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저 이거 못 매요.”
나이가 몇인데 이것도 못 하냐 한마디 들을 거라 생각했다. 풀이 죽어 있는 내 목에서 넥타이를 빼앗은 지완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잘 봐.”
그러더니 손을 휙휙 움직여 넥타이를 매어 주었다.
“봤어?”
“어……. 못 봤는데요?”
사실이었다. 빠르기도 빠르기지만, 내 가슴팍 위에서 움직이는 도지완의 손이나, 가까운 거리 등에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서 집중하지 못했다.
내 말에 도지완은 다시 한번 보여 주겠다거나, 정신 못 차리냐고 타박하진 않았다. 그저 픽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내가 매어 줘야겠군.”
그 말에 이상하게 열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내 이상한 기분을 도지완이 알아챌까 봐 나는 후다닥 그에게서 떨어졌다. 갑자기 물러서는 나를 보고 도지완은 눈썹을 구겼지만 내 얼굴을 보더니 픽 웃었다.
왜지? 왜 웃는 거지? 내가 물어봤지만 도지완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를 탁 밀면서 나를 앞세웠다.
“가자.”
“예에…….”
도지완이 웃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어 합법적으로 도지완과 24시간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해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나는 도지완의 차로 다가가 운전석에 자리 잡았다.
‘어젯밤에 열심히 공부했지!’
보디가드가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요약해 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보디가드가 운전을 했다. 그러니까 나도 운전을 해야 했다.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도지완을 돌아보았다. 도지완은 나를 보고 또 눈썹을 까딱이더니 내 자리를 빼앗지 않고 조수석에 자리 잡았다.
그의 무언의 허락에 나는 안전벨트를 하고 핸들을 붙잡았다. 도지완도 나를 따라 안전벨트를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너…… 운전할 줄 알아?”
“네.”
진짜? 나를 못 믿겠는지 도지완의 눈이 잘게 떨렸다. 나는 그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말했다.
“길드장님 집에 있는 게임으로 몇 번 해 봤어요.”
그때마다 죽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건 게임이라 현실과 다를 테니까 언급하진 않았다.
내 대답에 도지완이 제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대체 왜 나를 못 믿는 걸까? 나는 답답해졌다.
“저 면허도 있어요.”
“……면허가 있다고?”
“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땄어요.”
도지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그 눈엔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면허 따고 난 후 운전해 본 적은?”
“어…….”
“게임 제외.”
“……없어요.”
“내려.”
내 대답을 듣자마자 도지완은 그리 말하고선 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왔다.
나는 안전벨트를 양손으로 붙잡은 채 도지완을 올려다보았다.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진짠데……. 나는 가장 불쌍하게 보일 만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올려다봤지만 도지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내가 테스트를 왜 한다고 했지?”
“……말 잘 듣는 거 확인하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말에 나는 입술을 3cm 넘게 삐죽 내밀고는 순순히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오셨습니까?”
도문 길드 길드장실에 들어가니 비서 형이 이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지완을 쫄래쫄래 따라가던 나는 비서 형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오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왜 저러지?’
뭔가…… 불쌍하다는 듯한? 안됐다는 듯한? 아무튼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일단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책상이 두 개밖에 없었다. 비서 형의 책상과 도지완의 책상이 다였다. 경호를 해야 하는 나에게 책상은 필요치 않지만 어디 앉아 있어야 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그냥 서 있어야 하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런 걸 안 알려 줬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리 와.”
그런 나에게 도지완이 손짓을 했다. 그의 책상 왼편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간이 의자가 아닌, 크고 거대하며 엄청 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말이다.
“앉아.”
그의 말대로 의자에 앉았다. 멀뚱히 있으니 도지완이 나에게 무언가를 넘겼다. 이력서라고 적힌 종이였다.
“이거 써.”
그러고는 한 손에 펜을 쥐여 주었다. 이걸 왜 주나 싶어 바라봤더니 도지완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어디 지원할 때 이력서는 기본 아니야?”
그런가? 음…… 그런 거 같기도? 신지호의 기억에서도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이력서를 지참했었으니까.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드니 거리낄 게 없었다.
이력서라 적힌 첫 장에 기본 인적 사항을 적어 내려가던 중 나는 자격 및 특기란을 보고 살짝 고민했다.
‘자격증…….’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그리고 운전면허증. 몇 개 없는 자격증을 적어 넣은 나는 세 번째 칸에 특기를 적었다.
‘특기……. 치유…….’
따로 생각나는 게 없었다. 다음은 경력 사항이었지만 딱히 경력이랄 만한 게 없었다.
앞장의 빈 공란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민망해진 나는 서둘러 뒷장으로 넘겼다. 뒤에는 자기소개서가 있었는데 조금 이상했다.
‘뭐지?’
뒷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 ]입니다.
나는 [ ]년 [ ]월 [ ]일 생으로 [ ]세 입니다.
나는 [ ]라는 음식을 좋아하고 [ ]라는 음식을 싫어합니다.
내 이상형은 [ ]한 사람이고 싫어하는 타입은 [ ]입니다.
……
……
이런 내용이 가득 적혀 있었다. 평소 보던 큰 공란이 있는 자기소개서가 아니었다.
‘이게 뭐지?’
당황해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비서 형을 바라보았는데 앞에서 도지완이 말했다.
“안 쓰고 뭐 하는 거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도지완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걸 정말 써야 하는 건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빈칸을 채워 나갔다.
‘나는…… 신지호…… 21세, 좋아하는 음식…… 다 좋음, 싫어하는 거…… 가리는 거 없음.’
앞은 쉬웠는데 뒤가 문제였다.
‘이상형? 이상형이 무엇일까…….’
정말 어려운 주제였다. 호감이 가는 사람을 이상형이라고 해도 좋을까? 인간으로 살아온 삶이 그리 길지 않아 이상형을 정의 내리기 힘들었다.
그때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나는 빈칸을 채웠다.
‘내 이상형은…… 착한 사람…….’
“착한 사람?”
적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도지완이 내 자기소개서를 보고 있었다.
“……왜 훔쳐봐요?”
내가 팔로 자기소개서를 쓱 가리면서 그를 노려보자 도지완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이따가 이력서 내면 내가 볼 텐데, 지금 보나 나중에 보나 뭐가 문제지?”
말을 들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런데 순순히 그러라 하긴 또 싫어 머뭇거리자 도지완이 조용하게 속삭였다.
“말…….”
우이씨…… 말 잘 들으라는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쪽이 항상 지는 법.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가렸던 팔을 풀었다.
‘싫어하는 타입…… 열받는데 도지완이라고 적을까?’
못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그렇게 썼다가 도지완이 또 토라져서 싫어하는 사람 밑에서 어떻게 일할 거냐고 할까 봐 그랬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호불호가 없는 나였지만 싫은 사람만은 확실했다.
‘싫어하는 타입…… 마왕…….’
마왕과 마왕의 추종자들 전부 싫었으나 그렇게 적기에는 칸이 모자랐다. 도지완은 내 자기소개서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마왕? 마왕이 사람이야?”
“뭐…… 그렇지 않을까요?”
너야 너. 라고 할 수는 없어서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더니 도지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착한 사람의 기준이 뭐야?”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지 뭐예요?”
별걸 다 물어본다 타박하자 도지완의 입이 닫혔다.
나는 나머지 문항들도 차례대로 채웠다. 비어 있는 앞장에 비해 뒷장은 다행히 꽉 채울 수 있었다.
“다 썼어요.”
이력서를 정리해 내밀자 도지완이 받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또 아까는 열심히 훔쳐보더니 이제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뭐람, 진짜…….’
그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떨떠름해하는데 도지완이 물었다.
“넌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없어?”
“네.”
“진짜? 고용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게 없어? 가령…… 내 이상형에 대해서라든가.”
“네.”
내 대답에 도지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냥 아무거나 물어볼 걸 그랬나? 그렇게 조금 후회하고 있는데 도지완이 말했다.
“내 이상형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야.”
“…….”
“집착하며 따라다니는 사람은 딱 질색이야.”
안 물어봤는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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