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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44화 (44/88)

44화

“아무튼, 자네를 공격한 그 사이비 종교 말일세…….”

세진리교 이야기가 나오자 지호가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장대영은 그가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심각하다고요?”

되묻는 도지완의 말에 장대영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헌터 협회는 말이 협회지 사실 고등급 헌터가 몰린 길드보다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야.”

물론 협회도 고등급의 헌터가 있기는 했다. 그들의 반절은 정의감으로 들어온 것이었고 남은 반절은 정치적인 이유로 들어온 자였다. 장대영은 그중 후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부분이 길드에 들지 못해 들어온 자가 많은 헌터 협회였다. 그나마 공공기관의 형식을 띠고 있어 협회가 헌터들의 분쟁에 나서거나 던전 분배를 해도 ‘네까짓 것들이 왜?’ 하고 반발하진 않았다.

“나만 해도 다른 대형 길드장보다 등급이 낮으니까. 그래도 나 같은 경우엔 정계를 목표로 들어왔지만 다른 하위 등급의 헌터들은 다르지.”

그들은 선택지가 없었다. 들어갈 수 있는 단체 중에서는 그나마 헌터 협회가 대우가 괜찮았기에 선택했으나,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헌터 등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네. 재각성이죠.”

지완은 장대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지호를 힐끗 곁눈질했다. 그는 지호의 치유력을 재각성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지만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어렵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장대영의 말이 길었다. 그는 한숨을 크게 한 번 쉰 후에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이비 종교가 협회 사람들에게 접근한 모양이야. 그것도 등급 상승을 미끼로 말이지.”

지호는 깜짝 놀랐다. 정치가 엮여 있긴 해도 헌터 협회는 악의 편을 들 정도로 썩은 편은 아니었다. 전생에서 마지막에서야 정치 싸움을 그만둘 정도로 정치질이 심하긴 했으나 그래도 끝내는 용사를 도왔으니…….

‘설마, 그때도 마왕의 추종자들이 협회 안에 있었던 걸까?’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도 충격받은 지호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호 혼자 속으로 충격받은 사이 장대영은 계속해서 지완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네 일이 터지기 전일세. 부하 하나가 나를 찾아왔지.”

찾아온 부하는 머뭇거리더니 장대영에게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알잖는가? 헌터라는 것이 생긴 이후 사이비 종교가 더욱 극성맞아졌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조사해 봤는데 조사하면 할수록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 내부 하급 헌터 1/4 정도가 이미 그 종교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천천히 숨통을 조일 생각이었네. 그런데 하필…… 그때 자네 일이 터진 거지.”

지완의 일 때문에 화가 난 도문그룹 회장이 난리를 친 탓에 제일 관련이 깊던 놈들이 도망쳐 버렸다. 남은 것은 아직 은총-마기-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은총을 받았다고 해도 소량으로 받은 사람들이었다.

“자네도 피해자인데 피해자를 탓할 생각으로 부른 건 아닐세. 다만 조심하라는 소리야. 그 은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꽤나…… 괜찮았어.”

괜찮았다는 말에 지호와 지완이 장대영을 바라보자 그는 이마를 짚었다.

“놈들이 도망치기 전 협회의 A급들을 보냈어. 포섭된 놈들이 D와 C급이니까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못 잡은 겁니까?”

“그래.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당하기까지 했어.”

한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그에 협회 헌터들이 동요하는 사이 도망쳤다고 했다.

“당한 헌터는 정신 지배 능력을 가진 헌터였다네. 공격계가 아니라도 A급은 A급인데…… 그 지배를 벗어났다는 것은.”

정신력이 월등하게 높거나, 혹은 급이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은총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말은 그 소리였다.

“조심하게. 우리도 손 놓고 있지는 않겠지만 놈들이 여전히 자네를 노리고 있다면 어떤 방법을 쓸지 모르니까. 그 은총으로 어디까지 등급을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게 올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미끼로 자네에게 못된 짓을 하라 요구한다면 그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자네를 위협할 사람은 많을 테니까.”

헌터에게 등급은 천금을 주고서라도 올리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그걸 미끼로 지완과 똑같은 S급을 포섭해 지완을 해코지한다면 대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사람을 좀 더 데리고 다니는 게 좋겠네.”

장대영이 힐끗 지호를 바라보고는 지완에게 말했다. 저번에는 운이 좋아 D급인 지호로 막았다지만 다음에는 어떨지 모르니 말이다.

지완은 장대영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지완이 침묵하자 장대영도 더 권유하진 못했다. 그저 자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며 말을 줄일 뿐이었다.

장대영의 용건은 그것이었는지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인사를 하고 장대영의 사무실을 나온 지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지호에게 물었다.

“너…… 각성 검사 다시 해 볼래?”

“예? 왜요?”

뜬금없이 묻는 지완의 말에 지호가 둥그렇게 눈을 뜨며 되물었다. 그야 각성 검사는 처음 1회는 무료였지만 재검사부터는 검사 비용이 청구되었다. 그게 소소한 비용이 아니었기에 함부로 재검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지완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말이 지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싶어서였다.

“너 D급 체력 강화계잖아.”

“예…… 뭐 그렇죠?”

“……재각성이란 거 알지?”

지호가 그 말을 듣고 앗, 하는 얼굴이 되었다. 지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체력 강화 계열을 각성한 지호가 치유력을 쓰니 치유계로 재각성을 한 줄 아는 듯했다.

‘큰일인데.’

각성 검사를 다시 해 봤자 지호는 D등급의 체력 강화계로 뜰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재각성이 아니었으니까. 지호의 치유력은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능력이었다.

검사 기기로 신성력이 발각될 일은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완이었다. 그는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항의할지도 몰랐다.

그런 지호의 걱정을 모르는 지완은 재각성을 한 지호가 다시 등급 판정을 받게 되면 더 이상 과거 일에 아쉬워하지도 않을 테고, 사람들의 무시를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겪어 본 지호의 능력은 대단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D급은 아니겠지. B보다는 높을 것 같고…… 잘하면 S도 가능할 것 같은데.’

높은 치유력도 가지고 있고 원래 가지고 있던 체력 강화로 자기 보신까지 가능하다면 S급도 충분히 노려 볼 만했다.

지호가 아무 생각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장대영의 말에 지호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았다면 지완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만 알고 싶지만…….’

지호의 대단한 점은 지완만 알았으면 했다. 지금이야 아무도 모르니까 탐내진 않지만 그의 유능함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그를 탐내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은근하게 유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지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그런 위험을 가졌음에도 지완이 재검사를 제안하는 것은 더 이상 지호가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 것에 슬퍼하거나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였다.

지완은 각성 검사 때의 일을 말하던 지호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전…… 괜찮은데요.”

지호는 이상하게도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귀찮다기보다는 곤란해 보였다. 왜 그런진 몰랐지만 지완은 지호가 혹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재검사를 해 지금보다 등급이 높아지면 정식 계약 시 조건이 좋아질 수도 있어.”

연봉이라든가, 대우라든가…… 그런 것 말이다. 지완은 지호가 당연히 혹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완이 꺼낸 이야기에도 지호는 심드렁할 따름이었다.

거기다 거절하려는 건지 끙끙거리며 무언가를 고심하는 눈치였다.

‘검사비를 걱정하는 걸까?’

검사비가 한두 푼도 아니고 약 500만 원 정도 드니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해 낸 지완이 검사비를 자신이 내겠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냥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쭈굴쭈굴해져서 말하는 지호를 보자 지완은 답답했다. 지호의 속을 모르니 그가 거절하는 이유가 과거에 잡혀 있어서인 줄 알아서였다. 지완이 입을 열기 전 지호가 선수를 쳐 말했다.

“아까 말 들었잖아요……. 여기에 그 사람들이 많다고요.”

지호의 말에 지완이 어디 해 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자 지호는 계속해서 말했다.

“들킨 사람이 전부라고 어떻게 믿어요?”

“흠…….”

“만약 아직 들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길드장님 곁에 있는 제 능력을 알게 되고 그에 대비를 할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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