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 *
던전에 들어가기 전.
지완은 도문그룹 회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한 지완을 반긴 건 회장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을 제외한 친척 어른 모두가 함께였다.
‘하…….’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맞이하는 회장과 다르게 그의 친척들은 지완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를 심적으로 억압할 생각이 가득한 그들을 보면서 지완은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어서 와라 지완아. 몸은 괜찮으냐?”
“어느 정도 쉬었더니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러냐?”
도문그룹 회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완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던 그는, 혹시라도 지완이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거절할까 싶어서 마음이 무겁던 차였다.
“그럼 이제 슬슬 던전 공략을 재개하는 건 어떠냐?”
지완의 암살 미수로부터 2주쯤 지났다. 큰일을 당한 손주에게 강요하기에는 민망한 일이었지만 도문그룹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그 일 이후 몸을 사리자 바깥에서는 루머가 판쳤다.
지완은 자신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으나, 그가 던전 공략을 하지 않자 이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루머가 퍼졌고, 그에 주가가 조금씩 떨어질 기미가 보였다. 그가 나서서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야 해결될 문제였다.
‘공략 재개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긴 하지만…… 다들 평소와 다르게 초조해 보이는군.’
평소에는 지완의 업적을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더니 그가 조금 쉬었다고 겁에 질린 채 우르르 몰려나와 그의 등을 떠미는 꼴이 웃겼다.
그들의 뜻대로 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지완은 회장을 바라보았다.
도문그룹의 모든 일이 지완이 없으면 정지가 될 지경이지만 아직 큰 힘을 쥐고 있는 건 회장이었다.
지완은 이리저리 찢어져 넝마 같은 도문그룹이 아닌 온전한 도문그룹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을 무시하던 자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 말이다.
그걸 위해선 아직 회장에게 밉보여선 안 됐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나가려고요.”
“아이고, 네가 다 계획이 있는데 이 늙은이가 주책없이 재촉하는 꼴이 되었구나.”
“아닙니다.”
지완이 싱긋 웃자 회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껄껄 웃었다.
“그래그래, 이제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점심이나 하자꾸나.”
원래 점심을 이유로 그를 불렀기에 식당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지완이 회장인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하자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
“지완이 너 이번에 사람 하나를 들였더구나.”
그 말을 꺼낸 건 지완의 셋째 백부였다. 그는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때 널 도와줬던 사람이라며?”
그 말에 회장도 관심을 가지는 눈치였다. 지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네. 그때 저를 도와준 친구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길래 보답의 의미로 제가 거뒀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있는 친구는 맞는지 모르겠구나.”
그 말을 꺼낸 건 지완의 둘째 고모였다. 회장의 생일 연회를 열었던 호텔의 주인이었다.
“그때 도와준 사람이라고 해서 생각났는데, 그 사람 우리 알바생이었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지완이 대답을 안 한 채 바라보자 둘째 고모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마치 비웃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날 와야 하는 알바생이 일이 있어 못 왔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리셉션홀 담당자는 모든 알바생이 왔다고 했어. 한 명이 모자라야 하는데 말이야.”
둘째 고모가 지완을 빤히 바라봤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낱낱이 훑었다.
“정말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겠니?”
둘째 고모의 이간질에 지완은 픽 웃었다.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지완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동요하지 않았다.
“글쎄요……. 만약 그 사람이 놈들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꼬리가 끊긴 지금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위험한 게 아니고?”
“위험이요? 하하하!”
둘째 고모의 질문에 지완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설마요. 그런 것에 위험해지기엔 제 등급이 너무 높죠.”
“…….”
“아, 저 말고 높은 등급을 보신 적이 없으셔서 잘 모르시나?”
지완의 무심한 한마디에 둘째 고모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완의 사촌 중에서도 헌터가 있긴 했지만, 지완처럼 높은 등급은 없었다.
그래서 둘째 고모의 자식도 지완처럼 길드를 운영 중이었는데, 등급이 높지 않은 탓에 길드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제 자식이 지완보다 뒤쳐진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둘째 고모가 지완을 죽일 듯이 노려볼 때였다. 회장이 식탁을 크게 한 번 두드렸다.
“어허, 밥상머리에서 무슨 짓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회장의 호통에 두 사람이 바로 사과를 하자 회장은 만족한 얼굴로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래, 지완아. 네 고모 말대로 위험하진 않겠니?”
“걱정 마세요. 말했다시피 저는 S급이니까요.”
지완이 웃으며 걱정 말라 하니 회장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지완은 슬쩍 친척들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그의 거짓말을 알아챈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날, 가짜 민채은이 습격했던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아는 것은 지완과 지호밖에 없었다. 휴게실이었다 보니 그 안에는 CCTV가 없었고, 누가 들어가는지 정도만 체크하는 CCTV가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습격당했을 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거짓말에 코웃음을 치거나 말을 꺼낼 줄 알았는데, 지완이 생각한 것보다 친척들은 똑똑한 듯했다.
지완의 자랑에 아니꼬워하는 표정만 지을 뿐 그의 거짓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진리교가 재벌가에도 손을 뻗었다고 했는데…….’
도문그룹에는 아직 뻗지 않은 걸까? 사실 지완이 가장 의심하는 사람은 둘째 고모였다. 그녀의 호텔에서 일이 벌어졌다는 점과 그때 아무도 휴게실에 오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그럴 법했다.
그러나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쉽사리 꼬리를 잡혀 주지 않아 결국 소득은 없었다. 내일부터 던전에 나가는 것만 확고해졌을 뿐.
* * *
모임에서 길드로 돌아온 지완이 내일부터 던전에 가겠다 하니 배 비서와 지호가 깜짝 놀랐다. 지호는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했으나 지완은 잠시 생각하더니 거절했다.
‘셋째 백부나, 둘째 고모만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닐 거야.’
지호를 들였다고 했을 때 정말 처음 들은 일처럼 행동했던 건 회장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지호를 들인 이유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그를 방패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바깥보다 오히려 던전 안이 안전해. 내 길드원이 전부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길드장인 지완을 포함해 그의 공격대 전원이 전부 고위 등급이었으니, 그에 맞는 습격자들이 아닌 이상 지완의 사람들에게 습격자들은 모두 제압될 터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모두 따로 행동하게 되는 바깥이 지완에게 더욱 위험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던전 안에 지호까지 데리고 다닌다면 둘 중 하나로 생각할 터였다.
그 정도로 지완이 몸을 사리거나, 혹은 잠깐이라도 떨어트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호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거나…….
비약이었지만 지완의 인생에서 지호만큼 가까이 둔 사람이 없었기에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으리라.
그래서 혼자 던전으로 갔다. 원래도 홀로 던전으로 갔기에 이상하게 여겨질 점은 없었다. 던전 입구 앞에서 길드원과 어시스트들을 만나 안으로 들어간 그는 평소처럼 던전 공략을 마쳤다.
* * *
도지완이 던전 공략을 마쳤을 때쯤 나는 그의 차를 몰고 던전 입구로 향했다. 크게 박혀있는 ‘초 보’ 글씨와 매끈한 외제 차의 모습 때문인지 내 반경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서둘러 왔을까? 던전 앞은 휑했다.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으나 던전 입구에서 한두 명씩 쏙쏙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그제야 차에서 나와 근처를 서성이고 있으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어? 지호 아니야?”
“진짜네?”
어시스트 일을 같이했던 형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안에는 정호 형도 있었다.
“지호야. 여긴 웬일이야?”
“아, 볼일이 있어서요.”
“볼일?”
“예. 저 취업했어요!”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서로 떠들어 대느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말은 축하한다는 소리였다.
“근데 취업했는데…….”
왜 여기 있냐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보는 그들에게 대답해 주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도지완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길드장님!”
내가 외치자 나를 돌아본 도지완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사람이 마중 나왔는데 기뻐하진 못할망정 얼굴을 찡그려?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저, 가 볼게요!”
“어? 어?”
나를 보고 얼굴을 찡그린 도지완이 몸을 홱 돌려서 가 버리기에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도지완의 뒤를 쫓았다. 대체 또 뭐가 심기를 거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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