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어?”
당신이 왜 여기 있냐는 얼굴로 어물거리고있으니 호진이 물었다.
“요새 이상한 거 못 느꼈습니까?”
“……이상한 거요?”
얼굴을 보자마자 뜬금없이 묻는 호진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순간, 며칠 전 지완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 떠올랐지만 지호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모르겠는데요?”
지호는 호진에게 호감은 있으나 왠지 그에게 지완의 일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지호의 단호한 대답에 호진은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런가요? 그럼…… 그건 뭐지.”
“네? 무슨 일이 있나요?”
호진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 물었지만 호진은 뭔가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못 안 것 같습니다.”
결국 호진도 지호처럼 말을 삼켰다. 자신이 느낀 것이 정말 그것이었다면, 지완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지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착각으로 뱉은 말이 괜한 분란이 되어 혹시라도 지호의 계획에 방해가 될까 싶어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래. 역시 내가 잘못 안 걸 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긴장이 풀린 호진이 한숨을 뱉었다. 그런 호진을 지호는 왜 저러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호진은 기회가 생긴 김에 지호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도문 길드장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뭐…… 어시스트 일 하다가 만났는데요.”
“어, 어시스트요?”
“네, 저 D급이거든요.”
호진은 조금 놀랐다. 지호가 높은 등급일 줄 알았기에 D급이라는 소리를 듣자 얼떨떨했다.
“그럼…… 어떻게 그분과 친해지셨나요?”
“음, 그건…… 제가 엄청 쫓아다녔거든요.”
“쫓아……다녀요?”
“네. 맨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옆집으로 이사하고…….”
지호는 추억이 되어 버린 일들을 떠올리며 아련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 말마다 범죄 행위가 떠올랐던 호진은 점점 어벙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하는 얼굴로 두 눈을 잘게 떨었다.
“……길드장님께서 집착하지는 않으십니까?”
“예? 집착이요?”
“네. 어딜 못 가게 한다거나…… 누굴 만나면 싫어한다거나?”
지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완이 자신을 어디에도 못 가게 막았던가?
‘아니지…… 말 안 들으면 내쫓아 버릴 거라고 성질이나 안 부리면 다행이지.’
그리고 지호는 만날 사람이 없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도 없는 데다, 그나마 친한 정호 형은 일하느라 바빴다.
자신의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지호는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가 곧 시무룩해졌다.
“생각해 보니 전…… 만날 사람도 없어요.”
“…….”
“예전엔 비서 형이 같이 놀아 줬는데 입원해서…….”
이건 뭐지 싶어 호진의 눈이 잘게 떨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호진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협회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그가 귀환하지 않아 협회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네. ……아니오. 곧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전화 통화를 끝낸 호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그렇게 꾸벅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던 호진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혹시라도…… 길드장님 때문에 힘들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호진은 사라져 버렸다. 혼자남은 지호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뭔데 돕겠다는 거야?”
계속 지완에게 날을 세우는 호진의 행동 탓인지 지호는 전 용사였던 그에게 가졌던 호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삐죽 내민 채 툴툴거리던 지호는 시계를 살짝 보았다. 곧 4시가 되어 가는데 지완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눌 대화가 그렇게 많은가?’
빨리 나올 줄 알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 한숨을 쉬는 지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완은 아까 용무를 끝내고 나왔고 호진과 지호가 둘이 있는 것을 본 그가 화가 나 어딘가로 가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 * *
용건을 마치고 내려온 지완은 지호와 함께 있는 호진을 보고 눈이 돌았다.
아까도 지호를 언급했던 호진이었기에 더욱 화가 났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머릿속에서는 마기가 계속 속삭였다.
‘죽여. 죽이지 않으면, 뺏길 거야.’
껄껄껄 웃으면서 지완에게 호진을 해하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둘을 보니 그 말이 거짓 같지 않아 지완은 두 사람에게 달려가려다가 희미하게 가게 전면 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질투와 분노로 범벅이 된 얼굴은 너무나도 추해 보였다.
‘이런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항상 자신감 넘치고 잘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지, 이렇게 추한 모습은 지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보고 있기 힘들어 지완이 자리를 피해 버리자 머릿속에선 지완을 욕했다.
‘병신! 머저리 같은 놈!’
‘그걸 왜 피해?’
‘저건 네 것이잖아? 양보해도 되겠어?’
목소리의 말대로 그는 머저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추한 모습은 정말로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지호가 그것에 실망해 떠날까 싶어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항상 자신만만했던 도지완은 존재치 않았다. 신지호에 관련된 일이면 항상 이렇게 작아지고 무능해졌다.
그렇게 약해진 지완의 틈을 목소리는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분노를 증폭하고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정처 없이 걷던 도지완의 걸음이 멎었을 때 그의 눈동자에서는 까만 마기가 일렁거렸다.
“그래. 그건 내 거지.”
연호진의 것이 아닌 도지완의 것.
‘신지호는 연호진이 아닌 내가 궁금하다고 했어.’
호진보다 지완이 좋다고 했는데 어째서 자신은 지호의 마음이 떠날까 전전긍긍했을까? 지완은 우위에 서고 싶었다.
지호의 우위에 서서 지호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었다. 그가 입는 것, 먹는 것, 보는 것, 만나는 사람. 그의 모든 것을 제 입맛대로 다루고 싶었다.
‘내가 우위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조급한 거야.’
지호가 언제든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지호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면 사라질 것이다.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호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만족감이 배 속부터 가득가득 차올랐다.
‘그러려면 좀 더 강해져야 해.’
머릿속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냉정하고, 잔인해져야 한다. 지호가 울면서 매달려도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까만 마기가 일렁거리는 눈동자가 주위를 훑었다. 그러다 어느 한 건물에 위치한 동물 병원에 시선이 닿았다. 분양이라는 단어를 보고 홀린 듯이 그 앞으로 다가간 그는 제 시선을 빼앗은 강아지를 들여다보았다. 곧 그가 동물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이 개를 분양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지완의 말에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강아지를 들어서는 지완에게 안겼다. 아직 새끼라 주먹만 한 크기의 강아지는 지완의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이제 2개월하고 10일 지났고요. 접종은…….”
간호사가 옆에서 무어라 떠들며 설명했지만 지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기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걸 죽여. 죽이라고.’
마기는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그의 죄책감을 서서히 없앨 작정이었다.
강아지는 너무 작아서 지완이 손만 살짝 까딱여도 손안에서 짜부라질 것이 자명했다. 계속해서 살심을 불어넣는 마기 때문에 지완의 눈이 점점 짙어졌다.
‘죽여, 죽여, 죽여.’
거듭되는 목소리에 손을 뻗어 목을 비틀려는 그 순간 강아지가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자기를 죽일 사람인 것도 모르고 짧은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애교를 부리는 게 바보 같았다.
강아지는 지완의 품에 안겨 들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티 하나 없는 하얀 몸체에 박힌 촉촉한 까만 콩 세 개가 자신을 바라보자 지완은 왠지 모르게 지호가 생각났다.
그의 머리에서는 마기가 강아지를 죽일 것을 요구했지만, 지호를 떠올린 지완의 눈에서는 마기가 서서히 옅어졌다.
지완은 저도 모르게 홀린듯이 결제했다. 강아지 용품이 아예 없다는 그의 말에 간호사가 추천하는 용품들도 남김없이 구매하고 동물 병원을 나왔을 때 그의 앞에는 경호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온 그가 자신들과 멀어지자 차에서 내려 쫓아온 듯했다.
“짐 들어 드리겠습니다. 길드장님.”
경호원이 내미는 손에 짐을 맡기면서도 지완은 상자 하나만은 넘기지 않았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지완은 지호가 있을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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