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비……서 형은……요?”
아픔에 끙끙 앓으면서도 그에 대해 묻자 도지완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배 비서는 어제까진 중환자실에 있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겼어.”
“으…….”
“둘 다 살아난 게 신기할 정도라고 하더군. 너야 D급이라도 이능력자니까 튼튼해서 그럴 수 있다 쳐도 배 비서는, 정말 저승 문턱까지 갈 뻔했어.”
말을 마친 도지완은 크게 한숨을 쉬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우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많이 피곤해 보였다.
“……나만 공격하는 줄 알았어.”
“예?”
“생각해 보면 내 주위 사람도 위험한 게 당연한데.”
그 말을 마치고 얼굴에서 손을 뗀 도지완은 표정이 없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단 소리야.”
“…….”
“그리고 그때는 이렇게 운이 좋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그제야 도지완이 무슨 말을 할 건지 대충 눈치챘다. 도지완은 또 나를 해고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넌…….”
또다시 닥친 해고의 위기에 열받은 내가 손을 뻗어 도지완의 입술을 붙잡았다. 나에게 붙잡혀 오리주둥이가 된 도지완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열받는 것도 열받는 거지만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서 그런지 피곤함이 더 컸던 나는 성질을 부렸다. 이성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시끄러워. 난 환자야. 나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
“나 자꾸 해고하려고 하는데…… 이번에 해고하면 복수할 거야.”
으르렁거리는 나를 보고 도지완은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맹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 바라봐도 해고의 복수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팔에 힘이 풀려 도지완의 입술을 놓자 도지완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계속 거듭해서 복수할 거라고 속삭였다.
“넌……. 무섭지 않아?”
“아뇨? 해고는 무서운데요? 그래서 해고당하면 복수할 거야.”
“아니, 그거 말고……. 너 진짜 죽을 수도 있었어, 저 중환자실에 있었던 게 너일 수도 있었다니까?”
“아 그건 안 무서우니까 조용히 해요.”
나는…… 지금 무척 졸리단 말이다. 한바탕 성을 내고 나니 급격하게 피로해졌다. 감기는 눈을 껌뻑이면서 대답하자 황당함을 가득 담은 도지완의 눈이 나를 향했다.
점점 의식이 잠겨 드는 가운데 도지완이 물었다.
“……해고당하면 어떻게 복수할 건데?”
눈이 감겨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도지완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난 진심으로 말하는데 도지완은 농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나는 인상을 쓰며 그에게 내 복수 계획을 털어놓았다.
“나 해고하면…….”
“해고하면?”
“……현관에 똥 쌀 거야.”
“…….”
“진짜야…….”
더 이상 수마를 참을 수 없어서 웅얼웅얼하면서 나는 정신을 놓았다.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도지완의 헛웃음 소리가 언뜻 들린 것도 같았다.
* * *
암살 건, 아이언맨의 습격 건, 그리고 도지완이 없었을 때의 습격까지. 도지완의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은 총 세 번이었다.
그나마 아이언맨의 습격은 막을 수 있었지만, 최초의 암살 건과 최근의 습격 소식이 퍼져 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첫 번째는 목격자가 많아서 그렇다 치고 세 번째는 너무 요란하게 일을 벌여 놔서였다.
‘그야 아스팔트가 미사일을 맞은 것처럼 다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탔던 차마저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으니……. 다행히 아이언맨에 대한 이야기는 도지완이 하지 않았다.
머리가 냉정해지고 나니 정황상 그가 비서 형과 나를 구해 준 것 같다고 판단한 듯하고, 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두 번째 습격에 대해서도 털어놔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지완은 죽은 마왕의 추종자들을 죽인 것이 자신이라고 경찰들에게 둘러 댔다.
〈굉음을 듣고 제가 달려왔을 때엔 놈들이 차에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 그걸 보고 막으려고 하니 저에게 달려들기에 그만…….〉
실제로 놈들의 지문이 덕지덕지 붙은 휘발유가 가득 찬 통도 발견되어서 도지완의 이야기엔 허점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죽은 마왕의 추종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들을 수 있었는데, 조금 황당했다. 죽은 세 명 전부 멀끔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중견 기업의 부장이고, 한 명은 대학생, 또 다른 한 명은 학원 강사라고 하더군.”
“……꽤나 평범한 사람들이네요?”
생긴 것도 그렇고 평범한 일을 하며 살던 민간인들이라는 게 조금 충격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는 도지완의 태도가 좀 수상했다. 조금 망설이는 것이 보여 뭐 때문에 그러는 거냐 물으니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걸 말해야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말이야…….”
“뭔데요?”
“아무래도 놈들이 난리를 피워 가며 일을 벌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이유가 도지완, 자신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를 불러서 차가 불타고 있는 걸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더라.”
어……? 나는 그 의미를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뒤에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는 깜짝 놀랐다.
“진짜 개새끼들이잖아?”
냉정하고 사람을 제 선 안으로 두는 법이 없는 도지완이라고 할지라도 아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고, 또 그 시신이 불타는 걸 보게 된다면 멘털이 무너질 것이다. 경악하던 나는 이게 도지완의 뇌피셜인지 정말로 놈들이 쓰레기들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추측한 거예요?”
내 물음에 도지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떨어진 곳에서 놈들이 타고 온 차를 발견했거든.”
그 안에 있는 블랙박스 안에서 놈들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며 도지완은 조금 괴로운 얼굴이 되었다.
“……다음엔 정말 위험해질지도 몰라.”
그 말을 꺼내는 이유를 잘 알았기에 내가 눈초리를 사납게 하고 노려보자 도지완은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항복의 표시에 나는 뾰족해졌던 눈초리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터넷이든 TV 뉴스든 도지완과 도문그룹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도지완 본인의 암살 건과 그 주변인을 향한 습격으로 인한 루머까지 생성되었다.
도지완이 무언가 큰 잘못을 했고 그 일의 피해자가 복수를 한 거라는 말과, 도문그룹이 무언가 크게 잘못해서 그 피해자가 도문그룹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인 도지완을 노린 거라는 이야기가 말이다.
그 와중에 습격자가 사이비 종교의 교인이라는 진실도 돌아다녔지만, 루머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게 도문그룹이 언론을 움직여 만든 연막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씩이나 도지완을 노린 테러가 일어나자 도문그룹의 회장은 크게 노했으나 암살 사건 때와 똑같이 범인을 잡아채지는 못했다.
세진리교의 미친 테러에 자신의 안전보다 도문그룹의 명성이 깎이는 걸 염려하던 도지완도 드디어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그의 던전 공략이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공격대가 무기한의 휴가를 받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없어도 어느 정도 공격대가 돌아가게 만들어 놨으니까.”
도지완이 빠져도 괜찮도록 체계는 잡아 놨기에 길드장 없는 공격대가 공략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가 빠진 만큼 전력이 줄어들었지만 워낙 노련한 사람들이라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뭐…… 초반이라면 모를까, 길드도 어느 정도 커졌으니 길드장인 내가 직접 던전을 돌 이유가 없기도 하고.”
아마 세진리교의 일이 해결되어도 다시 헌터 일을 하진 않을 것 같다고 도지완은 말했다. 어쩌면 이 미뤄짐이 이른 은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날이 갈수록 내 몸은 점점 좋아졌다. 이제는 걸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까지 좋아져서 나는 간간이 병원을 돌아다녔다.
“저 왔어요.”
옆 병실로 들어가며 인사를 하자 누워 있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오셨습니까?”
병실의 주인은 비서 형이었다. 그는 팔다리 할 것 없이 깁스를 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목에도 깁스를 한 채 몸을 일으키고 싶은지 움찔움찔하기에 나는 후다닥 뛰어가 비서 형의 침대 리모컨을 잡고 버튼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세워지는 침대에 기대 비서 형이 말했다. 내가 신성력을 부어 그를 살렸지만 모든 곳을 낫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쏟아부은 신성력 양이 꽤 되었는데…… 이 정도까지 밖에 못 고친 걸 보면 정말 몸이 안 좋았나 봐.’
그나마 쏟아부은 덕에 죽음과 불구는 면한 듯했다. 뼈가 산산조각으로 으스러져 흐물거리던 팔다리가 시간만 지나면 붙을 수 있는 정도로 끝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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