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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58화 (58/88)

58화

도지완은 나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의심스럽다는 듯이 굴었다.

“너 무슨 생각했어?”

“……아무 생각도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거짓말을 했지만 바로 간파당했다.

“거짓말.”

고개를 들이민 도지완이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안 거지? 나는 눈을 데룩 굴려 시선을 피했다.

“거, 거짓말 아닌데에?”

이쯤 되면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도지완은 오늘따라 집요했다.

“누굴 생각했는데?”

“힉.”

어떤 생각이라는 것을 넘어 누구라는 것까지 알아낸 게 놀라웠다. 이 사람 관심법이라도 쓰나? 여전히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척했다.

내 딴청에 도지완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약속 시간이 되었기에 두고 보자는 얼굴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신지호의 몸으로는 세 번째 방문하는 협회 건물에 도지완과 나는 도착했다. 원래라면 들어가는 것은 도지완 한 명뿐이었겠지만 나도 동행인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곳저곳에 모여 대화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도문 길드장님!”

그들은 도지완을 반갑게 맞이했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그의 안 좋은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은 인사를 건네며 말을 꺼냈다. 한동안 예의 삼아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길드장들이 본론을 말했다.

“연호진 말입니다.”

“어떻게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눈치를 살피는 길드장들의 얼굴엔 서로를 향한 경계가 묻어났다. 혹시라도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가늠하는 눈치였다.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 모두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를 도지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글쎄요. 본인은 다른 곳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도지완이 심드렁해하자 길드장들은 웃음 지었다.

“에이 그건 아직 자본 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거지요.”

“맞습니다. 아마 지금이야 처음 받아 보는 관심에 애국심이 가득 차서 거절했겠지만…… 나중에는 협회에 들어간 걸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이나 다름없는 길드와 달리 협회는 국가 기관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공무원 월급밖에는 받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점도 있었다.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명예로운 직책이라는 것 정도일까. 그러나 막대한 자본 앞에서는 그 빛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아마 1년도 안 되어 협회를 그만둔단 말이 나올 겁니다.”

자신 있다는 듯이 강하게 말하는 남자의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떤 재미있는 대화들을 하는 겐가?”

상대는 헌터 협회장이었다. 그 옆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연호진이 함께였다.

당당하게 말하던 남자는 아차 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협회장이 그보다 등급은 낮을지언정 그의 영향력은 절대 낮지 않았으니까.

정치계를 노리는 사람답게 협회장은 인맥이 출중한 데다 협회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헌터 일을 하는데 조금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각각 세 개씩 돌아가던 던전이 어느 순간 밉보인 그에게만 두 개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네 개씩 돌아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가 무너졌다면 모를까 기업이 모체인 길드와 정부 기관과 다름없는 헌터 협회 중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했다.

“아니, 별거 아닙니다.”

비굴하게 입을 다무는 남자에게 협회장이 살짝 시선을 주었다가 돌렸다. 비겁하게 뒤에서 수군댄 건 괘씸하지만 이만하고 넘어가 주겠다는 표시 같았다.

“자네 왔군.”

“예. 안녕하십니까.”

“와 줘서 고맙네. 이번에 힘든 일을 겪어 얼굴 보기 어려울 줄 알았거든.”

협회장이 도지완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한 척을 하자 그 틈을 타 길드장들이 몰래 우리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들도 연호진과 대화하고 싶어 했으나 그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해서 그런지 협회장이 어려운 듯했다.

아무튼 사람들이 멀어져 이 자리에는 우리 넷밖에 남지 않았다.

“흥. 사내다운 자가 하나도 없군.”

협회장은 코웃음 쳤다. 그리고 적어도 뻔뻔하게 있기라도 했다면 기개 있다 생각했을 것이라며 차갑게 말했다.

“음. 이쪽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연호진 군이라네. 지금은 신입이라도 곧 협회 중추에 오를 거야. 여기는 도문 길드 길드장인 도지완 군. 서로 만난 적은 없더라도 잘 알고 있지?”

협회장은 껄껄 웃으면서 두 사람을 소개시켰다. 서로 별로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한 얼굴이었는데 소개해 주는 사람이 협회장이다 보니 두 사람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도지완입니다.”

“연호진입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네고는 끝이었다. 싱겁다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연호진의 눈이 나를 향했다.

“이쪽은…….”

“에? 저요?”

“네. 당신은 소개받지 못한 것 같아서요.”

그 말에 협회장과 도지완의 얼굴에 의문이 번졌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도지완이었지만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 사람은 내 동행입니다.”

“그렇군요.”

‘근데 어쩌라는 거냐’라는 말투였다. 내가 도지완의 동행인 것이 소개받지 못할 이유는 아니니 말이다. 그 태도에 협회장과 도지완이 황당한 얼굴을 하는 가운데, 나는 혹시라도 싸움으로 번질까 끼어들었다.

“저는, 신지호라고 해요.”

“신지호 씨……. 그렇군요. 전 연호진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손을 쓱 내미는 것이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었다.

“신지호.”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도지완이 나를 불렀다.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중간에 껴 눈치를 보고 있는데 연호진이 내 손을 확 붙잡았다.

“이…….”

“도 길드장.”

무시당한 도지완이 열이 확 올랐는지 성큼 한 걸음 걸어왔지만, 연호진을 지키듯 앞을 막는 협회장을 보고 씨근덕거리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악수를 하면서 연호진의 몸에 몰래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등급이 높아 신성력을 알아챌지도 모르지만, 마기를 지니지 않은 이상은 신성력을 흘려보내도 그냥 상쾌한 기분이 들기에 안 들킬 확률이 높았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연호진은 미동하지 않았다.

‘음…… 아니었네.’

내가 연호진에게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그가 아이언맨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에는 없었던,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인물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전생에 용사였던 게 이렇게 발현이 되었다. 이런 것일 줄 알았는데…….’

그에게는 한 톨의 신성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전생에 용사로 신의 뜻을 받들어 일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에 그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손이 빠지지 않았다.

“……저기요?”

연호진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깊게 느껴지는 두 눈은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부담스러워진 내가 손을 살짝 흔들자 연호진이 그제야 내 손을 놓아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 하, 같잖은 수작질을…….”

연호진의 말에 도지완이 발끈하면서 몸을 들이밀었다. 이제 협회장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에 나는 도지완에게 매달렸다.

“아, 왜 그래요. 사과했잖아요.”

“처음부터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될 일 아닌가?”

“그냥 악수하다가 다른 생각 좀 할 수 있죠.”

내가 계속 연호진의 편을 들며 도지완을 말리자 도지완은 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제 동행인인 내가 제 편을 들기는커녕 연호진의 편을 드는 것이 굉장히 못마땅한 듯했다.

“자, 자…… 이제 회의 시간이 다 된 거 같군.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지.”

협회장이 회의를 핑계로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다. 도지완은 연호진을 사납게 노려보고는 회의하는 탁자 쪽으로 휙 몸을 돌렸다. 나는 서둘러 도지완의 뒤를 따랐다. 도지완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기분 상한 티를 팍팍 내었다. 내가 눈치를 보고 있자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제정신이야? 왜 그 새끼 편을 들어?”

“아니…… 거기서 편을 안 들었으면 둘이 싸웠을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같잖은 수작질이나 거는 놈 따위는…….”

으드드득. 꽉 쥔 그의 주먹에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곁눈질했다.

“……회의하러 와서 싸우면 어떡해요. 뉴스에 나고 싶은 건 아니죠?”

“싸우면 싸우는 거지. 내가 그거 하나 못 막을 것 같아?”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도지완의 눈을 희번덕거렸다. 나는 절대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저놈 편을 들어? 나는 구 오빠라 이거지?”

“아이…… 아니라니까요?”

“이제는 내가 아니라 저놈이 누굴 만나는지 궁금해?”

이제는 별걸 다 꼬투리 잡았다. 연호진에 대한 호감도는 높았으나 아쉽게도 그는 마왕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가 옆집 사람을 만나든 뒷집 사람을 만나든 관심 없었다.

추궁하는 도지완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뇨. 전 형님만 궁금해요.”

그런데 웃기게도 그 말에 도지완의 화가 풀렸다. 표정이 온화하게 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지만 뭐 때문에 도지완의 화가 풀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한숨을 쉬며 주위를 살피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상대는 연호진이었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러나 하고 황당해하고 있으니 옆에서 도지완이 이를 갈았다.

“눈알을 뽑아 버릴라…….”

성질을 부리는 그의 손을 붙잡으며 나는 속삭였다.

“하실 거면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몰래 하세요.”

들키지 말고.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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