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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40화 (40/88)

40화

“그게요…….”

도지완이 말문을 열어 주었지만 여전히 말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머뭇거리는 내 말을 도지완은 기다려 주었다.

그의 인내심 덕에 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조금씩 더듬더듬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게요……. 제가 그때요…….”

“그때?”

“그…… 길드장님 할아버지 생신 때요.”

나는 마왕의 추종자가 내뱉은 마기를 암살자의 독기로 변환시켜 설명했다.

“……독기를 다 빼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길드장님 몸에 독이 아주, 아아아주 쪼끔 남아 있는데요.”

나는 검지와 엄지가 거의 부딪칠 것처럼 작게 펼쳐 보여 주며 말했다.

“그게 길드장님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제가 그 독기를 빼냈으면 하는데요.”

도지완은 뭘 그리 어려워하며 말하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해 봐.”

하고 싶은 걸 왜 참냐는 듯이 말하는 그의 태도에 답답해졌다. 이능력자들이 능력을 쓸 때는 살짝 접촉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가볍게 손을 내민 것일 터였다.

마기는 그걸로 안 되기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의아해했다.

“왜 그러는데?”

“그게……. 그냥 접촉만으론 힘들어요.”

“그럼?”

“……그때처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던 그가 곧 이해하고는 입을 벌렸다. 황당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가 미쳤냐고 욕설을 뱉을 것을 예감하고 시선을 피했으나 도지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해 봐.”

놀라 돌아보니 재미있다는 듯, 기대감이 서린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감이라니…….’

도지완이 기대할 게 뭐가 있다는 걸까? 아, 혹시 그도 소량 남은 마기를 느끼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마기를 빼내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그러면 그 기대감이 이해가 되었다.

본인의 동의도 받았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사심을 가진 행동이 아니라 거리낄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의 동요가 멈추지 않아 다가가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자 도지완이 손을 뻗어 왔다.

“그렇게 멀뚱히 서 있으면 할 수 없잖아.”

내 팔을 가볍게 붙잡은 그가 살며시 잡아당기자 내 몸은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 그에게로 흘러갔다.

어느새 나는 그의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인 채 앉아 있었다. 반쯤 안겨 있는 상태였다.

‘이건…… 이상해.’

전에 할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쿵쾅쿵쾅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누가 귀 안에서 북을 마구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도지완은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듯이 그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얼굴이 뜨거워 나는 다급하게 양손으로 그의 두 눈을 가렸다.

눈을 깜빡거리는지 손바닥에 나풀거리는 속눈썹의 감각이 느껴졌다. 내 행동이 재미가 있는지 도지완의 입술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늘어졌다.

“눈도 가렸으니, 이제 하는 건가?”

“조용히 해요.”

놀리듯 말하는 그를 타박하자 도지완은 낮게 웃으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은 꼬리가 올라간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용해지자 그에 맞춰 심장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말캉, 하고 입술과 입술이 뭉개졌다. 그러나 입술 틈새가 너무 단단하게 맞물려 있어 신성력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입술을…….”

떼어 달라고 말하기도 전 도지완이 살며시 입을 열었다. 나는 내 모든 신성력을 끌어 올려 그의 입술 틈으로 불어 넣었다.

“하…….”

불어 넣어진 신성력에 도지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분이 좋아서였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노폐물을 몸에 쌓는다. 이 노폐물들이 오래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이 독 때문에 사람은 피곤해지고, 노쇠해졌다.

신성력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화. 독이 된 노폐물들을 지닌 몸을 신성력으로 한 번 쫙 쏘아 주면 과연 어떨까? 이것은 신성력을 무식하게 낭비하는 일이었지만 가호보다 효과가 확실했다.

‘신성력을 몸 밖에서 쏘아 줘도 상쾌함이 하늘과 같은데, 몸 안에서부터 신성력을 쏘아 안쪽부터 채워 나가면 얼마나 상쾌할까?’

부르르 떠는 도지완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불어 넣은 신성력은 어느새 도지완의 깊은 곳까지 닿았다. 그 안에 단단하게 뭉쳐 있는 마기 근처까지 온 것이다.

톡, 톡, 톡, 톡. 가볍게 마기를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마기는 해일같이 밀려오는 신성력에 겁을 먹었는지 점점 웅크렸다.

아까의 단단함이 자갈돌 같았다면, 이제는 철같이 밀도 높은 단단함으로 변했다.

간단하게 빼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는 조금 더 신성력을 세밀하게 다뤄 보았다. 여러 개의 갈래로 갈라진 신성력이 마기를 가볍게 쥐었다.

그럼에도 꼼짝 안 하기에 양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듯이 신성력으로 마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으…….”

제 입술은 왜 깨무시나요? 도지완이 다시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내 윗입술을 깨물었다. 내 허리를 느슨하게 감싸던 팔은 조여들어 나는 어느새 도지완과 배를 맞대고 있었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나는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살짝 치웠다.

최소한 눈을 감고 있거나 멀쩡할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도지완의 눈은 흐릿했다. 그럼에도 눈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는데 어째서 치우자마자 바로 시선이 마주친 걸까? 마치 손바닥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 생각을 마치자 갑자기 아찔해질 정도로 열이 확 올라 나는 다급하게 다시 도지완의 눈을 가리려 했다. 그러나 내 팔을 붙드는 도지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라라?’

갑자기 천장이 핑글 돌았다. 어지러워 쓰러진 게 아니고 도지완이 나를 밀어 눕혔다. 양팔이 붙잡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어느새 나는 천장을 바라보는 채로 소파에 눕혀져 있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멍하니 있으니 뜻 모를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도지완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다시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그러나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접촉이었다.

“으…… 아…….”

입술이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놀라 입을 꾹 다물자 도지완의 치아가 내 입술을 깨물었다. 아픔을 느끼진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입술을 벌리니 그 안으로 도지완이 침입했다.

“흐읍……!”

입 안이 금세 도지완으로 가득 찼다. 그는 내 입 안을 샅샅이 훑으며 내가 내뱉는 숨 하나조차 빨아당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불어 넣는 신성력에 몸을 바르르 떨던 도지완이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서로 반대가 되어 내가 도지완의 숨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흐아……!”

숨이 모자라 고개를 비틀어 도망쳤더니 도지완이 내 턱을 붙잡았다.

“잠……!”

잠깐이라고 말도 못 한 채 나는 다시 입이 틀어막혔다. 숨이 막혀 바둥거렸지만 내 몸을 깔아뭉갠 도지완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흐아…… 하……!”

부족한 산소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와는 별개로 배 안에 달군 돌을 집어넣은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배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열기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뭔가 애달프기도 하고, 다리 사이가 안타까워 허벅지들을 맞대 비비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를 짓누르는 도지완의 몸이 다리 사이에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신지호.”

다리 사이의 야릇한 감각에 내가 움찔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도지완이 내 입에서 입을 떼고선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자꾸 귀엽게 굴래?”

이제야 산소가 들어와 점점 정신이 돌아오는 나였지만 도지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언제 귀엽게 굴었다는 걸까?

그저 헐떡이며 숨 쉬고 싶어! 하며 온몸으로 나타내고 있던 게 귀여웠던 걸까?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도지완의 손이 스르르 내 티셔츠를 파고들었다.

“진짜…… 귀엽게.”

그러니까 대체 뭐가 귀엽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내 중심부를 단단하고 묵직한 것이 내리눌렀다.

꾸욱, 꾹, 도지완의 몸짓에 맞춰 압박감을 주는 그것을 나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달려 있고 나에게도 달려 있었으니까. 심지어 내 것도 그의 것처럼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

예전에 기지개를 켠 내 주니어가 몸에 닿았을 때 싸늘하게 노려보던 도지완이 플래시백 되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겨우 사이가 좋아졌는데…… 또 화나게 할 순 없어.’

변덕스러운 도지완이 이것 때문에 또 변덕을 부려 나를 멀리할 수 있으니 나는 그의 품에서 발버둥 쳐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격렬하게 움직일수록 도지완은 나를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쉬, 왜 그래? 얌전히 있어.”

그렇게 말하며 달래듯 내 얼굴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한 손으로는 느릿하게 내 머리를 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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