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창을 단단하게 쥔 아이언맨이 벌렸던 거리를 빠르게 뛰어오며 창을 내지르자 도지완은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상대는 봉술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창을 휘릭 돌려 창대로 도지완을 공격했다.
“윽!”
변칙적인 공격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도지완은 아슬아슬하게 창대를 피할 수 있었다. 열받은 도지완이 외쳤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도지완의 질문에 아이언맨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들은 지켜보면서 끼어들 준비를 했다. 물론 D급 헌터인 내가 나서 봤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오체분시 될 터였다. 그러나 몸을 직접 날리는 것 외에도 싸움에 끼어들 다른 방법은 있었다.
나는 몸에 있는 신성력을 천천히 끌어 올렸다. 도지완에게 버프를 줄 생각이었다.
“너, 세진리교 놈이냐!”
그런데 도지완이 대답 없는 아이언맨을 보며 세진리교의 이름을 꺼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아이언맨의 몸에서 강력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더불어 도지완을 향한 지독한 살기까지 말이다. 그 기파를 맞은 도지완도 그에 맞서 기파를 터트렸다.
“윽……!”
갑옷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도지완과 비슷한 급인 듯했다. 서로 기세로 밀림이 없었다. 그 탓에 그들보다 약한 나만 죽을 맛이었다.
나는 주저앉은 채 끌어 올리던 신성력으로 내상을 다스렸다. 그나마 내가 D급이라 내상을 입는 정도로 그친 거지, 만약 일반인이었으면 곧바로 심장 마비로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강력한 기세들이었다.
서로 탐색하듯 기세만 뿜으며 노려보던 두 사람은 다시 맞부딪쳤다.
꽝! 꽈앙! 투왕! 하고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거의 차와 차가 서로 처박히는 소리가 났다. 무기가 맞부딪칠 때마다 공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상을 다스리고 상황을 보고 있던 나는 다시 한번 신성력을 끌어 올린 뒤 도지완에게 버프를 걸었다. 활력과 근력을 올려 주는 버프였다.
그 순간 아이언맨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나의 신성력을 알아본 듯하여 나는 찔끔했다. 여기서 그를 잡지 못하면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어딜 보는 거야?”
내가 버프를 걸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도지완이 아이언맨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아차 한 갑옷인은 허둥지둥하며 도지완의 공격을 막았다.
그렇지만 그 틈이 승패를 좌우했다.
까앙! 하는 소리를 내며 아이언맨이 들고 있던 창을 도지완이 쳐서 날렸다. 손에서 미끄러진 창은 딸그랑 소리를 내며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고, 승기를 잡은 도지완이 아이언맨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그의 팔다리를 찔러 이동을 쉽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게 참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고.”
도지완의 검이 아이언맨의 몸을 찌르려는 그 순간, 빈손이었던 그의 손에서 새하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저건?’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갑옷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다름 아닌 신성력이었다.
신성력을 쓰는 자가 마왕의 추종자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공격한 걸까?
당황하는 내 눈에 신성력을 두른 손으로 도지완의 검을 잡는 아이언맨이 보였다.
단단하게 붙잡힌 검에 도지완은 인상을 쓰더니 기운을 검에 실었다. 아이언맨은 신성력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도지완의 검을 붙잡은 그의 손에서 점점 검이 그의 몸쪽으로 밀려나는 것이 보였다.
‘큰일이야.’
이러다간 도지완의 검에 팔이 잘리게 생겼다. 적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팔다리가 잡히든 뽑히든 상관이 없었지만 같은 편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상황은 달라졌다.
끼어들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아이언맨이 나머지 팔을 들었다. 아무래도 도지완의 검을 한 손으로 막기 버거워서인 듯했다.
나는 그때를 노려 달려들었다.
“조심하세요! 길드장님!”
“신지호? 이거 놔!”
나는 도지완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외쳤다. 갑자기 달려든 나를 보자 도지완은 깜짝 놀라며 기운을 거뒀다. 그러자 도지완의 검은 신성력을 두른 아이언맨의 손에 와장창 박살이 났다.
도지완이 아차 하는 얼굴로 아이언맨을 바라보았다.
서로 무기를 잃은 상태로 상황은 다시 동점이 되었지만 도지완에게는 나라는 혹이 딸려 있었다. 아이언맨의 공격에서 지키려는 듯 팔로 나를 가리는 도지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깨진 검 조각이 있는 손을 털면서 훌쩍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가 물러났음에도 도지완은 반 토막 난 검을 꼬나쥔 채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한 상태로 서로 바라만 보던 아이언맨과 우리였다. 그때 뒤에서 차 소리가 났다.
“어? 길드장님!”
던전에서 뒤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우리는 다시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바닥에 떨어뜨린 창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헉! 검이 부서졌잖아요?”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전투의 흔적을 본 그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한 도지완은 허리에 매달려 있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를 방해한 터였기에 내가 찔끔하여 떨어졌더니 도지완은 한숨을 쉬고선 핸드폰을 꺼냈다.
“접니다. 사고가 있어서 데리러 왔으면 좋겠는데요.”
아마도 비서 형에게 전화하는 듯했다. 그의 통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자신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건 어떠냐 했지만 도지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래도 보험사도 불러야 할 것 같고…….”
“아…….”
뚜껑이 열려 강제 오픈카가 된 도지완의 차는 처참했다. 뒤에 크게 붙어 있는 초보 스티커가 처량함을 더했다.
사람들은 그가 마다하자 미련이 남은 눈치였지만, 번복이 없는 그의 성격을 아니 더 이상 제안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데리러 올 사람이 올 때까지만 있겠다고 기다려 주던 사람들은, 비서 형과 함께 보험사 사람이 도착하고서야 떠났다.
“길드장님!”
연락을 받고 온 비서 형이 차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또 세진리교입니까?”
그가 조심스럽게 묻자 도지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나만 속이 탔다.
‘아니라고…….’
신성력을 쓰는데 세진리교일 리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알릴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정말 누구일까?’
과거에 신성력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귀 후 내가 인간계로 내려오면서 달라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아이언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비서 형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우왓.”
거울에 비치는 몸이 멍투성이었다.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것처럼……. 범인은 뻔했다.
‘그렇게 서로 죽일 듯이 기세를 뿜어 댔으니까.’
기세도 파동이다 보니 세게 뿜는 걸 맞으면 이렇게 멍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점점 퍼렇게 올라오는 멍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신성력을 써서 치유해야 하나?”
살짝 누르면 통증이 오긴 하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신성력이 내재되어 있는 몸이라 자연적인 치유가 빨라서 굳이 아까운 신성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놔둬야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옷을 입으려고 할 때였다.
“신지호, 오늘…….”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도지완과 눈이 마주쳤다. 도지완은 내 상태에 깜짝 놀란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떴다.
“너…… 이게 뭐야?”
그러고는 단숨에 나에게 다가왔다.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 문에서 내 앞까지 온 도지완의 모습은 순간이동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황한 내가 반사적으로 팔을 오므려 내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양팔이 도지완에게 붙잡혔다.
“어어……?”
그리고 양팔이 쫙 벌려졌다. 가슴팍이 다 드러나 다시 팔을 오므리려고 했지만 단단하게 붙잡힌 팔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도지완을 애타게 바라봤지만 도지완은 얼굴을 찌푸린 채 내 몸을 살피느라 내 시선을 받지도 않았다.
“저기…… 놔주세요.”
“누가 이랬어.”
“예?”
“널 때린 게 누구야?”
“아니, 때린 사람 없는데요…….”
인상을 쓰던 도지완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낮에 기세를 피어올렸던 것이 생각난 듯했다.
한순간에 죄책감에 짓눌린 표정으로 내 몸에 난 멍들을 바라보던 그는 나에게 물었다.
“설마…… 치유력으로 치유가 안 되는 거야?”
나에게 치유 능력이 있는 걸 아는 그가 할 법한 생각이었다. 상상력이 조금씩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지 도지완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나는 그가 이상한 착각을 하기 전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치유가 안 될 리가요!”
“……그런데 왜 멍을 놔두는데?”
“그건…….”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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