 마기는 아까와 달리 잠이 든 것처럼 잠잠했다.

도지완은 내가 배를 만지자 작게 웃었다. 얼굴에 닿던 그의 입술이 점점 움직여 내 귓불에 닿았다.

“네가 먼저 키스한 거야.”

도지완이 다시 한번 속삭였다. 내가 먼저 한 게 그리 열받았나 싶어 나는 눈치를 보았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좀 봐주려나 싶어서.

다행히 목덜미에 키득키득 웃는 도지완의 숨결이 닿는 걸로 보아 그는 그리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변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내 목덜미에 입술을 비벼 대는 도지완은 나를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에게 가만히 안겨 언제 벗어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윽……!’

버겁게 빨아들였던 마기가 배 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성력으로 꼭꼭 눌러 두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반발력이 꽤나 심했다.

“신지호?”

반발력을 이겨 내려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도지완이 의아해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그 말보다 내 입에서 더 빠르게 뿜어져 나온 게 있었다.

“우웩!”

검은 피가 울컥하고 내 입에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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