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 *
도지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많았다. 일단 내 생활의 질부터가 치솟아 올랐으니까.
그동안은 감시를 해야 하니 식당에서 진득하게 먹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러니 내 끼니를 해결해 준 것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그곳에서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을 사 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으며 도지완을 감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잘 차려진 식탁 앞에 리얼 도지완이 생생하게! 나는 제대로 된 밥을 먹으면서 도지완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었다.
“왜? 맛이 없어?”
내가 그를 바라보자 도지완은 내 눈빛을 오해한 듯싶었다.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마시써요.”
입에 밥이 그득 들어 뭉개지는 발음으로 대답하자 도지완은 픽 웃었다. 밥을 다 먹고 식기를 식기세척기에 넣어 돌린 도지완은 나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다시 던전 공략에 들어갈 거야.”
암살자로 오인당한 마왕의 추종자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던 도지완이었다. 그러나 계속 던전을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이번에 복귀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도문그룹 회장의 적극적인 비호 덕분이었다.
자신의 생일 축하연에서 도지완이 암살될 뻔하자 대노한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 의심 가는 곳은 전부 들쑤셔 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는 중간 역할을 하다 꼬리 잘리기로 살해당한 사람의 가문도 있었다.
‘장난 아니었지…… 초상집을 더욱 초상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건실한 기업이라 평가받던 영일 실업은 도문그룹 회장의 대노에 부도를 앞두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과 거래를 하려 하지 않는데 버틸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괜한 화풀이가 될 뻔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마왕의 추종자들이 미처 없애지 못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죽은 영일 실업 셋째의 방에서 무슨 사이비 종교의 팸플릿 같은 게 발견된 것이었다.
경찰이 팸플릿에 적힌 곳을 급습했지만 그곳에 있었을 이들은 이미 흔적을 모두 지우고 떠난 뒤였다. 그 때문에 도지완 암살 건은 사이비 종교가 얽힌 사건이 되어 버렸다.
‘세상의 진리교…….’
마왕의 추종자들이 세운 사이비 종교였다. 이 종교를 토대로 그들을 쫓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 내 눈앞에서 도지완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알겠어? 그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으란 말이야.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니지 말고.”
우이씨. 마치 내가 무슨 사고를 칠 거라 단정하듯 말하는 도지완의 태도에 조금 열이 받았다.
내가 그렇게 싸돌아다녀서 자기가 마왕이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걸 모르나? 싶어 강렬하게 노려봤지만 뭘 보냐는 듯 눈에 힘을 빡 주는 그의 행동에 쭈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에이씨…….’
겁먹은 것도 겁먹은 거지만…… 걱정이 되는 게 하나 있었다.
‘조금이긴 해도 아직 마기가 도지완 몸 안에 있어.’
대부분 내가 빨아들여 정화했음에도 마지막에 도지완이 다시 나에게서 마기를 빨아들이는 바람에 소량의 마기가 남았다.
솔직히 크기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테지만, 당사자가 도지완이 되니 그것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마기가 잠잠하긴 한데…….’
돌처럼 굳어 버린 듯 마기는 도지완의 몸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다만 내가 없을 때 움직이거나 하면 손을 쓸 수 없으니 난감했다.
‘저 마기를 어떻게 빼내지…….’
전처럼 입을 맞추어 빼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도지완에게 ‘님 몸 안에 있는 마기 좀 빼내야 하니 입 좀 맞추죠?’라고 하면 도지완은 어떤 반응을 할까?
상상 속에서 ‘이게 미쳤나?’ 하는 경멸 어린 표정을 지은 도지완이 나를 바라보았다.
음. 좋아. 상상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 나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때 도지완이 그 큰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양 볼이 가운데로 몰려 찌부러지면서 입술이 붕어처럼 툭 튀어나오게 된 나는 뾰족한 눈으로 도지완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알겠냐고?”
“을겟다니끄여?”
불퉁하게 알겠다고 말하자 그는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도지완이 이렇게 웃음이 헤픈 사람이었던가? 요새는 익숙해져서 답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몸을 비틀어 도지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짓눌려 살짝 얼얼한 감각이 느껴지는 볼을 손가락으로 조몰락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걱정되면 던전까지 데리고 가든가.”
칫, 칫, 나는 조금의 기대감을 품은 채 도지완을 바라봤지만 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칫, 칫.
* * *
결국 도지완은 다음 날 던전을 공략하러 나갔고 나는 며칠간 그의 집에서 혼자 있어야 했다.
뭐 사실, 도지완이 외출을 금지한 것도 아니었고 진짜 24시간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침에 도우미 아줌마가 와서 청소하고, 반찬이나 밥을 차려 주었다. 아주머니는 웬만해선 2시 이전에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가셨는데, 그때쯤 도지완의 비서가 와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그를 비서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쨌든 나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니까 말이다.
“뭐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없는데요?”
그냥 겸양의 말이 아니고 진짜 필요한 게 없었다. 웬만한 것들은 도지완의 집에 다 있었으니까.
다만 하나 문제가 있다면 정말 진짜로 많이 무료하다는 것이었다.
“근데 좀 심심해요…….”
신지호도 그렇고 나도 딱히 취미가 없었다. 도지완의 집에는 책도 있고 나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게임기도 있는 데다 TV만 틀면 유·무료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예능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인간의 오욕칠정이 아직은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유희거리란 크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즉 질렸다는 소리였다.
내 말에 비서 형은 당황한 눈치였다. 나에게 게임을 해 보지 않겠냐 제안했지만 게임은 너무 어려웠다.
“그, 그럼 같이해 보는 건 어떤가요?”
그래서 한번은 같이해 봤는데 비서 형은 공부만 열심히 한 범생이였는지 나보다 더 게임을 못 했다.
“……죄송합니다.”
“비서 형. 진짜 게임 못 하네요.”
실력이 바닥에 붙은 나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면 심각했다. 그래도 사람은 참 착했다.
‘도지완이 없어도 바쁠 텐데 매일 와서 챙겨 주고 놀아 주려고 노력까지 하다니…….’
정호 형도 그렇지만 비서 형도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공신 중 하나였다. 꼭 천사로 돌아가면 두 사람에게 가호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꺼내 보니 집주인이었다. 월세 내는 날도 아닌데 왜 전화가 왔는지 몰라 받아 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지호 총각.
“네, 어르신.”
- 오랜만이야. 근데 미안하게 됐어.
“예? 뭐가요?”
- 아아, 우리 집이 팔렸거든.
“예?”
집이…… 팔렸다고? 어느 집?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집이 여러 채라고 들었기에 처음에는 어떤 집인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와 관련 없는 집이 팔렸는데 연락을 해 올 리 없었다.
“예? 팔렸다고요?”
- 응, 그렇게 되었어.
“아니 그럼 전요?”
- 새 주인이 계약 내용 변동 없이 계속 유지해 준다니까 그냥 살면 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내쫓기는 모습을 상상하던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했다.
‘잠깐만? 도지완 집에서 사는 데 월세방이 계속 필요한가?’
그냥 월세방을 정리할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또 언제 도지완이 변덕을 부려 나를 내쫓을지 몰랐다. 그 변덕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것이 아닌가?
‘그래…… 월세방은 남겨 두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새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면 집주인이 바뀌었으니 한번 만나 봐야 할까요?”
- 아, 만나긴 쉬울 거야. 앞집 사람이거든.
“예?”
- 총각이 사는 집 앞집 사람. 그 뭐야, 비서라는 양반이 오늘 아침에 도장 찍고 갔어.
전 집주인의 말을 들은 내 시선이 비서 형에게 향했다. 통화 내용이 짐작이 되었는지 비서 형은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전 집주인과 잘 지내라는 말을 나누는 것으로 통화를 마치고도 나는 비서 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길드장님이 하라고 하셔서.”
“……누가 뭐래요?”
그래도 먼저 말을 해 주지 않은 것이 못내 서운했다. 그러나 화는 금방 풀 수밖에 없었다. 이 집 안에서 나와 놀아 줄 사람은 비서 형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비서 형과 며칠을 지내니 도지완이 던전 공략을 끝내고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오셨어요?”
인사하는 비서 형 옆에서 나도 쭈뼛쭈뼛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도지완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뭔가 기특하다는 표정이라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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