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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39화 (39/88)

39화

비서 형은 도지완이 도착하자마자 인계하듯 떠나 버렸다. 씻고 나온 도지완과 함께 밥을 먹는 중에 그가 내 집을 샀던 것이 떠올랐다.

왜 그런 걸 숨긴 건가 하여 못마땅한 기분이 들어 입술이 절로 삐죽 나왔다.

“왜?”

내 못마땅한 기운을 느낀 도지완이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계속 꿍해 있으면 속이 좁아 보이니 나는 툭 뱉어 놓듯 말했다.

“제 월셋집 새 주인이라면서요?”

삐죽. 튀어나온 입술의 이유를 알았다는 듯이 도지완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렸다. 난 대체 그가 왜 내 채무도 사고 월셋집도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사셨어요?”

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샀냐. 묻자 도지완은 덤덤하게 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너 말 안 들으면 계약 취소해 버리려고.”

“네?”

“그러니까 말 잘 들으라는 소리야.”

계약을 취소해 버린다고? 근데 그래 봤자 나는 지금 그의 집에 얹혀살고 있지 않은가?

‘월세 계약을 취소하는 의미가 있나?’

물어보자니 멍청하다는 소리나 들을 것 같았기에 나는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물음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 * *

도지완이 귀환한 다음 날. 비서 형은 도지완의 집으로 찾아왔다.

암살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었을 때에도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도지완이었기에 그 모습은 익숙했다.

“죄송합니다. 전부 꼬리를 끊고 사라졌더군요.”

비서 형이 도지완에게 보고 중인 것은 ‘세상의 진리교’의 일이었다. 제대로 된 보고를 못 하여 안타까운 얼굴을 하던 비서 형은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래도 아예 못 찾은 건 아닙니다.”

그가 찾은 것이 궁금했던 나는 태블릿을 켜는 도지완의 등 뒤로 슬슬 움직였다. 도지완과 비서 형은 딱히 나에게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명 세진리교라고 불리는 이 종교는 일반적인 포교 행위……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포교하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신자들을 늘리는 거죠?”

“링크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이 재생될 겁니다.”

도지완이 링크를 클릭하자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은 교회 같은 장소를 찍고 있었다. 재생되는 동영상을 확인하며 비서 형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세진리교에 대해 조사하던 기자가 찍은 자료입니다. 세진리교는 신자를 무조건 추천으로만 받습니다. 기존 신자가 추천으로 데려오는 거죠. 그런데 그 명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정이 되어 있다라?”

“네. 신자 한 명이 추천으로 가입시킬 수 있는 신자는 둘뿐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적은 인원이었다. 사이비 종교란 것은 원래 사람들을 많이 현혹해 포교할수록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도지완도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듯했다.

“생각보다 많이 적은데…… 이해가 안 되는군요. 명수가 적은 건 뭐…… 선택받은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치고, 추천을 하는 건 좋은데 사람들이 좋다고 따라가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이 종교가…… 기적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기적?”

비서 형의 말에 의아해하던 그때, 마침 틀어 둔 동영상에서 소란이 일었다.

동영상에선 마스크와 중세 시대 로브 같은 것을 입은 괴인이 앞에 앉은 사람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괴성을 질러 소란이 일었던 것이다.

잠시 후 괴성이 멎었고, 괴인이 손을 떼자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기자의 일지에 의하면, 저 남자는 전신 마비 환자였다고 합니다.”

비서 형이 손바닥보다 살짝 큰 다이어리를 펼쳐 내밀었다. 그 안에는 기자가 휘갈겨 쓴 문장과 누군가에 대해 조사한 것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이 동영상의 저 사람입니다.”

비서가 가리키는 자는 영상 속에서 방방 뛰며 오열하고 있었다. 전신 마비 환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유심히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던 도지완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교주가 치유의 이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려운 일인데…….”

이능은 만능이 아니었다. 터진 피부를 붙게 하고 흐르는 피를 멎게 할지언정 끊어진 신경을 이을 순 없었다.

‘이능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신성력, 혹은 마기라면. 신성력은 끊어진 신경을 잇겠지만 마기의 경우는 달랐다. 마기로 몸을 가득 채워 신경을 대신하는 거니까. 그렇게 마기가 가득 차게 되면 사람은 마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로 만들어 장애를 없애는 것이 마기의 힘이었다.

도지완의 중얼거림을 듣고 비서 형은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곧 알 수 있었다.

“영상의 이 사람은 교주가 아닙니다.”

“네?”

“그냥 교인 중 한 명입니다. 교주의 제자 비슷한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이어리 어딘가를 펼쳐 보여 줬다.

집회에 교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교주는 어디에? 설마 우리나라에 국한된 사이비 종교가 아닌 걸까?

기적을 선보인 사람은 교인 중 한 명.

이 종교의 구조.

교주(이름, 나이, 성별, 국적 불명. 정말 존재는 하는가?)

상급 교인-교주의 제자들(교주에게 세례를 받아 기적을 선보이는 자들)

일반 교인(몸을 낫게 하는 기적을 위해 들어온 자들, 혹은 상급 교인들과 같은 힘을 원하는 자들)

“전신 마비뿐만 아닙니다. 시신경이 죽어 버린 자가 시력을 회복하고, 뇌사 판정을 받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하…….”

“그런 힘을 가졌기에 두 명밖에 안 되는 추천인에 들기 위해 재벌들 중에서도 돈을 써서 추천인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합니다. 누구라고 밝혀내진 못했지만요.”

“그런 단체에서 왜 나를 노린 걸까요?”

“글쎄요. 길드장님을 이용해 국내의 영향력을 높일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결국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유란 그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을 알고 있는 나만이 애가 탈 뿐이었다.

‘놈들에게 인간 세상의 영향력은 중요치 않아. 그저 도지완을 마인으로 만들어 마왕의 씨앗을 발아시킬 생각이었겠지.’

그러나 이 진실을 나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원망을 담아 동영상에서 ‘기적’을 선보이는 교인을 노려보았다. 어둡고 흐릿한 영상이었지만 놈들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나는 눈치챘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두워 잘못 보았나 싶을 정도의 미약한 일렁거림이었지만 말이다.

병자들에게 내리는 마기는 그때 도지완이 품었던 마기의 양에 비하면 찔끔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양이 적었다. 양의 아쉬움을 섬세한 마기의 컨트롤로 보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인간계에서 신성력이 제대로 회복 안 되듯 마기도 마찬가지야.’

마기를 그렇게 많이 쏟아부을 수 있을 정도로 마기의 양이 많은 마인이면 마왕의 추종자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을 것이다.

‘……설마 그 여자가 교주일까?’

답답했다. 더불어 여전히 도지완의 몸속에 있는 마기도 신경 쓰였다. 남은 마기는 소량이었지만 내 예상보다 마인들의 마기 컨트롤이 섬세하다는 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그 말은 지금은 돌처럼 가만히 있는 마기가 그들이 다가와 손을 댄다면 팡 하고 터져 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면 도지완은 마기에 절어서 바로 전생의 미친놈이 되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었다.

내가 전생 생각을 하며 우울함에 젖어 있을 때에도 비서 형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일반 교인으로 추정되는 몇 명은 잡았습니다만……. 그들은 전부 세진리교와의 관계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 본 적도 없다며 딱 잡아떼었다고 한다. 몇몇은 관계성을 부정하면서도 그런 대단한 종교가 있다면 국교로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역성까지 냈다고 했다.

“하다 하다 이제 사이비 종교까지 걱정해야 하다니…….”

도지완이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잡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들을 만나서 언령을 쓴다 하더라도 마왕의 추종자들에게 닿지 않을 거야.’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알고 있었다면 영일 실업의 셋째처럼 죽임을 당했을 테니까.

‘괜히 내가 접근해서 나를 의심하게 하면 안 돼.’

그랬다가는 도리어 내가 뒤를 잡혀 버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저 남은 마기를 몰아내어 혹시라도 위험해질 상황을 없애 버리는 게 최우선이야.’

나는 도지완의 몸에 웅크리고 있는 마기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 * *

비서 형도 돌아갔고 이제 도지완과 나 둘만 남았다. 저녁을 먹은 후 평소보다 양치를 열심히 한 나는 기회를 노렸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냔 말이야.’

마기를 없애려면 입술을 꽝! 해야 하는데 저번처럼 의식을 잃은 것도 아닌데 도지완이 순순히 입술을 내줄 리 없었다.

TV를 보는 도지완의 곁에 앉아 그의 입술만 이글이글 바라보며 머리를 굴릴 때였다.

“무슨 일이야?”

“……네?”

“뭐 때문에 그렇게 끙끙 앓는 건데?”

도지완이 인상을 쓰며 물어 왔다. 나름대로 티를 안 낸다고 하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티가 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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