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내 말을 들은 도지완은 멍해 보였다. 갑자기 뭘 하나 싶어 눈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그를 불렀지만, 도지완은 한동안 그냥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 이러나 싶어 난감해하고 있으니, 도지완이 흔드는 내 손을 붙잡고 어딘가로 성큼성큼 갔다.
“어, 어디 가요! 형님?”
아무 말 없이 걷는 그의 뒤를 따라 사람이 적은 으슥한 곳으로 끌려간 나는 도지완이 갑작스레 멈춘 탓에 등에 코를 쾅 박았다.
“으아…… 으브븝!”
부딪혀 찡한 느낌이 오는 코를 문지르고 있는데, 도지완이 내 턱을 붙잡아서는 갑자기 입을 맞춰 왔다. 아무리 으슥한 곳이라고 해도 여기는 던전 안이었고 누군가가 볼 위험이 넘치는데 미쳤나 싶어 반항해 봤지만, 도지완은 턱이 아닌 내 몸을 옥죄면서까지 입을 맞췄다.
결국 포기하고 입술을 바치니 만족할 때까지 입술을 비비고선 얼굴을 떼었다.
만족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아주…… 귀여워.”
대체 뭐가? 황당해서 올려다봤더니 계속 그렇게만 하라며 내 코를 붙잡고는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으으…… 그러고 보니, 콩설이는요?”
우리 둘이 같이 던전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콩설이 혼자 있을 텐데……. 내가 걱정 어린 얼굴을 하자 도지완이 입을 삐죽였다.
“당연히 맡기고 왔지.”
생각만으로 불쾌하다는 얼굴이었다. 누구에게 맡긴 거냐 물어보자 뚱한 얼굴로 답했다.
“펫 시터 놈.”
“시터 형이요? 아니 형을 놈이라고 불러요?”
“몰라. 내가 형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는 도지완이었다.
시터 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콩설이를 맡길 만한 사람이 딱히 없는 듯했다. 그가 민망해할까 봐 조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아무튼 걔는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제일 걱정되는 건 너야.”
“저요?”
“그래.”
아니 뒤에서 정리만 하는 어시스트가 뭐가 걱정된단 말인가? 한순간 나는 내가 공격대에 참여하게 되었나 고민해 봤지만 아니었다.
“제가 공격대도 아닌데 뭘 걱정해요?”
황당하다는 내 타박에도 도지완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너보단 공격대가 문제지.”
“공격대요? 공격대가 왜요?”
내 얼굴엔 의문이 깃들었다. 그들이 문제가 있을 이유가 뭐가 있던가?
‘아…… 혹시나 급하게 결성되어 오합지졸일까 봐 그러나?’
그래서 위험하다고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들리는 도지완의 말이 이상했다.
“공대장이 경험이 많지 않잖아. 그런 놈이 네 안전을 책임질 거란 생각을 하니…….”
처음엔 도지완이 농담하는 줄 알고 하하, 웃었지만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해 황당할 따름이었다.
‘S급이 SS급을 걱정해?’
미친 건가…… 내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 도지완이 말했다.
“내 걱정이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놈은 실제로 던전에 들어가 본 경험이 몇 없어.”
“…….”
“보고받았을 때 확인한 건 세 번쯤인데, 그중 한번은 안전한 필드를 돈 것이고, 나머지 둘은 소규모의 던전이었지. 이렇게 큰 규모의 던전과 공대는 처음이란 말이야.”
도지완은 한숨을 팍 쉬었다.
“공대장은 등급이 중요하지 않아. 아니, 당연히 등급이 높으면 좋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모든 상황을 잘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기에 공대장 중엔 등급이 한두 단계 낮더라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은 거고.”
“음…….”
“이번 일은 협회장이 잘못 판단한 게 아닌가 싶어. 던전이 C급이긴 하지만 이렇게 규모가 크면 몬스터도 많을 테고 자잘한 사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으니까.”
도지완은 협회장이 경험 부족한 애송이한테 어떻게든 실적을 쌓게 해 주려고 무리한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조심해. 이상한 느낌이 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고.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남보다 너를 생각하란 말이야.”
“네엥.”
그런 상황이 일어나면 과연 내가 도망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도지완이 한 손으로 내 볼을 짜부라트렸다.
양 볼이 눌려 붕어처럼 툭 튀어나오는 입술이 된 내가 인상을 쓰며 올려다보자, 도지완은 여전히 걱정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말랑이를 어떻게 하면 좋아. 내가 옆에 두고 봐야 하는데…….”
누가 말랑이라는 건지. 너무 나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어 한소리 하려 했지만 짜부라진 입에서 나오는 것은 으부붑, 으븝 같은 이상한 소리뿐이었다.
* * *
도지완은 못 미더워 했지만 연호진은 꽤나 능숙하게 공격대를 지휘했다.
그걸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같이 어시스트 하게 된 팀원들이 감탄을 했다.
“와. 대단하네.”
“저 사람 헌터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1년은커녕 반년도 안 됐는데?”
“뭐가 저렇게 익숙해?”
서로 속닥이던 몇몇이 팀장인 장원영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람 뭐예요?”
일하는 걸 보면 10년은 넘은 베테랑 같다며 놀람을 금치 못하는 팀원들을 보며 장원영은 씩 웃었다.
“그렇죠? 대단하죠? 연호진 씨는 진짜 SS급이 될 자격이 흘러넘치는 사람이에요.”
장원영의 얼굴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이룬 업적도 아니건만 그런 사람과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콧대가 세워지는 듯했다.
몇몇은 그런 장원영 모르게 서로 속삭였다.
“진짜 아깝다.”
“뭐가?”
“아니…… 연호진 말이야. 저런 능력을 가지고 헌협에는 왜 들어갔냔 말이야.”
“뭐 어때. 본인이 들어가고 싶다는데. 그리고 헌협 소속이면 어때서. 명예직으로는 최고잖아.”
상대의 말에 입을 열었던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야. 저런 능력을 가졌는데 헌협이 아니고 길드를 세웠어 봐. 지금 1황 3제 구도가 어쩌면 2황 3제로 바뀌었을지도 몰라.”
1황 3제 구도란, 맨 위에는 도문 길드가 있고, 그 바로 아래 금조, 설화, KX 길드가 서로 비등비등하게 2위를 다투는 것을 뜻했다.
아무도 도문 길드의 아성을 넘보지 못하고 있지만, 연호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나는 말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오…… 똑똑한데?’
확실히 전생에 두 사람은 운명이 정해 준 라이벌이라고 해야 할까…… 용사와 마왕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훔쳐 듣고 있는데 상대편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까?”
“혹시 모르지. 진짜 지금의 고여 있는 판을 깰지도…….”
그러나 곧 서로 코웃음 쳤다. SS급의 미래를 D급인 자신이 아까워하고 걱정하는 건 주제넘은 거 같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에휴, 일이나 하자.”
“그래.”
그렇게 두 사람은 잡담을 그만두고 공격대가 해치워 널브러진 몬스터의 사체를 주우러 향했다. 나도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열심히 일했다.
‘주워서 자동 수레에 담는 것만 우리가 하니 쉽네.’
솔직히 말해서 도문 길드 어시스트로 일할 때보다 이게 더 쉬웠다. 그때는 수거 팀이 따로 있어 몬스터 사체를 옮길 필요가 없었지만, 그 대신 공대원들의 수발을 드는 등의 다른 잡다할 일을 해야만 했다.
‘거기다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주거 지역에 던전이 열린 덕분에 씻기도 편하고…….’
물이 부족하다 싶을 때쯤이면 물이 가득 찬 물탱크가 던전 입구로 들어왔다. 그래서 도문 그룹 어시스트를 할 때처럼 물주머니로 간이 샤워실을 만들어 몸을 씻고 뭘 하고 할 필요가 없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탱크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니 말이다.
그렇다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면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한참 치우고 있는데 공격대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시계를 보고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된 걸 확인한 서포트 팀이 초조해졌는지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허둥지둥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도 돕겠습니다.”
“어…….”
“감사해요! 공대장님!”
연호진이었다. 공대장인 그가 우리를 도와 몬스터 사체를 수레에 담자, 멍하니 서 있던 다른 공대원들도 그를 따라 사체를 담기 시작했다.
딱히 불만은 없어 보였고, 동경하는 연호진이 서포트 팀을 도우니 본능적으로 따라 하는 눈치였다. 마지막 수레를 채워 돌려보내면서 모두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내 옆에 연호진이 붙었다.
‘뭐지?’
할 말 있나 싶어서 돌아봤지만 연호진은 딱히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옆에 섰나 보다, 하고 이동 토템을 이용해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으악.’
갑자기 시야가 바뀌는 경험은 몇 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지러움을 느껴 비틀거리던 나를 누군가가 붙잡아 줘 다행히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으윽, 감사……합니다?”
어라?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이 누군가 봤더니 연호진이었다. 내가 인사를 이상하게 끝마치고 그를 쳐다보자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연호진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습니다. 던전 클로징 후에 시간을 내줄 수…….”
“신지호!”
연호진이 말을 하는 도중에 누군가 나의 반대쪽 팔을 잡으며 불렀다. 당연히 물어볼 것도 없이 도지완이었다.
도지완의 눈이 나를 슬쩍 지나가 내 팔에 닿았다.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손을 보고서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놔주시죠. 우리 지호가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예? 제가요? 언…… 읍……!”
내가 언제 힘들다고 말했는지 알 수 없어서 되묻는데 도지완의 손이 내 입술을 꽉 붙잡았다. 입술이 오리주둥이 모양이 되어 황당해하고 있으니 연호진은 덤덤하게 말했다.
“넘어질 뻔해서 잡아 준 것뿐입니다.”
“……아닌 거 같은데.”
의심이 가득한 도지완의 눈이 나와 연호진을 훑었다. 그에 기분이 나빴는지 연호진도 물러섬이 없었다.
“오히려 도문 길드장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만?”
연호진이 내 입술을 붙잡고 있는 도지완의 손을 힐끗 보다가 도지완을 향해 강렬하게 눈빛을 쏘았다.
중간에 낀 나는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왠지 울고 싶어졌다.
“힘들어?”
도지완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힘드냐? 힘들면 말해. 진짜 힘든 게 뭔지 보여 줄게’라고 말이다. 평소라면 몰라도 이때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안 힘듭니다. 평생 이러고 있을 수도 있어요.’
속으로 이렇게 빌면서 말이다. 내 반응에 기세등등해진 도지완은 코웃음을 쳤다.
“안 힘들다는데?”
네가 신지호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아는 척이냐는 비웃음이 담겨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연호진을 더욱 비웃으며 도지완은 내 입술을 놓고 나에게 어깨동무를 해 왔다.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보디 샴푸의 냄새로 나는 그가 공략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후 옷까지 갈아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잠…….”
“가만히 있어.”
막 돌아온 터라 나는 아직 샤워는커녕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나와 붙으면 옷에 핏물이나 더러운 것들이 묻을 테니 밀쳐 냈건만 도지완은 오히려 단단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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