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도지완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아마 이번 일 때문에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네?”
갑자기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에 긴장이 되었다. 설마 내 정체를 들킨 건가?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른 이유였다.
“본 사람은 없지만 정황상 내가 살아 나온 건 너의 도움 때문이지. 놈들은 대범하게도 사람 많은 곳에서 나를 암살하려 했고, 꼬리를 끊으려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녀석들이야. 거기다 꼬리 끊기로 죽은 사람은 도문그룹까진 아니라도 재벌가의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을 장기짝처럼 쓰고 버리는 놈들이 과연 백도 뭐도 없는 나를 가만두겠냐는 것이었다.
나야 마왕의 추종자들이 나를 찾아온다면 대환영이었다. 그렇다고 떼거리로 몰려오는 건 좀 그랬지만.
“계획을 망친 너에게 보복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리야.”
그렇게 심각하게 말해도 그저 나에겐 심드렁할 뿐이었다. 어차피 놈들과 나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이었으니까.
내 심드렁한 모습을 본 도지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돌아봤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 맞아?”
“예…… 뭐…… 위험한 놈들이 저를 노릴 가능성이 있어 제가 위험하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태연해?”
“뭐…… 저야 잃을 게 없으니까요?”
빚만 23억. 로또 당첨금이 있었지만 지금 사는 집을 빌리는 데 다 썼다. 그것마저 월세였다.
정말 순수하게 가진 건 목숨뿐인 인생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을까. 황당해하던 도지완이었지만 내 말이 틀린 게 없는지 그도 뭐라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중간에 위험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도지완의 차는 무사히 아파트에 들어왔다. 매일 들어오는 것만 구경하다가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차를 멈춘 도지완이 내리자 나도 함께 내려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익숙한 엘리베이터에 타서 집이 있는 층까지 올라온 나는 도지완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럼, 쉬세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4701호였고 나는 4702호였으니까. 우리는 각자 갈 길이 달랐다.
그런데 도지완은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나는 또 왜 저러나 마주 보다가 그냥 먼저 들어가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지문 인식기에 지문을 가져다 대자 삐로롱 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뒤에서 도지완이 불쑥 다가왔다.
“뭐, 뭐예요!”
“왜? 내가 보면 안 될 거라도 있나?”
“아니! 그건 아닌데…… 이거 불법 침입……!”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지완은 현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그의 태도에 조금 열이 받았지만 그간 내가 그를 감시한 것을 봐줬으니 쌤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도지완은 불쑥 들어온 거치고는 아직도 신발장 앞에 멀뚱히 서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뭐 해요?”
왜 길을 막고 서 있어? 난 얼른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기에 도지완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기요? 도지완 씨?”
손가락으로 콕콕 그의 등을 찔렀지만 여전히 그는 미동이 없었다. 그냥 등을 확 밀어 버릴까 고민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너…….”
“예. 들어갈 거면 빨리 들어가세요!”
“너, 이런 곳에서 살았어?”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악한 얼굴의 도지완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서 살았다고?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야?”
“……뭐가요. 이 정도면 깨끗하구먼.”
“더럽고 깨끗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아무것도 없는데!”
그의 말대로 이 집에 있는 것은 내 이불과 베개, 옷가지 등이 들어간 가방, 그리고 전자레인지뿐이었다. 그리고 그 세 개가 거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태였다. 가구조차 없는 이 집은 미니멀 라이프의 끝판왕이었다.
“모델 하우스도 이것보단 북적일 거야.”
그것이 도지완의 감상이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도지완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나를 붙잡았다.
“뭐예요!”
“너, 안 돼. 이런 곳에서 살면.”
“왜! 내가 내 집에서 살겠다는데!”
나는 질질 끌려 집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내가 돈 주고 정당하게 빌린 월셋집인데 왜 집주인인 나를 끌어내는가! 분노를 담고 반항해 봤지만 도지완의 힘은 너무나도 세서 나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현관문이 닫혔고 나는 계속 끌려가 도지완의 집 앞에 다다랐다. 기계음이 살짝 나더니 현관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현관문 안으로 보이는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내 집과 달리 가구로 꽉꽉 찬 거실이었다.
가구들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잘 맞는 데다 도지완의 분위기와도 잘 맞는 집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안에 들어가는 게 부끄러워졌다. 도지완에게 뛰어드는 느낌이랄까?
“신발 벗어.”
미적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도지완이 차갑게 말했다. 부끄러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왠지 이 집이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져 여기에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저 집에 갈래요.”
“저런 곳에 살면 병나.”
나의 소소한 반항에 도지완이 이를 갈았다. 자신이 돈을 얼마나 써서 나를 정상으로 만들어 놨는지 아냐며 으르렁거렸다.
“그 돈 다 토해 낼 거 아니면 잔말 말고 신발 벗어.”
“치사하게…….”
치사하게 돈으로 사람을 겁박한다며 꿍얼꿍얼하며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벗었음에도 도지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자 도지완은 비웃음을 날렸다.
“여기서 놓아주면 도망갈지 어떻게 알아?”
“……저기서 놓아줘도 도망갈 건데요?”
나를 묶고 가두지 않는 이상 나는 두 다리가 멀쩡하므로 언제든 도망…… 아니? 도망이라니! 내가 내 발로 내 집에 가는 게 왜 도망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거 도망 아니거든요?”
내가 단어를 정정해 주려고 하자 도지완이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내가 그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주눅이 들자 도지완이 한쪽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 비웃음당하는 기분에 입술을 쭉 내밀자 도지완이 고개를 숙였다.
난 한순간 그가 나에게 입 맞추는 게 아닌가 싶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의 입술은 내 입술 위가 아닌 내 귓가에 닿았다.
“내 앞에서 사라지는 것 전부가 도망이야. 알겠어?”
그렇게 속삭이며 나의 상식을 바로잡아 준 도지완은 여전히 나를 붙잡은 채로 집 안으로 이동했다.
“여기가 이제부터 네 방이야.”
“……저도 제집에 제 방이 있는데요?”
“그건 집이 아니야. 그러니 그것도 방이 아니지.”
나의 반항을 손쉽게 제압한 도지완이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문가에 기대는 것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모습이었다.
‘방을 구경하라는 뜻인가?’
나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손님용 방인가? 그런데 도지완이 자신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던가? 의문이 들었다.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드냐니. 이보다 더 좋은 방은 신지호의 생과 내 생에선 처음이었다. 천사의 생을 살 때는 방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었으며, 항상 모든 것을 함께했으니까. 개인이란 것이 없는 삶에 자기 방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인간들이 생각하기엔 이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행동해도 불만이 없었다.
신지호도 부친의 사업이 망하기 전에는 꽤 잘살았지만 이런 방은 가지지 못했다.
나는 말없이 침대로 다가갔다. 쌀쌀해지고 있는 탓인지 침구는 두께가 있는 편이었지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살짝 잡아 확인한 손에 감겨 오는 천의 감촉이 말 그대로 비단 같았다.
“마음에 들어요…….”
“그래.”
“근데 진짜 제가 이 방을 써도 돼요?”
신성력이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내가 미니멀리즘을 행한 방에 살다가 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도지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방까지 내주면서 내 건강 관리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내 의문 어린 시선을 받은 도지완은 문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선 나에게 다가왔다.
“말했잖아.”
내 귀밑머리를 살짝살짝 만지며 도지완은 속삭이듯 말했다.
“놈들이 너를 노릴 수도 있다고. 옆집에 사는 것보단 같은 집에 사는 게 더 내가 손쓰기 쉽겠지.”
앗, 그런 뜻으로 나를 들인 거였나? 그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넌 내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렸지.”
“…….”
“내 목숨이 싸지 않다는 걸 명심해.”
그러니 내가 이 방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도지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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