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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69화 (69/88)

69화

“입장은 16시인 오후 4시부터 합니다. 위에서 회의가 끝나면 공격대 별로 간단한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금 11시 45분이니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구내식당은 별관에 있으니 그쪽에 가셔서 드시면 됩니다. 평소에는 돈을 받지만 소집받아 오신 거라 오늘은 무료 배식입니다. 밥 드신 후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 대기해 주세요. 이후 모여야 할 장소와 시간 등은 문자로 알려 드리니 핸드폰 수시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브리핑이 끝났다. 대강당에 불이 켜지고 직원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서로 이야기하느라 대강당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야, 구내식당 갈 거야?”

“글쎄…… 그냥 밖에서 먹을까?”

“한번 메뉴 보고 생각해 보자.”

“그래.”

모두가 조를 이뤄 떠들면서 강당을 빠져나갔다. 아는 사람 없는 나는 홀로 빠져나와 로비에 서서 서성이다가 생각했다.

‘길드장 회의는 안 끝났나 보네.’

도지완을 기다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직원에게 길드장 회의가 언제쯤 끝날지 물었다.

“글쎄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방금 그 회의장에 도시락도 들어가서 밥 먹으면서 회의하실 거 같거든요.”

그 말에 기다리는 걸 그만두었다. 별관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가자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대강당에 있던 사람들의 절반도 안 되어 보였다.

그에 눈을 돌려 식당 메뉴를 보니 평범한 백반이라 아무래도 구미가 당기지 않아 다들 밖으로 나가서 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밥을 다 먹고 나와 로비 안쪽을 서성이고 있으려니 회의가 끝났는지 도지완이 내려왔다.

“밥 먹었어?”

“네.”

만나자마자 대뜸 밥 먹었냐고 묻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는 잘했다고 말하며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사람이 적은 곳으로 나를 끌고 가 회의에서 나누었던 정보들을 풀었다.

“예정대로 오후 1시에 던전이 개방되었어. 난이도는 C, 개방 지형으로 평지와 산악 지형이 섞여 있어. 크기는 9,761제곱킬로미터로 꽤 넓은 편이야.”

“꽤 넓은데 이동은 어떻게 해요?”

“평소에는 이렇게 넓은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니까 쓰지 않았지만, 이런 넓은 던전에선 이동 능력자들이 곳곳에 이동 토템을 설치해.”

개방된 던전 안에는 이미 협회 능력자들이 들어가 베이스캠프 작업과 이동 토템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 토템이란 쌍으로 된 토템을 하나는 베이스캠프에, 하나는 이동할 지역에 설치하면 토템을 터치하는 것으로 짝으로 된 토템 쪽으로 이동이 되는 이능력 물품이라고 했다.

“노멀하게 낮에는 공략을 하고 저녁엔 베이스캠프에 돌아오는 식으로 공략이 될 거야. 처음에는 2교대나 3교대로 하자는 의견이 있긴 했지만, 밤낮이 바뀌면 체력이 축나니까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

사실 공략이 급한 건 헌터 협회와 정부였지, 길드는 아니었으므로 자기 길드원 체력을 축내면서까지 공략에 열중할 이유는 없었다.

도지완이 말해 주는 것들은 나중에 다 들을 이야기였으나 그의 얼굴에 걱정이 서려 있어 나는 묵묵히 설명을 들었다. 회의 내용을 다 말한 도지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많아서 위험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사람이 많으니 변수가 많이 생길 수도 있어.”

“…….”

“나는 네가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의 손을 꽉 맞잡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요. 형님이 나 없을 때 누굴 만나는지 궁금하다고.”

꼭 따라가겠단 말을 돌려서 말했더니 도지완이 픽 웃었다. 여전히 걱정이 서린 얼굴이었지만 그는 웃으며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 꼭 나만 궁금해해야 해.”

그러면서 고개를 숙여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 간지러운 행동에 내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히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둘이 대화를 나누다가 내 핸드폰에 문자가 와 대화가 끊겼다. 문자 내용은 서포트 팀인 D급은 몇 시까지 협회 입구 근처에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같이 문자를 보던 도지완은 내가 일어서자 내 팔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내가 우리 길드 쪽 어시스트가 되게 할 테니까…….”

“괜찮아요. 다른 팀 어시스트가 된다고 해도 문제가 있겠어요?”

괜히 질책받을 일은 피하라고 말하며 나는 도지완과 함께 협회 입구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 혼란스러웠던 주차장과 도로가 정비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여러 대의 군용 트럭도 보였다. 트럭의 짐칸 쪽에 군인들이 주르륵 앉아 가는 그 차량 말이다.

저게 왜 있지?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서 있던 직원이 나를 보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대답해 주자 들고 있던 서류에서 내 이름을 찾고는 형광펜으로 쓱 그었다.

“저쪽 하얀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신발과 옷을 갈아입고 나오세요.”

그러면서 쇼핑백 하나를 나에게 넘겼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그 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협회에서 준 옷은 회색 상․하의로 된 작업복이었다. 튼튼해 보여 막 입기 좋아 보였다.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은 들고 온 쇼핑백에 넣어 밖으로 나가자 도지완이 쇼핑백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갈게.”

듣자 하니 서포트 팀은 군용 트럭을 타고 신림 던전으로 먼저 간다고 했다. 공격대들은 자기가 알아서 오기로 하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이따가 보자고 인사하곤 협회 직원에게 향했다. 그는 플라스틱 명찰에 내 이름을 쓰고선 내 가슴팍에 달아 주었다. 이상하게 내 이름 아래에는 세모(Δ)가 그려져 있어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신지호씨는 Δ(델타) 팀이에요. 팀이 섞인 채 던전으로 가도 안에서 모이면 되니 제일 앞에 있는 트럭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던전 입장하시고 델타 팀 있는 곳으로 가세요. 공략하는 내내 생필품 등은 협회에서 제공하니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팀장에게 요청하면 됩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트럭으로 향했다. 올라타기 전 뒤를 돌아보자 도지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게 손을 흔들어 주니 그도 손을 흔들어 주기에 나는 웃으며 트럭에 올라탔다.

“다 탑승했습니다! 출발합니다!”

직원의 말에 트럭이 천천히 출발했다. 승차감이 좋지 않아 왜 버스를 대절 안 하고 이 트럭을 타고 가나 인상을 썼지만, 도착한 던전 앞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빼곡히 있는 골목은 버스가 들어오기 힘들어 보였으니 말이다.

군용 트럭은 우리를 내려 주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던전 앞에서도 한차례 내 이름과 명단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에 들어가자 번잡하게 움직이며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있는 협회 직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공터에 세워진 팻말들이 보였다.

딱 봐도 저기서 모이는 것 같아 나는 Δ(델타)라고 적힌 팻말 뒤에 섰다. 내가 탄 차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아닌지 팻말 앞에 나 말고 두세 명 정도의 인원이 더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내가 오자 인사를 건넸다. 나도 인사를 건네고 그들 뒤에 쪼그려 앉았다.

“혼자 오셨나 봐요. 저희 셋은 같은 공격대예요.”

“공격대요?”

“네. 여기에 E급 두 명 껴서 협회가 운영하는 필드에만 나가고 있지만요.”

필드란 던전이 제 시간 안에 공략이 되지 않아 던전의 것이 바깥세상에 나와 침식한 땅을 의미했다. 던전처럼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몬스터를 때려잡아야 하는 필드는 헌터 등장 초기에 빈번하게 일어났다.

웬만한 필드들은 정리가 되었지만 몇몇 개의 필드는 협회 관리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필드는 던전보다 안전해서 높은 등급의 헌터는 흥미를 가지지 않지만, D나 E만 되어도 안전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기 좋았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는 게 질렸는지 나에게도 말을 걸었다.

“헌터 협회 긴급 소집이 꽤 돈이 된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어시스트라 아닐걸?”

“아냐, 그래도 위험 없이 후방에서 서포트만 하는 거니까 필드 도는 것보다 조금 덜 받아도 이득 아님?”

“뭐 그렇기도 하지……근데 안됐다. 고작 C급 던전인데 S급까지 소집되었잖아, 그 사람들은 여기 도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일걸?”

그들의 말대로 긴급 소집 때 등급에 따라 던전의 이득을 분배했다. 이곳은 C급 던전이라 광산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얻을수 있는 것이라고는 C급의 부산물들이었다.

‘거기다 광산이 나와 봤자지…….’

이 던전은 빠르게 클로즈를 해야 하는 던전이라 광산이 나온다 해도 캘 수나 있을까 싶었다. 아무튼 이렇게 손해만 보는데 길드들이 긴급 소집에 왜 응한 건가 싶겠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이미지를 위해서. 대부분 기업이 엮여 있다 보니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봉사 활동 나오듯 나온 것이었고, 둘째로는 민심을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헌터 취급을 받지 못하는 D급도 열심히만 하면 하루에 수백 만 원은 훌쩍 벌었다. 이런 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질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헌터들은 평소 던전 안의 몬스터에게서 나라를 지키는 이미지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런 국가 재난 사태에 움직이지 않으면 민심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나라가 망해 시스템이 망가진 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민심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돈 안 되는 봉사 활동을 나오면서까지 온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해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정의롭습니다.’

……라고, 전에 도지완이 말해 줬었다.

‘그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사람이 원래 힘이란 게 생기면 써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S급이면서도 친척들에게 몸을 사리는 도지완에게 물어봤었다.

그때 도지완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나는 사람이니까.〉

〈엥?〉

〈지금도 손가락 하나로 앞에 서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죽일 수 있지만 나는 괴물이 아니고 인간이니까.〉

〈음…….〉

당연한 말을 이해 못 해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도지완은 픽 웃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류는 헌터가 아니야. 주류에게 한번 밉보여 인간이 아닌 괴물로 낙인찍히게 되면 사람이든 사회든 나를 거부할 테지. 계속해서 폭력으로 굴복시킬 생각이 아닌 이상 나는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무해한 사람이어야 해.〉

〈…….〉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헌터들이 하고 있는 일이고.〉

그래서 모든 헌터들은 범죄자를 꿈꾸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런 긴급 소집 같은 국가 일에 발 벗고 나서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호구처럼 끌려다니며 무료 봉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적을지라도 긴급 소집에 대한 던전 지분을 나누는 게 그것이었다.

같은 델타 팀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사람이 점점 모였다. 델타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인원들도 합하니 명수가 꽤 되었다.

‘지금까지…… 300명 정도 모인 거 같은데…….’

그럼에도 들어오는 사람은 계속 이어졌다. 모두 입구 쪽을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이야…… 필드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많은데? 나는 서울에 D급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당연하지. D급이라고 필드에만 나가겠냐? 던전도 가고 헌터 일을 안 할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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