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상이 한 번 망했다-52화 (52/88)

52화

불퉁하게 말하는 배 비서를 보며 상대는 당황했다. 다시 한번 마기를 불어넣으며 물었다.

「저, 정말로? 쉬고 싶지 않아?」

“네. 안 쉬고 싶습니다. 신규 충원은 없고 제 밥그릇은 제가 꼭 쥐고 있어서 죄송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배 비서는 제 손을 붙잡은 상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허, 상대가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는 인사했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할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고서는 휙 돌아가 버리는 그를 보고 상대, 마왕의 추종자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뭐지?’

왜 실패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했는데 어째서 배 비서에게는 제 능력이 통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어느새 멀리 떨어진 배 비서의 뒤를 보며 마왕의 추종자가 중얼거렸다. 그냥 퇴사 처리 하는 것이 배 비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거절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모두 배 비서의 탓이었다.

배 비서의 뒤통수를 싸늘하게 노려보던 마왕의 추종자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셨어요?”

배 비서가 다가오자 지호가 물었다.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그가 말했다.

“네, 일은 다 마쳤으니 이제 밥 먹으러 가죠.”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 지호가 배 비서를 슬쩍 훑었다. 아까 그가 배 비서의 몸에 안마하는 척 넣어 두었던 신성력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하네…….’

오늘 밤까지는 유지될 줄 알았기에 지호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했던 것보다 배 비서가 많이 피곤해서 금방 신성력이 닳았나 보다, 하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곧 두 사람이 탄 차가 천천히 도로를 달렸다.

* * *

도지완이 던전에서 나오는 날이 되어 나는 비서 형과 함께 차를 타고 던전으로 향했다.

“역시 사람을 많이 끌고 나올 걸 그랬을까요?”

비서 형은 습격에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왔으나 자신이 준비한 게 통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비서 형이 데리고 올 사람이야 고만고만할 테니 말이다.

“그냥 길드원들과 같이 행동하면 될 거예요.”

괜히 어쭙잖은 사람들 데리고 다니다가 습격당하면, 그 사람들은 총알받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던전이 좀 외각에 있으니 도심까지만 길드원들과 함께 행동한다면 안전할 것이다.

‘아무래도 마왕의 추종자나 아이언맨은 사람 많은걸 꺼리는 거 같으니까…….’

저번에 길드원들이 나타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아이언맨을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비서 형을 달래며 도지완에게 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차 전면에 검은 기둥 같은 게 솟아올랐다.

“으악!”

비서 형이 깜짝 놀라며 핸들을 뒤틀었다. 겨우 부딪치진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당황스러워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솟아올랐던 기둥이 사르르 녹아내리듯 사라짐과 동시에 우리는 이것이 습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어째서?”

비서 형은 크게 동요했다. 현재 우리는 도지완을 데리러 가는 중이었기에 도지완은 이 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가 이 차에 없음에도 습격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선루프를 바라보자 파란 하늘에 검은 공들이 점점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공들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아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쳐요!”

내 외침과 동시에 비서 형은 액셀을 밟았다. 나는 비서 형이 마련해 둔 무기를 들고 선루프를 뜯어 차 지붕 위로 몸을 내밀었다.

‘왜지?’

마왕의 추종자가 왜 우리를 노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내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킨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확답은 할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공격을 퍼붓고 있을 마왕의 추종자를 속으로 욕하면서 나는 무기에 마탄을 장착했다.

비서 형이 가져온 무기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이능 권총이었다. 몬스터들의 사체를 재료로 만들어 이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였다.

물론 이걸로 도지완을 쏜다고 그가 억! 하고 당할 리는 없었다. 아무에게나 통한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물론 나 같은 하급 이능력자에게는 다르겠지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마탄 하나하나에 내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권총을 꽉 붙잡은 채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은 공에게 겨눴다.

끼리리릭! 하는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비서 형이 운전으로 공격을 피하자 검은 공들은 애꿎은 아스팔트만 파괴하고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운전으로 모든 공격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가볍게 방아쇠를 당기자 마탄이 검은 공에 부딪혔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공중에서 부딪친 마탄과 검은 공은 상쇄되며 사라졌다. 잔존하는 신성력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음 목표물에게 총을 겨눴다.

미사일처럼 쏟아지는 검은 공들을 이리저리 피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공은 마탄으로 박살 내자 한적한 시골길이 전쟁터처럼 변했다.

콰아아앙! 쾅! 콰앙!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검은 공들을 쏘다 보니 어느새 탄창이 비어 나는 새 탄창을 얻기 위해 다시 차 아래로 내려갔다. 빈 탄창을 뒷좌석에 대충 던지고 새 탄창을 총에 끼워 넣으려는 그때였다.

“어……?”

갑자기 아래에서 쿵! 하며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나더니 차가 공중에 붕 떴다. 핸들을 붙잡은 채 눈을 홉뜨는 비서 형과 시선을 마주하는 그 순간 시야가 반전되었다.

“으아악!”

특히나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기에 나를 붙잡아 줄 것이 없었다. 몸이 차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딘가에 퉁! 부딪히고 무언가에 탕! 맞으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쿠우웅!

공중을 날던 차는 다시 땅에 처박혔다. 나는 앞 유리에 이마를 처박으면서 핸들 위에 얼굴을 처박는 비서 형을 보았다. 핸들에서 터져 나온 에어백 위에 엎어진 그는 미동이 없었다.

“비서 혀엉…….”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왜인지 팔이 엄청 무거웠다. 겨우 팔을 들어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는 순간 뒤집어진 차 바닥에서 쿵쾅쿵쾅하며 무언가 쏟아져 내렸다. 아마 우리에게 쏘아지던 검은 공들이리라.

공격에 차가 크게 흔들리더니 점점 찌그러졌다. 나는 결국 비서 형을 붙잡지 못한 채 팔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가물가물하던 시야가 완전히 검게 변하는 것으로 기억은 끝이 났다.

* * *

그는 저 멀리서 공격당하는 차량을 보았다. 그가 알기론 저 차량의 주인과 공격하는 자들은 같은 편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서로 의견이 달라 분열하기라도 한 것일까? 과거에도 이랬는가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무튼 저들의 분열은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 생각하며 떠나려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거워 떠나기가 힘들었다.

‘……분명 신성력이었지.’

지완의 곁에 있던 그 남자, 지호에게서 그는 신성력을 느꼈다. 어째서 신성력의 소유자가 마왕과 함께 있는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라고는 단 하나였다.

‘배신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었다. 아니라면 도지완과 같이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배신자라면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 그렇기에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제 마음과 달리 신경이 쓰여 그는 고민했다.

‘신을 배신했음에도 타락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 순수했던 신성력이 자꾸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아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그가 고민하는 사이 차의 뚜껑 위로 불쑥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를 고민케 했던 사람인 지호가 선루프 너머로 상반신을 불쑥 내밀고는 무언가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구체들을 격추하고 있었다.

‘……이능 권총.’

그건 그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총탄에 이능이 담겼다지만 그렇게 강한 무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호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구체들을 격추해 나가고 있었다.

콰아앙! 콰앙!

‘이능 뿐만 아니야. 분명 신성력이 담겨 있어.’

마기로 만들어진 공격을 마탄에 담긴 이능 정도로 막아 내긴 힘들었다. 그러나 지호는 신성력 제어를 꽤나 잘하는지 마기와 상쇄되어 사라지는 마탄에서는 신성력의 흔적을 느끼기 어려웠다.

만약 그가 지호의 신성력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도지완이 새로운 이능 총을 개발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가 고개를 돌려 마왕의 추종자들을 보았다. 마탄에 번번이 막히는 제 공격들이 당황스러운지 허둥지둥하는 꼴이 웃겼다.

아무래도 세진리교에서도 그리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