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도지완이 나를 잡고 있는 탓에 도지완의 셔츠가 내가 토한 피로 흠뻑 젖었다.
도지완의 얼굴이 단숨에 창백해졌다.
“신지호!”
“죄, 죄송……. 쿨럭!”
옷을 더럽혀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그때 다시 구역질이 치밀었다. 다시 피를 뱉어 내는 나 때문에 도지완의 가슴팍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정신 차려, 신지호!”
“전, 괜찮…….”
“신지호!”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귓가에 도지완의 고함이 들렸지만 나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지완은 한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 입에 입 맞추고 있는 지호를 봤을 때는 제가 미쳐서 헛것을 보나 싶었지만 곧 현실인 걸 알고 오른 열 때문에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지호가 제 몸에 피를 토했을 때는 너무 놀라 심장이 잠시 멎었다.
“신지호! 정신 차려!”
지호는 쓰러진 와중에도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하다 혈액 부족으로 죽거나 혹은 그 토한 피 때문에 질식해 죽는 게 아닌가 두려울 정도였다.
지완은 쓰러진 지호를 안아 든 채로 리셉션홀로 돌아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지호를 안고 있는 지완을 보며 모두가 깜짝 놀라 수군거렸다.
“구급차!”
그가 외치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 몇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기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로비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지호를 안은 채 지완은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자 위에서 전달받았는지 호텔 스태프 몇이 그에게 따라붙었다.
곧 구급차가 도착하자 지완은 바로 구급차에 같이 올라탔다. 방금 벌어진 일이 실감이 나지 않아 머리가 멍했다. 응급실에 들어간 지호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길드장님!”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건지 지호 근처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에게 지완의 비서가 달려왔다. 그제야 지완은 그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온통 피투성이인 지완을 보고 창백해졌지만 지완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자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비서를 보자 현실감이 느껴진 지완은 그제야 천천히 기억을 돌려 봤다.
‘민채은…… 그 여자.’
민채은이 조용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 해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그녀가 이상한 소리를 했고, 그러고는…….
‘얼굴에서 이상한 연기 같은 게 나왔지.’
독인가 싶었는데 독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정신을 잃었으니 딱히 좋은 것은 아닐 터였다.
“민채은…….”
“네?”
“민채은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 나와 같은 대학 출신이고…… 신방과를 나왔고 아나운서라고 했어요.”
“예…….”
“그리고 임재후도. 영일실업 셋째도 조사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서는 그의 말을 듣고 알겠다 대답하고선 자리를 떠났다. 아마 그가 시킨 일을 맡길 사람들에게 전화하려는 것이리라.
‘임재후가 민채은을 소개했지. 그 둘의 뒤에 누가 있는 걸까?’
아마 지호가 쓰러진 것도 민채은이 그에게 쏟아부은 연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의 치유 능력을 아는 그였으니, 민채은의 연기가 지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자 능력을 쓰다가 힘이 다한 게 아닌가 했다.
그저 질투심 좀 유발해 보겠다고 자신에게 위험한 사람인 것도 모른 채 틈을 보였다가, 지호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자 지완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평소처럼 무시할걸. 눈도장 찍고 그냥 바로 지호를 끌고 바깥으로 나올걸.
하지만 지호는 이미 쓰러진 뒤였기에 후회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
한동안 홀로 자책하고 있던 지완은 지호의 담당의로 배정된 의사가 다가오자 몸을 일으켰다.
“검사는 어떻습니까? 선생님.”
“에…… 그게.”
담당의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그걸 본 지완의 심장은 돌이 들어간 것처럼 덜컥거렸다.
설마 상태가 심각해서 말하기 곤란한 걸까? 의사가 머뭇거리는 그 잠깐 사이에도 지완은 애가 탔다.
“검사 결과 문제가 없습니다.”
“……네?”
지완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렇게 피를 쏟았는데 문제가 없어?
‘……이상하게 기시감이 드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미약한 영양실조 증세가…….”
또 영양실조! 지완은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예전에 함정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똑같았다.
“피를 토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단 말인가요?”
“네. 그만한 출혈이 있다면 분명 내장 어딘가에서 열상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모든 검사를 해 봤지만 내장은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허…….”
“환자분은 입원실로 옮기겠습니다. 그냥 잠든 것이니 얼마 안 가 깨어나실 겁니다.”
의사는 자기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지완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지완이 알겠다고 하자 의사는 가 버렸다. 지완의 눈이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지호에게로 향했다.
“……너 진짜 뭐 하는 놈이야.”
죽을 것처럼 피를 토해서 죽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고작 영양실조라니.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완은 아리송했다.
* * *
지완의 모든 일정이 올 스톱되었다. 원래라면 오늘 던전 공략을 하러 들어가야 하지만 쓰러진 지호를 두고 갈 수 없었던 지완은 공략을 미뤘다.
지호의 병실에 앉아 비서에게 보고받던 지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죽었다고요?”
“예. 어제 길드장님께서 호텔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임재후 씨도 호텔을 나섰는데 하필 가던 도중 강변북로에서 5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비서가 건네준 태블릿엔 비극적인 기사가 떠 있었다. 차가운 눈으로 기사를 훑는 지완에게 비서가 이어 말했다.
“……하필 세 번째 차량이라 앞뒤로 뭉개진 탓에 시신도 온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은 난리가 났다고 하였다. 모친은 상황을 전해 듣자마자 실신까지 해 장례식이 연달아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돈다고 했다.
‘꼬리 자르기인가.’
지완을 공격한 민채은을 소개해 준 사람이 임재후였다. 그녀가 지완을 공격하리란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들의 뒤에 있을 배후자에게 닿을 선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민채은 말입니다.”
비서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가 다가와 태블릿을 슬라이드하자 낯선 여자의 얼굴이 떴다. 비서는 그녀가 민채은이라 말했다.
“이 사람 현재 미국에 있습니다.”
“미국?”
“네. 유학 중이라고 합니다.”
지완이 허탈하게 웃었다. 죽은 임재후가 소개해 준 사람은 민채은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끊겨 버린 선에 어이없어 웃던 지완이 비서에게 물었다.
“어제 제가 가고 나서 사람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혹시라도 나쁜 말이 돌까 지완은 두려웠다. 자신의 평판 때문보다는 자신의 일에 휘말렸을 뿐인 지호에게 악영향이 있을까 봐서.
지완은 사람들의 악의를 받는 것에 익숙했지만 지호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처음엔 다들 무슨 일인지 몰라 웅성거리긴 했지만, 사람들을 써 길드장님께서 암살될 뻔하셨고, 그걸 신지호 씨가 막다가 그렇게 된 거라 하니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가요? 잘됐네요.”
“암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회장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아끼는 손주가 암살될 뻔했다는 소식은 도문그룹 회장의 분노를 일으켰다.
완전 자신을 물로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농담조로 뒷방 늙은이라고 하지만 그는 아직도 도문그룹을 손에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만약 어제 지완이 암살되었다면 그의 입장이 굉장히 우스워졌을 테니, 암살 건은 이제 지완의 문제만이 아니게 되었다.
“곧 가짜 민채은과 임재후 씨가 이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실 겁니다.”
호텔 CCTV로 지완의 동선만 확인해도 범인이 누군지, 그 범인과 관련된 이가 누군지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방해는커녕 도움을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비서의 보고가 끝났겠거니 싶어 나가 보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아,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예전에 맡기셨던 일을 다 마쳤습니다.”
그러면서 자료는 태블릿 안에 있다고 말한 비서는 지완에게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맡겼던 일이란 건 바로 지호의 뒷조사였다.
지완은 태블릿을 조작해 안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를 열어 꼼꼼하게 보았다.
세 군데에서 조사한 거라 중복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아는 것도 반복해서 읽었다.
‘로또가 진짜였군.’
32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세금 떼고 하다 보니 실수령액은 22억으로 줄었지만 말이다.
앞집에 보증금 15억을 맡기고 월세 계약한 계약서 사본도 안에 자료로 있었다. 황당함에 웃음이 났다.
‘빚은 안 갚고 이사를 온 것도 진짜고.’
그 이유마저 황당했다. 지완이 궁금해서 감시하기 위해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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